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36화
메인 던전 - Lv.9960 천상의 기사단장(1)
단순히 강해져라.
그렇다면 그 목표는 너무 공허하다.
그러니까 파티 오르골의 멤버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과제가 주어졌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갈고닦는 것 외에도 그저 전력으로서 여기까지는 도달하라는 명확한 목표.
메인 던전의 필드 보스와 일대일을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가 그 중 하나였다.
여기서 승리는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다. 서로 만전의 상태에서 전력을 다하여 어떻게든이 이길 수 있게 되어라.
그것이 전부다.
필드 보스.
말은 쉽다.
하지만 아직 메인 던전에 발을 들이고 순수하게 보스급과 싸운 적이 없다.
[가라앉은 영광] 필드에서는 그저 따돌리고 도망갈 생각뿐이었거나, 다른 조력이 있었다.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마찬가지다.
급격하게 진행되어서 그렇지 사실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인 1조로,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순간적으로 뭉쳐 4인 1조로.
* * *
* * *
그런 식으로 보스급을 상대하는 전투다.
이쪽이 유리할 것은 없다.
도리어 저쪽은 다른 천사 병력들이 끼어들 여지조차 있다.
그리고 마법적 통신 지원도 없다. 눈치로 짬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상황에서 연계해야한다.
일단 환경부턴 나쁘다. 아직 열이 손톱만큼도 식지 않은지라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몸에 대미지가 축적되기 시작한다.
이러면 차라리 빨리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편이 낫다.
열기를 제거하는 마력이 느껴진다. 그 마력에 이쪽을 탐색하는 듯한 기색은 없었다.
어떨까? 우리가 살아있을거라고 생각하고는 있겠지.
곧바로 응전해온다고는 생각 못한 것일까?
아서와 에길은 비행이 상대적으로 서툴다. 제니는 묘하게 재능이 있는 모양이고 희우는 너무나도 능숙하다.
공감각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마력의 흐름을 느끼며 상대의 위치를 특정하고 제일 먼저 앞장서서 돌출했다.
날개의 핀이 진동하고 이명이 울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치솟는다.
시간 낭비를 할 수는 없다. 전력 낭비도 최소화해야한다.
어차피 이 녀석들은 진짜 보스가 아니다.
지금쯤엔 라파엘과 가브리엘에게도 소식이 전해졌겠지.
그 괴물들이 날아들고 있을 것이다.
그때 이런 자잘한 필드 보스가 남아있다면 골치 아파진다.
언제나 그렇듯이 속전 속결.
검을 내뻗는다. 이젠 익숙한 쌍수.
몸을 너무 내던질 수는 없으니 한쪽은 방어로 돌리고 오른손의 단검만을 내뻗는다.
이젠 원래 제 것 같았던 [아카샤의 눈]이다.
별다른 효과는 없어도 압도적인 튼튼함과 재질만으로도 아티팩트 값을 하는 성물.
암석가스와 금속증기를 뚫고 그것이 빨려들어 가는 곳에 즉시 충돌한다.
상대가 즉사하면 좋으련만 순간적으로 생겨난 마력 방벽이 대응해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마력광이 보인다.
[아케인]의 마법사들과 싸울 때도 저런 현상은 없었다.
체렌코프광은 아직까지 미아 이외의 마법사에게서 본 적이 없었다.
과연 필드 보스.
스펙만이라면 언제나 유배자를 압도한다.
방벽은 물리적으로 쌓아올려진 마력이다.
충돌과 함께 서로 튕겨나간다.
희우는 싸우지 않았다.
그대로 솟구쳐올랐다.
스킬 몇 가지를 더 동원했다.
날개가 달아오름이 느껴진다.
성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 가속이 훅 닥쳐온다.
시야를 가리는 것들에게서 벗어났다.
엉망이 된 천상의 도시가 보인다.
아니,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멀쩡했다.
얼마나 튼튼한 걸까?
그러니까 때려 부숴서 없는 길을 만들 생각을 못하지.
그리고 천사들.
천사 또 천사.
온 시야를 뒤덮은 천사들.
‘홀리 쉣…….’
그냥 몸으로 덮쳐지기만 해도 압사 당할지 모른다.
대다수는 멀쩡한 전력이라기 보단 그저 천사겠지만 종족 값이 더해진 수의 폭력은 소수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대다수의 천사는 일단 희우보다 약자다.
적어도 작정하고 속력만 높인다면 따라올 수 없다.
