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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55화 (526/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55화

메인 던전 - Lv. 17500 [환염의 삭풍, 라파엘רפאל](5)

라파엘로서도 현재 전장의 상황은 굉장히 의외인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와 가브리엘은 천사와 악마의 분쟁에 대단한 관심이 없었다.

더 정확하게는 이제는 흥미를 잃었다에 더 가깝다.

솔직히 말해서 바벨의 주변을 떠돌던 그저 살아갈 뿐이던 삶보다 뭐가 더 나은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지금같이 타오르는 격정에 휩싸였는지도 모른다.

라파엘에게 가브리엘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비켜라! 저리 비켜!]

하지만 악마들이 그를 놓아줄 리가 없었다.

라파엘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다.

[성급하군 천사들.]

[이런 식으로 싸우길 바라고 있었나.]

[아하하하하하! 오랜만이다! 라파엘!]

특히 마지막 바알의 웃음소리에는 분노를 넘어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꺼져라! 너희들한테 볼일은 없다!]

오래 전부터 전장에서 얼굴을 마주칠 일이 있던 녀석들이다. 그 께름칙함을 드러낼 길이 달리 없다.

* * *

* * *

라파엘은 빠져나가려고 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달려드는 녀석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여기까지 휘말려 왔다.

비로소 유인당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악마군단장들은 왜 여기에 와 있지?

힘을 방출한다.

아끼기는커녕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내뿜어지는 열기의 사막과 폭풍이 같은 천사들마저 밀어내었다.

라파엘의 등장에 환호하던 병력들이 쓸려 나간다.

[그렇게 해서 이길 것이었으면 진작 끝났겠다. 라파엘! 하하하하!]

바알이 제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반신은 거미이나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다. 그리고 셀 수도 없이 많이 달린 팔은 모두 검을 들고 있다.

그 체구에 걸맞은 거대하고도 많은 권능의 검들.

시커먼 어둠이 동시에 번져 나간다.

라파엘의 사막과 부딪혀 서로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라파엘은 최선을 다해서 이 현장을 빠져나가고자 했다.

다른 대천사가 보이지 않자 아스모데우스와 아드라멜렉도 라파엘을 막아섰다.

클리포트의 껍데기를 아직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기계신의 힘으로 보조만 하기 위해서겠지.

라파엘은 그래도 안간힘을 다했다. 여길 빠져나가 가브리엘을 되찾아야 한다. 그가 살아서 계속 가브리엘을 추억하려면…….

무수한 검격이 그의 몸체 위로 떨어진다. 수레바퀴에 달린 날개가 베여 나갔다.

라파엘은 그 순간 참지 못했다.

[여기서 네놈들까지 다 묻어주마!]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그리고 정말로 전력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다.

생명마저 불태우며 그렇게 불사른다.

날개가 뻗어 나오며 검의 형상을 이룬다. 불길의 검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바알이 가진 수십의 검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다른 악마들은 라파엘의 도주를 막으며 다른 천사들이 나타나지 않음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 장면을 멀리서 보면 어떤 별의 폭발과도 같다.

지형이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다.

충격파라고 부를 만한 권능의 압력이 세상을 뒤덮으며 뻗어나가는 중이다.

자잘한 천사 병사들은 그사이에 어떻게든 끼어들어 라파엘을 돕고자 했다. 그들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일 것이다.

여전히 빛나고 있는 라리사에게 제니와 미아를 던져둔 희우가 숨을 헐떡이며 물어본다.

“제대로 된 거 맞나요?”

너무 급조된 계획이라 따라가기 힘든 모양이다.

나는 재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저렇게 싸움이 붙은 상황에서 라파엘은 결국 패퇴할 거야. 우린 악마들이 얼마나 힘을 아끼려는지부터 볼 필요가 있어. 미카엘이 언제 이곳에 당도하는지도 중요해.”

상황에 따라서 협상의 여지가 너무 다양하게 갈린다.

“라파엘이 생각보다 잘 싸우고 악마들이 힘을 아끼면 라파엘을 돕는 거였죠?”

“세력전의 기본이지 한쪽이 너무 일방적으로 밀려버리면 우리가 낄 여지가 없거든.”

세력전은 근본적으로 박쥐처럼 행동하는 것을 유도한다.

그것이 최대한의 이득을 짜내는 방법이니까. 하지만 언제나 먹히지는 않는다.

아예 그런 행동이 불가능한 상대도 있다.

예를 들어 바알에게 붙는 것은 협상의 여지가 없는 부하로 들어가는 짓이다.

