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421화 (42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21화

메인 던전 - Lv.17500 신령 [아후라 마즈다اهورا مزدا](5)

희우는 빠르게 움직였다.

날개가 비명을 지르지만 그것도 여러번의 반복으로 익숙해진지 오래다.

이젠 이 달아오름이 기분 좋게 여겨질 정도였다.

동시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다.

아직 완성조차 아니다.

[오버클럭 익스텐션]을 장착하는 순간, 이 제어 불능할 지경의 초가속은 단위로 세기가 힘들 정도로 빨라지리라.

이렇게 꼼수를 동원한 유사 스킬의 장점은 적에게 어떻게 되었건 일격을 먹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미궁에서 적으로 등장하는 존재들은 대체로 유배자보다 스펙이 높다.

하지만 그 스펙의 격차는 결국 종합적인 수치의 총량이 높다는 것에 불과하다.

끔찍하게 강력한 화력을 지닌 대신, 방어적인 부분은 일반적인 유배자 전사 수준인 보스도 있다.

[아후라 마즈다]가 취하는 유배자 신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 기계신의 분령은 요령이 없다.

무엇이건 만들 능력이 있음에도 축적된 데이터에서 뽑아내는 것밖에 할줄 모른다.

* * *

* * *

* * *

* * *

* * *

* * *

요정이며 궁수이자 마법사며 암살자이기까지 한 유배자라면 레벨이 몇이건 튼튼할 수 없다.

야수의 심장과 같은 용기가 아니라면 고레벨이 될 수도 없는 빌드니까.

그러면, 일격이면 된다.

그럼 죽일 수 있다.

지금 저 멀리서 다가오는 에길과 드라간의 시간에 맞출 수 있을 터였다.

뭔가 이상했다.

초격이 빗나갔다.

아직 가속이 덜 되었다.

그럴 수 있다.

이격도 빗나갔다.

삼격, 사격, 모두 빗나간다.

다섯 번째는 속력 자체가 달랐다. 이번엔 맞았다.

하지만 빗겨나갔다.

희우의 실수도 아니다. 흘려내졌다.

감각이 이상하다.

다시 벽을 차듯이 꺾고 선회한다.

실내에서만큼의 위력은 나오지 않더라도 충분히 빠르다. 몸의 움직임이 빠르니 팔과 손목의 변화는 조금만 있더라도 예측이 힘들어 진다.

몇 번 더 타격한다.

그리고 확신했다.

읽히고 있다.

어째서?

엄청나게 강력한 신인가?

희우는 그제야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오빠?”

육성으로 새어나오는 의문.

그리고 다시 닥쳐오는 소리의 벽.

무채색의 석고상 같은 조형이 진짜가 아님을 알려준다.

보스로서의 오르골.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머리가 쭈뼛하고 섰다.

아서가 뛰어든다.

희우는 멀리, 아주 멀리 크게 날아갔다.

아서의 공격은 아끼는 것 없는 전력이었다.

언젠가 하드스록의 요새 지하에서 터져나갔던 위력적인 금빛 섬광이 보스를 강타한다.

아서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강의 고정 NPC로서, 그리고 왕국의 하이랭커로서 40년을 더 갈고닦은 수단에 더해 여러 가지 기술을 더 탑재했다.

만능의 기사란 동시에 파티의 해결사가 되어야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금빛 섬광은 상당수가 강력한 아티팩트인 엑스칼리버의 액티브에 기댄 것이긴 하나, 이젠 또다른 것도 서려있다.

원탁의 기사들의 의지.

아서 전용이나 다름 없는 유니크 스킬 [나이트 오브 카멜롯].

아서가 익힌 강제 연계는 결국 그것을 한번에 발출하는 것을 위해서였다.

요컨대 저것은 아서왕이라는 인간의 삶이 담겨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격이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실제로 그렇다.

반대편에서 붉은 섬광이 번뜩인다.

휘말리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져 다음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희우는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서가 종종 언급하곤 했던, 그를 패배 시킨 오빠의 일격.

