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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25화 (49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25화

왕국 - 첫 번째 리프트(2)

회의가 끝나고 계속해서 교섭을 시작했다.

말은 강제 징용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결혼해서 신혼을 보내려는 녀석들을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에 끌고 갈 수는 없다.

의사는 최대한 존중할 것이다.

회복 수단이 없다는 상황은 더 느리고 조심스럽게 전진해야한다는 뜻일 뿐이다.

결코 클리어가 불가능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리온은 담담하게 파티의 사정을 들었다.

“확실히 그건 어렵겠군요.”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지 알겠지?”

리온 역시 긴 시간동안 나의 영향을 받았다.

사실 유배자인 내 기준에서는 긴 시간이 아니지만, 리온에게는 평생의 이정표와도 같은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십대 중반에 거두어져서 백년이 넘게 내 그림자 속에서 살아왔다.

생각해보면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내 편의를 따라 좌지우지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 정착하고도 방어 회의에 불려 와서 다시 부려 먹힌 끝에, 또다시 내가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 * *

* * *

“싫다면 거절해도 되는 일이야. 음,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니니까 이게 진짜란 건 알겠지?”

“겁박을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으시죠. 단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낼 뿐. 전 그게 더 악질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제자가 많이 사악해졌군.

마왕이니 별 수 없나.

“다만, 이건 역시 본인의 말을 들어보아야죠. 위험하니까요. 아내를 쉽게 그리 보낼 수야 있겠습니까.”

“네 선에서 컷하진 않을 생각인가 보구나.”

리온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와서 싫다면 거절해도 된다 같은 말을 하는 것도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에요.”

“그건 왜?”

“제 어린 시절부터 태도가 항상 그러셨죠. 나는 너를 과하게 건드리지 않겠다. 너의 의사를 존중하겠다. 제 생각에 그건 사춘기 아이에게는 좋은 접근이 아니었어요.”

응? 지금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 거지?

그래도 조금 알 것은 같다.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려면 더 제대로 했어야한다는 말이겠지.

돌이켜보니 변명하기 힘들다.

나는 너무 바빴다.

“저는 선생님과, 천사님, 그리고 다른 분들 모두 가족 내지 친척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그렇게 만드셨잖아요.”

“악질이군…….”

“더럽게 악질이죠. 하지만 전 좋았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할 때는 그냥 부탁하세요. 그럼 저도 그렇게 알 테니까요.”

어른답게 리온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내 반응을 기다린다.

이러면 뭐, 할 말이 없지.

“좋아. 부탁해.”

“아내에게 말해볼게요. 하지만 만약 간다면 저도 따라갈 겁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일하라고 하진 않을 테니 걱정 하지 마.”

“예, 뭐. 그 점은 숙지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 은퇴한 몸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은사님 하시는 일 좀 도와드리러 가는 거죠.”

“미안하다. 고맙다.”

“그럼 먼저 가 봐도 될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사라진다.

새삼스럽게 내가 어지럽힌 많은 삶들에 대해 떠오른다.

리온은 그래도 좋은 케이스다.

내가 도움을 줬던 경우니까.

하지만 나 때문에 인생을 조진 사람들도 많겠지.

당연히 그에 대해 무슨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떠올리는 것을 잊지는 않는다.

이 모든 일이 평범하게 자행되어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만큼은 확실하지 않나.

“그나저나, 애들은 참 빨리 크는군.”

“어머나, 실제로도 그렇긴 하죠. 리온에게는 백년이 넘도록 리더뿐이었을 거잖아요.”

어딘가에 정을 붙이기엔 내가 자꾸 옮기고, 새로운 임무를 주고 그랬지.

원망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짓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서 저렇게 성실한 성격의 용사를 고른 거죠?”

“그게 아니었어도 용사라면 써먹었겠지만……. 그걸 부정할 수는 없지. 딱 좋다는 생각은 했거든.”

“지금의 리온은 그런 말을 들어도 개의치 않을 걸요?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마왕으로 백년 이상 살아왔으니.”

이런 대화를 하다 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레미가 몇 살이더라?

“야, 잠깐만. 너 아직도 30대도 안 된 나이 아냐?”

“열다섯에 미궁에 와서 8년 구르다가, 다시 반년……. 어, 그러니까 스물 셋?”

“말도 안 되네.”

“저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려서 그래요. 억울하네요.”

아니, 그건 좀 다르지. 넌 적극적으로 나한테 먼저 앵긴 녀석이잖아.

“항상 예외는 있지…….”

“뭐가요?”

“정신 연령이 외형을 따라가는 경향 말이야.”

“지금 제가 애 늙은이라고요?”

“그럼 아니야?”

“맞아요. 인정할게요.”

그러며 같이 피식 웃었다.

레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도 전 리더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생각할걸요.”

리온은 자신의 아내이자, 전 용사.

용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히어로 유닛의 굴레에 벗어나 은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용사를 찾아갔다.

