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45화
메인 던전 - Lv. 17500 [여명의 달빛, 가브리엘גַּבְרִיאֵל](3)
유배자에게 패턴이라고 불리며 읽히곤 하는 공격의 방식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법에 대해 고민을 해야 했다.
날 때부터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들에게 싸움의 잡기술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저 가진 힘의 크기가 전투의 향방을 결정한다.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위 천사들은 대개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저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휘두를 줄만 알면 된다.
복잡할 것도 없는 직관적인 형태.
그리고 그것은 왠지 저절로 알게 되는 걸음마와도 같은 것이다.
지닌 힘을 제일 효과적으로 분출하는 방법.
그게 유배자들이 말하는 패턴의 정체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그뿐만이면 안 될 것이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바벨의 주변을 떠돌지 않고 지상에 내려와 무수한 싸움을 겪었다.
단지 힘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 * *
* * *
* * *
위대함의 일부였던 편린으로서의 그녀가 느끼는 게 아니다.
은발의 소녀로서 천상의 도시와 전장을 주무르던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는 질지도 모른다.’
강렬한 위기감.
이런 곳에서 패배란 결국 죽음을 의미한다.
존재의 소멸.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들이 왜 다른 이들을 필멸자라 부르겠는가.
그런 일을 겪어본 적도 겪어볼 일도 없을 것이니 언젠가 사라질 이들을 구분 짓는 단어다.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저 본능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가.
혹은 직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그렇게 경고한다.
가브리엘은 그 위기감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오만도 방심도 없다.
거대하고도 거대한 위대함의 편린은 살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저 유배자 파티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가.
힘의 사용법은 너무 정직했다.
분명 한 번만 휩쓸린다면 깨끗하게 쓸려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유는 없다.
잠깐 동안 당한 많은 일들이 그렇게 가브리엘의 생각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다.
허상과도 같은 놈들이다. 한 대만 맞으면 되는데, 그 한 대를 맞을 듯 안 맞을 듯하면서 피해낸다.
한두 번은 우연이다.
서너 번은 필연이다.
평범하고 정직하게, 단지 효율적으로 힘을 방출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다.
변해야 한다.
어떻게?
위대함의 편린, 고위 천사, 여명의 달빛.
그리고 가브리엘גַּבְרִיאֵל이라 불리는 천사는 처음으로 힘을 휘두르는 것 이상의 고민을 시작했다.
당연히 지난 수만 년간 하지 않았던 것을 갑자기 한다고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해진 대로.
가장 힘을 효율적으로 소모하는 방식을 벗어난다.
저 파티는 어쩐지 그 순서와 수단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다 버린다.
모든 것을 내다 버리고 힘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이 모기를 잡지 못해 마구잡이로 팔을 휘두르는 것과도 비슷했다.
모기 입장에서는 사실 인간이 휘두르는 팔은 몹시도 위협적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잡지 못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한번 스트라이크로 두들겨 맞으면 그 자리에서 삶이 끝날 테니까.
미아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결코 한 번도 잡히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통신으로 아빠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온다.
[다행스러운 건진 모르겠지만!]
도무지 피할 공간이 나오지 않는 수준의 밀도로 투사체들이 들이닥친다.
드넓은 영역을 한 번에 커버하는 광선도 좌우를 좁혀오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패턴은 없네!]
[지금 엄청 새로운 거 아니에요?!]
[그냥 한꺼번에 쓰는 거야!]
모두 한 번에 하나씩만 발동해야 하는 패턴들이다.
아빠도 엄마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미아는 눈을 감았다.
육안은 중요하지 않다.
사방에 미쳐 날뛰는 에너지를 보는 눈들 중에서도 권능으로 이루어진 물의 원소, 그리고 빛의 원소를 구분한다.
위험한 것을 그렇게 분류하고 자신의 마력 역시 흘리며 본다.
노심 하나를 통째로 연속적이며 지속적인 공간이동에 배정한다.
그것에서 생성되는 모든 마력을 퍼부어 공간의 균열을 만드는 술식 구성에 보탠다.
구성만을 짜고 대부분은 실피드에게 넘긴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연산량을 정령왕 혼자서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따라서 대량으로 소환된 물의 정령들에게도 분배된다.
이걸 병렬 컴퓨팅이라고 배웠던 것 같다.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연방의 공학자들에게 수학한 적도 짧지만 있다.
단순히 술식의 디테일을 메꾸는 것이 정령들의 일이라면, 그 중심에 있는 미아는 모든 것이 향할 방향을 결정한다.
