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26화
왕국 - 첫 번째 리프트(3)
로스엘과 쥐새끼는 자신들이 리프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런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로스엘의 기억 속에서 간혹 나타나곤 했던, 그러니까 메인 던전의 도전자였던 유배자들은 리프트에 도달해본 적도 없었다.
뒤틀리고 뒤틀린 이 세상에서 로스엘은 리프트의 정확한 위치조차 알지 못한다.
쥐새끼는 반대로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그리 생각했다.
유배자라는 개념도 이제 막 배운 참이다.
열성 유배자 빠순이인 로스엘의 설명을 통해 지금 자신을 둘러싼 일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깨달은 참이었다.
그래도 일단 둘은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리더는 그 둘이 왕국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다지 놀라지 않은 채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고블린 몇몇을 부르고, 레미라는 꽃잎 요정을 불러 왕국 관광을 즐기도록 했다.
로스엘은 행복해졌고 쥐새끼는 신기해졌다.
“우리 파티는 바쁘니까, 여기 고블린 가이드 말 잘 듣고. 3일 안에는 반드시 돌아와야 해. 어디 잠적해도 찾을 수 있다는 거 명심하고.”
* * *
* * *
그 둘이 없다면 메인 던전이 진행되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도 덧붙었다.
물론 둘은 전혀 그 진행을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로스엘의 소망은 진행 끝에 저 세계의 끝을 보는 것이며, 쥐새끼는 몰라서 몰랐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발전한 도시와 문명, 그리고 무수한 사람들은 좋은 자극이 된다.
[저도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볼까요?]
“할 수 있어?”
[해볼게요!]
표본은 많았다.
지나다니는 무수한 사람들과 그 종족들을 가만히 관찰하던 쥐새끼는 야심차게 모습을 바꾸는 것을 시도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너무 오래 이 모습으로 있었나 봐요. 저는 그냥 쥐로 만족하겠어요.]
그렇게 되어 로스엘은 노랗고 가끔 전격이 튀며 아주 신성한 쥐를 안고 다니는 기천사가 되었다.
“와아! 유배자가 잔뜩!”
정말로 그랬다.
질서를 위해 비행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고블린 시티의 인구는 로스엘이 향수에 젖어들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구경 다니며 이것저것 먹고 기웃거리고, 그러다가 고블린 가이드가 로스엘을 놓쳐서 혼란에 빠지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쥐새끼가 말했다.
[제가 태어난 그곳도 원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내던 곳이겠죠?]
“맞아! 여기보다 더 큰 곳이었다.”
[구체적으로는요?]
“음……. 여기 인구가 지금 1500만이라고 했으니까. 30배 정도?”
[와…….]
그때부터 쥐새끼는 말 수가 적어졌다.
덕분에 로스엘은 토끼처럼 온 사방을 쏘다닐 수 있었다.
중간에 고블린 가이드가 지치는 바람에 쥐새끼와 함께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신고도 몇 번 당한 것 같지만, 고블린 시티에서 고블린이란 종족 자체가 굉장히 존중받는 탓이다.
기천사의 횡포로 오해받아 몇 번 출동한 경찰들은 가이드가 손사래를 침으로서 막아냈다.
로스엘은 첫날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후, 레미가 준비한 귀빈실에서 잠을 잤다.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야!”
실로 그러했다.
쥐새끼를 꼭 껴안고, 푹 잠자고 일어난 로스엘은 수천 년만의 개운함을 느꼈다.
“똑똑해진 것 같아!”
[수면 부족이 원인이었을지도 몰라요!]
로스엘과 쥐새끼는 하루를 들여 도시를 모두 관광했다.
둘째 날에는 조금 더 멀리 나가보고 싶었다.
“그럼 제가 같이 다녀줄게요.”
멀리 단독으로 보내기에는 문제가 있다.
탈진하여 쓰러진 고블린 가이드 대신 희우가 나서기로 했다.
왕국의 자연환경은 대체로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모여 있다.
북부에는 설산과 설원이, 남부에는 사막과 늪지대, 그리고 밀림이.
동쪽의 바다와 군도들.
서쪽에는 맑고 깨끗한 숲과 호수들이 많다.
단순한 이동이 피로가 되는 스펙은 피차 아니었다.
쉬지 않고 날아다니고, 구경하고, 또 감탄하며 왕국 전체를 쏘다닌다.