악마 측에서 뭔가 하려고 한다면 바알을 통해서 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저 자식은 마법의 종족인 악마 주제에 뇌까지 근육으로 만들어진 미치광이다.

거기에 아주 잔혹하고 제멋대로라 동급이라고 확실히 인정받은 이들이 아니라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제 권속인 악마들은 비품으로라도 여기며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모범적인 악마네요.”

“듣고 보니 그렇네.”

그래서 사실 실권을 쥐고 있지는 않다. 가장 강한 악마이기에 원한다면 쥘 수 있겠지만, 굳이 쥐지 않는 것에 가깝다.

멍청하지는 않아서 다른 악마군단장들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바알은 기만과 협잡이 먹히는 상대가 아니다. 수작을 부리는 순간 그대로 뭉개 버린다.

차라리 나헤마가 낫지.

희우가 정신없이 정리하며 늘어놓았다.

“라파엘이 충분히 약해진다면 상대 악마를 공격하고, 정 답도 없이 밀리면 라파엘 막타를 치고, 미카엘이 일찍 오면 그 녀석한테 어필하기 위해서 악마를 친다?”

“정확해. 상황이 모든 걸 결정할 거야. 이 상황을 우리가 통제하는 건 너무 소모가 클 거거든.”

어떻게 하더라도 편린 하나는 여기서 조질 수 있다.

개판 오 분 전의 상황에서 막타만 빼먹고 튀는 건 사실 우리 파티가 가장 자주하고 많이 연습한 것들 중 하나다.

실제로 그럴 상황은 너무나도 많다.

수 앞에도 장사가 없으며 유배자의 스펙만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도 없다.

“합심해서 우리를 먼저 족칠 가능성은요?”

“불가능해. 저쪽 원한은 수 만년 묵은 거라고. 우린 그래봐야 벌레 같은 유배자일 뿐이지.”

하지만 미카엘이 일찍 당도한다면 그에게 우리의 전력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

“미카엘이 순순히 우릴 받아줄까요?”

“그럴 수밖에 없을걸. 메타트론은 눈엣가시일거거든.”

“와, 우리 진짜 비겁해.”

“어차피 보스잖아. 보스들이 우리 보고 비겁하다고 욕하면 그만한 극찬이 또 어디 있어.”

솔직히 비겁하기는 시작부터 3페이즈로 시작하는 데다가 패턴도 꼬아대며 괴롭히는 저 놈들이 비겁한 거 아니냐?

생각하니까 짜증이 날 것 같다.

희우가 중얼거린다.

“라파엘은 좀 불쌍하네요.”

“제니가 저렇게 바싹 구워졌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

“아, 왜요. 항상 여유를 가지라면서.”

“너무 여유롭잖아.”

뭐 그렇다 해도 불쌍하다는 것 자체는 공감할 수 있다.

가브리엘은 우리 손에 죽었고 미쳐서 우리를 쫓다가 자신도 죽게 생겼다.

“말만 그런 거지?”

“그럼요. 그냥 경험치랑 좋은 아이템 주는 녀석일 뿐인데.”

곧 로스엘도 돌아왔다.

상당히 너덜너덜해져 있다.

“안녕! 친구들! 죽을 것 같아.”

“저기 빛이나 쬐면서 서 있어요.”

“아니! 우리 고양이는 왜 이렇게 바삭바삭해졌어?!”

제니가 불평했다.

“아직 촉촉하거든요!”

불평하는 방향이 좀 이상하긴 하군.

미아는 저혈당 쇼크까지 갔던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탓인지 주저앉아서 물을 마시며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

아서가 에길과 대화하다가 다가온다.

“헌데 그러면 조엘과 릴리움 쪽은 어떻게 되는가? 미카엘에게 붙는다면 그쪽은 이용할 수 없을 텐데.”

“그러니까 미카엘을 더 몰아넣어야죠.”

“몰아넣는다?”

정말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성배도 이미 우리 수중에 두 개나 있고, 스스로 메타트론의 위치를 파악하긴 힘들 거다.

거기에 전력은 너무 감소했다.

“미카엘은 야망이 많은 미친놈이에요. 머리도 잘 돌아가죠. 그러니까 메타트론을 실각시켰지.”

정복욕.

그건 미카엘을 나타내는 키워드나 다름없다.

이 세계의 패권을 놓치고 싶지는 않을 거다. 유리 역시 그것을 위해 우리엘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서와 에길은 쉽게 그 사실에 공감했다. 그들은 비슷한 경우를 많이 봤으리라.