사고를 나눈다.
현재 각 물의 정령들은 모두 파티원들에게 흩어져 붙어 있다.
계약자로서 그 시야를 공유할 수 있다.
동시에 수십 개의 카메라로 세상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자그마한 뇌의 한쪽에서는 들어오는 시각적 정보.
파티원들의 위치와 보스의 패턴이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가를 본다.
그리고 짬을 내서 묻는다.
[아빠. 현재까지 새로운 패턴이 관측되지 않았다고 했죠?]
[맞아. 전조는 전부 그대로야.]
그렇다면 쉽다.
가장 시야가 멀리까지 닿을 실피드의 눈을 통해 멀리 있는 가브리엘이 어떤 전조를 보여주는지 관찰한다.
정령의 왕으로서 상당히 미아, 그리고 아빠와 유사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실피드가 실행되는 패턴의 종류를 정리해서 전달했다.
정보가 모여 간다.
미아는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중첩된 패턴은 선이나 점이 아니다.
가브리엘은 그것을 면에 가깝게 만들어 밀어붙였다.
패턴을 그따위로 구사하는 보스도 놀랍지만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짧은 전초전으로 눈치챈 아빠도 놀랍다.
뇌가 다섯 개쯤 있는 걸까?
잠깐 동안 뇌 기능을 잡생각에 할애한 미아는 얼른 그 부분마저 다른 곳에 할당했다.
[다들 그 자리에 가만히 계셔주세요.]
온갖 흉험한 파괴들이 닥쳐오고 있는데 제자리에 가만히 멈추라는 건 죽으라는 소리 같을 수 있겠지만, 아서도 아빠도 그 자리에서 멈춘다.
미아를 안고 있는 제니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눈을 뜨고 제니에게 육성으로 묻는다.
“저 믿죠?”
“그. 그럼요.”
멀리 가브리엘의 거체를 보며 넋이 나가 있지만 그래도 조건 반사처럼 대답한다.
미아는 희미하게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있다.
그걸 가공하기만 하면 된다.
연속적인 공간이동이 사정없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노심이 비명을 지른다.
[검은 날개]는 이름처럼 날개를 달아주는 스킬이다.
그 날개는 비행 기능도 가지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날개를 함부로 꺼내두면 스킬을 상대에게 특정당한다.
이 스킬의 진가는 거의 제한 없는 공간이동에 있다. 장거리는 불가능하지만 쿨다운도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 마법과 다르게 복잡한 술식을 이해하고 구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좌표를 인지하고 원하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숙련된 마법사여도 [검은 날개]보다 빠를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날개로 감싸고 그 내부를 이동시키는 판정이기에 두 명 정도는 동시에 이동할 수 있다.
바르고 그래서 희우는 블랑쉐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주 꼭 껴안고 있다.
[뭔가 부끄러운데요. 이거.]
[후후. 귀여운 천사야. 얌전히 있으렴.]
[소름 끼쳐!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
희우가 뭐라 말하건 블랑쉐는 자신의 대사의 파급력에 만족했다. 품속에서 희우가 경련하고 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물리적으로 통과할 방도가 없는 면의 공격은 일종의 미로나 다름없다.
블랑쉐는 파티의 유일한 순수 민첩직으로서 가장 보정을 많이 받는 공간 지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마법사를 겸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스탯을 투자한 것이 아니니까, 순수한 민첩직이라고 할 만하다.
사수는 본래 잽싸고 예민하기 위한 것에 많은 투자를 하는 법이다.
닿으면 틀림없이 사망하는 미로가 닥쳐온다.
연속적인 공간이동이 그 사이를 헤집었다.
특별한 소모 값이 없는지라 그렇게 죽음 사이를 헤쳐 나가는 사이 다른 곳까지 눈에 들어온다.
[이 파티의 마법사는 과연 아무나 할 수 없겠군.]
서브 마법사로서 더 강하게 느끼는 점이다.
미아는 자신과 제니를 포함하여 총 4명의 인원을 자유자재로 재배치하고 있다.
정령들이 붉게 달아올라 과부하의 조짐을 보인다.
마력도 어마어마하게 소모할 것이다.
통과한 공간의 균열이 미처 닫히기도 전에 다음 균열이 열리고 그다음 균열도 열린다.
단 한 순간이라도 고삐를 늦추면 어찌 될지 모른다.
가브리엘의 공격은 그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이어진다.
