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42화
메인 던전 - Lv. 12500 달의 눈물 [가브리엘](4)
로스엘이 라파엘을 멀리도 데려갔다.
그건 우리에게는 호재였다.
저 둘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시너지를 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좋지 않다.
가브리엘이 마침내 우리에게 눈을 돌린다.
그녀는 더 이상 육성으로 말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로스엘의 하수인들이여! 저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가!]
나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알고 있나 본데요?]
아서가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다.
[여전히 우리는 얕보이고 있다는 뜻이군. 일단은 로스엘이 주도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럼 그 착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게 낫겠군요.]
얕보인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그게 보스라면 말이지.
미카엘에게 이 전투가 전해지게 될 테니 그와 싸울 때는 써먹을 수 없겠지만 당장 무엇 하나라도 확률을 끌어올려야하는 상황이다.
위치는 제각각 알아서 잡았다.
뭉쳐있지만 않으면 어떻게 해도 좋다.
* * *
* * *
미아는 특별히 제니에게 안겨 아주 높은 고도를 점한다.
가브리엘을 특별히 우리가 자리 잡는 것을 제지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서늘한 달빛이 사방에 드리우기 시작한다.
권능이 집중되며 로스엘의 에덴을 잠식해나갔다.
[세피로트의 천사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던데…….]
완드를 흔든다.
[그럼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지?]
확실히 아직 이쪽을 얕보는 듯한 느낌이다. 일단 그렇게 판단하고 움직인다.
가브리엘의 완드에서 뻗어 나온 빛줄기가 동산을 가로질렀다. 은은해서 예쁘긴 한데, 그래서 잘 안 보인다.
패턴들이 본인 존재감만큼이나 희미하다.
대신 피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조밀하거나 광역으로 날아들지는 않았다.
파티원들 모두가 이런 식의 회피엔 일가견이 있다. 지난 반년 간 무수히 겪어온 일들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때는 쳐내도 되는 것을 회피했다는 점이며, 지금은 방어가 사실상 불가능한 원거리 공격이 많다는 것 정도다.
목숨을 건 실전의 무게감이란 것은 때로는 사람의 집중력을 흐리게 한다.
미궁은 그 점에선 좋다.
어차피 모든 것이 목숨을 건 실전이다.
이건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니다.
쿨다운을 돌려야하는 멤버들이 충분히 퍼지고 희우가 큰 반경을 돌아 회전한다.
달빛의 빛무리들이 희우를 노리고 추적해간다. 하지만 견제 수준이다.
모두들 이런 회피에 익숙하지만 그 중에서도 기합 회피를 가장 많이 해야 하고, 그렇기에 익숙한 것은 희우다.
공격력을 적에게 증명한 상태에서 파고드는 기천사는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겨져야만 택틱이 성립한다.
대부분의 경우 희우는 보스의 시선을 한 몸에 가져간다.
존재 자체로 이미 회피탱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 가브리엘은 나를 보았다.
그녀를 저지했던 것은 나다.
이번엔 내가 그 역할을 할 차례다.
[그쪽이 공격. 내가 수비.]
[암습인 것처럼 보이게 노려볼게요!]
신중하게 공감각 속으로 빠져든다.
오밀조밀하게 덮쳐드는 탄과 빛줄기 사이로 몸을 던졌다.
내 이동속도는 천사들만큼 빠르지 않다.
자체적으로 비행기능이 없는 인간 종족을 유지하고 있다.
이동에 관여하는 액티브 스킬들과 마법을 활용하여 공중 기동을 수행할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 할 수 있는 불규칙하고 부자연스러운 기동이 있다.
회피기동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버그라도 난 것처럼 깜빡깜빡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거다.
가브리엘은 실제로 그렇게 느낀 듯 했다.
미간의 주름이 조금 더 깊어지고 눈이 조금 더 커졌다.
정면으로 충돌한 내가 사이로 쏙 빠져나왔으니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가브리엘의 스태프가 흔들렸다. 붉은 실선이 그어진다.
내 주변으로만, 아주 철저하게 퇴로를 차단하는 형태로 그어졌다.
이건 내가 단독으로 피하기는 힘들다.
못해도 스칠 것이며 그것만으로 전투 불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고공에서 조감하는 미아의 공간 균열이 내 앞에 발생했다. 가브리엘이 다시 완드를 흔들자 그대로 일그러지며 닫힌다.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당했으나 나는 두려워하는 대신 곤란해 하는 연기를 했다. 가브리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런 전투는 익숙한 패턴의 일부다.
희우가 가브리엘의 뒤에 있다.
애초부터 나는 미끼다.
보스의 타겟이 되는 이가 정면으로 딜링을 할 수는 없다.
고로 서로 번갈아가며 시선을 잡아채고 그 사각에서 찌른다.
