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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23화 (42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23화

메인 던전 - Lv.4151 기계무덤의 캠프(2)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제니즈는 이 필드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째서지?!”

“어째서라기보다는 원래 그래. 엄밀히 따지면 이 공간 전체가 우리가 쓰러트린 보스니까.”

“아, 그런 개념이에요?”

희우가 빠르게 이해한다. 겜순이라서 편하다.

결국 이곳의 자연 같은 것들이 모조리 기계신의 신성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그 신성이란 것도 결국 기계신의 일부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기계신의 몸속에서 그 정신의 집합체 같은 것과 싸워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러면 절대 못 이겨야하지 않아요? 기계신이 만들어진 목적은 전투가 아니라서 미숙했다. 그런 건가.”

“맞아. 설정 상으로는 그래. 그래서 실제로 점점 강해졌을 거야.”

“애초에 타임어택 기믹도 있었던 거네요.”

“정확해. 시간 내로 못 잡고 계속해서 변형하게 내버려두면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거든.”

그러나 죄다 설정.

어디까지나 미궁이 메인 던전에 부여해둔 설정이다.

게임 시절에는 말 그대로 ‘그냥 그런 걸로 해.’라며 넘어가는 디테일이었다.

* * *

* * *

현실이 된 미궁의 메인 던전은 다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 깔려있다는 느낌이다.

이 시기에 이 보스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설정 상으로 준비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정보가 제한되어있다거나, 혹은 반드시 발생하는 필연적인 우연이거나 하는 식이다.

메인 던전이 다시 생성될 때마다 거의 같은 상황이 나오도록 설계된 것이다.

모든 상황이,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동일하게 박제되어있다.

작은 틀에서 바뀔지언정 큰 틀은 언제나 같다.

그러므로 선형적 구성이다.

“그리고 그게 일단은 깨졌단 말이지.”

확실하게, 더없이 완벽하게, 희망의 여지조차 없이 박살났다.

그게 아니라면 대신격들이 굳이 일시정지버튼까지 눌러가며 메시지를 보낼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바로 박살나기 직전에 말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아.”

희우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간간히 보여줬던 고민과 일맥상통한다.

이번 회차는 처음부터 내가 아는 것과 달랐다.

행운에게 이상한 사랑을 받고 있는 희우만 보아도 그렇다.

거기에 못을 확실하게 박아주려는 목적이다.

“왕국은 그렇지 않았을 만도 해. 거긴 결국 유배자들의 사회니까. 왕국의 변화는 그곳에 사는 유배자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지.”

애초부터 랜덤요소가 가장 강한 곳이 왕국이다. 자유도가 아주 높은 오픈월드식 구성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는 무슨 억울한 상황이나 좋은 상황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너와 같이 있으면 생기는 기묘하게 튀는 행운은 단지 확률이 변하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떻게요?”

희우가 살짝 불안해한다.

그다지 나쁜 의미로만 말하는 건 아닌데.

희우가 어떤 열쇠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다.

“우린 [아후라 마즈다]를 잡았어. 그렇지?”

“이번에도 좀 이상하긴 했지만요. 신좌의 집합체로서 앉았던 신들을 복제해서 보스전 사이클을 돌리는 패턴이잖아요. 어째서 오빠가 나왔죠?”

“보스도 생각을 한 거야.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결론을 내린 거지.”

보스가 나름대로 살기위해 발버둥 쳤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가장 강한 존재를 찾아낸 것이다.

오픈월드라면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종료된 지금,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보스에게 갑자기 자유가 주어졌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뿐일 수도 있어. 요컨대 그냥 파티원 중 가장 강한 자로 복제된다거나.”

진행이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내가 알던 것과 어긋나는 점은 없었다.

기믹은 정상 작동했고 클리어가 불가능한 폭거는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대신격이 간섭한 순간부터 일어난 일이다.

대신격은 미궁을 관장하는 존재다. 그들만의 룰이 있다. 그걸 어기지는 않는다.

희우가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냈다.

“그럼 선형적 구성이 아니게 된 거죠?”

“그게 아닐 것 같아. 선형적인 구성 자체는 유지되고 있어. 하지만 내가 모르는 새로운 루트나 히든 루트가 나온 거야.”

몇 가지 사소한 순서 변화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아는 그대로니까.

다른 루트에 진입한 것이다.

이게 가장 타당하다.

희우도 거기까지 들은 후에 납득했다. 순수하게 설정대로면 [아후라 마즈다]가 우리를 단숨에 척살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미궁은 아직 미궁이다.

