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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28화 (50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28화

메인 던전 - Lv.12500 [천상의 도시 - 구도심](1)

정비도 정비지만 휴식도 휴식이다.

정신적인 문제도 있다.

미궁의 메인 던전이 지랄 맞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새길 기믹이 많아서이다.

어둠 속성의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적이 있지 않았던가.

사람의 정신력을 건드리는 속성이라고.

대체로 후반부에 접어들면 접어들수록 관련된 기믹이나 트랩이 늘어난다.

빛과 어둠의 경계라고 이름까지 붙은 이 동네에서는 더더욱 심하다.

“하지만 일단 어둠 마법을 구사하는 것은 악마들이겠죠?”

“그쪽은 그래서 물리적 힘듦보다는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해져.”

“오우.”

“종족부터 갈아치운 이유가 그거야. 천사건 악마건 어떤 식으로건 어둠에 내성이 생기니까.”

그런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캠프를 마저 정비하고 각자의 역할에 대해서 재고한다.

이렇게까지 흘러오면 이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우리 파티다.

* * *

조엘도 릴리움도 그 사실을 안다.

성지를 지키지도, 뭔가 혜택을 줄 수도 없다. 예언의 사도들에게 그들이 도울 수 있는 게 남지 않았다.

태도가 변했다 까지는 아니지만 어딘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는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언제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편이 좋다.

애초부터 메인 던전의 큰 서사는 도전자가 잘 모른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져 있다.

나헤마의 협잡이나 메타트론의 속내 같은 것은 모르는 척하는 게 좋다.

섣부르게 적으로 돌린다면 선형적 구성에서 벗어난다.

그럼 변수가 많아지고, 그렇게 큰 변수는 보통 재앙이다.

그러니까 그런 껍데기를 유지한 채, 베데스다 종파의 생존자들에게 주도권을 쥐게 된다면.

운신이 편해진다.

“쥐새끼, 슬슬 이름 필요하지 않아?”

[저는 쥐새끼가 마음에 드는데요.]

“……그래?”

거 취향 참.

라리사는 쥐새끼의 벽돌집을 특히나 한 땀 한 땀 쌓아 올려주었다.

쥐새끼는 그것만으로도 라리사에게 호감을 가졌다. 사실 쉬운 녀석이다. 태어나서 다른 지성체를 제대로 본 적도 없을 테니까.

좀비 같은 기계신의 피조물들과 모습을 빌린 어둠의 정령들뿐이었겠지.

라리사 역시 제법 귀여운 모습인 쥐새끼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것들은 어떻게 안 되나?”

“무해합니다. 저 쥐들도 결국 살 곳을 잃어 여기로 왔을 뿐이니까요.”

대장장이인 에후디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믿을 수 있나?”

“제 보증이면 어떻습니까?”

조엘이 나타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후디엘도 고개를 끄덕인다. 별수 없겠지.

순교자의 은신처에 있는 천사들은 결코 약한 존재들이 아니다.

이후 진행에 따라 아예 보스로 등장하는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로스엘 루트를 탈 것이기에 확실하게 보스로 등장할 것이다.

제니가 슬쩍 물어본다.

“그런 거라면 지금 썰어버리는 게 좋지 않아요?”

“안 좋아. 그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하긴……. NPC는 함부로 죽이는 게 아니라고 전에 그랬죠.”

“어차피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기지 못할 것도 아니니까.”

제니는 결의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 줄 알고 헤쳐 나가는 자의 눈이다. 제니즈의 의지를 어깨에 지고 있다. 장하다 제니.

임시 캠프는 그렇게 깔끔하게 완공되었다.

전체적인 풍경은 어둡고 빛도 들지 않는 쓰레기장의 쓰레기 마을이다.

마을의 경계는 온갖 잔해들 중 기둥이 될 만한 것들을 뽑아와 꽂아둔 것에 불과하고, 그 내부의 구조물들도 고블레타리아가 제공한 임시 막사를 제외하면 허름하기 짝이 없다.

천사들이 마법으로 띄워둔 빛들이 가스램프 같은 조명을 뿌린다.

더 밝은 빛은 쥐들이 싫어했다.

“나쁘지 않은데?”

내 말에 에길과 아서가 뿌듯해했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중세 판타지 월드에서 온 것에 더 가까운 둘은 이런 일이 익숙했다.

“내 손으로 세운 막사가 몇 개인데.”

“내가 브리튼에 개척한 거주지도 몇 개인데.”

아서가 헛기침을 하고 노려본다.

에길이 껄껄 웃었다.

