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32화
메인 던전 - Lv.7554 [천상의 도시 - 신도심](2)
메인 던전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 아니, 사실 그냥 세상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전투 상황은 그 이전에도 체험할 수 있다.
리프트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유배자를 시련으로 인도하고 그 시련은 난수가 얼마나 분화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니까 상공에 포탈을 열고 무수히 많은 적병력이 있는 도시로 강하하는 전투의 개막도 종종 있곤 했다.
심지어, 포화를 뚫고 내려서는 것이 아니라 적이 상상도 못한 가운데 침투하는 것이니 더 쉽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적들의 스펙 문제가 있으므로 결과적인 난이도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겠지만.
[실피드 남기는 거 잊지 말고.]
그래도 혹시 몰라 챙기게 되는 것은 별 수 없다.
메인 던전이라는 이름값이 주는 압박은 차원이 다르다.
그간 리프트에서 했던 모험들은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삐끗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미아는 능숙하게 실피드의 위치를 제어했다.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까지 한다.
정령왕과 미아 사이에 가느다란 마력의 실 하나가 연결되었음이 보였다.
* * *
* * *
* * *
[다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이지?]
신도심은 전체가 요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꼭대기인 상층요새는 비행전을 상정하여 벽만 있고 지붕이 없는 병영들이 있다.
개중에 조금 작고, 천사가 없으며, 위치도 중심부에 가까운 곳.
다들 어느 정도 눈으로 관측하여 알고 있을 것이며 내가 몸짓으로 선도하며 낙하한다.
노심이 터져 나가며 도심을 뒤흔드는 동안 제 위치로 모두 무사히 강하했다.
대공사격은 없었다.
작고 지붕이 없으며 숙소라기보다는 휴식처에 가까운 작은 건물만 몇 채 있는 조그마한 병영의 비행장이다.
위치나 규모 상 본격적인 군대가 아니라 5분 대기조 같은 초소격의 병영이었다.
벽은 둘러져 있다. 비행하지 않은 채 바깥에선 볼 수 없다.
[블랑쉐는 내부 확보, 아서와 에길 위치로, 희우와 제니는 주변 경계.]
최대한 시선을 교란하며 뛰어들긴 했으나 어느 천사가 보았을지 모른다.
병영의 입구 문 뒤로 에길과 아서가 자리 잡는다.
누군가 들어오는 즉시 강력한 선제공격으로 교전을 열기 위해서다.
희우와 제니는 살짝 날아올라 둘러싼 벽 너머를 살폈다.
둘은 천사고 잠깐 목격되더라도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블랑쉐가 더 급했다.
나도 블랑쉐를 따라 병영 내부로 돌입한다.
그리 크지 않은 건물 내부에 혼비백산해서 뛰어나오는 천사가 하나 있다.
블랑쉐는 이미 천사의 모습으로 의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대답은 암습이다. 픽 하고 암습 판정의 무자비한 대미지가 목덜미에 꽂힌다. 그럼에도 천사는 일격에 절명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팔을 내젓지만 내가 몸통을 찌르고 그대로 당겨 베었다.
천사의 피가 푸확하고 쏟아지고 시체가 쓰러진다.
안쪽에는 천사 둘이 더 있었고, 그 둘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층 요새가 이렇게 습격 받는 일 자체가 드물겠지.
마법을 엮어 입을 막고 서로의 의사소통이 막힌 잠깐 동안 블랑쉐가 사격했다.
반사적으로 날개로 그 사격을 막는 치천사들의 품속으로 내가 뛰어들었다.
날개를 뛰어넘으며 정수리를 찍어버린다.
그대로 쓰러지진 않겠지만 무기조차 들고 있지 않은 상대는 쉽다.
둘이 나에게 대응하기 위해 무기를 찾는 동안 다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든 블랑쉐가 암습을 터뜨렸다.
단검에는 어둠을 머금은 인챈트가 넘실거린다.