“오빠가 모르는 루트죠? 이거 깰 수 있어요?”

“있어. 미궁의 방식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힘들어진다면 그만큼 아군도 생길거야. 미궁은 클리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두는 곳이 아니야.”

거의 불가능할 수는 있지만 말이야.

희우가 눈을 크게 떴다.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다.

“……협잡과 기만과 교섭의 가능성도 해방되었다는 뜻이죠 그거?”

“아니, 말을 왜 그렇게 해.”

“사실이니까?”

“좋아, 그건 넘어가고. 같은 맥락으로 접근하면 여기서 갑자기 보스가 출현한건 딱히 어떤 초월적인 개입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그럼 대체 뭐죠?”

“누군가가 출현 조건을 만족시킨 거지.”

희우가 숨을 짧게 들이킨다.

“제단에 성배가 올라갔군요.”

“순교자의 은신처에 있던 이들이 그러진 못했을 거야.”

“……빨리 가 봐야하지 않아요?”

“베데스다 종파의 천사들은 아마 탈출했을걸. 기계무덤으로 빠지면 추적당하진 않았을 거야. 빨리 가건 늦게 가건 달라질 건 없을 거 같은데.”

제단에 성배가 올라갔다.

그것은 사대천사가 순교자의 은신처를 이미 발견했다는 뜻에 가깝다.

그 노인들이 갑자기 천상의 도시를 공격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럼 사도를 기다리지도 않을테니까.

그러나 그들이 불의의 습격에서 탈출하지 못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천사들인 것도 아니다.

“어차피 우리 빨리 돌아갈 수가 없어.”

“그건 왜죠?”

“저 숏컷 거기로 통하잖아.”

희우가 기억의 지층에서 내가 알려준 정보 중 하나를 캐냈다.

“아아. 숏컷이 통하는 길이 하층 도서관 지하였죠.”

“맞아, 천상의 도시 하층으로 급하게 뛰어들었다간 다 죽을 수도 있어.”

우리 파티에는 악마도 있다.

천사 멤버만 조심스럽게 통과할거라면 몰라도 아서와 미아가 통과할 수 없다.

은신처에 변고가 생겼다면 비밀통로도 이미 점거 당했을 터.

그렇다면 로스엘이 뚫어주는 세계의 구멍을 통해 기계무덤으로 진입하는 수밖에 없는데, 전투를 각오해야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일단 휴식은 해야겠네요. 알겠어요.”

“달라진 건 아냐. 모르게 된 것 뿐이지. 여전히 미궁은 미궁답게 진행시키고 있어. 그 사실을 믿어야 해.”

믿지 않을 도리도 없다.

설정대로 자유롭게만 행동한다면, 숏컷으로 나가자마자 사대천사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을 수도 있다.

편린급 보스들이 단체로 덤빈다고?

아니 그걸 어떻게 이겨. 말도 안 되잖아.

일단 길게 한숨을 한번 뽑아내고 생각을 정리할 겸 주변을 살핀다.

파티원들은 이미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드라간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에길이 반가운 모양인지 거대한 주먹을 들어 흔들며 의기투합하고 있다.

마지막 일격에 대해 훈수를 두는 모양이었다. 에길이 경청하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저래 뵈도 둘은 꽤 친하다. 비슷한 타입의 트리를 밟기 위해 제자와 비슷한 관계가 된 덕분이다.

루시는 디스를 안아들고 그런 드라간을 보며 피식거린다.

블랑쉐가 그 옆에서 삐딱하게 웃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미아인데.

도핑이 빠져나가더니 체력이 다해버려 납작해져서 자고 있다.

사람이 기력이 없으면 그냥 누워있는 모습만 보아도 어딘가 더 납작해 보이는 감이 있단 말이지.

전우들,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그들을 보고있자니 복잡한 심경이 진정된다.

“아무튼 모두 좀 길게 쉬어야겠네. 충분히 시간을 보내자고. 리프트가 무너지기 전에 여기 옆에 붙여둘 테니까.”

제니즈는 이미 제니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있다.

동일인물의 감각인 만큼 짧은 시간이어도 남이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대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다.

“제니즈의 마지막을 보고 갈 수 있겠어.”

“음, 다행일지도?”

“너도 쉬어. 난 사실 별로 한 게 없어서 쉴 필요는 없으니 주변을 좀 살펴야겠다.”