“라리사. 어떻게 생각해?”

평범한 농가의 딸이었던 라리사도 이제는 백전연마의 성기사다.

태어난 세계도 다르고, 처음에는 사승관계로 먼저 만났지만 이제는 그런 것은 옛날이야기다.

그린스킨과의 전쟁에서 활약하는 용사로서, 고블레타리아의 일을 뒷면에서 돕는 인민의 영웅으로서.

그 모든 일이 끝났다.

똑같이 음지에서 일하지만 양지를 지향하는 직종이던 바르바로이에게만 인사를 하고 왕국으로 이주했다.

사실 그것은 그 둘에게 이미 꿈이기도 했다.

둘의 인생은 모두 왕국, 그리고 그곳에서 온 유배자 스승님들의 손에 달려있었다.

“나는 리온이 좋다고 생각하면 좋아.”

“위험할 텐데?”

라리사가 잠깐 생각에 빠진다.

위험하긴 하겠지.

하지만 그녀 역시 스승이자 친구이자 남편인 리온 뿐만 아니라, 역전의 유배자 스승님들을 가진 입장이다.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다.

“괜찮겠지.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하긴, 그분들이니까 막상 가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

라리사가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그러면 결혼식은 미뤄야겠네.”

“대신 참석해달라고 조건을 걸까?”

“그거 좋은 생각이야.”

왕국으로 이주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

사실 결혼식에 참석해줄만한 지인들도 없다.

그야 끊임없이 임무와 임무로 점철된 삶이었으니까.

휴식이라 부를만한 것도 둘만 있을 때.

굳이 따지자면 더스번 경과 그 가문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고블레타리아 연방의 바르바로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왕국에는 없다.

“도와드릴 테니까, 무조건 결혼식에 참석해주시기. 조건 좋다.”

“못 오신다고 했을 때, 좀…….”

“많이 실망했지?”

“응…….”

사실 리온은 한편으로 이번 제안이 기뻤다.

그는 언제나 따로 떨어져있었다.

어릴 적부터 마음을 기댈 곳은 선생님을 비롯해 천사님이나, 마법사 누님 정도뿐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유배자였고, 자주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외로웠다고 말할 수 있다.

라리사가 생기고서 상대적으로 훨씬 나아지긴 했다.

그래도 어딘가 이 서버의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왕국의 유배자들과 깊이 연관된 사람으로서 외로움을 느끼는 수밖에.

은사라고는 하지만 사실 선생님은 아버지 같은 존재다.

그 도움이 될 수 있음이 여전히 기쁘다.

이렇게 불러주는 것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틀 후라고 했지? 그럼 장비 손질 해야겠네.”

“아, 그건 선생님이 준비해주신데.”

“어……. 진짜? 갑자기 재밌을 것 같아졌어.”

물론 눈앞에서 활짝 웃는 라리사가 가장 소중하긴 하다.

그렇게 되었다.

에길이 발할라를 의심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발할라에 도달해서였다.

[묠니르].

그 망치는 발할라로 통하는 키 아이템이다.

어차피 둔기 사용자가 파티 내에 없으니 에길이 그것을 이용하여 발할라, 그러니까 아스가르드로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지에는 항상 무지개가 걸려있고 그 위에는 구름이 덮여있는 신들의 땅에서 에길은 그가 신앙하던 신들을 만났다.

“호오, 오래간만이군. 전사 에길.”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토르시여.”

“볼 때마다 그 말을 하는군. 이제는 그냥 친우일 때도 되지 않았나?”

“제가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토르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오늘은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서 왔나?”

“보이십니까?”

“평소답지 않은 번민이 보여 그러네. 내가 알던 자네는 호탕하게 한번 겨뤄보고자하던 전사였는데.”

실제로 그랬다.

일단 한번 붙어봐야지.

“크흠. 그것은 제가 좀 그때…….”

“안다네. 몇 번 말했던가. 그쪽 말로 그 뭐였지. 팬이라고 했던가.”

“아니…….”

전사와 전사신의 팬미팅은 전투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실제로 그랬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에길은 그래도 대뜸 묠니르를 던져주고 싸움부터 걸었던 것은 너무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평생을 지탱해온 믿음의 장소가 아닌가.

토르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자 일단 한번 붙어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블랑쉐가 요즘 드라간을 닮아간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부정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술이나 한잔 들게.”

에길은 이곳에 오면 편안해졌다.

모든 문화가 그가 원래 살던 곳과도 같았다.

미궁에서 노르드 양식의 문화를 발견할 수 없냐면 그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드물다.

거기에 혹여 있더라도 더 미래의 시간대에서 온 유배자들이 자기들 나름의 어레인지를 가한 것들이라 낯설다.

뿔잔에 담아 마시는 벌꿀술은 그런 의미에서 그가 알던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게 꼭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에길은 이제 인식하고 있다.

