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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27화 (50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27화

메인 던전 - Lv.4151 기계무덤의 캠프(3)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일견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일어난 것 같더라도 인과가 있다.

게임보다는 현실적이되, 현실보다는 단순화된 미궁의 세계는 그런 식으로 예측하기가 더 쉽다.

못한다면, 인식이 전환되지 않아서다. 어느 정도는 게임이며 어느 정도는 현실인 이곳에 대한 인식 말이다.

따라서 나는 순교자의 은신처에서 탈출한 이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놀란다면 이들이 무사하지 못했을 때 놀랐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원 무사는 약간 의외군.”

“그건 왜요?”

“그야, 그럼 더 힘들어지거나, 심리를 흔들어둘 수 있으니까.”

이건 히든 루트 혹은 히든 난이도 개방의 시나리오를 누가 썼다면 그렇게 했을 거란 의미다.

“만약 죽는다면, 상인 중 하나 정도. 대장장이가 죽는 건 너무 가혹하니까.”

“그렇게 되면 유리가 얽힌 스토리도 좀 다르게 흘러가겠죠?”

“맞아. 유리의 양부니까.”

아직 어린 천사인 유리는 다른 어린 천사들을 통제하고 있다.

통제라는 말이 꼭 맞다.

* * *

보고 있자면 전장의 지휘관이라도 되는 느낌으로 일사불란하다.

사상자가 있더라도 유리와 조엘, 그리고 릴리움은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많은 분기가 사라진다.

내가 희우와 속삭이는 동안 조엘이 다가왔다.

“무사하셔 다행이오. 사도님들.”

진심이 아닌 것 같지는 않다.

조엘의 목적을 위해서는 우리가 필요할 테니까.

“잠깐 이야기 좀 하실까요?”

“안 그래도 저희도 전할 말이 많습니다.”

옆에 릴리움도 나타난다.

희우에게 눈짓했다. 대충 상황에 맞게 할 일 하고 있어.

쥐새끼나 로스엘은 희우의 담당이다.

희우가 쥐새끼에게 전하고, 쥐새끼가 쥐들의 왕에게 그걸 번역한다. 일단 집 잃은 쥐떼가 죄다 기계무덤으로 함께 건너와있다.

조엘이 뒤늦게 우리 뒤편에 따라온 쥐들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뜬다.

“저건……?”

“걱정하지 마시죠. 적이 아니니까.”

“심연에서 새어나온 어둠이 뭉친 존재가 아닌가.”

어둠의 정령을 고풍스럽게도 표현하네.

그 발언에는 강한 적대감이 섞여있다.

이해는 한다. 조엘이 원하는 세계의 수복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이자 이 세상이 무너져간다는 증거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교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아……. 미카엘이 나타났다네.”

“천상의 도시의 수좌라는 그 천사 말이군요.”

“이길 수 없어 피신했네. 성지는…….”

“잃었겠군요.”

“면목이 없네.”

“괜찮습니다. 탈환하면 되니까요.”

“……?”

조엘은 뭘 그렇게 쉬운 일처럼 말 하냐고 되묻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이번 사도님들은 아주 긍정적인 분들이군.”

안 그러면 미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우선은 구체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탐문을 실시했다.

겉보기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유배자가 어떻게든 정보를 얻고자하는 모습으로 보였으리라.

사실이기도 하고.

“확실하게 점령당한 모양이야.”

“정말로 포션 봉인이네요.”

“예상과 크게 다르게 흘러가진 않아서 다행이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뻗어나갈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했죠?”

“원래도 분기점은 많았는데, 근간부터 비틀렸으니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고 봐야지.”

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눠봐야 할 것 같아요. 일종의 퍼즐이네.”

“선형적인데 선형적이지 않지.”

“우리가 이제 더 이상 공략을 알지 못하니까.”

처음 게임을 할 때의 두근거림이 되살아…… 나긴 개뿔.

그래도 완전히 모두가 미쳐 날뛰는 상황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 경우에는 아마 성지 탈환을 위해 돌아가면 보스전이 기다리고 있겠네.”

“상식적으로 그렇겠네요.”

곧 다른 파티원들도 의논에 참가했다. 이제는 브레인스토밍이다.

나는 정보를 풀고 파티원들은 지금의 상황과 자신의 경험을 끼워 맞춰 미래를 예측해본다.

“유리가 우리엘이 되는 것까진 유지되겠군. 살아남았지 않나.”

“대체로 큰 줄기는 유지될 모양입니다.”