어그로 분산을 통한 프리딜 타이밍 확보.
공수 전환은 순간적이며 감각적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보스전 택틱에 불과하다.
이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알면서도 의식하고 마는 그런 위협적인 존재일 필요가 있다.
내가 홀로 가브리엘을 저지했던 것은 그것을 위한 빌드업.
높은 고도에서 우리를 조감하고 있는 미아의 가속 관문이 희우 앞에 연속적으로 생겨났다.
한순간에 붉게 달아오른 천사가 가브리엘의 뒤를 노렸다.
[무슨……!]
1페이즈의 가브리엘은 어디까지나 인간형의 보스.
그렇다면 패턴 캔슬도 일어나며,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지도 않다.
의식하던 것 이상의 가속이 걸려 달려드는 기천사에게 대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브리엘이 집중을 흩뜨리는 순간 나는 내 스스로 공간 균열을 열고 위치를 재조정한다.
적이 이곳에 신경 쓰지 못하는 타이밍이었다.
마지막 순간 희우의 단검이 완드와 부딪히는 것을 보았으며, 그 충격파가 주변의 마력을 흐뜨릴 정도인 것도 보았다. 둘은 동시에 튕겨나갔다.
내 위치가 결정 되었다.
가브리엘이 밀려날 곳으로 공간의 균열을 형성하고 그대로 뛰어든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달빛의 광선이 스쳐지나간다.
가브리엘은 위화감을 느꼈다.
‘숙련되어 있군.’
그러나 무엇에 대한 숙련인가?
가브리엘에게는 미지의 무언가였다.
이런 식으로 싸우는 유배자는 그녀의 기억 속에 없다.
방패에 온갖 스킬을 떡칠해서 들고 와 겨우겨우 막아서며 도전하거나, 화력으로 찍어 누르려고 할 뿐이다.
이런 기묘한 리듬감은 느껴본 적이 없다.
포격의 순간 너무 강력한 공격이 들어왔다.
암습인가 싶기에는 지나치게 맹렬하기에 시선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바람에 상대를 놓쳤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인간형의 질량 문제로 충돌과 함께 서로 튕겨나간다.
방어했기에 대단한 타격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양상 자체가 조금 충격적이다.
다시 무언가를 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검이 나타났다.
강렬하게 새겨진 남자.
아래층에서 조금 전에 조우했을 때와 비슷한 짓을 하려고 하는가 생각했다.
쿨다운이 아직 돌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베였다.
기이한 각도로 흐르는 검격이 반사적으로 만들어낸 장벽을 통과하여 들어왔다.
생채기가 나고 피가 흐른다.
가브리엘은 이 전투의 난이도를 재고할 필요를 느꼈다.
[그저 하찮은 녀석들은 아니군.]
그럼에도 아직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유가 있음을 보여주어 위압하기 위함이다.
사실 인간의 껍질을 벗어던지는 수도 있기에 진짜 위협도 아니기도 하다.
사방으로 빛을 뻗어나가려고 했다.
피할 수도, 틈도 없는 촘촘한 빛의 장막으로 모두를 덮어버린다면 그뿐인 일.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는다.
쉴틈이 없다.
생각만으로 모든 공격을 수행할 수는 없다.
그녀가 지닌 완드와 지팡이는 모든 공격을 보조하기 위한 매개다.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썼기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녀의 신체 일부다.
늑대가 이빨로 상대를 물기 위해 입을 벌리듯 당연하게 수행되어야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것이 봉쇄되고 있다.
빛을 쏘아내기 직전에 어디선가 공격이 들어온다.
그 공격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다.
휘말리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명확하게 현 상황을 인지했다.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가있다.
기묘한 감각이다.
적어도 같은 급의 적과 싸울 때나 이런 경험을 한다.
다수의 약한 것들은 뭉쳐봐야 우르르 무너질 뿐.
빛을 쏘아낸다.
본래라면 그곳에 남아 적의 움직임을 제한해야한 달빛들이 에덴에 먹혀 사라진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이미 불리한 처지임 역시 깨달았다.
‘이건 쉽지 않겠군.’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녀석들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차단당한다.
굴욕이다.
가브리엘은 생각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교환하자꾸나.
어차피 정교한 연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 뿐.
한쪽만 무너져도 그 뒤는 없다.
저들은 포션이 없다.
사용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유배자 특유의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의 공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브리엘은 바보가 아니다.
그럼 소모전으로 몰고 가면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다.
희우와 나는 잘 하고 있었다.
미아도 잘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당장 얼마나 타격을 입히냐가 아니다.
[은빛 섬광]이 있으니 녹화만 누적해 쌓아가더라도 이미 타격을 입히는 중이나 다름 없다.
버티기 위한 공격이다.
우리의 호흡이 비면 바깥에서 에길이나 아서가 지원한다.