아직 보스 필드에 여파가 그대로 남아 있음에도 다음 패턴이 이어지고 다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전멸기에 해당하는 달빛도 빛을 발한다.
오싹하리만치 서늘한 푸른 달빛이 사방에 뻗어 나오기 시작하자 주변에 맴돌고 있던 물의 정령들이 나서서 또다시 렌즈를 구현했다.
이런 식으로 파훼하게 되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쉴 틈 없이 이동하는 와중에도 접착제라도 바른 것마냥 일정 거리 위에서 유지되는 렌즈는 기이할 정도다.
정령들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면 많은 리소스를 할당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적어도 블랑쉐는 마법사의 저런 사고의 속도나 사고력을 따라갈 자신이 없었다.
적재적소다. 전문 마법사는 아닌 자신은 이런 스킬에 의지하면 되는 문제다.
그렇게 조금씩 가브리엘을 향해 전진한다.
가브리엘은 계속 무언가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배자들은 허상처럼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실 지금 가브리엘을 공격할 방도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패턴화된 힘을 이제 와서 분석하여 새로운 형태의 패턴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가브리엘의 심리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조급해 보인다.
어딘가 어설프다. 면을 구성하는 것은 좋지만 애초에 가브리엘에게는 면 공격이 있다.
지금도 닥쳐오고 있는 일종의 맵 기믹으로서의 해일이다.
나라면 저걸 동시에 일으켜둔 다음에 생각했다. 소모가 크겠지만 그러니까 시작부터 깔아야 한다.
필멸자와 달리 날 때부터 고위의 존재인 자들은 타고난 힘에 사고가 이끌려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뭔가 깨닫는다고 단숨에 사고를 바꾸어 벗어날 수는 없다.
가브리엘은 방금 처음으로 제 힘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간신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고 있는 단계다.
그렇다면 힌트를 주자.
미아의 조작과는 별개로 가브리엘의 바로 앞, 감지되기 쉬운 곳에 내가 직접 공간의 균열을 만들어 넣었다.
어차피 나는 가만히 서서 힘을 비축하며 미아가 보내는 대로 보내질 뿐이니 어려울 것도 없다.
팟 하고 균열이 제 눈앞에 나타나자 가브리엘이 무언가 깨닫는다.
아마 그럴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미아의 공간 균열이 열리는 동시에 그곳에는 푸르스름한 에너지 체의 몸이 나타났다.
미아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장거리 공간이동을 할 여력도 없다.
이미 그럴 것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준비하고 있었다.
가브리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눈에서 빔이 나온다. 쏘아지는 광선을 회피했다. 균열 자체는 가브리엘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닫히지는 않았다.
사이로 검을 내지른다. 뻗어 나간 검기가 가브리엘의 몸에 생채기를 내었다.
대미지로 본다면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꽤 심리가 불안정해졌을 가브리엘에게 느껴진 바는 다를 것이다.
균열의 개수가 늘어난다.
미아가 상황을 눈치챘다.
가브리엘은 옳다구나 하며 그것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곳곳에 가브리엘의 바로 옆까지 이어진 균열들이 생겨난다.
아서와 나는 아예 그 사이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희우와 블랑쉐도 마찬가지다.
[은빛 섬광]의 녹화 스택을 최대한 쌓고 다시 쌓는다. 가브리엘의 몸에 작은 생채기들이 누적되어갔다.
곳곳에 열린 균열들을 드나들 수도 있을 정도로 확보가 많이 되었다.
그래도 거체에 충분한 공격을 가할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가브리엘이 곧바로 제 몸 주변에 광역기를 펼쳤다.
그때는 다시 빠져나가면 그만이다.
가브리엘을 지속적으로 아주 성가시게 해야 한다.
거대보스 상대로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은 그다지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없다.
가브리엘의 에너지체 몸속에 있는 반짝이는 점들이 의미 있는 딜을 누적할 수 있는 타격 지점이다.
거기까지 칼이 닿는가?
그렇지는 않다.
단방에 그걸 감싼 에너지체를 모두 흩뜨리고 타격하거나 그곳까지 닿을 관통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가브리엘을 공격하는 것은 섬광 스택을 뺀다면 크게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이런 기묘한 페이즈로 넘어가지만 않았다면 얼리고 치면 타격이 들어갔겠지만 미아에게 그런 여유는 없으니까.
[지금으로선 전혀 딜이 박히지 않는다. 딜 누적을 굳이 한다면 얼려야 하는데 해보나?]
