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22화
메인 던전 - Lv.4151 기계무덤의 캠프(1)
승리를 거둔 에길과 드라간이 서로 주먹을 부딪치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너무 강력한 일격이 내질러진 현장은 곧 뒤틀리기 시작했다.
편린의 본체가, 제 아무리 그런 기믹의 보스였다곤 해도 일격에 사망한 공격이다.
그 합동공격의 여파는 단순히 뭔가가 부서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들 서둘러 대피했다.
넓고 광대한 보스 블록의 가장자리까지 가고서야 힘의 여파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공간이 갉아 먹힌다는 건 눈으로 보지 못하면 형용하기 힘든 장면이다.
그렇게 안전을 확보하고 한숨을 돌리고 있자 가장 먼저 로스엘이 뛰쳐나왔다.
몸에서 연기를 뿜으며 나타난 로스엘의 모습에 희우가 당황했다.
로스엘 뒤늦게 자신이 과열되었음을 깨달았다.
“머리를 너무 과하게 썼나봐!”
그렇게 말하며 통하고 제 머리를 두드리는 동작에 희우는 죽고 싶어졌다.
희우도 이전에 저걸 파티원들 앞에서 해본 적이 있었다. 왜 그랬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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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쉐가 속삭인다.
“한때의 방황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라. 동생아. 그것이 결국 미래의 양식이 되는 법.”
“언니한테 듣고 싶지는 않거든요!”
“훗.”
그 다음으로는 아래에서 ‘진짜’ 제니와 리더가 나타났다.
[아후라 마즈다]의 소멸과 함께 그 피조물들이 힘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몸의 이상을 감지한 괴조들은 날뛰며 먹잇감을 노리는 대신 어딘가로 내려앉았다.
그래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본래 보스전이 끝난다면 그에 관한 기믹은 사라지는 법이다.
물론 아직 괴조들은 남아있다.
천천히 힘을 잃은 끝에 결국 사라지겠지만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지하던 힘이 사라진 [되살아나는 영광] 필드 자체도 구석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넓고 광대한 지역이기에 오래도 걸릴 것이다.
씁쓸한 표정의 리더가 말한다.
“다들 너무 고생했어.”
“편한 곳에서 보고만 있어서 미안하네요. 여러분들한테도……. 그리고 저한테도.”
제니가 또 하나의 자신을 보았다.
통제실에 봤던 제니 중 어떤 제니인지는 모른다.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똑같이 생각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랬기에 제니는 이 가짜에게 감사한다.
아니, 가짜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분위기를 밝게 해보려고 했던 희우가 포기했다.
사실 이게 옳은 분위기다.
미아가 에길에게 병을 건네받았고 주섬주섬 뿌렸다.
지극히 유배자 사양으로 만들어진 가짜 제니는 모든 면에서 진짜 제니와 같다.
사실은 가짜라는 점을 빼면 말이다.
가짜 제니가 눈을 떴다.
“……저 왜 살아있죠?”
그리고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가늘게 떨리는 팔이 가슴을 향한다.
심장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아는 그 동작을 알아보았다.
자기 자신을 좀 더 확실하게 끝장내려고 하는 움직임이었다.
얼른 앉아서 붙잡았다.
“그러지 않아도 돼. 보스는 쓰러졌어. 강제성은 안 느껴지지?”
제니가 귀를 움츠린다. 그리고 미아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가짜 제니는 울기 시작했다.
훌쩍임은 딸꾹질이 되고, 딸꾹질은 곧 흐느낌이 되었다.
미아는 그것이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풀려나며 생기는 신체의 반응이라고 아케인에서 배웠던 것을 떠올린다.
진짜 제니가 다가와 미아가 잡고 있는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갠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가짜 제니는 누운 채로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다.
무너져가는 맵이지만 아직 태양도 떠있었다.
“뽀뽀라도 해줄걸.”
“가짜 나한테?”
“좋은 사람이었어요.”
“자기 자신에게 애인을 빼앗기는 기분이야.”
“후후후. 질투해요?”
