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63화
메인 던전 - Lv.17500 마술사왕 [솔로몬](6)
어땠냐고 묻는다면 상당히 충격이라고 말하겠다.
솔로몬은 분명 강력한 히든 보스다.
지닌 힘의 총량이 타고난 고위 존재들에 미치지는 못할지언정, 마법사로서 그리고 유배자로서 누구보다 살상력 높은 방식은 익히고 있다.
본래 게임에서는 힘세고 튼튼하지만 느린 적보다는 플레이어만큼이나 트릭키할 수 있는 보스가 더 두려운 법이다.
그러니 솔로몬은 난이도로 따지자면 이 테마에서도 최상위가 맞다.
거기에 파티는 불완전하다. 미아의 이탈은 다른 파티원의 이탈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가진다.
전담 마법사는 파티의 핵심 딜러는 아니어도 핵심 유틸이다.
하이브리드 그 자체인 지금의 내 상태와 서브 마법사 수준인 블랑쉐로는 역부족이다.
솔로몬과 지속적으로 마법전을 수행할 인원이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파티는 그걸 다 이겨낼 수 있기 위해 단련해왔다.
적잖이 찝찝한 일이다.
물론 그건 모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제 아무리 파티의 분위기가 좋다하더라도 이런 사소한 문제로 다운되기 시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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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를 했고, 해결을 했다하더라도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의 패배는 어떤 의미에서건 충격일 테니까.
그러니 이럴 때만큼은 예전처럼 내가 파티의 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주로 상성의 문제입니다. 전사 비중이 높아요. 저도 하이브리드라곤 하지만 전사 위주 아니겠습니까.”
전사 계열은 마법사 계열에게 약하다.
솔로몬은 유배자 출신 보스기에 그 상성을 절대적으로 적용 받는다.
파티에는 전사가 넷이나 있다.
희우도 사실 전사 겸 암살자라는 듀얼 클래스기에 효과적으로 솔로몬을 견제해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페이즈까지 간게 이미 여러 가지를 시사 합니다. 이미 상성을 뒤집은거거든요.”
없었던 일이 된 과거에서 모두들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았겠지.
솔로몬 역시 죽을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할만큼 몰아붙였을 것이다.
“마법사의 던전이라는 문제도 있죠. 미아의 연구실 다들 본 적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애초에 전투를 피할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최악의 조건인 상태여서다.
솔로몬을 정말로 잡을 생각이었다면 적어도 이곳에서 상대하려고 하진 않았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사까지 떼고 막페까지 갔단 건 사실 평범하게 승리할 전투였단 겁니다.”
“살 얼음판이란게 새삼 느껴지네요.”
“안정적이라는 것도 모든 게 딱딱 맞아 들어갈 때의 일이지.”
리듬 게임과도 같다. 쏟아지는 노트를 무아지경으로 치다가 문득 ‘나 이거 어떻게 치고 있지?’ 생각이 드는 순간 끝장이다.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없다.
“오히려 솔로몬을 상대로 발동한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 삐끗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못 된다.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충분히 되돌리지 못한다면 결국 같은 상황을 반복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시간의 신앙 역시 만능은 아닌 것이다.
“필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랬다.
어쨌건 일상적임과 긴장 사이의 균형은 중요하니까.
이후 희우를 통해 더 자세하게 전투를 복기해보면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으리라.
“일단, 중요한건 당면한 문제를 어찌 해결할까 인데. 전투는 반드시 회피해야한다는 결론이 확실히 나와 버렸군요.”
진행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희우가 특별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중간중간의 정신공격 이외에는 치명적인 위험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솔로몬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블랑쉐 외에도 파티원들이 그 존재를 느꼈다.
누군가가 있을 거란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 흐릿한 존재감이 뒤따르는 것을 알고, 그것에게 한번 전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파티의 행보에 문제는 없다.
보스룸에서 다시 솔로몬이 모습을 드러낸다. 손짓 한 번에 보스였던 것이 쓰러진다.
솔로몬은 음험하게 이빨을 딱딱거리며 이미 아는 대사를 말했다.
대신격의 권능이다.
편린급 존재라도 그걸 눈치챌 방도는 없다.
따라서 나는 같은 대화를 반복하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솔로몬.”
[나를 아느냐?]
내키지는 않지만…….
솔로몬 문하의 방식으로 십자를 긋는다. 무덤에 입장할 때와 같은 형태지만 이번에는 약간 다른 식별 기호를 넣었다.
