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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66화 (43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66화

메인 던전 - Lv.5912 라파엘(3)

미카엘은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었다.

바벨의 자식들 중에서 가장 인간에 빠르게 적응한 것이 그일 것이다.

미카엘은 처음부터 자신이 다른 바벨의 자식들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편이었다.

어떤 의미로건 말이다.

고위 천사라는 것에, 힘이 곧 존재인 삶에,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았다.

바벨 곁에서도 그는 언제나 무언가 갈구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이상 현상이었다.

힘을 체현하는 고위 천사와 악마들은 그저 존재함으로써 끝인 것이다.

그런 영역의 삶은 태어나 존재함으로 완성된다.

불완전한 필멸자들이나 치열한 삶을 통해 어떤 완성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위대함의 편린들은 비록 완전함에 도달하진 못했으나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

그런 사고 자체가 필요 없다.

그런데도 미카엘은 무언가를 갈구했다.

무엇을 갈구하는지 모르면서도 갈구했다.

그래서 저 아래의 필멸자들이 그들을 불러들였을 때, 누구보다 적극적일 수 있었다.

* * *

* * *

세피로트의 자리에 앉아 껍데기를 뒤집어 쓴 후에도 가장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미카엘은 이게 꽤 재밌다고 여겼다.

“필멸자들은 다들 열심히 살지. 그게 나쁜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은빛 기사단장이 고개를 숙였다.

“기천사. 기천사. 너희는 만들어진 생명이지. 어찌보면 평범한 필멸자들보다 더 결함이 있을지도 몰라. 어떻게 생각하나?”

“달리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생각해 보게. 모든 생물은 생각이란 것을 하면 살아야 해. 내일 저녁 뭐 먹지보다 조금은 더 내다보면서 말이야.”

“노력해 보지요.”

은빛 기사단장은 그런 의미에서 미카엘의 마음에 쏙 드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권속들, 그러니까 본디 유배자나 서버에서 온 이들의 후손인 자들은 어딘가 미카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필멸의 삶을 유기하고 싶어 했다.

완성으로 다가가는 그 여정을 버리고 좀 더 위대한 존재들에게 의지하여 그 곁에 기생하고 싶어 했다.

미궁이 이토록 다양한 시스템을 그들만을 위해 마련해 주었음에도 말이다.

“좋아. 그럼 가서 하던 일을 하도록.”

“알겠습니다.”

반면 은빛 기사단장은 그렇지 않았다.

애초부터 미카엘이 진행한 프로젝트로 만들어낸 이 기천사는 유리라는 완성품 다음으로 우리엘에 가까운 자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는 저렇게 말하더라도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자다.

기천사의 입지가 어떠한가.

대체 대천사나 치천사로 다시 태어난 권속들은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만들어진 기천사들을 업신여기는가?

만들어진 존재라? 영혼 없는 로봇과도 같은 것이라?

하지만 권속에 만족하는 그들에게 영혼은 있는가?

필멸자의 영혼이?

참 재미없는 일이다.

“바알이 오는군.”

미카엘은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게으른 자들이야.”

검을 뽑는다.

많은 고위 존재들과 다르게 지극히 절제된 검술이 묻어나는 동작이었다.

미카엘은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미아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다시 점검을 들어갔다.

미카엘은 바보가 아니다.

어딜 보더라도 약삭빠르며 교활하고 기만과 협잡에 능한…….

요약하면 아빠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어딘가 허술하게 넣어두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쥐새끼가 성배란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는 없다.

라파엘이……. 아니, 이건 쓸모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은 것은 어딘가 용도가 있으리라 여겼을 수도 있겠지만.

“다 저질러 놓고 이제 그걸 고민하면 의미가 있나요?”

“아빠가 앞만 보고 달려 나가면 안 된다고 했어! 가끔은 뒤를 돌아보기도 하는 거지!”

몽환의 숲을 만들어 대재앙을 왕국에 강림시킬 뻔한 이후에도 무수한 교훈을 얻어왔다.

미아는 사회적인 마법사다.

아마도.

“어쨌든 특별히 문제는 없을 것 같지? 미카엘도 바쁠 테니까.”

“바쁘겠지. 도시를 방어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없으니.”

라리사가 의문을 표한다.

“막을 수는 있어요?”

“미카엘이 혼자서 말이냐?”

“예.”

라파엘은 흠 하고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약간의 생각이 필요한 느낌이다.

“글쎄. 미카엘은 강하지. 나는 그 강함의 근원을 정확히 모른다. 어딘가 인간의 기술 같은 것을 즐겨 배웠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더 정확하게는 유배자의 기술일까.”

리온은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깨닫고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선생님이 걱정하던 것.

점차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인가.