블랑쉐가 소리 없이 나타나 에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딸아. 좀 괜찮니?”

“문제없어요!”

기계 무덤의 캠프가 건축되는 와중에도 미아는 그곳에 참여하지 않았다.

운동과 휴식을 반복하고 음식을 섭취하며 컨디션 관리를 하고 있었다.

“확실히 데몬의 회복력은 인간의 몇 배로 우수하고, 기초 체력도 더 우위에 있으니까 빠르게 최소한의 체력 수준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미아는 담담하게 자신의 현 상태를 평한다.

뱀파이어 때처럼 몸을 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디스트로이어와의 달리기 시합은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스타트 대시는 여전히 처참하게 패배하지만 지구력에서 우위를 점하기에 결국 디스트로이어가 먼저 지쳤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했다.

블랑쉐가 지친 디스를 안고 분해하고 제니가 득의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미아를 훈련시킨 에길도 슬그머니 합류해서 미소 짓다가 블랑쉐에게 뒤통수를 또 맞았다.

“인간은 원래 지구력으로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

“대부분의 종족이 결국 인간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한 구조니까?”

“이미 정설로 보고 있잖아요.”

옳은 말이다.

바벨탑을 만들고, 신좌를 세워 이 미궁을 구성한 선주 문명은 사실 인간이거나, 적어도 그 비슷한 존재일 것 같다는 게 많은 왕국의 마법사들이 내리곤 하는 결론이지.

“그렇다 하더라도 몸은 축나는 거야. 포션도 체력은 회복시키지 못하는 점을 명심해.”

“관리할 컨디션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아서 슬퍼요.”

“언데드로 돌아갈래?”

“하지만 마법적 가능성은 데몬에게 더 멀리까지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씩씩해서 좋다.

제니가 미아를 꼭 안아 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법을 위해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증발할 체력이다.

제니는 당분간 미아를 내려놓지 않기로 했다.

“이제 저도 잘 싸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다. 이제 엄청 잘 싸워요!”

제니즈, 보고 있나? 너의 의지는 진짜에게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가짜 나. 정말 고마워.

“구멍 찾았다!”

로스엘이 그야말로 로스엘답게 펄쩍펄쩍 뛰면서 양팔을 흔들었다.

적당한 위치에 구멍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서 심혈을 기울여 조사하고 있던 참이다.

로스엘은 리더인 나와 서브리더인 희우에게,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에게 명예 파티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당연히 다른 이들의 반응은 뭘 새삼스럽게 같은 식이었다.

로스엘은 감동했고 냉각수를 분출하며 비행했다.

그 이후부터는 제니와 함께 가장 사기가 충만한 파티원이다.

로스엘이 안내하는 구멍으로 다들 빠져들어 갔다.

[천상의 도시 - 구도심 하층]

현재의 지역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바로 상층으로 올라가자고.”

“올라가는 문에 문지기가 없군요.”

“확실히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달라졌어. 병력 배치도 다르네.”

랜덤의 범주 내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경우의 수들이 꾸준히 보인다.

마법을 구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즉시 감지될 것이다.

블랑쉐가 슬쩍 벽을 타고 올라가 구도심 상층으로 통하는 길을 관측하고 왔다.

“경비병이 없다.”

하층과 상층을 구분하는 계단에는 원래 경비병들이 있어야 한다.

지금 그게 없다는 것은 아마도 바로 전날 도서관 지하에서 나타난 우리가 깽판을 치고 지나가서겠지.

그 경계가 풀리기 전이라면 병력 배치가 변할 법도 하다.

“원래 보스전이 존재하는 곳으로 먼저 이동해 보자.”

“지금부터는 보스러시라고 했죠?”

“맞아. 에길도 새 무기를 얻었고, 우리는 이미 아후라마즈다를 잡았어. 어쩌다 보니 진행이 바짝 당겨진 거란 말이야.”

그리고 진행 순서도 이젠 모르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다 건너뛰고 일단 때려 박아보는 것이 제일이다.

모든 편린들이 아후라 마즈다처럼 탈출조차 힘들게 되어 있지는 않다.

일단 박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잽싸게 도망칠 방도 정도는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다른 것이 꼬이겠지만 어차피 아는 게 없으면 박아봐야 말이지.

“성배는 아래의 것이 아니라 최상층의 것을 뽑아간 모양이네.”

“도시 기능이 다 죽을 테니까 별수 없었겠죠.”

“그럼 미카엘은 저기 없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다른 사대천사는 어떨까.”