서버의 마법사들은 본디 은밀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대접 받는 마법사들은 한줌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강대한 팩션의 후원을 받기보다는 가난하고 자력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이런 은밀한 기호들이 알려져 있다.
유배자의 마법은 모두 그 서버의 마법사들에게서 유래했다.
그러니 그런 관습들은 어떤 식으로건 전해내려온다.
제자들은 스승에게 자신이 제자임을 알릴 방법을 얻는다.
솔로몬이 웃었다.
리치의 해골을 오래 지켜보다보면 표정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아아, 그렇게 된 것이로군.]
좋은 반응이 나와 주었다.
이렇게 무작정 어필하는 것 또한 자충수인 경우가 있다.
우리 슈뢰딩거의 솔로몬은 만날 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시다.
제자라는 이유로 훌륭한 재료로 여겨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지금이 아는 체해야할 경우일 뿐이었다.
[좋다. 들어오도록 해라. 나는 모르는 제자여.]
해골이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그곳에는 검은 구멍처럼 공간의 균열이 열렸다.
파티원들이 나를 본다.
“우리도 가야하나?”
“오라 소리를 안 했으니 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음, 건투를 비네.”
보스는 공짜로 해결되었으니 나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으면 나쁠 건 없다.
“우린 어쩌고 있을까요?”
“일단, 11번째 통로 공략해. 그러다가 내가 너무 안 돌아오면 그냥 나가서 해야 할 일을 해.”
“나가요? 오빠는요?”
“괜찮아. 적어도 죽진 않을 거야. 인간이고 제자니까. 지금 상태로 봐선 나한테 흥미가 많아.”
희우는 빠르게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다.
“억류될 수는 있단 거군요.”
“못 빠져나갈 정돈 아냐. 오래 알고 지낸 양반이라서 풀어주는 정도의 양보는 받아낼 수 있겠지.”
솔로몬이 유배자 제자를 들이는 이유를 생각하면 붙잡혀있어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입맛을 다시며 균열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마술사왕 솔로몬.
마술사라는 구분되는 명칭에다가 경의를 위한 왕이라는 호칭까지 붙어있는 위대한 마법사.
내가 그에게 배운 것들은 아주 많다.
워메이지로서의 솔로몬은 백전연마를 넘어 억전연마의 수준이며, 무수한 테크닉을 지니고 있다.
내 본 클래스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 그 중에서도 워메이지로서의 기반은 거의 대부분 솔로몬에게 배운 것이다.
전사로서의 스승이 전신 에길이었다면 워메이지의 스승은 솔로몬인 셈이지.
무수한 세월 속에서 잊히고 이제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솔로몬은 마법사답게 그 모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자, 빨리 알고 있는 것을 털어 놓아 보거라. 내가 지금하고 있는 연구는 정신에 관한 것이다.]
제기랄. 명상 중이었군. 그리고 하필이면 지금 딱 깨어난 거고.
“정신의 여러 형태를 정의하고 갈고닦고 계셨습니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는군. 이래서 제자를 키우지. 내게 줄 것을 모두 주고 네가 얻을 것이 있다면 모두 얻어가라. 대신 그 전까지는 여기 있어야할 것이다.]
괴팍함이 끓어오르고 있는 상태는 아니다.
깊은 명상 끝에 어느 정도 정신이 안정되어 있는 편이었다.
대화가 아니라 뚜껑부터 따서 마법적으로 기억을 읽어 들이려고 할 수도 있었다.
잠에서 막 깨어난 고양이가 얌전하듯 뽀송뽀송한 상태로군.
오랜 기억을 되살려야 했다.
솔로몬은 이런 이유로 제자를 키우곤 했다.
자신이 메인 던전의 일부로 박제되었음을 알고, 그곳에 찾아올 정도의 유배자라면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을 안다.
개중 마법에 싹수가 보이는 녀석은 강제로 제자로 만들고 멋대로 가르침에 베풀었다.
그 가르침에 아낌은 없다.
또 다른 어떤 메인 던전의 솔로몬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솔로몬은 그런 식으로 다양한 평행세계의 자신들과 연구를 공유하고자 했다.
마법에 미친 자만이 할 수 있는 발상.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 내 주관적인 시간으로 먼 과거에 배웠던 것들이다.
내 한 몸의 안전은 확보되었다.
그럼 환심을 최대한 사보자.
유능한 제자를 싫어할 상태는 아니다. 명상 덕인지 광기는 절제되어있다.
대화가 가능한 상태.
어딘가 이상한 이번 테마의 특징을 유감없이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나를 도울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런 행위에 흥미를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앞으로가 세상 편해질지도 모르지.
