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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30화 (50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30화

메인 던전 - Lv.12500 [천상의 도시 - 구도심](3)

[달의 눈물, 가브리엘]

구면인데, 별로 반가운 구면은 아니다.

미카엘 루트를 탄다면 무뚝뚝하지만 나름대로 호감 가는 아군이지만…….

천사와 악마 양측 중 하나의 편을 드는 것은 아주 평범하고 메리트 없는 노말 엔딩으로, 그 이후 왕국에 들어올 침공까지 생각하면 전혀 좋은 엔딩이 아니다.

그러니까 난 그 엔딩 루트를 많이 타본 적이 없다.

자고로 고인물이라면 스피드런 혹은 올 보스런이다. 아예 둘 다에 제약까지 걸고 플레이 한다거나.

덕분에 가브리엘은 허구한 날 모니터 속에서 내 캐릭터와 싸우던 녀석이었다.

미궁이 현실이 된 후에는 모니터에서만큼 자주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도트의 생김새를 이렇게까지도 구현할 수 있구나 생각이 드는 수려한 외모다.

고위 천사라 함은 본디 인간의 형태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존재겠으나, 그 이득만큼은 이해하고 있다.

숭배받는 존재란 아름답거나 두려워야 한다.

천사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기를 골랐다.

필멸자들의 미적 감각을 중시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 * *

* * *

솔직히 말해서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다.

예쁘긴 한데, 그거랑 별개로 감정이 희박하고 기계적인 느낌이 들어 위화감이 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AI가 만들어낸 모델링에 더 가까운 생김새다.

“재미있구나. 유배자. 나를 아주 잘 아는 동작인데. 너희들은 그런 족속들이기는 하지.”

쿨다운을 고려하여 공격력을 강화시키는 버프는 제외했다.

나는 공격을 할 생각이 없다. 회피에 다시 회피, 맞 공격으로 상쇄할 수 있는 부분만 최대한 상쇄하며 흘린다.

앞으로 나서 공중을 달리며 비행하는 상대의 온갖 투사체에 대응한다.

“잘 피하네. 어디서 날 본 적이 있나 봐?”

대답할 틈도 없다.

이 필드의 배경에 깔린 달은 안타깝게도 장식이 아니다.

하늘 꼭대기에 부자연스러우리만큼 거대한 자태로 빛나는 달에서 빛이 내려온다.

이건 전조가 없다. 약간은 운에 맡겨야 하는데 수면이 빛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공감각 속에서 세상이 약간 느려지는 듯한 예리한 감각을 붙잡는다. 그리고 패턴의 발동 직전에 몸을 날려 피해냈다.

아무 소리도 없이 죽음의 빛이 내가 있던 자리에 서늘하게 내려온다.

가브리엘의 가장 악질적인 부분은 모든 패턴이 맥아리가 없다는 점이다.

일견 파괴적이지도 않으며 강렬하지도 않다.

감각과 괴리될 만큼 조용하게 내려앉는 작은 달빛이나 은은한 빛의 파편이 죽음을 내린다.

잘 안 보여서 더러운 타입이다.

가브리엘은 점점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곡예하니? 나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재롱이 훌륭하구나.”

딱 좋다.

저렇게 생각해 줘야 한다.

방법이 있으려면 이 상태를 아직은 유지해야 한다.

내가 흥미롭겠지.

가끔 자기네 영역에 숨어들었다 박멸당하는 벌레 같은 유배자가 신기하겠지.

수천 년 전에 마지막으로 목격된 희귀 동물을 보는 눈빛이다.

미카엘이 우리를 의식하는 것은 정확하게 우리를 보는 게 아니다.

그저 조엘과 릴리움의 수작을 경계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게 아니라면 가브리엘은 좀 더 의욕이 있을 것이다.

“뭔가 동료들이 다른 걸 하려는 모양인데…….”

가브리엘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뒤편에서 공격을 준비하는 파티원들을 본다.

어차피 썩어나는 것이 광역기다. 홀을 한 바퀴 돌리며 동료들을 가리키려고 했다.

딱 이 순간.

나머지 버프를 일제히 활성화한다.

날 때부터 고위종족인 것들은 오만하기 싫어도 오만해질 수밖에 없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

실제로 누가 그렇게 사냐고.

항상 전력을 다할 수는 없다. 다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토끼도 이빨을 드러내어 사자의 콧잔등을 깨물 찬스가 가끔은 있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활성화된 버프와 함께 레바테인을 불태운다.

슬슬 내구도가 끝나간다는 느낌이 있다.

시간 벌이로는 딱 좋다.

다시 수르트의 손으로 돌아가겠지.

가브리엘의 눈이 내 쪽으로 움직인다. 그와 함께 공격도 펼쳐진다. 홀 끝에서 뻗어 나온 광선이 파티원들을 향해 덮친다.