“릴리움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게요. 아마 악마와 내통이 더 빨리 드러날 것 같은데.”

각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NPC들인지는 나 역시 안다.

그러니 예측이 아주 어려울 문제는 아니다. 상황이 조금 더 심리전에 가까워졌을 뿐이다.

아주 난이도가 높은 짝수층 같군.

이런 대화를 하고 있자니 마치 갓 출시된 신작 게임을 달리며 공략을 연구하는 소모임처럼 되었다.

리온과 라리사는 그 광경이 몹시 어색한 것 같다. 같이 앉아는 있지만 참여하지 못하고 떨떠름해보였다.

“좋아요. 뭔가 깨닫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알려줘요.”

그렇게 말하며 리온과 라리사를 데리고 일어섰다.

“일단 파티원 관리 차원에서 묻는데. 괜찬냐?”

“예, 물론. 조금 어지럽긴 했지만 오랜만이네요 이런 느낌도.”

리온은 문제없는 모양이다. 다만, 다음 순간 함께 라리사를 보았다.

“어, 저는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안 괜찮아 보이는군. 리온 잘 달래봐.”

리온이 괜찮은 이유는 이동을 위해 미아가 만든 로켓을 타고 발사도 되던 지난날 덕분일 것이다.

반면 라리사는…….

리온은 분명 좋은 녀석이다.

그래서 나처럼 어린 용사를 심하게 갈구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렇게 사랑에 빠져버린 것을 보면 틀림없지.

“그리고 희우한테 가서 저 쥐 좀 받아와.”

“앗, 네. 알겠습니다.”

희우는 로스엘을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으니 쥐새끼는 당분간 담당을 바꾼다.

쥐새끼 파워는 어디까지나 신성이다. 고로 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천사나 악마 종족이라면 그럭저럭 다룰 수는 있다.

하지만 실용적이지 못하다.

신에게서 비롯된 힘을 사용하는 클래스는 성직자라고 딱 정해져있는 법이다.

“우선은 친해지기야. 간식 주면서 말이야.”

그래서 담당을 바꾼다. 쥐새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성기사인 라리사다.

성기사라는 것은 결국 힘 지능 루트에서 신앙을 잔뜩 찍은 클래스니까 말이다.

물론 마인드맵은 없겠지만.

리온이 희우에게서 쥐새끼를 받아온다.

이제 둘 사이에 특별히 어색함은 없다.

세월은 마음을 쉽게 바꾸는 법이지.

쥐새끼와 라리사 쌍방에게 힘의 사용법에 대해 짧은 강의를 한다.

근본적으로 라리사 역시 리온에게 사사받았고 마법적으로는 나를 스승으로 두고 있다.

우리 파티에 걸맞은 내 계보를 타고 흐르는 가르침이란 말이지.

그래서 길고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왕국 방위계획을 짤 때 회의에 참석하게 할 정도의 전력이니 기초는 차고 넘친다.

그러는 동안 당장의 브레인스토밍이 끝났다.

조엘이 도움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이곳은 이대로 지내기에는 너무 나쁜 환경입니다. 임시 거주지라도 마련을 해야 하는데…….”

“기꺼이 도와드리죠.”

왕국에서 이미 준비를 끝마쳐왔다.

은신처가 털렸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NPC들이 지낼 다른 공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제니와 희우가 차원 수납 주머니를 탈탈 턴다.

유배자용 캠핑용품 여러 세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서와 에길은 곧바로 목책마냥 캠프의 경계를 그을 수 있는 구조물들을 찾아 떠났다.

기계무덤은 심연에 침식당해 세상이 가라앉는 곳.

언젠가는 결국 심연의 일부가 될 곳이다.

그러므로 온갖 문명의 잔해들이 가득하면, 폐자재 사이에 섞인 건축 자재들도 얼마건 있다.

조엘이 거의 어이없어했다.

“……굉장히 능숙하시군요.”

“베데스다의 사도 아니겠습니까.”

우리 파티원들은 오픈월드의 달인들이거든.

뚝딱뚝딱하며 건물이 올라가고 마을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천사 노인들도 돕기 시작했다.

날개 한두 짝이 없는 정도로는 천사라는 종족의 신체능력을 완전히 억제할 수 없다.

당연히 인부로서의 가치는 높다.

아이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대장인 유리의 의견에 따라 어른들을 돕기 시작한다.

“9층 생각나네요!”

“거기서 오두막 지어놓고 좀 오래 지냈었지.”

