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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67화 (43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67화

메인 던전 - Lv.5912 라파엘(4)

폭발은 예술이다!

마법사들이라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지도 모르는 말이다.

정말이다. 어떤 식의 마법도 폭발을 일으킨다. 그 종류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미아는 그래서 그 마법적 폭발이라는 것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해져야했다.

그리고 힘을 다룬다는 점에서 결국 라파엘을 매개로 쏘아내는 블루투스적인 힘 역시 마찬가지였다.

쥐새끼는 충분한 힘을 회복하지는 못했으나 이번에는 로스엘과는 경우가 달랐다.

라파엘은 껍데기만 남았어도 로스엘처럼 세피로트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배척당하고 있진 않았다.

그러니까 앞에 펼쳐진 길도 이전과는 달랐다.

막아서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그냥 원격 연결에 의해 생긴 결락으로만 보인다.

그러니까 그걸 메꾸기만 하면 된다. 이번엔 급할 것도 없다.

일사천리라고 할 것도 없으나 돌파는 어렵지 않았다.

기실 이 작전 최고의 어려움은 과연 이어지느냐일 뿐이었던 것이다.

미아는 도달했다.

라파엘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를 단말로 대리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아다.

* * *

* * *

* * *

그렇기에 처음으로 보는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 자연스럽게 감탄했다.

[말도 안 되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지?]

로스엘 때는 바깥의 보안만 뚫고 로스엘에게 바톤을 넘겼다.

라파엘의 코드로 여기까지 침투하자 세피로트라는 시스템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미아는 습관적으로 분석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곧 그럴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입맛을 다시면서 움직인다. 라파엘을 매개로 하고 있으니 그가 앉았던 자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자리는 빛을 잃고 비어있었다.

그야 그럴것이 이제 세피로트의 좌에 앉아있는 천사는 둘 뿐이다.

로스엘이 있는 곳과 미카엘이 있는 곳만이 빛나고 있다.

함부로 들여다 보았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이 작은 가상 공간의 복도는 흥미로웠고 이곳에 맴도는 힘도 흥미롭다.

주인 없는 세피로트의 좌에도 그 자리의 원주인이 지녔던 힘의 잔재만은 남아있다.

하나하나 뜯어 씹고 뜯고 맛보고 싶다.

[핫……!]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이 흐르고 있었다. 입으로 맛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일까.

슥슥 문질러 닦고 라파엘의 자리를 찾는다.

여기서도 중요하다.

남의 힘이다. 라파엘 본인이 이 힘을 되찾는 것에 관심이 전혀 없기에 방해가 있지는 않겠으나 어쨌건 편법이요 꼼수를 동원한 비틀기다.

아빠라면 이렇게 하겠지.

그리고 성공하겠지.

미아도 성공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남의 힘을 다루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지극히 비주류로 취급되는 NPC들의 전유물인 주술을 이전부터 보아왔다.

트동트 영감님은 이미 일선에서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으나 왕국 이전의 구간에서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베풀었던가.

노심을 만드는 것도 실피드를 다루는 것도 그 근간에는 주술의 요령이 깃들어있다.

늘 그렇다.

달라지는 것은 스케일.

힘들어지는 이유도 힘의 크기.

조금 더 정밀하고 조심스럽게만 하면 평소처럼 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주인이 있던 자리의 열기는 강하다. 문을 열고 사막의 삭풍을 맞이했다.

휘몰아치는 화염과 폭풍은 미아를 잡아먹을 듯이 닥쳐왔다.

사실 이제는 미아가 훨씬 더 잘하겠지만, 그럼에도 미아는 트동트 영감님의 요령을 떠올렸다. 틈틈이 전수해주던 주술의 요령.

늙은 오크는 작고 어린 흡혈귀를 손녀처럼 아꼈다.

아서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실제로 더 할아버지 같다고 느끼는 것은 트동트 영감님이다.

그런 분이 무기를 내려놓았을 때는 미아도 왠지 우울했었지.

몰아치는 바람이 잦아든다. 더 정확히는 주변에 모여들고 있다.

머금은 모래들이 가라앉고 이글거리는 태양도 한풀 꺾인다.

미아는 천천히 세피로트의 좌를 제어해가기 시작했다.

물론 천천히라고는 해도 엄청난 속도의 계산과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영역까지 온다면 마법 역시 무술과도 흡사한 점이 있다.

이성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한다.

계산만이 아닌 동작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소매틱이지만 단순한 소매틱과는 다르게.

미아는 이제 아빠나 엄마의 동작을 떠올리고 있다.

부드럽게 움직이면서도 강한 힘들을 흘려내는 요령.