저 정도는 괜찮다. 못 막아내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그 후속타가 문제인데 가브리엘은 이제 완전히 내게 시선을 빼앗겼다.

서늘한 거인의 화염이 하늘을 뒤덮고 달을 가렸다.

가브리엘은 달과 물의 천사다.

그리고 물은 냉기에 얼어붙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약점.

전투적으로 강력한 권능은 그만큼 어딘가에 특화되기 마련이며, 그렇기에 약점이 생긴다.

특화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뜻이니까.

가브리엘의 경우 모든 공격이 물과도 같은 형태를 띠며, 냉기로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라파엘은 그걸 녹일 수 있다.

이 둘이 함께 있다면, 공략법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일단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이유다.

레바테인이 슬슬 마지막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아낄 필요는 없다.

다시는 차오르지 않을 냉기의 마력, 멸망의 거인의 업화를 뒤틀어 만들어낸 핌블윈터의 냉기가 쏟아진다.

가브리엘은 당황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으나 이제 완전히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작은 입이 동그랗게 벌어진다.

앞으로 손을 뻗는다.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손에는 홀,

한 손으로 휘두르는 홀은 약하고 빠른 공격을, 조금 더 크고 묵직한 지팡이는 느리고 강한 공격을.

지팡이에서 묵직한 마력, 권능, 신성, 무엇이라 불러도 좋을 복합적인 힘이 뻗어 나왔다.

패턴이라는 형태로 가공되지 않은 무차별의 방출이다.

푸른 불길의 파도와 달빛은 한순간 길항하는 듯했다.

그리고 내 쪽이 밀린다.

이기는 게 이상하지.

그리고 상성이 일을 시작한다.

가공되지 않은 채 일시에 방출된 달빛이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달까지, 그리고 바닥에 깔린 물도 천천히 서리가 내린다.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

가브리엘의 표정이 살짝 변한다. 빛의 날개가 조금 더 커지고 이제는 패턴으로 가공된 힘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늘한 달빛이 더 강해지며 얼어붙은 파도를 밀어낸다.

서리가 앉던 물이 요동치며 냉기를 떨쳐내려 했다.

딱, 그 시점에.

레바테인이 파열했다.

그리고 순간적인 크리티컬 판정이 가브리엘의 공격을 몰아내었다.

희우는 마지막 순간 고민했다.

지금 저 가브리엘을 노리는 공격이 더 옳을 수 있지 않은가?

방심을 찌르고 레바테인이 희생된 공격은 한순간이나마 대천사를 완전히 제압했다.

하늘을 찌르듯이 치솟은 빙산이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마저 얼렸다.

달은 뾰족한 빙산에 찔려 흐리게 산란한다.

아서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2페이즈가, 그리고 라파엘이.”

에길은 집중하고 있다. 아수라파천무의 연격을 새로운 무기 끝에 중첩하고 있다.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그 과정에서 동작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잡아 붙여지고 있다.

특화는 파티원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희우는 실전에서 가능한 실전성 높은 형태의 연계동작을 위주로 암기하며 숙련했다.

에길은 적의 눈앞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연계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중첩되고 다시 중첩되어 모였을 때의 위력은 파티원 중 가장 비현실적이다.

드라간은 가끔 그런 메커니즘 자체를 불쾌해했다.

자신은 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리고 배우려고 시도도 했었다.

하지만 드라간의 방식은 에길의 공격에도 깃들어 있다.

감았던 눈을 부릅뜬 바이킹은 그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어딘가 끈적끈적한 감각을 보고 있는 모두가 느낀다. 그냥 힘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어딘가에 엉겨 붙듯이 함께 밀어 치는 감각.

보고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기예다.

그리고 그에 더 큰 힘을 부여하기 위해 들어간 다른 이들의 공격 역시 엮여 들어갔다.

공간이 천천히 진동하고, 파문이 되어 번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광경이 열리기 시작했다.

희우는 그렇게 많은 마법을 보고, 스킬을 보아왔지만 이렇게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일그러지는 공간을 볼 때만큼은 어딘가 희열이 느껴졌다.

본능이 알고 있다.

충분한 힘이 구비된다면 아마 미궁이 아닌 곳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에길이 뚫은 구멍을 아서와 희우, 그리고 제니가 끼어들어 비튼다.

미아가 공간이동을 준비했다.

우스운 일이지만 마법적 공간이동은 이런 틈 없이 가브리엘의 필드를 벗어날 수 없다.

구멍이 난다면 가능하다.

“빠져나갈게요!”

저 멀리 같이 얼어붙어 있는 오빠에게까지 미아의 마력이 실이 되어 뻗는다.

거기에 닿는 순간, 시야가 일그러지고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여기야! 여기!”

