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57화
메인 던전 - Lv.17500 하나님의 오른쪽 자리 [미카엘](2)
“대체 뭐라 말했던 거야?”
모두가 블랑쉐에게 가진 의문이었다.
심지어 로스엘조차도 도대체 어떻게 했는가를 의문시 중이다.
블랑쉐는 자신만만할 수가 없었다.
“특별히 내 뜻대로 된 거라곤 말할 수 없겠다.”
“미션 컴플리트라고 안 하는 거 보니까 진지하군.”
“확실히 진지하네요.”
블랑쉐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뭐야, 왜 다들 그걸 알고 있지?”
“항상 중얼거리잖아요. 안 들릴거라 생각하기엔 너무 가까운 곳에서.”
“읏.”
역으로 희우가 수치스러워하는 블랑쉐를 토닥여주게 된 것과는 별개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블랑쉐가 빠르게 되새긴 대화내용은 흠잡을 데는 없으나 미카엘이 저렇게 반응할 만큼 빼어난 구석이 있지도 않았다.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것도 교섭의 여지를 남긴 후의 무력시위다.
그렇게 되면 머리회전이 빠른 미카엘은 이곳에서 우리를 상대하다 악마의 습격을 받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하겠지.
* * *
* * *
* * *
허나 천상의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가고 있다?
많은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블랑쉐가 원인이 아니라면…….”
하나뿐이지.
“우리 생각보다 우리에게 더 큰 가치를 두고 있군요.”
이 부분은 일부러 들리도록 말했다.
앞서 날고 있던 천상의 군주는 너스레를 떨며 대답한다.
“이보게 유배자들. 내 목표가 뭔진 이미 알고 있지?”
“지배.”
“그래. 그럼 내가 누굴 보고 배웠겠나? 바벨탑 옆의 따분해빠진 공간에 그런 이야기가 존재나 했다고 생각해?”
세상에. 그런 발상까지 가본 적은 없었다.
“유배자겠군.”
“맞아, 너희들은 내 스승이었지. 꼭 너를 말하는 건 아니야. 야심과 야망, 그리고 열정.”
이런 대사 칠 때마다 연습한 것처럼 멋들어지게 날개를 펴면서 빛을 내뿜는 건 누구한테 배웠을까?
어쨌든 그런 연출과 함께 마무리.
“날 매료시킨 인간의 요소지.”
미카엘이 내 곁으로 날아들었다.
“리더, 잘 생각해봐. 고위 천사니 위대함의 편린이니 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위대한 게 아니야.”
“그건 확실히 동의하는 바지만.”
“이걸 곧바로 동의하다니 깨인 녀석이로군.”
말투가 아까부터 적잖이 수상쩍다.
미카엘은 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보았음이 분명하다.
그 어떤 미카엘보다도 더 교활하며 능숙했다.
“자, 나는 너희들이 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아. 거기에 이 세계에 대해서도 아마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음, 플레이어가 외부에서 정보를 들고 올 것만을 기대하고 있는 보스 몬스터라.
“어중이떠중이 유배자들은 필요가 없었지. 그래서 아마 내 속셈을 아무도 몰랐을 거야. 바알과 나헤마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라지엘도 말이야.”
미카엘이 하하하 웃으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 군세를 이끈다.
“귀빈들, 난 자네들을 놓칠 생각이 없어. 몇 번이고 재생되는 라파엘이나 나 따위보다도 더 귀중한 기회들이지.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좋아. 알겠어. 얌전히 따라가지.”
그 이외에는 방법이 전혀 없도록 준비한 것도 알겠다.
미카엘은 미소 짓는다.
“가브리엘을 그딴 식으로 격파하고 라파엘을 상대로도 이미 수작을 부리고 있던 유배자 파티라. 이런 파티는 처음이야. 너희들의 가치를 증명해야할 것이다.”
서로의 꿍꿍이가 있었고, 그게 어느 지점에서 극적으로 맞부딪쳤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딱히 우리 파티의 계획대로 된 상황이 아니다.
미카엘은 오랫동안 이런 키 아이템 같은 유배자 파티를 갈구해왔고, 마침내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재주를 얼마나 잘 부리는지 보기 위해 우리를 붙잡아 가는 것이었다.
이건 큰 차이다.
서로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도달했다.