카베의 유니크 액티브인 [최후의 전쟁]에 이어 온갖 연계가 더해진 괴물 같은 한 점 가르기.

아서는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황금과 붉은 힘이 충돌한다.

충격파가 번져 나오는 가운데 희우는 돌격했다.

서로 상쇄되었나?

아니다.

아서가 밀려났다.

당황하는 노기사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희우는 더욱 가속했다.

지금 그녀가 도착하지 못한다면 아서가 당할지도 모른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몸을 가다듬는다. 이미지는 중요하다. 무술에서도 그렇지만 미궁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인간의 의지는 그대로 창이 될 수 있다. 공감각도, 강제 연계도 그런 갈고 닦음의 산물이니까.

하지만 늦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기에 파티인 것이다.

루시가 굳은 표정으로 뛰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석고로 빚은 것 같은 기묘한 레바테인이 냉기를 내뿜고, 루시의 창과 맞부딪친다.

희우는 한숨을 돌리는 대신 더 가속했다.

미리 맞춰둔 합은 아니다.

여기서 그녀가 이렇게 무리하는 약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궁은 언제나 계획이 전투 시작과 함께 죽어버리는 곳.

루시가 다섯 번의 합을 겨루고 밀어낸다.

보스가 몸을 돌렸다.

순간적으로 모든 버프를 가동한다.

즉발이 가능한 버프는 가능하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켜지 않기.

심리전의 일환이자 오빠의 가르침.

그러나 과연, 지금의 보스는 오빠를 그대로 복사하고 있었다.

저쪽 역시 당장 가동하는 버프를 켜며 한순간에 대응한다.

공간이 크게 출렁였다.

자세를 제어하며 밀려난다.

가속이 끊어졌다.

좋지 않다.

단숨에 제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것의 스펙이 너무 높다.

오르골A는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물론 입맛을 다실 시간도 찰나밖에 없다. 그래도 이제 해야 할 게 확정된 일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로그라이크는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장르다.

죽음을 불사하고, 무모해 보이는 것을 해내야할 때가 있다.

그냥 안전만 추구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목숨이 여러 개라는 점에서도 그럴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아예 부활 스택을 소모할 것을 상정하고 싸우는 형태의 전법을 말이다.

혹은 죽더라도 영점사격을 한 셈이니 다음에는 더 잘할 것이다.

물론 포기한지 오래다.

미궁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게임이면서 게임이 아닌 부분이 있으니까.

이제야 깨달은 것이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어 환장한 이 미궁도 그 속내를 열어보면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정말로 죽을 생각을 하면 결국 살아남지 못하고 도달하지 못한다.

부여하는 것은 그저 시련.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미궁의 의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셈이다.

그에 완전히 반한 전법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하지만 일단 나는 부활 스택이 하나밖에 없지.”

안 쌓아두었다.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까.

자신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불의의 사고를 대비한 하나뿐이다.

지금부터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손을 뻗자 제니가 병을 하나 던진다.

속도에서 지면 큰일이니 기천사의 피가 담긴 병이다.

농도는 아주 짙게 했다.

입에 포션병을 머금는다.

복제는 이 아티팩트마저도 복제해낸다.

기계신은 진정으로 신이다.

하지만 과연 이 나를 온전히 복제했을 것인가.

진짜 나여. 보고 있어라.

이 오르골A가, 아니.

바로 내가 확인해주도록 하지.

레바테인은 없다.

하지만 제니가 셋이 있다.

뒤편에서 보고 있던 제니즈의 리더, 전사 제니라 자칭한 고양이 천사 역시 미아를 살포시 내려두고 인사한다.

미아가 뭐라고 말할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졌다.

도핑이 몸에 번지고 추가적인 조치를 더 취한다.

생명을 불태우는 마법은 흑마법 계열에 은근히 존재한다.

부활 스택이 충분하다면 그마저도 탄환으로 사용하는 것은 은근히 유효한 전법이다.