이런 식으로도 수적 우위는 마마할 수 있다.
앞뒤 재지 않고 그대로 가속 다시 가속.
크게 선회하며 마주치는 천사 몇몇을 쳐서 떨군다.
그대로 혼란이 퍼지기를 바라면서.
시야 한구석에 아서와 에길, 그리고 제니가 솟구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희우의 눈앞에 마력이 일렁이다가 꺼졌다.
푸른 기사단장이 무언가 하려다가 실패한 모양이다.
희우는 곧바로 다시 쏘아져 합류하러 돌아갔다.
아서의 특기라면 전투 그 자체다.
그저 인간 기사 시절에도 만능의 전력이 아서의 가장 큰 무기였다.
무엇이건 할 수 있다.
강력한 일격, 시선 교란, 다수를 상대하는 법, 소수의 강자를 상대하는 법.
일격필살과 단단한 방어.
못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원탁의 기준으로는 잘하는 것도 조금 없는 편이긴 했다.
종합적인 강함. 아서는 그것을 언제나 유의했다. 밸런스는 그의 힘이다.
나이든 지금에서는 더더욱 공고해진 그만의 특징인 셈이다.
그런데 일단은 기사다. 그래서 암습마저 익히게 될 줄은 몰랐다.
연계동작이 이어진다.
그 동작에는 본래 아서의 것이 아니던 기예가 숨겨져 있다.
어딘가 그림자 같은 동작.
리더는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큼 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아서의 역할은 만능의 중심축이다.
그럼 만능이 되어야 한다.
마법을 요구 받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게 익힌 서브 리더의 기술.
확실히 암살자의 방식이지만, 블랑쉐와는 다르게 괴물을 처 죽이는 형태의 암살이다.
상대가 연약한 인간임을 상정조차 하지 않은, 강인하고도 강인한 괴물을 단 한 번에 숨통을 끊어놓기 위한 전력의 암살.
우습게도 그것은 대검에 꽤 잘 어울리는 동작이었다.
어둠을 두른 대검이 맹렬하지만 그림자 같은 찌르기를 만든다.
푸른 기사단장은 먼저 나선 에길과 제니를 각각의 마법으로 대응했다.
섬광과도 같은 캐스팅으로 무언가를 쳐낸다.
그러나 적어도 앞의 둘이 시선을 돌리긴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서를 발견하는 것이 아주 약간 늦어졌다.
엑스칼리버가 그의 마법방벽을 찢어발긴다. 한순간이지만 그것은 암습이었다.
퍽하고 대천사가 비둘기처럼 깃털을 날리며 상공으로 치솟는다.
먼저 솟구친 에길이 그걸 그대로 받아 내려찍었다.
그대로 끝나면 좋으련만.
한순간 시간이 멎는다.
아무리 빨리 따라잡아도 시전한 술자보다 빠를 수는 없다.
곧바로 따라잡았음에도 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 빠져나갔다.
공간의 균열이 열린다.
제니가 그 틈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아서는 행운을 빌어주었다.
다른 천사하나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저 상공에 나타난 참이었다.
지금도 증기가 치솟고 있다. 시야는 가려지고 눈은 뜨고 있기만 해도 조금씩 손상되는 느낌이다.
에길의 위치는 대강 알지만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안 다.
하늘에서 붉은 기운을 두른 치천사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떨어진다.
대검을 들어 올리며 아서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주변의 좀 전사 같다는 놈들은 왜 다 저렇게 입으로 소리를 못 내질러 안달일까?
그린스킨의 문화는 세월이건 뭐건 넘어 아무튼 온 미궁에 퍼져나간 게 아닐까 싶다.
에길이야 뭐. 원래 그런 족속이지.
브리튼의 왕은 무시무시한 노르드인 광전사를 떠올리며 오싹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만족했다.
이런 딴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긴장은 없었다.
미치광이들 사이에서 어째 자신만 정상인인가 싶은 기분이 드는데,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이 경우 에길은 앞장서지 않는다.
생김새만 보자면 에길 같은 탱커가 또 없다.
하지만 에길의 덩치와 근육은 모두 상대를 두들겨 패기 위해서지, 무언가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마인드맵은 뻗어나갈수록 특화된다.
에길은 보기보다 공격을 방어하는 것에 취약했다.
그러니 지금은 아서가 위로 올라간다.
에길은 그 뒤에서 도사렸다.