“그렇다기보다는. 그래 뭐.”
희우 역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같다.
싱숭생숭하며 어딘가 가라앉은 기분이다.
물론 이전처럼 오싹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주 놀랍기는 했다.
‘내’가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다니.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나라면 어쩔 것이다 하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상황을 직면했을 때, 그 말처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게 있다.
원래는 프로게이머가 될 것이란 예언을 들은 다음, 그에 대한 확신이 생겨서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여 프로의 꿈을 이루게 되는 것 따위의 상황을 가리킨다.
이루어질 것이라 예언이 된 것이 아니라.
예언을 들었기에 이루어지는 선후가 반대인 케이스이다.
하지만 지금 나와 제니의 경우에라면.
정말로 내가 그 예언을 실현했다.
막연한 다짐일지도 모르는,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르는.
그런 두루뭉술한 것을 완전히 나와 같은, 그리고 제니와 같은 기억과 사고를 하는 이들이 실현해서 보여주었다.
‘그럴 것이다.’와 ‘그랬다.’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통제실에서 제니와 함께 지켜본 복제들의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다.
아니, 사실 있었을 것이다.
나와 제니 역시 그 모습을 보며 조마조마했으니까.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복제들은 그런 확신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다.
순간이겠지만 무수한 갈등을 이겨내고 그 결과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사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어.”
“어떤 확신이요?”
“내가 모두를 위해 희생할 것이란 확신.”
“오빠의 꿈은 언제나 클리어였으니까요?”
“응, 비록 아직 기회가 남아있긴 하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몇 번이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희우만 어떻게 살린 채 나머지를 모두 버리려고 했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사실 죄책감을 느낄만한 문제도 아니네요. 그야말로 유배자다운 생각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뭐 좀 그렇잖아.”
물론, 복제라는 것을 스스로 확신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복제 역시 사람이다.
나 역시 사람이다.
그렇다면 다른 수단을 강구하려고 들었을 수도 있다.
굳이 거기서 모든 생명을 불태워 보스와 같이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혹은 하다못해 더 길게 고민하고 번민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
그가 그러지 않았고, 내가 그러지 않았다.
나는 확신을 얻었다.
“고마워.”
또 하나의 나에게.
그렇게 인사했다.
희우가 미소 짓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다.
화제가 바뀐다.
“그런데 말이죠.”
“뭐가?”
“가짜 오빠는 마지막에 저를 한번쯤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 안 그랬어?”
“연인보다 지금의 상황이, 그리고 그로 인해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더 좋았나 봐요.”
“……그렇겠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옳다. 아마 나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희우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빠는 대단해요. 이 오빠도 저 오빠도 그래요. 저는 아마 그런 마지막을 겪어야 한다면 오빠에게 한번이라도 안기고 싶을 거예요. 그게 마지막이니까. 그러니까 저기 있던 그 오빠는 그걸 참아낸 거겠죠.”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약간 아쉽기도 하네요.”
“그건 또 왜?”
“이 모든 합리적 추론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순간에 저를 보고 싶어서 고개를 돌리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희우가 다시 보스룸이었던 곳을 본다.
너무 강렬한 에너지가 충돌한 곳이다. 헝클어지고 찌그러졌다.
공간이 복구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멀었다.
저 근방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일종의 마력재해와 비슷한 상태다.
“질투야?”
“원래 여자는 동료도, 목적도,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우선 해주기를 바라는 생물이라고요.”
“질투네.”
“흥.”
그러면서 희우는 폭 안겨들었다.
“이렇게 한 번 안아줘야 했는데.”
이번에는 내 쪽이 뭔가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유배자들은 가짜란 것에게 관대할 수밖에 없다.
나와 그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히 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울고 있던 가짜 제니가 울음을 그쳤다.
살아남은 것은 미아와 우연히 가까이 있었던 전사 제니였다.
“제가 제니즈의 리더였는데.”
“그게 뭐야.”
진짜 제니가 그 말에 피식 웃고 만다.
“다들 먼저 떠나보냈어요.”