물론 그렇게 넉넉한 부활스택을 쌓을 바에야 고스란히 스펙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좋다.

아서가 나와 처음 싸웠을 때 하였던 말.

몸에 나쁜 방식을 사용하는구나.

그건 옳은 말이다.

[용사]라는 신체적 스펙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몸이 상하는 형태의 기동이었다.

그걸 더 격렬하게 준비한다.

체내의 마력을 짜내어 근육으로 옮기고 근육은 다시 손상을 각오하면서 폭발을 받아들인 준비를 한다.

강제로 방향을 꺾고 힘을 가하며 내 몸을 몸이 아닌 인형처럼 다루기 위한 준비.

스펙의 열세를 순간적이나마 극복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거의 쓰지는 않지만, 그 방식은 익숙하다.

그리고 몇 가지 더, 마법과 마법과 마법. 그리고 스킬과 버프와 버프를 떡칠한다.

그 약간의 시간은 ‘진짜’들이 벌어주었다.

크게 외친다.

“비켜! 여긴 우리가 처리하지!”

루시가 의아해하면서도 물러났다.

내 목소리인 탓일 것이다.

희우가 힘겹게 속력을 제어하며 바닥에 미끄러진다.

그 표정이 안쓰럽다.

아서가 신음하며 거리를 벌린다.

“다들 잘 봐둬. 일대일로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편이 좋아.”

물론 내게는 몇 가지 결락이 있다.

알지 못하는 기술이 있다. 미궁의 틀에서 조금 벗어난 잡기술들.

다른 파티원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며 알았다.

그래도 그게 내가 가진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저 또 다른 가짜 역시 이걸 구현할 수는 없다.

조건은 동등하다.

스펙은 내가 열세다.

그 열세인 부분은 제니가 파티원들의 지원이 메꿀 것이다.

검을 들고.

아티팩트가 아닌 그냥 아다만타이드의 검.

훌륭하지만 양산품이며 대체할 수 있는 검.

이것이 지금의 나.

저쪽의 희끄무레한 백색의 검.

대체 불가능 할 것을 억지로 만들어낸 뒤틀린 아티팩트.

저것은 쓰러트려야할 나.

숨을 내쉰다.

증기 같은 것이 빠져나온다.

마력이다.

몸 안 구석구석까지 마력을 흘렸다.

마법을 사용할 여력조차 남겨두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 몸을 엔진 삼아 가동하는 연료로.

자세를 숙이고.

새하얀 내가.

보스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격발했다.

지금부터는 가짜들의 싸움이다.

제니즈는 사실 가짜 리더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몰랐다.

그녀 셋이 요구받은 것은 그저 원래 하던 지원을 해달 라였을 뿐이다.

끼어들 수 있지 않나. 이 몸을 내던지면 뭐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해보았다.

그러나 일어나는 일을 보자 그 생각이 쏙 들어갔다.

제니 중 하나가 눈을 비비고 그 옆의 서브 리더를 보았다.

멋들어지게 미끄러지며 바닥에 마찰열에 의한 자국을 만들어두었던 천사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전투를 보고 있었다.

입은 벌어져있지 않다. 하지만 눈만은 똑똑히 고정되어있다.

그 눈동자에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며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작은 목소리가 고양이 천사의 예민한 귀에 들려왔다.

“제어하고 있네. 공감각도 없을 텐데. 어떻게?”

문자 그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보고 있다.

제니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다시 싸움을 본다.

무언가 번쩍이고 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보스 스펙의 저것이야 그렇다 치지만, 아군이 되어 싸우고 있는 복제 리더는 어떻게 그 공감 뭐시깽이 없이 저럴 수 있는가.

그리고 신호가 왔다.

매직 제니가 제일 먼저 나선다.

[파편의 무기]는 리치에 극단적인 장점을 주는 유니크 스킬.

끼어들 틈이 언제인지는 모른다.