모든 시야를 차단하고 있는 증기들은 그들의 시야만 차단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무엄한 발을 들이느냐! 유배자들이여!”
붉은 화염이 휘감긴 대검이다.
라파엘의 권속이라고 하던가.
천사니까 어둠에 약할 것이며 태양의 라파엘 아래에 있으니 냉기와 상극일 것이다.
원소계 버프는 언제나 유용하다.
강력한 물리는 무상성이지만 약점을 찌르는 속성은 그 이상으로 강한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에길은 그리고 남은 쿨다운을 체크했다.
[아수라파천무]는 아직 세트 되지 않았다.
그럼 그냥 후려 패야지.
유성처럼 불타는 치천사가 떨어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믿고 있다. 아서가 위에서 한번 견뎌줄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대단한 충돌이었다.
공간이 출렁인다는 것은 어느 스펙부터인가 더 이상 표현이 아니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충격파와 함께 공간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아서는 틀림없이 조금은 밀렸을 것이다.
에길은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들었다.
이젠 부서진 [타오르는 날개]는 훌륭한 일격필살의 도끼였다.
충전이 필요하다는 큰 단점은 있으나 그만큼 강력했다.
[푸른 닻]은 그보다는 제법 약했으나 더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펼쳐지고 접혀지는 이 도끼는 커졌을 때는 인간의 육신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듯 거대하다.
사실 원래 트롤 같은 거대 종족용이니 당연하긴 하다.
도끼 날만해도 2미터 20센티에 200kg이 넘는 에길의 몸보다 더 거대하다.
그리고 새로운 도끼.
개판이 나고 개박살이 나서 제대로 챙겨오지도 못한 [왕관의 검]의 재보.
아후라마즈다 곁의 창고에 꽁꽁 꿈쳐져있던 그 도끼 한 자루만을 리더와 제니가 건사해왔다.
결국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딜링.
에길은 이 파티의 메인 딜러.
그러니 먼저 양보 받았다.
그 값을 자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에길의 도끼는 이제 한 자루가 아니다.
[빛의 가속]
심플한 이름은 그 심플한 이름만큼 직관적으로 에길의 오른손에 들린 무기가 어떤 성능을 낼지 알려준다.
우선은 [푸른 닻]이다.
왼손에서 한손도끼마냥 얌전하게 접혀있던 것을 크게 휘두른다.
아서는 정확한 타이밍에 자신이 막아섰던 치천사, 붉은 기사단장을 에길에게 넘겨주었다.
추진도 없고 가속도 없지만, 기계적인 장치의 기믹에 의해 닻이 펼쳐지며 대검을 든 불타는 천사를 휘어잡는다.
거기에 에길의 물리적인 팔임이 더해진다.
우지끈하는 소리에 이어 콱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날개로 막아냈고 막아냈지만 약간은 박혀들었다.
제 몸만한 도끼날을 그냥 받아내고도 저렇다.
아서와 천사의 충돌로 증기가 잠깐 날아가고 시야가 트였다.
그 덕에 한순간 눈이 마주쳤다.
열혈 넘치는 치천사는 에길의 오른손을 보았다.
반듯하고도 잘생긴 매끄러운 직사각형 날이 보인다.
당연히 이것도 그 크기는 자루만 3미터 정도 된다. 결코 인간용이 아닌 이 무기는 굵기도 참으로 굵어서 끄트머리의 작은 인간용 손잡이가 아니라면 쥘 수도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에길이 씨익 웃어보였다.
오른 손의 도끼를 있는 힘껏, 마치 도끼로 이루어진 가위처럼 상대에게 휘두른다.
[빛의 가속]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의 도끼가 정말로 그 이름값을 하며 엔진을 가동했다.
추친체가 불조차 아닌 어떤 입자를 내뿜고 그 뒤편으로 이미 공격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막강한 화력을 내뿜는다.
그 반작용은 도끼를 앞으로 내보낸다.
시간을 두고 가속하면 결국 아광속까지 닿는다는 플레이버 텍스트를 가진 도끼다.
제로백은 서브 리더보다도 더 굉장했다.
붉은 기사단장의 마지막 표정에서 한 가지 문장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즐겁다.
‘아니, 잠깐, 이건 좀. 너무 하지 않아? 너 전사 아냐?’
에길은 속으로 대답했다.
‘전투에 그딴 게 어디 있냐.’
죽어라. 기왕이면 한 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