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61화
메인 던전 - Lv.17500 마술사왕 [솔로몬](4)
종족이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마술사왕에게 선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솔로몬은 그다지 이 세계의 환경에 긍정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고위 천사고 고위 악마고 죄다 관심 밖의 일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느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위대한 마법사에게도 그런 존재와 접한 경험은 거의 없었으며, 정보를 꽉 쥐고 있는 나조차도 헤매는 와중에 대다수의 유배자에게는 자살행위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솔로몬은 포기한 자였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건 그냥 자신이 할 일만 하며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세피로트와 클리포트를 만들어낸 것도 그런 마이웨이의 일환에 불과했다.
솔로몬은 세상을 등진 은자다.
“그런데 왜 마술사왕이죠? 마법사라는 명칭이 일반적이지 않나요?”
희우는 늘 그렇듯이 호기심이 많다.
나는 심플하게 대답했다.
“그래서야. 미궁이 시스템적으로 정의하는 명칭은 마법사니까.”
마법이나 마술이나 별 다를 것은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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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을 그저 트릭을 동원한 손기술로 치부하고 마법이야말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설정도 흔하지만, 꼭 그래야하는 법은 없지.
솔로몬이 마술사왕이라 불린 이유는 단순한 마법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위대했기 때문이다.
그냥 마법사가 아닌 새로운 호칭이 필요하여 만들어진 그만을 위한 칭호.
“들으면 들을수록 더 위험해 보이는데요.”
“PVP나 다름없으니까 실제로 위험해.”
희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괴수형 보스가 아닌 NPC형 보스는 당연하게도 유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공유한다.
솔로몬과의 보스전은 패턴으로 정의되지 않은 혼란한 전투가 될 것이다.
당연히도 노히트는 불가능하다.
“버릇 같은 건 일부 알고 있으니까 내가 최선을 다해 꼼수를 부리면 어떻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미아가 없어.”
보스전을 상정하려면 적어도 메인 마법사는 있어야 한다.
내가 당장 데몬으로 종족을 바꾸고 초기화를 돌린다면 어떻게든 되긴 하겠지만 그러면 인간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다른 파티원 누군가를 인간으로 그냥 두기에는 종족 변환에 따른 스펙 상승이 아쉽다.
결국 다 결과론이다.
현재로선 솔로몬과의 보스전은 피하는 편이 좋다.
그뿐인 문제다.
“에길, 방패 들어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나헤마를 구슬릴 아이템의 확보.
악마는 기본적으로 마법사다.
2번째 통로는 어둠이 뭉클뭉클 흘러나오는 만큼 마법적 포화가 쏟아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에길은 그래서 천사가 되었다.
전사인 것도 맞으나 마법에 대한 대응력이 없는 빌드를 탔기에 꼭 맞다.
“에길은 이번엔 공격할 필요가 없어요. 벽만 되어주세요.”
치천사의 날개까지 동원된다면 마법에 의한 타격은 놀라울 정도로 경감될 것이다.
아서와 제니가 바로 그 뒤에 따라붙었다.
차근차근 전진하기 시작한다.
블랑쉐는 어둠 덕에 기분이 나빠 보이는 디스를 달래며 겨누고 있다.
“좁은 통로는 영 불안해요.”
희우가 투덜거리며 바로 뒤에서 기동대로 활동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좁은 통로라고 묘사하지만 이 역시 유배자 스케일의 좁은 통로다.
어차피 실재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솔로몬의 마력으로 인해 실재하게 된 공간이다.
이 자체로 이미 공간 마법의 일종이기에 넓이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래도 광야급 복도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적절한 크기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덤프트럭 4대가 나란히 질주할 수 있는 크기의 복도 역시 초음속의 천사에게는 좁은 것일 뿐이지.
“흡!”
에길이 힘차게 방패를 땅에 박았다.
무언가 소리 없이 날아든다. 무형의 검은 폭발이 일어났다.
“어느 정도 패턴을 알겠군.”
“그렇죠?”
세상에 전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형태로 구현된 어떤 적이나 던전도 어떤 틀 내에서 구성된다.
따라서 많은 경험을 쌓으면 어느 순간, 이미 아는 것들의 조합이 시련으로서 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걸 위한 튜토리얼이며 그걸 위한 리프트다.
메인 던전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좀 더 신박하게 변형된 아는 것들이다.
이런 기습적인 마법 공격 역시 그렇다.
적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감지하지 못하겠군.”
“마력으로 탐지해보지.”
마력 탐지를 걸어도 뭔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움직인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적의 명확한 위치와 실체는 알 수 없다.
은신하는 종류의 적들이다. 악마의 인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어둠 속성의 공격을 해온다.
[은신] 스킬이 어둠을 흩뿌리며 사라지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어둠은 상대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효과도 내포하고 있다.
어둠 마법으로 그런 방식이 실전에서 유효한 영역까지 도달하려면 흑마법사라고 불리는 클래스가 되어야 하기에 잘 등장하지 않을 뿐이다.
사실 흑마법사 자체가 그다지 유배자를 위한, 그러니까 플레이어블 클래스가 아닌 탓도 크다.