천사와 악마는 서로에게 상극인 법이다.
그리고 그런 상성 관계라면 먼저 치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천사 둘을 절명시키고 아서도 우리쪽에 합류했다.
게스트들은 에길의 뒤에서 혹시 모를 전면전에 대비한다.
희우와 제니도 주변의 낌새를 충분히 파악하고 들어왔다.
[들키지 않은 모양이에요. 아직 사태 파악이 끝나지 않았어요.]
[지휘관이 사대천사일 테니까 어쩔 수 없지. 세피로트에 앉은 다른 천사들은 전장에 있을 거고.]
건물 두 채를 더 그런 식으로 정리했다.
[주변 세 건물은 확보 완료. 뒤편에 건물이 몇 더 있으니 확인해 줘.]
우리를 눈치 챈 이들이 없으니 이 병영으로 뛰어드는 다른 천사도 없다.
그래도 에길은 계속 문 뒤에서 풀스윙의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구든 들어오는 즉시 머리가 둘로 쪼개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좋은 일이 아니다. 한번 우리 파티의 존재가 특정되고 나면 남은 일은 압도적인 물량에 휩쓸리는 것뿐이다.
너무 이른 시점에서 그리된다면 후퇴밖에 답이 남지 않는다.
다수의 잡몹에 의한 다구리는 보스보다 위험할 수 있다.
에길은 여전히 그 상황에 대비하고 있으며 미아는 병영에 낙하한 그 시점부터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 뻗은 마력의 실이 실피드와 이어져 있다.
희우와 제니에게 남은 건물의 바톤을 넘기고 블랑쉐와 함께 미아의 옆에 앉는다.
미아가 이어둔 실피드와의 연결을 타고 우리의 마력도 엮어 올렸다.
상공에 있는 바람의 정령왕은 가능한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요새 상공 전역을 내려다볼 수는 있도록 몸을 숨기고 있었다.
포탈을 열고 3분이 더 지났다.
더 큰 교란을 위해 마법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천사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악마들과 싸워왔다.
그에 대응하기 위해 대천사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이 있다.
마법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을 받고 물리계에 특화된 천사들이 악마들에게 도달할 때까지의 시간을 버는 역할이다.
상층 요새에 주둔 중이던 [푸른 기사단]의 단장은 이변을 깨닫자마자 마법 탐지를 걸었다.
멀리 뻗어나가며 다른 마력과 부딪쳐 생긴 교란이 다시 돌아와 상공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려준다.
“악마들이로군.”
“대응하겠습니다!”
기사단원들이 정렬한다. 마력의 실이 상공으로 뻗는다.
악마들은 어둠을 다루며 마법을 다룬다.
천상의 도시 상공은 별다른 일이 없다면 빛의 원소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천사의 속성이므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러모아 한 번에 소모한다면 그 이후 일어나는 일은 간단하다.
빛의 부재는 어둠이다.
하늘이 어둠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원소가 희박해져 가고 있는 이 세계의 마법은 조금 특수하게 작동한다.
빛이 없다면 그것이 곧 어둠이며 반대도 성립하는 환경.
오델로를 뒤집듯 두 원소는 줄어들고 늘어난다.
이렇게 대량이 한번에 소진된다면.
“데몬 군단장급이 와 있다. 고위 악마도 있을 확률이 높다. 전장에 연락하여 모습을 감춘 네임드 악마가 있는지 확인하도록.”
그리고 일단은 대응이다.
이제 갓 피어난 어둠이 천상의 도시에 드리우기 시작한다.
“비켜라.”
푸른 기사단장은 날아올랐다. 대천사 특유의 날개 3쌍이 거세게 움직인다.
마력은 주변에 강렬하게 피어났다.
짙푸른 체렌코프 광이 일며 어둠을 밝힌다.
“악마가 맞나?”
“그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습을 감추고 있군.”
[붉은 기사단]의 단장도 날아오르며 질문한다.