내가 알고 있는 그 녀석들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

천상의 도시는 구도심이 존재한다면 진입을 그곳의 하층으로 하게 된다.

상층은 거기서 이어져 신도심으로 흘러가는 길목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도시 자체가 층을 가진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원형의 도시에서 더 가장자리, 더 낮은 곳이 구도심이고 신도심의 상층일수록 높고 동심원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형태다.

우리는 지금 베데스다의 옛 교회가 있던 곳에서 정반대편으로 진입해서 침투 중이다.

“단숨에 성배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성배의 위치에는 원래 보스전이 하나 있는 곳이다. 그러니 지금도 있을 것이다.

누가 있는지 보자.

병력이 분산되어 필드가 허술해졌으니 빠르게 주파할 수 있다.

“그래도 굉장히 텅텅 비어 있네요? 원래 이래요?”

“신도심이 병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구도심은 무슨 일이 생기면 비워져.”

“우리가 헤집고 지나간 것과 미카엘이 은신처를 습격한 게 연관이 있겠군요.”

“그럴 것 같아.”

구도심은 이름답게 복잡했다.

아름다운 흰 빛의 매끈함은 마찬가지지만 골목이 복잡하다.

여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는 아니다.

[가라앉은 영광]의 옛 도시를 잃은 후에 급하게 만들어진 흔적이다.

성배는 그때 남은 잔해들을 모아 만든 것들이다.

비슷한 게 지옥의 성채에도 있다.

“그쪽에서도 파편을 모아야 하나. 갈 길이 태산인가.”

아서가 입맛을 다셨다.

나는 부정했다.

“의외로 빠를지도 몰라요. 순서가 좀 이상하긴 한데, 이게 일단 기계신의 분령 하나를 우리가 족쳤으니까 여긴 시간문제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흐름이긴 하지.”

대신 그만큼 밀도 높은 진행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여기 도시의 성배 하나를 우리가 탈취해 버린다면 천상의 도시는 끝이다.

지옥의 성채가 나머지를 알아서 할 것이다.

“깔끔하게 탈취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겠지.

계단까지 아무 전투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파티에 악마가 섞여 있음에도 구도심은 현재 텅텅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텅 비어 있지 않아요?”

“지금 나도 좀 오싹하기 시작했어.”

몬스터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필드가 텅 비어 있다?

이건 사실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싸한 느낌이 들면 들었지.

이런 직감을 믿지 못하면 유배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전부 바짝 긴장해요. 안 좋은 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로스엘이 슬쩍 다가와서 속삭였다.

“정 안 되면 [세피로트]를 찾아줘. 그럼 내가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내 자리가 아직 비어 있을 거야.”

“그건 아마 신도심에 가야 있을걸요?”

“그런가…….”

뭐, 지금으로선 로스엘이 전투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고 봐야겠지.

[천상의 도시 - 구도심 상층]

필드의 메시지가 변한다.

“여기도 아무도 없군요.”

“나 슬슬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진짜로 보스전만 하는 컨셉의 스테이지가 가끔 있다.

미궁은 보통 그런 곳의 잡몹을 싹 비워둔다.

아무것도 없네? 뭐지? 날 먹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다가 연속된 보스전이나.

심지어 두셋이 동시에 나오는 보스를 맞이하게 된다.

“너무 불안해서 안 되겠는데. 로스엘은 세계의 구멍으로 탈출로 좀 확보해 줘요. 리온이 함께 해줄래?”

고개를 끄덕이며 로스엘과 둘이서 흩어진다.

애초에 로스엘과 리온 부부는 전력으로서 데려오는 것은 아니니까 문제없다.

“정말로 텅 빈 게 맞군.”

“그래도 마법은 쓰지 마. 상층에서 감지할 거야.”

어쩌면 이미 감지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지.

신도심은 구도심보다 더 좁다.

서둘러 달리지 않고 걷기로 했다.

대신 주변을 잔뜩 경계하면서.

곧 신도심이 가까워졌다.

정확히는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신도심의 바닥이 지붕처럼 덮여 있는 영역이다.

그렇게 구도심의 중심부로 향한다.

성배는 여기에 있다.

“언제건 튈 준비. 사대천사가 다 있을지도 모르겠다.”

쉬울 리는 없는데 잡몹이 없으면 보스가 더 지랄 났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에이, 미카엘이 우리가 탈환부터 시도하는 게 아니라 성배부터 찾으러 올 거라고 대충 알고 있었나 보네.

역시 바보로 보면 안 되겠지.

이 루트 이거…….

차라리 필드에 잡몹이 잔뜩 깔려 있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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