아직도 우리는 서로를 믿지 않으며 제어 수단을 마련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잡혀간 것이 미아와 쥐새끼였다.
“잠깐만, 마법사를 떼놓고 뭘 하란거야?”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인질이겠지? 안 그래?”
미카엘의 눈이 희우에게도 향하기에 나는 한숨을 쉬며 손을 들었다.
꽝 붙는 전력에서는 이길 방법이 없는 상대다.
“대신 다른 선물을 주지. 기다려 보라고.”
아무튼 그렇게 미아는 억류되었다.
어떻게 손 쓸 방도가 없었다.
미카엘은 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오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은 주도권을 쥐고 있다.
미카엘과 인상을 찌푸린 미아가 떠나고 우리 파티는 덩그러니 남겨졌다.
상층 요새의 상당 부분이 누아르의 포격에 의해 크건 작건 손상이 가있는 상태였다.
미카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배를 다시 상층에 돌려놓은 것이 분명하다.
천사들이 많이들 날아다니고 있다.
어떤 식으로건 우리를 감시하거나 혹은 우리에 대한 원한이 엿보이는 동작들이었다.
“흠, 이건 아주 나쁜데.”
“그렇게 말하는 표정은 또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그럴 수도 있긴 해서 말이에요.”
변수가 많은 건 당연히 기쁜 일이 아니다. 조금만 잘못되면 어디까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주도권을 상대가 쥐고 있게 되었다일뿐, 막상 우리에게 자유가 없는 때는 아니었다.
“가브리엘이 날아간 순간 미카엘은 우리로 뭘 할 생각이었다고 봐야겠군.”
“유배자에게 관심이 깊어 보이던데.”
“그랬다.”
블랑쉐가 긍정한다.
미카엘은 길고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존재와 이 메인 던전이라는 곳의 처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어느 순간 다른 천사들처럼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군요.”
“이 세계의 고위 천사들이 바라는 목표는 대부분의 경우 미궁을 거스르고 독립하는 것 아니었나?”
사실 그것 자체는 이루어졌다.
하지만 유지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상황에 갇혔음을 확실히 모를 뿐이다.
미카엘은 로스엘만큼이나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저런 놈이었냐고 한다면……. 맞긴 했는데.”
“이렇게까지인 줄은 몰랐군요.”
“사용하는 수단의 방식이 마치…….”
“유배자로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싸우는 것도 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브리엘이 마지막 순간에나 겨우 구사하던 패턴 비틀기를 당연하게 생각해봤겠지.
“끔찍한 보스인데.”
“저거 최종 아니랬죠?”
“일단은 그런데 이대로면 최종보스일지도 모르겠어.”
“바알도 그렇겠군요.”
“그럼 정말 끔찍하겠는데.”
흐름이 약간 내 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아요. 미카엘에게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해진 것만큼은 진실이니까요. 저쪽이 주도권을 쥐었다 뿐 결국 운명공동체처럼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클리어를 포기하고 탈출할까에 대한 대책이 미아로군.”
“그거 하나는 좀 골치 아프군요.”
짧은 회의 끝에 내려진 결론은 아직 해볼만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보스의 태도가 저 정도면 비교적 대등한 협상이 가능한 수준이다.
윽박지르지 않고 나름대로 신사적이며 서로 취할 것을 취하자는 태도 아닌가.
세상 모든 적들이 다 저렇게 합리적일 수 있다면 삶이 좀 더 편안해지겠지.
“그래서 준다는 선물은 뭐지?”
곧 알 수 있었다.
라파엘이 돌아왔다.
집나간 정신도 실컷 두들겨 맞다보면 돌아온다.
라파엘은 가브리엘을 찾고 싶었을 뿐이며, 지금 가브리엘을 가지고 있을 유배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살긴 해야 했다.
모든 것을 내팽겨친 것도 잠시 잊고 라파엘은 서둘러 돌아왔다.
악마들은 그리 급하게 그를 추격하지 않았다.
어차피 균형의 추는 기울었고 그렇다면 이번 공격은 전초전으로 끝날 뿐이어도 무방하다.
가브리엘은 대체할 수 없는 전력이니까.
라파엘을 한 번에 죽이려고 기를 쓰지 않은 것도 그 탓이다.