“과연, 정말로 인간적이군.”

“인간적이죠. 많은 인간 군주들이 그랬듯이 미카엘도 그럴 겁니다. 저 친구는 원래도 되게 그런 NPC였어요.”

인간 출신인 나헤마만큼이나 인간을 잘 알고 있으며 스스로도 인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동화된 천사다.

천상의 군주라는 스스로의 직함에 더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을 터.

“라파엘이 밀리는군요.”

번쩍이는 빛과 수없는 검광이 번뜩인다. 라파엘의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다.

바알은 미친 듯이 광소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큰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여기까지 들려오고 있다.

“다들 슬슬 준비합시다.”

블랑쉐는 파티와 합류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개판이 난 저쪽 상황에 다들 정신이 쏠려 있다. 위성으로 주변을 더 잘 정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옳다.

지도는 이제 너무 화려해서 뭔가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있다.

파괴되고 부서진다. 지형이 떡 주무르듯이 제멋대로 변하며 녹아내리고 타오르고 있다.

라파엘의 사막은 달아올라 용암이 되어 바알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바알의 어둠은 늪처럼 그 용암을 집어삼키고 있고.

다른 악마들도 우선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것에 동의한 듯했다.

그리고 위성이 보고 있는 반대편에서 다른 것이 나타났다.

“눈부시군.”

빛은 미카엘을 상징하는 속성이다.

하나님의 오른쪽 자리에 서 있다는 위대한 천사 미카엘다운 속성.

[오르골. 미카엘이 왔다. 병력을 다 끌고 왔군.]

[빠른데? 그럼 지금 라파엘을 구하는 게 맞겠는데.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

[모르겠다.]

그거까지는 알 수 없다. 전속력을 내는 것 같지도 않다. 뭔가 찾는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블랑쉐는 오싹함을 느꼈다.

[잠깐만, 미카엘은 우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블랑쉐! 튀어!]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블랑쉐는 즉시 [검은 날개]를 폈다.

[그럴 가능성도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어. 지금까지 되는 게 없었으니까. 라파엘을 그냥 버릴 셈인가?]

다음 순간 천사 몇몇이 위성을 향해 날았다.

그리고 미카엘이, 미카엘로 추정되는 빛의 원소 덩어리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속적인 노딜레이의 공간이동으로 도주한다.

은신은 소용없을 것이다.

파티원들은 어떡하지? 그쪽으로 합류하는 것은 좋은 선택일 수기 없다. 블랑쉐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그쪽으론 가지 않겠다. 지금 미카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

희우가 소리지른다.

[그럼 언니는요?]

[죽기야 하겠나.]

스스로 말하면서도 그게 더 불길한 소리라고 생각은 했다.

위성이 추락했다.

다시 추락한다.

사방에 권능이 날뛰기에 통신도 끊어졌다.

디스트로이어가 불길하게 울었다.

블랑쉐는 고민에 빠졌다.

이블의 단순 이동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사수로서 몰빵 했다면 기천사만큼이나 빠른 속도를 낼 수도 있겠지만 블랑쉐의 리소스는 암살자에 더 많이 투자되어 있다.

“대화를 해봐야겠군.”

입을 잘 털어야 한다. 오르골의 계획은 들었다.

블랑쉐가 협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도, 동시에 파티의 계획을 위해서도 말이다.

“그래도 그냥 잡힐 수는 없지.”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끌었다.

이제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게 되었지만 순간적인 기동력이라면 [검은 날개]가 결코 지지 않는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불리할 뿐이다.

조금 전의 술래잡기와는 다른 것이 펼쳐진다.

빛무리가 사방을 뒤덮는다. 반짝이는 수정들은 미카엘의 영역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깃털을 흩날리며 도주하던 블랑쉐의 앞에 마침내 천상의 군주가 당도했다.

[거기 계집 멈춰서라. 당장 죽고 싶지 않으면.]

블랑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미 생각한 후였다.

일단 두 손을 든다.

[인간의 항복 표시로군. 좋아.]

바로 처 죽이지 않은 걸 보니 죽이려고 쫓아온 건 아닌 게 확실해 보인다.

블랑쉐는 입을 열었다.

“가브리엘은 죽었다. 라파엘도 죽어가고 있지. 혼자 다 감당할 수 있나?”

미카엘은 보기보다 더 말이 통하는 녀석이라고 오르골이 말했었다.

“호오.”

미카엘이 미소 지었다. 금발의 푸른 눈, 오만한 미소를 지은 천사가 흥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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