소드 마스터와 비슷하다. 내가 하면 구리고 몬스터가 하면 악랄한 종류의 클래스.
이번 적들은 어둠에 깊이 잠식당한 악마의 잔재들이 아닐까 한다.
“마력 탐지에도 걸려들지 않아. 실체 없는 유령 혹은 영체에 가깝겠는데.”
마력의 반향정위가 효과적인 상대는 결국 고밀도 마력 덩어리들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물리적 실체를 가진 것들.
육신이 없는 유령들은 마력 탐지의 정밀도가 하락하는 법이다.
“숫자가 아주 많아.”
“어느 정도?”
“못해도 세 자리 수.”
“지옥이 따로 없네요.”
뭐, 늘 그렇다.
“악마는 원래 지옥에 있어. 속성의 효과도 조심하라고. 멘탈 꽉 붙잡아.”
어둠은 정신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사람을 갉아먹는다.
건강한 멘탈, 건전한 인간관계.
파티 내에서 그런 것을 추구해야하는 이유다.
솔로몬은 자신의 행운에 기뻐했다.
끝없이 확장되고 있던 그의 무덤은 명상과 함께 잠깐 멈춰서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힘들이지 않고 유배자들이 침입한 곳까지 도달할 수 있다.
물리적 거리는 이 공간에서는 장난과도 같은 것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다.
거리는 언제나 비용이다. 그것이 돈이건 마력이건 시간이건 말이다.
[이미 너무 넓어지긴 했군.]
유배자들이 있는 위치와 이곳을 굳이 물리적 거리로 가늠하자면 이미 어지간한 행성의 몇바퀴 정도는 된다.
그가 쉬지 않고 계속 이 공간을 확장해나갔다면 저 유배자들이 죽어 사라질 정도로 오래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보다 큰 무덤을 가진 이는 없겠지. 크크.]
여러 가지 복잡한 마법으로 구현된 이 무덤은 그가 마지막으로 잠들 곳으로 여겨 만든 곳이다.
이 밖으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무덤.
솔로몬은 몸을 띄웠다. 연속적인 공간이동은 연비가 나쁘다. 굳이 그런 소모를 감내할 이유가 없으니 비행으로 도달하면 될 일.
전진하는 앞부분의 공간을 제멋대로 축소하는 동시에 물리적 속력도 가볍게 음속을 돌파한다.
그리고도 점점 더 가속해나간다.
[속도감. 잊고 지내던 것이군.]
산 것과 대면하는 것은 오랜만이다. 그러니 그런 감각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지금 자꾸 혼잣말을 하는 것 역시 위대한 마술사왕으로서 저들과 대면하여 대화가 가능하게 끔이다.
언어라는 것은 홀로 지내면 쓸모가 없으니 퇴화하는 기능이 아니겠나.
[그래도 이 정도면 아직 어휘는 멀쩡하군. 크크크.]
이제는 본인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확장된 다양한 연구의 갈래들은 무한해 보이는 복도로 뻗어있다.
취향에 따라 벽돌을 쌓아 만든 통로로서 존재하는 자신의 무덤을 솔로몬은 전력으로 날고 또 날았다.
상대는 전투를 해주지 않는 녀석들이다.
그렇기에 에길을 위시한 전사진의 든든한 방어 뒤로 조심스럽게 전진해나가며 어둠을 걷어나가는 형태의 공략이 되었다.
그러다가 발이 쑥하고 빠졌다. 앗하는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 허수차원 같은 곳에 도달했다.
“아, 이거 그거네.”
어둠 속성이 짙은 곳을 공략하면 이게 참 짜증난다.
멘탈에 데미지를 주는 환각 같은 것이다. 내 몸은 실제로는 그저 순간 멍할 뿐이겠지.
오싹한 느낌이 목덜미를 채운다.
원래 같으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전 회차 같았다면 나는 어둠을 공략하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서서히 내 삶에서 트라우마가 되었던 무수한 것들이 플래시 백되기 시작한다.
지극히 냉철한 정신 상태로 나는 그걸 무시할 수 있었다.
“희우 보고 싶네.”
그리고 또 중얼거린다.
“미아는 잘 하고 있으려나?”
있잖아, 트동트 영감님. 그리고 루시.
당신들은 옳았어.
유사 가족놀이고 뭐고 그걸 놀이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진실이 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진짜일 수는 없는 것 같다.
자식을 낳더라도 그에 대한 사랑은 제 자식을 보살피며 생기는 법이다.
나는 책임질 이들이 있고, 그럴 능력과 의무도 있다.
많은 유배자들에게 어둠의 마법이 치명적인 것은 그들의 삶이 힘겹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어느 새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굳건하게 두 발을 현실의 대지 위에 디디고 있다.
파티원 몇 명도 그런 식으로 어딘가 빠져들었다가 일어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특히 제니는 제니즈를 중얼거리며 훌쩍이기 시작했기에 아서가 얼른 케어했다.
희우는 안색이 조금씩 창백해지고 있지만 괜찮아 보였다.
“음, 저 말이죠. 끔찍한걸 잘 못보잖아요.”
“피와 내장은 괜찮은데 기괴하고 징그러운건 못 보는 이상한 트라우마였지.”