블랑쉐도 정확한 순간 사격으로 상대의 호흡을 끊어주고 있다.
가브리엘은 그 막대한 권능, 그리고 파괴적인 화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며 녹화와 생채기를 누적해간다.
그렇게 약 1분.
무언가를 생각하기 충분한 시간.
[뭔가 생각을 바꿀 거야. 자주 봤어. 미궁의 보스들은 생각이란 걸 할 줄 알거든.]
[다들 주의하세요!]
낌새라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게임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하지만 현실이 된 미궁에서는 상대의 표정이나 몸짓, 마력의 움직임 등으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가장 위협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역시 나일 터.
가브리엘의 사고는 예측하기 쉽다.
오만조차도 아닌 그저 생물로서의 강함으로 우리를 얕보고 있다.
그렇다면 좀 더 쉬운 길로 가려고 하겠지.
나만 제거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그 낌새가 바로 느껴졌다.
일단은 이미 클리어 해본 테마다.
스쳐 지나가면 슥하고 가브리엘의 시선이 달라짐을 깨닫고.
희우의 차례지만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가브리엘이 얼핏 미소 지으며 나를 본다.
희우의 일격을 감수하고 그대로 나를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나는 그대로 파고들고, 빠지는 나를 지워버렸을 일격이 모여든다.
피하면 공격 찬스.
올려 베며 큰 상처를 낸다.
베이지 않은 것이 아쉽다.
같은 인간형이어도 내구도만큼은 비현실적이니 별 수 없다.
그런데 가브리엘이 아직 웃고 있다.
약간의 오싹함.
순간적으로 쿨다운이 돌아온 모든 버프를 활성화한다.
가브리엘의 완드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완드와 공격을 마주한다.
뿜어져 나온 달빛은 강렬했다.
그대로 튕겨나간다.
뒤에서 희우의 공격이 격돌하여 가브리엘을 내 쪽으로 날린다.
신체능력이 쭉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오른 손을 잃었다.
반대편 무기를 잽싸게 발검했다.
늘 차고 다니는 검이 다섯 자루가 넘는다.
[에길! 아서!]
말하면서도 늦었음을 안다.
공격은 나를 노린 게 아니다.
에길과 아서가 나를 대체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블랑쉐도 레일건을 연발로 긁으며 가브리엘을 저지하려고 했다.
희우의 일격도 뒤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충분히 타격을 입을 것을 각오하고 패턴을 수행하는 보스를 막아서지는 못했다.
한순간 빛이 사방을 덮친다. 가브리엘의 곁에 있던 모두가 크게 밀려났다.
그대로 달빛과 물이 고여 있는 필드가 떠오른다.
하늘에는 만월.
비현실적으로 큰 만월.
[이걸 할 틈도 주지 않을 줄이야. 그래도 이번엔 내가 한 발 멀리 보았군.]
입술을 깨물며 물러났다.
팔을 잃은 상태로 싸울 수는 없다.
[라리사! 정신 차려! 치유!]
공간을 열었다. 가브리엘은 저지하지 않았다. 대신 에길과 희우, 그리고 다른 모두를 향해 대량의 포격을 준비한다.
[라리사!]
제 옆을 스쳐 지나간 달빛의 광선에 넋을 놓았던 용사가 곁에 나타난 나를 보고 정신을 차린다.
“팔 붙이는데 얼마나 걸려?”
“1분은 걸려요!”
포션 이외의 회복 수단으로 신체 결손이 1분이면 엄청나게 빠른 거다.
하지만 느리다.
[리온! 보조 마법사 위치로!]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대로 라리사를 한쪽 팔로 안아든다.
치유하기 쉽도록.
희우보다 가볍군.
그대로 뛴다.
거리를 벌려야 했다.
가브리엘이 이쪽을 보았다.
무언가 하려고 했지만 아서가 때려서 캔슬 시킨다.
에덴 덕분에 쉽게 갈 뻔 했지만 결국 가브리엘의 필드가 펼쳐졌다.
하늘의 만월이 대신해서 투사체를 쏘아댈 수 있다.
일종의 발광 패턴인데 마법사형 보스인 가브리엘은 탄막을 흩뿌리는 식으로 피로를 유발하는 편이다.
멀어질수록 탄의 밀도가 낮아진다.
충분히 멀어졌지만 그래도 이쪽을 향해 온갖 빛줄기들이 쏘아지고 있다.
가까운 곳은 디스코 파티가 따로 없다.
[내가 실수했다! 미안! 버틸 수 있나?]
[녹화 스택 안 쌓이는 것만 빼면 아직 괜찮아요! 아서 거기!]
[에길! 피하시오!]
[블랑쉐 언니!]
[연다.]
오디오가 정신없어지기 시작한다.
하도 반복 숙달해서 불안정하긴 해도 다들 피하며 공수를 교환하고 있다.