평소 같으면 비행이 금지되어 있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좋아. 다수는 아닌 모양이군. 숨어들었나? 찾아보도록 하지.”
치천사의 커다란 한 쌍의 깃털 날개가 펄럭였다. 몸과도 비슷한 사이즈의 대검을 등에서 뽑아 든다.
“여기가 어딘지 똑똑히 알게 해주지.”
푸른 기사단이 대천사로 이루어진 마검사 집단이라면, 붉은 기사단은 순수한 전사들로 이루어진다.
천상의 도시에 주둔하며 수비하는 일은 영광스럽지만, 전장에 나가지 않는 만큼 따분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부숴도 된다고 했나?”
“멍청한 녀석. 명령은 좀 기억을 해라.”
“전사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마법사.”
“중심부만 아니면 때려 부숴도 무방하지. 마음대로 하도록. 가브리엘님도 허가하셨다.”
“좋구나.”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백전연마의 치천사가 사나운 미소를 띄워 올렸다.
“내 부하들은 네가 지휘해라.”
“미친놈인가?”
그리고 그대로 붉은 기사단장은 상공을 향해 솟구쳤다.
푸른 기사단장에게도 부하들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위치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어떤 매개체로 중계하여 몸을 숨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당장은 못 막겠군. 상층요새의 전원에게 어둠에 대비하라고 이르도록.]
푸른 기사단장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해 온 것이지?
이미 도시 상공의 어둠을 모조리 장악하고 있다.
끼어들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미카엘님, 성배를 옮기는 것은 역시 너무 섣부르지 않았는지…….”
그리고는 어둠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좋아, 여기까지 클리어.”
“우웩.”
블랑쉐가 구토했다.
마법적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편인채로 정령왕과 접속한 채 남의 마법을 보조했다. 그게 쉬울 리가 없다.
미아도 체력적 이슈로 조금 지쳐 보인다.
“제니!”
제니가 얼른 날아와 미아를 안아 든다. 미아의 표정이 좀 더 편해졌다.
“블랑쉐는 최소한의 컨디션 관리 이후 합류할 수 있다면 합류해 줘. 아서도 블랑쉐와 함께 남으세요. 나머지는 전진한다.”
그리고 임시로 합류한 세 명을 보니, 그 게스트들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입 닫고 빨리 움직여.”
“네 넵. 알겠습니다.”
로스엘은 신나했다.
“너희들 무슨 특수부대 출신이거나 그런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훈련했죠.”
“나 시간 재고 있었어. 위에서 떨어진 지 5분만에 천상의 도시가 개판이 되었네.”
“신나 하는 건 좋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거기 어둠 조심하시고.”
스멀스멀 쏟아지는 어둠의 비를 피해 몸을 튼다.
블랑쉐가 의태하며 병영 속으로 몸을 숨긴다. 악마인 아서도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전투가 벌어질 시 적이 모르는 칼날인 편이 좋다.
미아는 솜씨 좋게 자신의 주변에만 종족을 알아볼 수 없는 간단한 환영을 설치했다.
남이라면 몰라도 본인에게는 쉬운 법이다.
그대로 문을 나선다.
“이제 다들 날아오르겠지. 이 상황에서 걸어 다닐 수는 없을 테니.”
그 직후 천사들이 비둘기 떼처럼 날아올랐다.
“기사단 조심해. 엘리트 몬스터들이라 피곤해. 기사단장은 필드 보스급이야.”
“일대일로 해볼 만은 하다고 했죠?”
“속전속결이면 그렇지.”
괴수형 보스는 스펙이 너무 높아 힘들다.
같은 인간형 보스는 유연한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는 힘들지만 스펙으로는 붙어 볼 만하다.
사대천사는 괴수형인 동시에 인간형이라 문제다.
기사단장 정도라면 스펙의 열세를 딛고도 순간적인 화력으로 제압가능 할 것이다.