이제는 이해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제로 해야했다.
원치 않은 의무를 부여받고 그것을 수행할 것을 가족에게 요구받았다.
어린 희우에게 가족이란건 어떤 것이었을까? 전투란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은 평생 가는 법이다.
“좀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게 쉽게 극복되면 병이라고 안 불러.”
“오빠도 괜찮아 보이는데.”
“후후.”
물리적으로 끔찍한 곳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해야하는 것이 난점인 지역이다.
셀 수 없는 세월 간 고인 어둠은 짙고 깊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벽과 바닥도 보이지 않았다.
블랑쉐는 이런 환경에서 가장 강인한 인물이었다.
사고회로가 단순해서일까?
그녀의 고민은 이미 모두 해결되었다. 이야기 역시 끝났다.
그런 인물이기에 이런 어둠은 아무런 해가 되지도 않는 모양이다.
“이젠 숫제 어둠의 구렁텅이로군.”
“기네비어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에길과 아서는 아직 그만큼 자유롭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저들은 목표에 다가서지도 못했고 안고 있는 고민을 해소하지도 못했으니까.
미궁의 끝에 답이 있기를 바라며 전진하고 있을따름이다.
어둠이 짙게 고인 지역을 헤매고 다닐때는 항상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멀쩡할 수 있는 파티는 많지 않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심연]의 일부도 아주 좆같은 구간이 있는데 그곳은 어떻게 뭐, 천사 장비의 힘으로 넘길 수 있겠지.
정도 이상의 어둠이 짙게 고여있자 늪이 되어 몸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적들을 상대하며 전진하고 있지만 이대로는 무리다.
나는 라파엘의 지팡이를 들었다.
화려한 불길과 함께 지팡이가 타오르며 자못 성스러운 화염의 검이 된다.
레바테인과는 다르게 불과 빛의 이중 속성이다.
타오르는 검을 등불 삼아 어둠을 비추었다.
늪처럼 발을 빨아들이던 어둠이 잔잔하게 흩어지며 바닥을 드러낸다.
벽을 가리던 어둠이 걷히며 작고 낡은 문이 나타났다.
“중간보스룸이군요.”
“가벼운 보스전이라고 했던가.”
“편린에 댈 것은 아니죠.”
이제 2번째 통로의 연구실에 입장했다.
그 시점에 솔로몬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어둠의 원소가 가득한 이곳은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이다.
아주 오래된 연구였기에 어떤 곳이었는지 떠올리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늙은 리치는 자신이 훨씬 젊던 시절 이곳에서 고위 악마를 죽여 보려고 연구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어두운 곳은 아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오래 방치되어 각종 샘플들이 제멋대로 증식하고 폭주한 모양이었다.
오래 방치하면 위험한 곳이 된다. 마법사의 연구실이란 본디 그런 법.
솔로몬은 유배자들이 죽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려다가 당황했다.
잘하는군?
이 세계가 이미 메인 던전이 된 것은 안다. 그것을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을 뿐.
그러니 이곳에 발들일 정도의 유배자라면 당연히 강인하고 노련하리라.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전혀 위기나 고난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본인들이야 죽을 맛이겠지.
하나 누군가 하나쯤 고비를 넘길 법도 한데 너무 안정적이도 단단하다.
흥미롭다.
솔로몬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유배자들의 행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잊을 수 없는 서늘한 감각.
감각이 캐치한 것도, 마법적으로 캐치한 것도 아니다.
하물며 시스템적인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냥 오래 봐온지라 알 수 있는 직감이다.
솔로몬이 왔다.
근처에 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젠장. 뭐지?
왜 온 거지?
뭐든지 일어날 수 있는 미궁은 가끔 보스를 던전 입구에 배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이게 희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운이 나쁜 걸까.
혹은 또 뭔가 변한 걸까?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걸 파티원들에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들킬 것이다.
내가 인간이기에 선공을 당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으나 그래서 진짜로 싸우게 될지 아니게 될지는 모른다.
솔로몬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미친 마법사다.
마법사라는 단어에 이미 미치광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최고로 미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왜 왔지?
이것도 그때그때 달라지는 문제긴 한데, 가끔가다 일찍부터 들켜서 솔로몬이 직접 찾아오는 케이스가 있다.
계속 새로운 연구를 확장하며 저 멀리 뻗어나가고 있는 게 아니라 휴식하고 있을 때 입장하면 그렇게 된다.
딱 걸린 모양이다.
뭘 하고 있었을까?
자자, 오랜 기억을 되새겨라. 솔로몬이 어떤 미친놈인지를 떠올리고 어떻게 대해야할지를 고민해보자.
유배자로서 여러 NPC들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배움을 구했지만 솔로몬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악연이라 할 수 있는 마법 스승이었다.
반면 그만큼 잘 알기도 한다.
어, 그러니까 내가 아는 게 진짜 아는 게 맞다면 말이지.
양자역학 같은 양반이라 별 수 없다.
거참.
에길도 그렇고 블랑쉐도 그렇고.
나를 알고 나도 알던 이들에 대한 기억이 이제 나에게만 남아있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