정확히 그 느낌이 맞다.

고블레타리아의 접이식 막사도 설치하고 아이들이 지낼 공간도 따로 우선 만든다.

곧 에길과 아서가 날아다니며 뭔가를 나르기 시작했다.

쥐들도 움직였다.

땅을 파고 들어가더니 사방에서 벽돌 같은 것을 날라 온다.

리온과 라리사도 그 사이에 껴서 쥐들을 돕는다.

다만, 쥐들은 벽돌집을 짓는 법은 몰랐다.

“설계도를 그려주지.”

구역이 나뉜다.

쥐들이 사는 공간은 벽돌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쥐새끼 외에 저 어둠의 정령왕들도 벽돌집을 바랬던 모양이다.

천사들은 좀 더 고블레타리아식의 현대적인 막사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다 하고 났더니 대강 한나절이 걸렸다.

조엘이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아이들이 밝아져서 다행이군요.”

“이렇게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집을 잃었다는 생각보다는 어디 캠핑하러 갔다는 기분이 들게 되죠. 그곳에선 얼마나 사셨습니까.”

“……수천 년은 되었지 않나…….”

“가끔은 이사도 다니고 그러는 거죠.”

조용히 옆에 서있던 릴리움이 그만 피식하고 웃었다.

“실례했습니다. 사도님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모든 일이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천사가 긍정적으로 살아야죠.”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빛을 따르니까요.”

파티원 중에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이는 없다.

마을의 형태를 잡으면서도 나름대로 궁리는 했다.

다시 모여서 회의를 재개한다.

에길이 생각한 바를 말한다.

“흠, 에길 그 말은 일리가 있어요. 한번 습격 받았다면 다시 습격 받지 말라는 법은 없지.”

거주지를 옮기는 일이 드물지 않은 바이킹다운 발상이었다.

미카엘이 성지를 찾아내서 습격했다면 당연히 추적을 계속 할 것이다.

보통 게임의 거점은 적의 습격이 없는 안전지대의 개념이며 회복의 샘은 짝수층에서도 그렇지만, 이곳은 메인 던전.

그렇게 간단하게 풀릴 리가 없는 것이다.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한다.

희우도 손을 들고 말했다.

“그 말도 일리 있군. 일종의 거점 발전시키기 미니게임. 그런 접근이 필요하긴 해. 경우에 따라서는 왕관의 검 이상으로 조엘이나 릴리움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제공할지도 모르겠네.”

원래 그딴 컨셉은 없는 테마다.

하지만 이미 내가 아는 테마는 아니다.

내가 모르는 형태로 내가 모르는 보상이 주어질 가능성은 얼마건 있다.

블랑쉐는 암살자다운 의견을 내놓았다.

“조엘은 습격자가 미카엘 단독이 아니라고 했어. 병력 자체가 꽤 많이 움직였단 말이지. 그럼 천상의 도시에 공백이 생긴다라. 정확한 판단이군.”

보스가 분산된 개념일지도 모른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보스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단은 배제하자고.

그렇다면 천상의 도시는 상대적 빈집이 된다.

“포션이 봉인된 대신 천상의 도시는 약간 약화시킨다. 그야말로 미궁이 할 발상이로군.”

다들 미궁의 미묘한 밸런스를 잘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선.

그 선을 안다면 미궁의 랜덤성도 예측의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보스 배치는 싹 바뀌어있다고 봐야하니 우선 천상의 도시로 올라가봐야겠군.”

성배도 하나 빠져나왔을 것이다.

그럼 기능 일부도 정지해있을 것이고.

천상의 도시는 본래 굉장히 빡빡한 필드지만 지금은 순서가 바뀐 것이 분명하다.

바로 올라가볼 필요가 있다.

미카엘은 가능한 마지막에 만나는 편이 좋은데.

배치가 어떻게 되어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말하면 안 되겠지만. 뭔가 묘하게 즐거운데?”

“아까부터 실실 쪼개고 있어요.”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는 게이머인 모양이다.

개발자와의 심리전이 너무 좋다.

이 경우 개발자가 미궁이라는 정체불명으 뭐시기라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야.

“우선 하루 정도 더 이 거점을 두고 본 후에, 보스전을 상정하고 움직이자. 언제 어디서 무슨 보스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야.”

편린급 보스 여럿이 동시에 나타나는 일이야 없겠지만, 여기서 ‘네가 왜 나와?’ 같은 일은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사료된다.

딱 지금부터, 진짜 이번 테마의 공략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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