“어쨌든 방어만이라면 병력도 있으니 의외로 해내지 않을까.”

“왜 당신들이 있을 때, 전쟁을 끝내지 않은거죠?”

“못 끝내니까. 공성전을 쉽게 보지 마라. 수만 년간 떨어지지 않은 성이다.”

그것만은 리온도 잘 알고 있다. 용사의 후견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전장에 나섰던가.

스케일이 너무 달라도 대충 비슷하게 흘러가는 법인가.

떨떠름하게 납득하고 만다.

미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쥐새끼를 들어서 위치에 세팅한다.

미카엘의 권능 빛의 장막으로 갇혀있는 감옥이지만 이미 연결된 흐름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미아는 미카엘이 이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높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물뿌리개와 달뿌리개도 미아의 손에 없으니까.

힘에 힘으로 대항할 방도가 전혀 없는 채로 감금당해 있는 것이다.

쥐새끼의 힘도……. 생각해 보면 성배란 건 원래 그렇게 쓰는 게 아니지?

응응. 우리 파티가 아주 이상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한 바퀴 더 돌려서 생각해 보면 아빠가 보스들의 변화에 당황하는 건 기만이다.

보스들이 우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대체 이 자식들은 뭐냐고 기겁하겠지.

갑자기 가브리엘이 어째서 그렇게 경기를 일으키며 공포에 질렸는지 이해하게 된 느낌이다.

겪어본 적 없는 미지.

그럼 그것이 곧 공포다.

“후후후후. 미카엘은 공포에 질릴 것이로다.”

미아는 그렇게 말하며 쥐새끼를 가동했다. 라파엘의 몸을 단말로 머나먼 곳까지 이어진 힘이 흐르기 시작한다.

다음 순간, 미아는 가 본 적 있는 백색의 공간 속에 있었다.

로스엘이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음?”

“왜 그래요?”

“라파엘이 돌아왔어.”

“네?”

희우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아직 자리에 앉지는 못했지만……. 라파엘이 돌아왔어.”

“그게 느껴져요?”

“이제 여긴 텅텅 비어서 나와 미카엘밖에 없으니까.”

‘여기’라고 하는 곳이 대충 세피로트의 좌를 말하는 것은 알겠다.

희우가 고개를 갸웃한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요. 미카엘이 다시 라파엘을 중용하려는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내 생각엔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아, 혹시.”

희우는 오빠의 말을 떠올렸다.

작고 귀여운 딸내미가 대형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말.

“미카엘이 라파엘의 껍데기를 미아에게 던져준 걸까요?”

“감금의 용이를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게 그런다고 이렇게 되는 건가? 라파엘이 힘은 빌려주나?”

“모르겠는데.”

좋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는 대로 눈앞의 일에 집중하면 될 뿐이다.

가뜩이나 희우가 통지한 전멸 사실로 분위기가 약간 이상해진 참이다. 희우는 이동과정 내내 솔로몬과의 보스전을 복기했다.

그 결과 아서가 상당히 침울해졌다.

“내가 마법을 좀 더 원활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겠군.”

에길 역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법사가 없는 상황에선 나 자신의 기동력이 중요해지는 수밖에 없군. 비행 연습을 해야겠어.”

이길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파티의 가장 큰 유틸리티가 빠진 상태에서 종족에 적응을 덜했기 때문이었다.

아서는 악마의 특징을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그는 보조적인 마법전조차 수행할 수 없었다. 막대한 마력도 마법의 재능도 그래서는 빛 좋은 개살구다. 차라리 천사였다면 솔로몬의 마법 공격에 저항력이라도 높았으리라.

에길 역시 그렇다. 치천사의 날개를 활용한 근접전이라면 사실 지금도 잘하고 있다.

하지만 비행에 날개를 활용하는 것은 서툰 점이 있다.

기천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천사는 아주 빠르다. 일그림 파티의 에리나만큼의 회피기동이 가능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으리라.

“더 노력해라. 에길, 그리고 아서. 파티의 불완전함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가장 완벽하게 역할을 수행한 것은 블랑쉐다.

역할이 가장 많음에도 말이다.

“후, 네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군.”

에길의 분하다는 말과 함께 복기는 정리되었다. 실수가 있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희우가 시간의 신앙을 가진 이유가 그것이다.

“이번 테마야 고정된 한 가지 종족만을 활용하는 게 유리하지만 앞으로의 테마에서도 그렇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종족을 바꾼 후의 적응에 대해 더 신경 써야죠.”

희우가 정리한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니 문제없지 않을까요?”

“옳은 말이다.”

마지막으로 제니가 고개를 기울였다.

“저는 아무 문제없었나요?”