그리고 블랑쉐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부활 스택 좀 있지 않나? 부활했을 가능성은?”
“없어. 제니. 아 그러니까 제니즈의 리더님. 스킬 구사할 수 있어?”
“없네요.”
복제들이 가진 힘의 근원은 [아후라 마즈다]가 모사한 세상의 법칙일 뿐이었다.
가짜 스킬들은 같이 사라진다.
사실 이 제니도 점차 흐려지다가 빛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사라지겠지.
잠깐의 유예된 시간일 뿐이다.
이 제니를 살려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무너지는 세상과 함께 다시 무로 돌아갈 것이다.
실제로도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가짜인 제니가 진짜를 올려다본다.
“저기. 그. 제니라고 부를까요?”
“어어, 네. 그러세요.”
아니 자기들끼리 왜 이렇게 어색해.
에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서가 희미하게 웃으며 정리했다.
“제니와 제니즈로 하지.”
“어……. 왜 그렇게 되죠?”
“단수가 아니지 않나.”
“그렇네요.”
그렇게 호칭이 결정되었다.
제니즈는 제니를 향해 말했다.
“그,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저는 진짜보다 잘 싸우잖아요.”
진짜의 얼굴이 빨개진다.
통제실에서 지켜보며 깨달은 참이다.
제니즈의 동작은 진짜보다 훨씬 정교하고 숙련되어있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진짜의 상위호환이다.
“그럼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니?”
“어떤 이야기죠?”
“저는 어떻게 써야할지 알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탓이겠죠. 그…… 지금의 힘 말이에요.”
제니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슨 제안을 받았는지 이해했다.
“가르쳐 주겠다는 거군요.”
“맞아요. 전 할 수 있어요. 그야…….”
“저니까.”
제니가 제니를 안아주는 모습은 보기 드물 것이다.
진짜 가짜를 꼭 끌어안았다.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 도움이 될 지부터 생각하다니. 정말 훌륭한 저에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는 서로 부끄러워했다.
복제들의 행동은 파티원의 마음에도 다양한 부분을 남겼다.
아서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과연 그렇게 모든 삶을 버리고 이 파티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다.
카멜롯의 왕이기 전에, 원탁의 기사이기 이전에 파티 오르골의 중심이다.
일단은 그렇게 믿고 있다.
이곳이 미궁이기에.
“하지만 우선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에길 역시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왕국으로 돌아가면 우선 토르님을 뵈러가야겠군.”
발할라.
그가 아는 아스가르드와 발할라는 이곳에 없었다.
메인 던전을 알게 되고 미궁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에길은 무언가를 느꼈다.
그가 바깥에서 믿어왔던 신앙은 정말로 실존하는가.
물론 여전히 믿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전투에 임하는 철학에 더 가까운 것이다.
정말로 발할라가 실존하냐고 묻는다면 에길은 아마…….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겠지.”
사실 처음부터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신화일 것이다.
노르드족과 데인족들은 바보가 아니다.
믿으면서도 어디 한구석에서는 그런 진실을 알고 있었다.
죽은 이와 전사에 대한 예우, 그리고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한 시스템.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신앙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에길은 이제 자신이 믿는 것이 진정으로 신앙이냐고 하면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바이킹 전사이기 이전에 미궁인이 된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전장에서 싸우는 모든 전사들은 발할라를 바라며 살아간다.
에길 역시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면 이제 발할라를 믿을 수 없게된 바이킹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누구보다 위대한 전사이며 누구보다 충실한 신앙자였던 에길이기에 생긴 고민이다.
“일단은…….”
이 파티의 전사로서 살겠다.
그것이 맞다.
하지만 이 마음에는 또 얼마나 진심이 담겨있는가.
에길은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에길도 아서도 생각했다.
복제된 것이 자신들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파티가 이번 전투에서 이런 결말은 맞이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
지워지지 않는 의구심이었다.
그들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제니처럼, 리더처럼 할 수 있는가.
반면 블랑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애초부터 그녀는 원래부터 친부의 복제였으니까.
그냥 디스트로이어에게 간식을 주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