그때, 한참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성배의 짐승이 펄쩍 뛰어올라왔다.

[누님! 제 집이 무너집니다요!]

“어, 그렇긴 하지?”

[저는 이제 어떡하죠?]

새로운 루트.

지금이 그걸 파볼 기회 중 하나다.

희우에게 눈을 찡긋했다.

얼떨결에 금빛 쥐새끼를 안아들은 희우가 순간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깨닫는다.

똑똑한 아이야.

한번 웃어주고 로스엘을 찾았다.

어딘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우리 파티를 보고 있는 게 유배자 애호가다운 모습이다.

“로스엘! 통제실 어디 있었어요?”

“아! 내가 길을 알아! 안내해줄게!”

“너 친구들은 괜찮아?”

[예?]

“쥐들의 왕 있잖아.”

[아아아앗! 그렇군요! 그 친구들도 지금 집을 잃고 있겠네요!]

희우는 오빠가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 알았다.

원래 같으면 쥐새끼는 파티에 잠깐 합류했다가 떠나가는 존재다.

죽여서 다시 성배로 되돌린 다음에 그곳에 놓고, [아후라 마즈다]전을 진행하게 되었을 터.

사대천사가 있는 천상의 도시에서 성배를 훔치는 것보다 쥐새끼를 잡는 게 더 편하기 때문에 별 수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미 성배를 놓아주었다.

블록 하나를 추진하던 에너지가 떠오른다.

[아후라 마즈다]가 비록 좀 더 큰 파편이었겠지만, 이 노란 쥐 역시 기계신의 일부인 존재다.

그렇다면 써먹을 수 있다. 가능하면 쥐새끼의 인맥, 아니 쥐맥도 말이다.

그래도 하나 묻고 싶다.

“넌 왜 우리를 따르는 거야?”

쥐새끼가 몸을 꼰다.

부끄러운 걸까.

[말이 통하는 상대는 처음이었거든요. 저는 세상에서 저만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쥐인 줄 알았지 뭡니까.]

“흐음, 그래? 그럼 계속 따라올거야?”

[그렇지 않을까요?]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다.

희우는 뉴비를 후려치는 고참 유배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그럼 제대로 해야지.

친구들까지 싹 쓸어오자. 어둠 정령은 말이 통하지 않기에 적대적인 존재다.

그러나 본질은 어디까지나 정령.

바람의 노정령왕을 떠올린다. 충분히 인간적인 존재였다.

그렇다면 쥐새끼를 중계기 삼아 쥐들의 왕과 소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 집이 필요하겠네?”

습격당했다면 불의의 습격일 것이며, 탈출한다면 기계무덤일 것이다.

“어떤 집이 좋아?”

[엣, 제 꿈을 물으시는 겁니까?]

“한번 말해봐.”

[좀 화사한 벽돌집 같은데 살아보고 싶습니다! 친구들도 그런 걸 원하거든요. 수로에 자리 잡은 것도 그래섭니다. 벽돌 아닙니까!]

은근히 로망있는 대답이네.

희우는 기계무덤의 황량한 풍경을 떠올렸다.

많은 것이 무너지고 가라앉고 있는 곳이다. [심연]과 흡사한 곳.

옛 문명들이 몰락하여 가라앉고 뒤틀려있는 땅.

그런 퇴적지에서 벽돌을 찾으라고하면 충분히 찾을 수 있다.

화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거기를 새로운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다 희우는 그리고 한 가지 더, 가장 큰일 난 점을 깨달았다.

“와, 잠시만. 은신처가 날아갔으면 이제 우리 포션 수급이 안 되네?”

회복의 샘이 거기에 있잖아.

역시 더러운 루트 맞잖아!

유배자의 가장 큰 무기가 날아갔다.

조엘은 기계무덤에서 천상의 군대가 추격해오지 않나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릴리움이 시간을 보았다.

“메타트론, 많은 시간이 지났어요. 미카엘이 우릴 놓쳤다고 보아야겠죠.”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상황은 아주 나쁘군.”

성지를 잃었다.

그곳은 천상 군대가 주둔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대천사중 하나가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곤란하기 짝이 없다.

“사도들이 그곳으로 돌아가면 큰일인데.”

유배자는 그들의 희망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다시 만나야만 한다.

결국 그들이 이겨내야 할 시련이 사대천사일지도 모르지만, 벌써는 아니다.

“일단 여기서라도 살아가야죠.”

조엘이 기도했다.

“위대하신 YHVH시여……. 부디 앞길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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