리온은 상대적으로 거리를 둔 채 미아만이 포커싱 되지 않도록 시선 분산을 잘 수행 중.
내가 다시 합류하면 주도권을 찾아올 수 있을 수준에서 사태가 안정된다.
하지만 이미 주도권이 한번 넘어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가브리엘은 그걸 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골치 아픈 문제다.
빠르게 학습을 하거든.
우리가 뭘 하려는 지를 말이야.
팔이 재생되는 동안 라리사를 들고 뛰어다녔다.
딜로스가 발생했다.
그럼 페이즈 넘기는 게 조금 달라져야할 지도 모른다.
그때 라리사의 등에 포대기로 업혀 있던 쥐새끼가 눈을 떴다.
[오오오?! 무슨 일이죠?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저는 잘 해냈나요?]
문득 떠오르는 발상.
게임 시절에는 없었던 기능이지만……. 쥐새끼는 성배이며 신좌부품이다.
라리사의 치유 능력은 어디까지나 정화의 신의 신앙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이. 쥐새끼!”
[넵! 쥐새끼입니닷!]
팔이 간질간질하다. 새살이 솔솔 하는 와중이다. 그렇지만 너무 느리다.
“조금 전에 했던 게 100분의 1이었잖아.”
[넵. 그럽죠.]
“그대로 라리사한테 해봐!”
“네?! 선생님?”
안겨있던 라리사가 당황하지만 쥐새끼는 내 말을 아주 잘 들었다.
기계신, 그리고 신좌에서 비롯한 힘이 성기사의 몸에 빨려 들어간다.
소녀는 몸을 한번 떨고.
내 팔이 한순간에 회복되었음을 깨달았다.
“어어?”
좋았어. 이게 되네. 라리사 방금 완전 정화의 신 본인이었어!
“이거 몇 번 더 할 수 있냐?”
라리사도 일단은 백전연마의 용사다.
“저는 몇 번이고 할 수 있어요!”
[힘이 별로 안 남아서……. 그리 많이는 못할 것 같은데요.]
빠르게 생각을 한다.
그럼 전멸기 한번을 이걸로 무마하는 게 좋겠군.
페이즈 스킵이 실패할 경우의 대책이 생긴다.
여벌 목숨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이다.
간단한 이치였다.
아직 부활 스택을 공격으로 활용할 시기는 아니니까 딱 좋다.
라리사를 내려놓고 그대로 공간 균열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벤다.
나는 완전히 상대의 의식 밖에 있었다.
공간이동은 차단당하지 않았다. 불의 일격은 암습판정마저 발생했다. 가브리엘이 황당해하며 베였다.
[어떻게?]
저항 없는 손맛으로 시원하게 날갯죽지가 뜯겨나간다.
어깨 한쪽도 크게 베이고 날개도 세 장이 동시에 뜯어졌다.
이건 암습 판정이다.
그럼 가브리엘이 정말로 나를 완전히 리타이어로 생각했다는 것.
포션을 가진 유배자를 상대로는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우리의 움직임을 통해 정확하게 알고 배제한 것에 더 가깝다.
‘안 좋은데…….’
통찰을 발휘하고 있다. 제대로 생각하며 싸우고 있다. 전력을 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지만, 토끼 입장에서는 대체 왜 그러는 거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이 녀석 우리를 별로 안 얕보는데?
아까 너무 보여줬나?
오히려 불길해졌다.
느낌상 아직 체력은 1페이즈에서도 반 정도밖에 줄이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직후, 달이 무너져 내렸다.
만월이 분해되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물기 어린 밤하늘이 녹아내리며 뒤틀렸다.
[……페이즈 넘어간다! 다들 주의해!]
[뭐야? 왜 넘어가요?]
[전력을 다하려는 모양인가?]
[스킬쿨 다들 돌았어요?]
[안 돌았네만.]
숨을 들이키며 파티원들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2 페이즈를 오히려 섬광 아끼고 넘어갔다고 생각해. 어차피 1페는 평타로 넘길 거였어.]
질량이 부풀어 오르며 사방으로 공기를 밀어낸다.
인간의 모습을 포기한 고위 천사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근접해있던 모두가 멀리 멀리 밀려나간다.
폭발 같은 힘의 격류가 온 사방에 소용돌이쳤다.
메시지가 떠오른다.
[마지막 편린]
뭐?
[여명의 달빛, 가브리엘גַּבְרִיאֵל]
왜?
[3페이즈다!]
그 한마디면 되었다.
다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무조건적으로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한다.
빛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가브리엘 선생님. 제발 전력을 다하지 말아주세요.
대체 왜 이러세요.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오빠가 너무 세게 때렸나 봐요!]
[진짜 그건가?!]
라리사! 라리사 어디 있어!
고개를 휘젓는데 리온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라리사를 안아들고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