블랑쉐가 물어온다. [검은 날개] 덕에 여유가 철철 넘쳐 보인다. 공감각의 유지 시간도 긴축에 속하니 문제없을 것이다.
[정말로 짜게 짜게 해.]
[최대한 살아남는 방향으로……. 확인했다.]
그렇게 갉아먹으며 힘을 소모시켜야 한다.
몸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체들이 약간이지만 이전보다 힘을 잃어가는 것이 보인다.
고위의 존재들이 공격하는 방식이 패턴화되는 이유는 그게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아서다.
권능은 세월로 축적되는 것이지 단기간에 보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급의 악마들과 싸우기 위해 기나긴 시간 축적해 온 힘일 것이다.
그게 점점 소모되면 방어력도 약해진다. 힘이 곧 존재인 이들이다. 평범한 생물은 아니지.
지금 당장은 이런 자잘한 딜이 소용없어 보일 수 있다.
그래도 이걸 앞으로 10분 이상 더 반복하면.
그렇게 하면 충분히 약화된다.
벗겨내고 극딜로 녹여 버릴 생각을 해볼 만큼은 된다.
내가 아는 가브리엘의 HP 총량이라면 그 정도 계산이 선다.
[미아야 천천히 준비해. 아직 10분은 더 이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듣고는 있을 것이다.
[희우는 쿨 많이 돌려. 에길로 벗기고 우리가 마무리하는 게 맞을 거야. 장기전이니까.]
라고 말하는 순간 [슈퍼 히어로 랜딩]이 블랑쉐가 얼린 부위에 작렬했다.
푸르스름한 에너지체의 일부가 파손되어 깨져 나간다.
가브리엘이 고통스러운 듯 몸서리쳤다.
[야! 너무 세게 치지 마! 또 이상한 짓 할라!]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던 해일이 들이닥쳤다.
미아는 제대로 대응해 냈다.
물의 정령들까지 일정한 위치에 순간적으로 모인다.
그리고 그대로 직선으로 길게 해일을 얼려버렸다.
두터운 파도 사이로 얼음의 통로가 생긴다.
닿으면 죽을 만큼의 위험한 신성을 품고 있으나 결국 물의 원소.
얼려두면 녹아내린다.
라파엘이 있다면 이렇게 얼리는 공략이 불가능하다.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는 이유다.
두께만으로도 1㎞는 될 것 같은 해일이지만 그대로 달려서 얼음 터널을 통과한다.
가브리엘이 가만히 두진 않았다.
파도 속의 얼음 터널은 점점 크기를 키워가며 우리가 통과하는 순간까지는 버텨내었다.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이어지는 면의 탄막.
그리고 그걸 피하기 위한 공간이동.
[미아야. 괜찮니?]
제니가 대신 대답했다.
[엄지를 들어 보이는 거 보니 괜찮은 것 같아요.]
말할 정신은 없구나.
교대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 잘해주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3분, 5분, 7분, 쿨다운이 돌아오는 것으로 간신히 계산될 만한 시간 감각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블랑쉐가 잠깐 공감각을 놓쳐 스치는 사고도 있었다.
그래도 제대로 갉아먹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뾰족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점점 얼고 부서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가브리엘도 조금씩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가브리엘이 마침내 새로운 힘의 사용법 하나를 깨달았다.
온 사방에 두터운 물의 벽이 생겨났다.
몇 중으로 겹친 해일이다.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으며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한 규모다.
가장 확실한 전멸기.
그걸 위해 권능을 얼마나 짜냈는지 해일이 일어서는 순간 가브리엘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약해졌다.
크기마저 순간적으로 줄어든다.
갉아먹은 것 이상의 대미지를 스스로에게 가하는 모습을 보고 희우가 투덜거린다.
[우리 공격 의미 없는 거 아니에요?]
[의미 있어. 이대로는 죽는다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거야. 그래서 저렇게 무리를 하는 거고.]
[시작부터 저거 했으면 밑천이 더 털렸겠네요.]
[반대로 생각해야지. 우리가 몰아넣고 있는 거다.]
[긍정적인 사고 좋아요!]
그 와중 미아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저 해일은 그냥 얼려서는 못 막을 것 같은데요.]
[딜각 만들려면 성물 써야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겠지?]
[네!]
보스가 자해 패턴을 구사해서 버텨야 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끝이 다가온다.
[에길?]
[준비가 끝나간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가브리엘의 초조함이 생명체와는 거리가 먼 형태의 눈에서조차 느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