[가라앉은 영광] 필드는 기계신의 분령이 안간힘을 다하여 왕국의 원래 환경을 재현하고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진짜로 펼쳐진 자연과, 인공적으로 구현된 작은 환경의 차이는 크다.
로스엘에게는 반가운 것이었으며 쥐새끼에겐 새로운 것이었다.
주어진 3일 동안 마음껏 즐겼다.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그래?”
로스엘은 대답할 말을 골라야했다.
그게 불가능함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이럴 때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유배자들이 그 세계를 잘 때려 부수면 다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무너진 세상의 재건이군요!]
그렇게 짧은 남의 왕국 관광이 끝났다.
로스엘은 얌전하게 희우의 손을 잡고 쥐새끼와 함께 리프트로 돌아왔다.
제니는 리프트를 타고 왕국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제니즈가 혼자 남게된다.
물론 그런 감상적인 이유를 떠나서라도 자기 대신 열심히 해준 또 하나의 자신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거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배워야했다.
“거기서 조금 더 이렇게 힘을 줘 봐요. 찌이잉하는 느낌으로.”
“이렇게요?”
“바로 그거에요. 역시 나야.”
신기한 경험이었다.
제니라고 그간 배움을 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브 리더와 에길, 아서, 블랑쉐.
마침내는 리더에 이르기까지 제니가 듣기에는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부웅 쾅 부웅부웅쾅이라고 설명하는 심리를 뭔가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저도 왠지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한 다음부터 그 느낌을 받았다니까요. 그 양반들은 이런 세계를 보고 살았던 건가 하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지금 우리 대화도 남이 보면 미친 소리 같지 않아요?”
제니즈가 웃었다.
“하지만, 그것이 숙련도니까!”
옳은 말이었다.
일정 이상의 숙련도라 함은 언어화될 수 없는 정신적 가치다.
이미 터득한 자들 사이에서 본질의 편린만이 언어화되어 오갈 뿐이다.
극도로 생략된 그 언어만으로도 서로가 안다면 의미가 전달되니까 말이다.
제니는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이미 깨달은 자기 자신에게 배운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어쩐지……. 제니즈 당신과 함께하는 며칠이 제 평생의 노력보다 가치 있는 것 같아요.”
제니즈는 단호하게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렇지 않아요. 잘 모르면서도 몸에 쌓아온 숙련도와 기본기가 아니라면 이렇게 이해할 수가 없었겠죠.”
그도 옳다.
제니는 잘 모르면서도 무작정 따라하고 그 끝에 포기해야했던 지난 세월을 되새겼다.
사실 반년하고 조금 더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지만 그 밀도 또한 평생보다 더 길었다.
지구에서의 생활을 포함하더라도 이토록 꾸준히 노력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간절히 갈구해본 적이 없었다.
저쪽과 이쪽의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르는 관계로 파티원들은 금방 돌아왔다.
하지만 제니와 제니즈를 터치하지는 않았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세상, 그 상공에 두둥실 떠있는 블록화된 거대한 폐허도시 위에서 제니는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제니즈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몸소 동작을 보여주며 지도하던 모습에서 점차 더 많이 쉬게 되었으며, 몸이 잘 안 움직인다면서 웃기도 하게 되었다.
3일째가 되었을 때는 괴조들이 모두 활동을 정지했으며 저 멀리 펼쳐져있던 장엄한 대지들이 반으로 줄어들어있었다.
대신 그만큼 소용돌이치는 혼돈, 혹은 어둠이라 부를만한 것이 그 자리를 채웠다.
강도 바다도, 내리던 눈도 점점 사라져간다.
하늘도 어두워지고 태양도 조금씩 빛을 잃어갔다.
제니즈는 이제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앉아서 말로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제니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제니는 눈물이 났다.
“살고 싶지 않아요?”
제니즈가 희미하게 웃었다.
희미 하려고 희미한 것이 아니다.
“살고 싶어요.”
“그런데…….”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본인이니까.
그러니까 무슨 생각인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제 생각을 좀 대신 말해줄래요? 알잖아요. 힘이 없네요.”
제니는 울먹이며 말했다.
“미아양도 소중하고, 파티도 소중하고, 그리고 다들 소중하니까. 모두가 제대로 목표를 이루었으면 하니까. 그래서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그래서잖아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네요. 복제라서 차이가 나는 걸까.”
“뭔데요?”
제니즈는 잠깐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제 말을 하는 것도 어렵다.
다른 피조물들은 모두 활동을 정지한 참이다.