서로 짠 것처럼 이어지고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공방 사이에서 거대화된 제니의 검이 문득 빨려 들어간다.

저것은 대검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한손 검의 판정을 가질 때도 있다.

제니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리더는 한 번도 쌍수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같은 마스터리라면 다룰 수 있는 한, 반드시 쌍수가 더 강할 텐데.

지금 처음 보여주고 있다.

검이 빨려 들어가고 다시 튕겨 나왔다.

그리고 두 리더도 튕겨 나왔다.

하얀 쪽이 베여있었다.

저쪽은 쌍수를 할 검이 없다.

그것이 다른 검을 본다.

다시 색이 있는 쪽이 달려들었다.

흰색의 가짜와 색이 있는 가짜.

둘이 어우러진다.

제니들은 교대로 무기를 가져다 댄다.

그때마다 흰색의 가짜에게 상처가 하나씩 늘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잎사귀 요정이 쌍검에 특화되었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사실이다.

그냥 종족 자체가 쌍검을 써도 괜찮을 만큼의 스탯 보정을 줄 뿐이다.

쌍수라는 것은 멋있어 보이지만 실전성은 생각보다 떨어진다.

그것을 활용하는데 너무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피지컬 이전에 뇌지컬이다.

생각의 속도가 쌍검의 궤적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나를 만든 것은 지금 내가 상대하는 보스.

이것이 내게 새겨준 것이 오리지널의 기억.

그 오리지널의 기억과 경험은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체화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오리지널도 이렇게 생명을 내던지는 식으로 몸을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 정말로 온전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생각은 멈췄다.

희우에게 가르친 것도 이런 것이다.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결국은 감이다.

문득 생각난다. 그 공감각인가 하는 것에 대해 지워져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것조차도 사실 일종의 훈련에 불과하다.

계속 그걸 사용하다보면 어느 새 항상 세상을 그렇게 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내 기술이 정교한 이유.

내 마법이 정교한 이유.

그렇지 저런 것을 발견하고 노력한 덕이었지.

그러니까 복제인 내가 그걸 모르는 것은 사실 아무 문제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싸우면서 느낀다.

이 희끄무레한 보스는 아직도 스펙으로는 나를 압도하고 있다.

찰나의 호흡씩 내가 뒤처지기 시작하는 이유다.

그 사이를 쌍수와, 순간적인 제니의 무기를 통해 메꾼다.

아무리 스펙이 높아져도 결국은 상대의 몸에 칼을 가져다대는 쪽이 이긴다는 점은 변치 않는다.

잠깐 늘어난 리치가 적을 밀어내고 상처를 누적해간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사실.

이 녀석.

온전히 내가 아니다.

어딘가에 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다.

[아후라 마즈다]는 의문을 느꼈다.

자신이 만든 복제다. 그리고 지금 이 형태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만들었음에도 스펙에 앞서는 자신이 밀릴 이유는 없다.

왜일까?

무슨 차이일까?

다시 분석한다.

가지고 있는 방대한 기억을 분석하여 대조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의 존재가 문제다.

[아후라 마즈다]라는 존재의 의지가 문제였다.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형태변환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 싸우는 복제는 그런 면에서는 완전히 분리되어있다.

애초부터 그런 식으로 강자를 복제하여 병사 삼으려는 의도의 명령이었다.

독립되자 그 자체로 어떻게 새로운 무언가로 진화한 모양이다.

단순한 복제가 아닌 무언가로.

하지만 [아후라 마즈다]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살아남아야하는 것은 그니까.

대신, 저것이 어디까지나 자신이 만든 하수인이라는 점에 주목하기로 했다.

내가 아닌 부분에서 약점이 나온다.

한순간 호흡을 못 따라오게 된다.

스펙으로만 쌓을 수 없는 게 있다.

그걸 수습하려고 뭔가 하려고 하는 순간도 판단미스다. 순식간에 상대가 무너진다.

원래 이런 일은 찰나에 일어나는 법이다.

그대로 친다.