자신이 가짜일지도 모르며, 이 신들도 가짜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가 믿었던 신들은 정말로 이곳 미궁에서 만들어낸 설정일 뿐일지도 모른다.

논리적으로 그럴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상의 문화가 이토록 그가 알던 것과 똑같을 수가 있는가.

“토르시여. 제가 이전에 했던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곳이 멸망한 왕국이라는 것. 나도 알고 있지. 그리고 메인 던전이라는 시련이 되어 존재하며, 그대는 그것에 도전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토르도 이번에 지정된 테마가 [요툰헤임]이었다면 적 혹은 아군으로서 만나 진행의 일부가 되었을 존재다.

우연히 연결고리가 닿아, 지정된 테마가 아님에도 출입할 수 있게 된 것뿐이다.

이 모든 사실.

파티를 위해 리더 같이 사고하고, 유배 자같이 사고하는 법을 배워갈수록 뒤늦게 에길을 괴롭혀오는 사실들이다.

“그래. 뭐가 문제인가?”

“저를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전사 에길 스칼라그림손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삶의 기반 되는 존재는 당신들이었습니다.”

“흔들리는 모양이군.”

미궁의 오래된 존재.

[위대함의 편린]중 하나로서 토르는 그 사실을 통찰했다.

그는 신은 아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할 정도로 오래 살아온 존재기는 하다.

비록 미궁에 박제 당했다한들 그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과연 이 전사가 신앙하던 토르가 자신과 동일인물인지는 모르더라도, 그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확실히 나는 에길 자네가 바라던 그런 신은 아니겠지.”

“…….”

“그저 왕국에서 오래 살아남은 유배자의 후손이며, 그조차 거짓인 미궁의 피조물일 수도 있어.”

“…….”

“자네의 모든 삶과 기억이 거짓일지도, 그리고 심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믿으니까 밀어붙였던 삶의 방식과 철학도 거짓일지도 모르지.”

“그렇습니다.”

에길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제니즈의 이야기였다.

발할라를 믿는 것도 아니면서 기꺼이 목숨을 던진 고양이 천사.

“훌륭하군.”

“저는 이제 제가 그럴 수 있을까 두렵습니다.”

“발할라가 이런 곳임을 보았기에?”

토르는 그 사실을 이해했다.

그리고 에길의 현명함도 이해했다.

이 전사는 사실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토르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앙하던 전사신으로서 존중하며, 오래된 어르신으로서 존중하기에 이렇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괘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가 존재하는 이 아스가르드에도 미드가르드가 있다.

그곳의 전사들은 에길처럼 믿으며 싸우고 있다.

막상 올라와서 실망하지 않도록 연기하고 신경 쓰는 것은 제법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그런 연기 덕에 그럴싸한 말이나 통찰은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세계에서까지 찾아와 이렇게 어울려주는 전사가 아닌가.

“그렇다면 자네의 발할라를 만들게.”

“그것은 어떤 말입니까?”

“언젠가 싸움을 끝마쳤을 때, 자네가 있을 곳은 자네가 만드는 거야. 그곳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거기가 발할라지.”

에길이 고개를 들었다.

“너무 오래 전사로 살아와서 도리어 흔들리는 게야. 사실 신앙은 자네의 삶보다 먼저가 아닌데 말이야. 여기 있는 이 토르가 그렇게 보장해주도록하지. 계속 살아가게. 그리고 그 끝에 도착한 곳이 발할라일 걸세.”

토르는 말을 조금 골랐다.

“위대한 전사가 남긴 이름은 영원히 그곳에 남지. 무수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살아있는 걸세. 발할라라는 것은 사실 그런 걸 형상화한 것에 지나지 않아. 전사여. 자네는 그렇게 위대한 전사이지 않나.”

“제 동료들도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보니 되었군. 그 동료들과 도달한 끝이 곧 발할라일테니.”

에길이 깊은 호흡을 들이쉬었다.

토르는 지금이라고 느꼈다.

“동료들이 발할라에 가지 못할 것 같나?”

“아닙니다.”

“그럼 가겠군.”

궤변이다. 토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미소를 금치 못했다.

에길의 표정이 훨씬 나아졌음이 보였으니까.

“그럼 어디 싸움이나 좀 해볼까. 도끼 맛을 좀 다시 봐야겠네.”

또 이런 말을 하자마자 눈 속이 불타오른다.

토르는 그런 점이 좋았다.

이 세계는 왕국의 문이 닫힌 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그 시기를 기억하는 오래된 유배자의 후손들이 신이나 거인노릇을 하며 신화를 흉내 낸다.

애초부터 이곳은 거짓된 북구 신화의 재현이다.

진짜가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먼 곳에서 찾아온 전사를 보고 그를 믿고 따르는 전사를 보면 신이란 것도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게 된다.

토르는 그래서 에길이 마음에 들었다.

에길은 후련하게 한판 싸움을 벌인 후, 트동트가 대신 봐주고 있던 미아의 트레이닝에 다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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