이렇게 아직 활동 중인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나를 위해서.”
제니는 굳은 듯이 동작을 멈추었다.
“솔직히 열등감도 없지는 않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똑같이 노력하는 천재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고.”
“흐윽.”
“그러니까 나는 내 지름길이 되고 싶었어요.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서 나도 이만큼 강해졌다. 노력한 보상을 받았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흐으읍. 큽.”
“울지 마요. 그럼 나도 눈물 나잖아.”
“미안해요. 미안해.”
“그럼 우리를 기억해줘요. 그리고 끝까지 살아서 미궁을 클리어해요. 그리고 제니는 이 파티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전력이다. 하고 당당하게 말하라고요.”
“꼭 그럴게. 반드시 그럴 거야. 흐아앙.”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제니즈는 가만히 누워서 진짜 제니에게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전달했다.
매직 제니도, 그리고 여성진과 함께 있었던 다른 제니도.
그 기억이 이어진다면 여전히 우리는 단수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렇다고 개명은 하지 말고.”
“안 해요!”
4일째 날이 밝기 전에 제니즈는 활동을 정지했다.
마지막에는 미아가 안아주었다.
제니즈는 만족스러워보였다.
유언은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 최대한 늦게 오라는 것이었다.
유배자에게 영혼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물며 복제에게도 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그래도 모두 명복을 빌어주었다.
원래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문화니까.
내가 말했다.
“단숨에 돌파한다.”
“우선은 기계무덤으로 들어가는 게 목표죠?”
“맞아. 저번에 우리가 발을 디디고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완전경계 상태는 아닐 거야. 그럼 로스엘이 세계의 구멍을 다시 찾아낼 때까지의 시간은 벌 수 있겠지.”
“문득 드는 생각인데 이거 숏 컷 맞긴 해요?”
“통상적인 방법으로 절대 못 들어가는 곳이니까 그런 루트가 생기면 그게 숏컷이지 뭐.”
“히든 숏컷인가. 히든의 히든이네요.”
통하는 문은 도가니가 있던 자리에서 제법 떨어진 곳, 로스엘이 있던 통제실의 옆이다.
문같이 알기 쉬운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또 세계의 구멍이다.
로스엘이 그걸 발견해낼 수 있었다.
“사실 쥐새끼도 발견할 수 있어. 그래서 탈출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지.”
“재수 없으면 죽는 거잖아…….”
“원래 루트대로면 쥐새끼를 통해 여길 탈출한 후에, 나중에 다시 로스엘을 대동하고 돌아와서 [아후라 마즈다]를 상대하는 거니까 이상하진 않지.”
“지금 루트가 엄청나게 비틀어져있네요.”
“난이도가 더 높긴 하지 않을까?”
희우의 얼굴에 암운이 드리운다.
그리고 새로 영입된 게스트 멤버들은 그 말을 들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분명히 설명은 했지만 전체적인 구조를 듣자마자 파악하기는 힘들다.
하물며 서버에서 아무리 고생했다곤 해도 유배자가 아니지 않나.
나나 파티원들의 유배자스러운 사고방식을 이해하더라도 유배자가 활동하는 구조를 완전히 체현할 수는 없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
리온과 라리사가 멍해지자 블랑쉐가 보충 설명을 한다. 둘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까지 기다린 후에 출발해야겠다.
그동안 아서와 에길은 길을 뚫는 파티의 첨단으로서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는 한동안 포션 수급이 없으니 안정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에길과 아서 둘 다 방패를 꺼내든 참이다.
투지로 불타고 있는 제니도 한 팔 거들 준비를 한다.
이 경우에는 방패를 든 둘 사이에서 적을 쉬지 않고 귀찮게 만들어서 탱커들의 여유를 찾아주는 포지션이다.
“로스엘, 그리고 쥐……. 당신들이 얼마나 빨리 세계의 구멍을 찾아내 기계 무덤으로 도망칠 수 있냐에 달렸으니까 신경 써주세요.”
로스엘은 명예 파티원으로 인정받았다.
그 사실을 참으로 기뻐하고 있으며 의욕으로 충만해있다.
“그럼 문을 열어주시죠.”
천상의 도시 하층으로 통하는 공간의 균열이 열렸다.
빠져나가자 도서관의 지하실이다.
몇몇 천사들이 있다. 얼른 제압하는데 시간이 길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일단 기계무덤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순교자의 은신처에서 탈출한 이들과 만나는 것도 금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