권능 한번을 소모시킨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오빠가 없음에도 무덤의 공략은 진행되었다.
솔로몬이 이미 지나간 연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더가 전혀 없는 상황의 파티는 처음이었다.
혼돈과 절망의 신이던 시절에도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리더가 모은 파티기에 언제나 리더가 함께 했다.
그러니 그 부재는 굉장히 낯선 일이었다.
“만 하루가 지났군.”
“이 정도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게 맞겠어요.”
“그래.”
희우는 판단해야했다.
공략해야할 곳은 다 공략했다.
두둑한 보상도 손에 넣었다.
아티팩트로서의 방어구를 얻은 것은 미궁에 들어온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은 언제나 화력이 방어력을 앞서는 환경이었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일격에 죽느냐 사느냐의 영역이라면 도리어 커지는 법.
“단지 냉기에 대한 저항력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군. 몸에 여러 버프가 저절로 걸리는 것이 느껴진다.”
블랑쉐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아티팩트 방어구의 위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파티의 전력은 확실히 강화되었다.
세피로트를 만들어낼 정도의 마법사가 전력으로 마법을 갈아 넣은 장비는 어디서도 구하기 힘들리라.
“여벌을 챙겨둔 채로 움직여야할 것 같아요. 미카엘이 어떻게 되기 전에 우리가 뭐건 해야죠.”
“나헤마를 찾아가야겠군.”
“누가 교섭을 하지?”
희우는…….
아서와 블랑쉐를 보았다.
“누가 하실래요?”
블랑쉐는 자신만만하게 나서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고민에 빠진 얼굴이 되더니 아서를 흘깃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왕은 그런 것에 능하겠지.”
“흠.”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
파티는 나헤마가 있을 지옥의 성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마들 사이에 내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천사와의 균형이 맞춰질 것이고 파티는 조금 더 유예를 얻으리라.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본래 지옥의 성채에서 이 테마를 시작하게 된다면 그렇게 진행하는 것이 정석일 정도로 악마들은 제멋대로다.
나헤마 같이 음험한 존재가 적어도 대화가 쉬이 통한다는 점에서 가장 우호적인 군단장으로 분류될 정도다.
정보도 있고, 방법도 안다.
실행만 하면 된다.
희우는 오빠의 행동을 따라했다.
“어떻게 솔로몬의 협력이라도 얻어낸다면 그 뒤는 날로 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
“리더라면 그런 걸 물고 돌아올 수도 있겠지.”
“어떻게 패했는지를 좀 들어볼 수 있겠나?”
마지막은 에길의 말이었다. 불패의 전사는 자신도 모르는 첫 패배에 충격보다는 호기심을 더 강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가면서 이야기할까요?”
희우는 여러모로 자신이 리더임을 깨달았다. 해야할 역할이 많다.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는 이 파티를 유지하고 굴려 가야한다.
방긋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긴장을, 그리고 동시에 속에서 긴장을 떨쳐내는 다짐을.
‘내가 그래도 헤딩팟 공대장도 몇 번 잡아본 여잔데. 별 것 아니지.’
사실이건 아니건, 별것 아니라고 믿어야 한다. 리더는 그래야하는 법이다.
숙련의 ‘ㅅ’자도 보이지 않으면서 위장 취업하는 거지같은 탱커놈들을 생각하면 이 파티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파하하하하하! 내 수만 년간 들어본 이야기 중 가장 웃긴 연애담이군. 그 얼굴로 그때가 처음이었단 말이냐? 어처구니가 없군. 네놈은 나이를 똥꼬로 먹었느냐!]
나는 열심히 입을 털면서도 혼란에 빠졌다.
우리 스승님 이런 캐릭터였나?
어째서 마법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흘러나온 희우랑 사귀는 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보이지?
당황을 겉으로 티내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위트를 섞어 대꾸한다.
“아니, 그. 게임에 다 처넣었죠.”
[아, 그래 게이머라고 했지. 밥 먹고 게임만 하다가 미궁에 빨려 들어오는 놈들.]
리치의 눈이 빛났다.
[자, 그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해보아라. 애송이.]
“어…….”
[프라이버시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간 모가지를 뽑아주마.]
“아니. 네. 음.”
분위기는 좋은 거 같은데, 왜 돌아버릴 것 같지?
[인간 정신의 오묘함을 네가 알겠느냐. 뇌과학이란 것은 아직 그 일부조차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마법이니라. 사랑이라는 화학작용만큼 좋은 자료도 없지.]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모르겠다. 울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