치고 또 친다.

아다만타이드 검의 이빨이 나갔다.

제대로 베이지 않는다.

보스의 갑옷이, 스펙이 딱딱한 탓도 있다.

그래도 그냥 두들긴다.

초인적인 힘은 공간에 충격을 준다.

일렁이며 주변이 이지러졌다.

다시 돌격.

찌르고 벤다.

팔을 베어냈다.

그 다음에는 다리를 베어냈다.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삐이이이 하는 이명이 울렸다.

몸이 의지의 제어를 벗어난다.

뭐야. 이거 역시 되잖아.

이 녀석 바보네.

그게 되면 좀 더 일찍 나를 통제하려고 했어야지.

늦었어.

이미 관성에 따라 찌른 검이 깊이 박힌다.

깊이.

더 깊이.

온 힘을 다한 마지막 일격이 말뚝처럼 녀석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내 몸이 의지를 벗어나지만 신기하게 자아가 어디로 날아가진 않았다.

그와 동시에 몸이 식는다.

가득 퍼뜨린 마력이 다했다.

무리한 육신이 수명을 다해간다.

근육도 혈관도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다.

뼈도 사실 이미 여러 곳이 조각나있다.

내 몸 자체를 전투 인형처럼 혹사시켰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보스가 나를 제어하기 시작해도 나를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등을 관통하는 감촉이 있었다.

[파편의 무기]로 거대화된 검날이 배로 튀어나온다. 그대로 꿰뚫은 채, 보스를 더 단단히 바닥에 고정해버린다.

같은 사람의 내장이 흐른다. 그 사이에 무기물이 섞여있음이 보인다.

몬스터로 존재하는 뒤틀린 기천사와 마찬가지로 복제라는 증거다.

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자아가 아직 살아있으니 연결된 통신도 사용가능했다.

성대도 목도 움직이지 않았기에, 뜻으로만 말을 전한다.

[제니들, 빨리 쏴. 그리고 죽어야 해. 우리 제어 당한다.]

이런 날을 위해 제니에게 탑재해둔 [무오의 광휘].

개중 [창세의 빛줄기]가 세 발이나 쏘아져 온다.

세상이 번쩍이며 사라졌다.

내 의식도 사라졌다.

희우는 그 직후에 제니들이 일제히 자결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정확히 제 심장을 으깨버리기 직전에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려고 하다가, 이미 손상된 탓에 부자연스럽게 쓰러졌다.

미아가 깜짝 놀랐다.

“어?”

그런데 통신은 아직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귓가에 제니즈의 뜻이 소리가 되어 전해진다.

[보스가 우릴 제어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엄청 아프네요…….]

[미아야, 진짜랑 행복하게 지내요.]

[아, 그 말 나두 할래.]

[나도!]

툭하고 끊어지기 직전의 마지막 말.

합창처럼 들리는 세 명의 인사.

[[[다들 잘 있어요!]]]

그 순간 또 다른 통신도 연결되었다.

충분히 멀어 들리지 않았던 말이 이제 들려온다.

[지금 공격하면 되는지?]

침착한 에길의 목소리와.

[내 막타는 준비해놓았느냐!]

드라간의 호전적인 외침.

희우는 두 가짜가 싸운 곳을 보았다.

보스가 형체를 잃고 다시 완전한 본래의 모습, 빛나는 구체로 변해가고 있다.

말해야했다.

[네. 지금이에요.]

그럼 물러나야 한다.

휘말리면 같이 죽는다.

미아는 허둥지둥 달렸다.

희우가 그 모습을 보았다.

[왜?!]

[제니! 아직 살아있어!]

차마 어차피 죽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미아는 가장 가까운 제니의 앞까지 뛰어갔다.

무슨 제니인지는 모르겠다.

무작정 안았다.

희우가 제니와 함께 미아를 안아들었다.

그대로 난다.

에길과 드라간이 도착했다.

[Fragment Of Greatness Slain]

[편린이 당신들에게 깃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