로스엘이 펄쩍펄쩍 뛴다.

“추워…….”

꽁꽁 얼어붙은 오빠를 들쳐 메고 그대로 달렸다.

세계의 구멍이라고 불리는 곳곳의 구멍을 통해 다시 천상의 도시를 빠져나갔다.

“무기 잃으면 큰일 아니에요?”

“뭐, 그렇게 큰일일 것까지야. 어차피 저런 속성적인 약점이 강한 보스를 상대로는 마법사가 더 중요해.”

그리고 나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대천사는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를 그대로 드롭한다.

저것 자체가 본신의 힘을 매개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중계기이자 그 힘을 깃들인 아티팩트이기 때문이다.

메인 던전이 아닌 곳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상위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다.

“수르트의 레바테인은 따지고 보면 말이야, 저기 에길이 들고 있는 저 도끼랑 동급이란 말이지.”

“기믹 보스니까 아후라 마즈다와 비슷한 급인가 보네요.”

“그렇지. 가브리엘은 더 센 놈이고.”

라리사에게 동상을 치료받으면서 희우와 대화하자니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미아가 다가왔다.

미아가 묻는다.

“하지만 그럼 둘 다 지팡이 아닌가요?”

“라파엘은 칼이야 그거.”

형태는 지팡이지만 근본은 검이다.

내가 쓰면 될 거다.

“지팡이는 제 건가요?”

“맞아. 그러니까 지금 들고 있는 건 다 소모해 버려도 된다.”

미아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시간의 성물이 박혀있는 저 지팡이, 아케인의 수장이 쓰던 고급스러운 아티팩트지만 이젠 슬슬 수명을 다해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낡아가는 무기의 크리티컬 판정은 몹시 중요하다.

힘들여서 본신 스펙을 올리지 않고도 공짜로 챙길 수 있는 도핑이니까.

“지금 아티팩트 무기 간당간당한 사람?”

아서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기에 말렸다.

“아서는 아직 아끼세요.”

“알겠네.”

엑스칼리버는 정말로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성검인지라 쟁여둘 이유가 있다.

미아만 손을 든다.

써먹을 수 있겠군.

그나저나 너무 춥다.

“아이고, 삭신이야. 인간 때려치울 걸 그랬나.”

엎드려서 몸에 파고든 오한을 떨쳐내고 있자니 뭐 하는 짓인가 싶다. 포션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단 한 모금이면 상태 이상까지 한 방에 풀 컨디션.

손에서 빛을 머금고 내게 내뿜고 있던 라리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선생님……. 사실 그 정도 동상이면 그냥 포션 한 모금 하시는 게…….”

“아껴야지.”

성직자의 치유라는 게 참 느리긴 하다.

괜히 전투직인 게 아니다.

희우가 물었다. 다른 파티원들도 엎드려 있는 나를 보고 있다.

가브리엘, [세피로트]에 온전히 앉아 있는 천사의 위력은 모두가 온전히 느꼈다.

하물며 가브리엘의 약점을 지워줄 수 있는 라파엘도 함께 붙어 있다.

나는 로스엘을 보았다.

“라파엘과 일대일로 대치한다면 시간 얼마나 끌 수 있을까요?”

“나?”

로스엘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헤에에, 그을쎄에. 도망만 열심히 다니면 3분? 라파엘은 날 엄청 얕보고 있을 테니까 굳이 서두르지 않을 것 같거든.”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닌데.

“로스엘로서 어떤지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로스엘이 입을 살짝 벌린다.

“아하, 하니엘로서?”

“예, 하니엘. 당신을 세피로트에 다시 앉힐 겁니다.”

로스엘은 싱글벙글하며 대답했다.

“옛날 같으면 두들겨 패서 다져놓았겠지만 이젠 힘들 거고……. 그래도 시간만 끌라고 한다면 일주일?”

“뻥치지 마요. 예전 같으면 라파엘이 당신이랑 눈도 못 마주칠 건데.”

로스엘의 멍청한 표정이 살짝 변했다.

언뜻 그대로인 것 같지만 나는 그게 조금 소름 끼쳤다.

“흐음, 리더는 뭐든지 다 아는구나?”

“아예, 뭐 대충 다 알죠.”

보스로 등장하는 로스엘은 저런 표정을 하고 있지.

동상이 다 나았다.

“쉴 틈 없습니다. 지금 바로 되돌아갑니다.”

“어디로?”

“신도심으로.”

신도심에는 현재 적어도, 사대천사는 없다.

그럼 차라리 크게 돌아서 [세피로트]부터 확보한다.

“지금 천사놈들 아무 생각도 없을 거라고요. 메타트론의 행방이나 쫓고 있겠지.”

아무리 봐도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다시는 이렇게 [세피로트]를 날로 먹을 순간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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