2페이즈에서 이미 사망했다는 것이 굉장히 걸리고 있는 모양이기에 희우는 귓가에 속삭여만 주었다.

“제니, 목숨을 좀 더 소중히 하세요.”

“네?”

“에길이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던 건 제니가 대신 죽어서예요.”

제니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기에 서브 리더로서 결론 지어준다.

“잘했어요. 너무 잘해서 문제야. 제니도 충분히 중요한 파티원이니까 다음부턴 그러지 마요.”

“음, 주의할게요.”

어쨌건 약간 가라앉았을지언정 파티의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지옥의 성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헤마는 어디에 있다고 했지?”

척후이자 마법사인 블랑쉐가 묻는다.

합의된 사항으로, 블랑쉐는 공략을 일일이 숙지하지 않는다. 암살자이자 사수이자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면 제정신일 수가 없다.

기억마저 강요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성채에 거주하지는 않아요. 근처에 자신의 작은 요새가 있겠죠.”

악마들은 천사들처럼 통일된 지휘 아래에 협력중이지 않다.

제각각 흩어져 있다가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관계에 가깝다.

그렇기에 천사보다 숫자가 더 많음에도 천사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나헤마는 개중에서도 별종이다. 유일한 유배자 출신 군단장이라 배척받는 면도 있으나, 본인이 이미 더없이 음험한 탓이다.

아서가 솔로몬의 무덤에서 챙겨온 전리품을 만지작거린다.

“이건 서브 리더의 단검과도 비슷한 물건이군.”

“그게 모델이라는 것 같긴 해요.”

[아카샤의 눈].

심연의 성물로서 무조건적인 추방의 힘을 발휘하는 단검.

이제는 횟수를 다하여 아주 튼튼하고 날이 상하지 않으며 내구도가 엄청나게 높은 단검일 뿐이다.

솔로몬이 만들어낸 악마를 죽이는 무기 역시 그런 분위기의 단검이었다.

보스로서 싸워 이기려고 했다면 제법 피곤했을 것이다. 작은 것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닐 테니까.

“나헤마의 위치를 찾아봐야겠군. 정말로 리프트를 찾지 않는 것이 좋았나?”

어딘가 찝찝함이 있는 표정이었다.

전장 어딘가에 존재할 리프트를 활용하여 재보급을 할 수 있었음에도 희우는 진행을 강행했다.

“일이 많이 꼬여 있으니까 그 기회를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헤마와 보스전을 할 일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없다고 하니.”

직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금 사용할 귀중한 기회가 아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은 더 큰 어떤 큰일에 대한 전조일 뿐이다.

그리고 무언가 일어난다면 어느 구석에 짱박혀 있는 히든 지역의 리프트가 아니라…….

이 세계의 중심인 리프트에서 일어날 것이다.

오빠도 그렇게 판단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아낄 때는 아껴야 하는 것이 로그라이크.

항상 들어온 이야기다.

파티원들은 성채가 다가오자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대비되는 컨셉의 종족답게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천상의 도시가 밝음에도 을씨년스럽다면.

지옥의 성채는 시끄럽고 요란하며 어두침침했다.

칠흑의 암석이 천상의 도시와 다르게 제멋대로 뻗어 삐죽삐죽 솟아 있으며 유황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용암이 사방에 흐르고 있다.

이유 없이 타오르는 불길도 곳곳에 있으며 그 모든 광원에도 불구하고 밤이 드리운 것마냥 침침하다.

정돈과는 거리가 먼 뒤틀린 대자연과도 같음 모습이다.

왕국 지하의 지옥도 이보다는 더 깔끔했다.

고위 악마들의 취향은 이런 것일까?

“나헤마의 요새를 찾아봅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무언가 나타났다.

눈이 다섯 개 달린 거대한 까마귀, [가라앉은 영광]에서 본 괴조와 흡사하게 생긴 것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전투태세를 취했으나 가장 앞장서 있던 까마귀가 말했다.

[주인님을 찾아왔는가. 유배자.]

“당신의 주인이 나헤마인가요?”

[그래……. 기다리고 있으시다.]

어떻게 안 거지?

제기랄. 악마들은 마법의 종족이지.

더 주의해야 했다. 블랑쉐로서는 파악할 수 없는 감지 수단이 있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블랑쉐가 굉장히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피고 있다.

하지만 블랑쉐는 왕국 기준에서나 준수한 마법사.

순수한 마법능력만 따지자면 메인 던전에 걸맞은 수준은 아니다.

희우는 입맛을 다시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나헤마에게 먼저 발견되었으니 다행이지.

그 악마군단장은 결코 선공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마법사이며 상인이기 때문이다.

보스라기보다는 NPC에 가까운 존재다.

까마귀는 나헤마의 요새로 파티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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