“나와 미아는 로스엘을 다시 세피로트에 앉히는 것에 주력할게. 나머지는 엄호 부탁해. 희우가 지금부터 지휘해.”
미아의 탈것인 제니가 내 옆으로 착 달라붙는다.
전진!
“단숨에 돌파한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불리해지는 건 우리야. 이번엔 도망 못 갈 수도 있어.”
리온은 선생님의 파티에 대해서 꽤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려서 부려 먹히기도 했지만, 그만큼 함께 싸울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대뜸 불러오더니 마왕의 권능을 통해 거대한 드래곤을 언데드화 하라는 요구였다.
그때 아마 다섯 번은 죽을 뻔했지.
[마왕]이란 기본적으로 사령술사와 흑마법사를 겸한다.
순수 원소마법이 아닌 어둠 마법에만 보정을 주며 악마 종족으로 취득하는 것이 최선이다.
비록 리온은 아직 뱀파이어지만, 그 사실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리온은 이 파티에 따라오며 그렇게 대단한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의 삶에서 가장 격렬한 이벤트들은 모두 선생님이 얽혀 있지만, 그럼에도 꽤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히 따라왔나.’
사고조차 못 따라가겠다. 다들 각자의 할 일을 알고 있다.
리온에게는 역할이 주어져 있지조차 않은 것 같다.
실제로는 제대로 지침을 받았고, 해야 할 일도 알고 있으나 어딘가 그런 느낌을 받는 중이다.
너무 일사불란하잖아. 한 몸이라는 말도 모자라지 않을까.
집에 가고 싶어졌다.
“여기 대체 뭐야…….”
옆에서 울먹이는 라리사도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다.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위험을 각오했지 뭘 하는 건지도 모르고 따라다니는 것도 벅찬 상황일 줄은 몰랐다.
그 왜 좀 더 우직한, 힐러가 필요한 전투 있지 않나.
그런데 막상 지금까지 했던 것들은…….
들어오자마자 심연 같은 곳에서 건축을 잔뜩 도왔다.
직후에 아름답고 을씨년스러운 도시로 들어가더니 괴이할 정도로 강한 보스와 마주쳤다.
그게 10분쯤 전 일인데 이미 그걸 우회해 적진의 중심으로 달려가고 있다.
‘선생님이고 나발이고 그냥 집에 있을걸.’
옆을 보니 라리사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같은 게스트인 로스엘이라는 천사는 뭔진 모르겠지만 마냥 흐뭇하고 신나게 뛰고 있다.
돌겠다.
그리고 정말로 천사가 비둘기처럼 사방에 날아다닌다.
아니, 이제는 비둘기도 아닌 것 같다.
닭장에서 뛰어다니며 닭들을 날아오르게 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닭똥 냄새가 코끝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저건 닭이 아니다.
일대일은 몰라도 3 대 1만 되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극의 괴물들이다.
게다가 지금은 워낙 빠르게 움직여서 전투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이다.
언제까지 저들이 눈치채지 못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천사들이 어디 보자……. 세 자릿수로도 좀 모자라지 않아?
뇌가 고장 날 것 같다.
‘다시는 메인 던전에 발 안 들여야지…….’
결혼식……. 할 수 있을까?
‘신이시여…….’
신을 찾다가 문득 그가 믿는 혼돈의 신도 결국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린다.
리온은 시무룩해졌다.
그러는 새, 파티는 순식간에 중심부까지 도달했다.
애초부터 가까운 곳에 낙하했다.
길도 이미 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골목을 조금도 헤매지 않고, 천사들이 다들 날아올라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는 동안 침투했다.
비행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비행하지 않고 달리니 적들의 시야에 들지 않은 셈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잠입은 불가능하다.
한눈에도 병사들과는 복장 자체가 다른 중무장 치천사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적이다!”
“제압해!”
양측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리온은 일단 검을 들었다.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
이딴 식으로 진행하는 거 맞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