서로 지닌 힘을 마지막까지 긁어모으며 세피로트니 클리포트니 만들어 아껴온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다듬어지지 않고 힘의 규모만을 생각하며 효율을 추구한 형태는 결국 소모전을 불러 일으킨다.
바알은 이 전투를 단지 미카엘의 날개를 뜯어버리기 위한 여흥으로만 여겼다.
라파엘은 간신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엄청나게 손해보고 너덜너덜해진 소모전 끝에 말이다.
다시 어떻게든 인간형을 취하여 힘을 절약하며 날아든 대천사를 천상의 군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그래. 그 근처까지 가보고 오는 길이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가브리엘이 죽었다! 그냥 그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미카엘은 속으로 라파엘을 한심해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냥 여길 팽개치고 떠나?
이건 특별히 나이 차이 같은 게 있어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미카엘은 상대적으로 감정이 희박하며 인간적이지 못한 다른 고위 존재들에 비하여 이들을 유치하다고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본능과 이성, 그 중 무엇이 더 우월한가? 더 원초적인 것은 본능이 분명하다.
고위 존재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짐승이며 본능에 따라 만들어지고 태어나 행동하는 본능 그 자체를 본질로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바벨의 곁에서 태어나 끝없이 그 주변을 유영하며 만족하지 않았던가?
인간들이 그들을 불러 권속삼아주사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아직 보스전 중인가? 아니겠지. 멀어져서 따로 뜨지 않을지도 몰라.”
미카엘도 유배자의 메인 던전 공략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미궁이 그들을 주인공 삼아 이 세계를 준비한다는 것만은 안다.
“라파엘, 그간 수고해주었어. 사실 메타트론을 몰아낼 때 말고는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애 돌보는 것도 지쳐서 말이야.”
빛이 쏟아졌다.
라파엘도 저항했다.
그러나 소모가 너무 컸다.
결말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Fragment Of Greatness Slain]
[편린이 당신들에게 깃들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보스가 강화됩니다.]
“환장하겠군.”
일제히 침묵하는 가운데 미카엘이 찾아왔다.
“이걸 쓰지.”
지팡이 형태의 무언가였다. 나는 보자마자 그것이 라파엘의 드롭무기임을 알았다. 검이다. 태양과 삭풍의 성검.
“그나마 다음가는 마법사가 누구지? 아니다. 그냥 리더가 알아서 하게.”
미아의 물뿌리개와 달뿌리개도 되돌아왔다.
“아참, 그리고 회복의 샘은 계속 이용해도 좋아. 그게 없으면 곤란하겠지? 있다면 훨씬 더 쉽게 내가 원하는 일을 해주겠군.”
“원하는 일이 뭐지?”
미카엘은 얼굴에 천천히 미소를 드리워갔다.
“뭐든지. 뭐든지 해봐.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지를 그때 다시 한 번 보자고.”
나는 잠깐 생각을 한 끝에 리온과 라리사를 불러왔다.
“이 둘도 좀 맡기지.”
“인질을 늘리나?”
“네 곁이 제일 안전할거 아냐.”
떨떠름하게 저쪽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어차피 쥐새끼가 없으면 라리사도 필요하지 않다. 회복의 샘도 돌아왔다.
이곳이 훨씬 안전할 것이다. 비상시에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미카엘이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보더니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이루어줘야 할거야. 한동안은 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군.”
“너도 그렇게 만들려던 것 아닌가?”
“이런 그림은 아니긴 했지만.”
“좋아, 그럼 이제 아무 문제도 없군. 가서 뭐든 하라고.”
미카엘은 돌아섰다.
“명심해, 뭐든지 하지 않으면 오랜 시간이 걸릴지언정 결국 천상의 도시는 멸망할거야.”
날개를 펼친다.
“바알과 나헤마보다는 내가 더 나은 상대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군.”
“그 둘에게 유배자에 대한 존중을 바라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썩어도 내가 천사 아닌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그건 진실이다.
메타트론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흠, 좋아요. 그럼 우리도 뭔가를 좀 할까요?”
“미아양을 빼앗겼어요오…….”
울상을 짓는 제니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니, 진정해. 걔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한참 사고치기 좋아할 나이지.
리온과 라리사는 사실상 미아의 조수로 붙인 느낌도 들거든.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다 각자 알아서 할 수 있는 형태로 단련시켜왔다.
왜냐하면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100%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