배우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늘 봐오던 게 이것이니까.

바람이 잦아든다.

열기도 식어간다.

오른손에는 태양과도 같은 화염을, 왼손에는 휘몰아치는 바람을.

적으로 겪을 때는 두려운 힘이었으나 자신의 것이라면 이보다 든든할 수 없다.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힘의 장막이 갈라진다.

날뛰는 힘 사이에서 좌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주인 잃은 힘이여. 복종하라!]

블랑쉐에게 배운 멋있는 말들 중 하나다.

실제로 그 말을 통해 제어를 벗어나려던 소용돌이들이 진정했다.

말이란 의지의 표명이요 의지는 곧 마법의 근간이다.

미아는 만족스럽게 걸어가서 좌에 앉았다.

모두가 언제고 마법의 신좌에 미아가 앉을 거라 여기고 있지만, 진짜로 이런데 앉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두근두근하다.

“필멸자란건 생각보다 대단한 것들일지도 모르겠군. 미카엘이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야.”

라파엘이 그리 중얼거림과 동시에 미아가 눈을 떴다.

“오오오오!”

그리고 벌떡 일어나더니 양 팔을 벌렸다.

한 쪽에는 바람이 다른 쪽에는 열기가 맴돈다.

“이거봐! 이거봐! 성공했어!”

“진짜네요.”

“와…….”

그 이론은 이해할 수 없으나 결과는 보면 안다.

리온과 라리사는 눈을 크게 떴다.

맴도는 힘은 틀림없이 권능이요 신성이다.

후천적으로 얻을 수 없는 힘.

태어날 때 이미 가지고 태어나야만 하는 압도적이고도 강력한 힘.

존재 자체가 힘인 것들에게만 허락된 상징성 짙은 힘이다.

라파엘이 여전히 브릿지 자세를 한 채로 재주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은 빌려주지. 대신 나를 가브리엘에게 데리고 가라. 혹은 가브리엘을 이리로 데리고 와라,”

“껍데기라면서요?”

“그 껍데기를 사랑하고 있다.”

이 정도로 단호하면 놀릴 생각도 안 든다. 그냥 그런가보다 싶지.

미아는 라파엘에게 말했다.

“계속 그러고 있어주세요. 약속은 지킬게요.”

“그래.”

리온은 어째서 중계하는데 가장 적합한 자세가 브릿지인지 새삼 의아해졌다.

당사자들이 눈곱만큼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죠? 바깥에는 미카엘이 있지 않을까요?”

“전투가 시작되면 탈출하자. 리온, 라파엘을 챙겨줄래?”

“……저 자세 유지해야하죠?”

“라리사랑 둘이서 들면 되겠다.”

팔짱 낀 브릿지 라파엘이 거만하게 말한다.

“조심스럽게 다루어라 필멸자들아.”

그냥 던져버릴까.

리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미카엘은 자신이 있냐 없냐를 따지면 있었다.

천상의 도시는 유배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실패하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그 근거는 유배자들을 보며 배운 것들이었다.

바벨의 자식인 그에게 시간은 거의 무한할 정도로 존재한다.

하고자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건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말이다.

미카엘이 특별히 검술이나 마법에 재능이 있지는 않았다.

가지고 태어난 힘을 다루는 것과 필멸자들의 기교는 전혀 다른 것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미카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수만년을 투자한 끝에 미카엘은 바벨의 자식들이 취하는 힘을 다루는 방식이 꽤 별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힘겨루기만을 생각한다. 한쪽의 생명이 다할때까지 서로의 상성만을 고려하고 힘을 휘두를 뿐이다.

그래. 그건 더 가공될 수 있는 힘이다.

철광석 원석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제련하여 단조하고 검을 만들어 휘두르는 편이 낫다.

그런 당연한 이치를 너무 강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다들 몰랐다.

필멸의 지혜라는 것은 바벨의 자식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본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기분 나쁘게 싸우는구나.]

“그럼 좀 꺼지지? 내가 여기 있는 한 쉬이 함락되진 않을 텐데.”

성배의 힘은 요새를 덮고 있다.

고위 악마가 셋이나 나타났음에도 미카엘은 그것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저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요령에 따라 날카롭게 찔러드는 인간형의 천사에게 거대한 악마들은 쉽게 승리할 수 없다.

흘리고 쳐내고 밀어내고.

기존의 필멸자들은 힘의 크기에서 너무 큰 타이가 있기에 불가능한 것을, 미카엘은 동등한 힘을 내비치며 해낸다.

바알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알면서도 당하는 홀린듯한 느낌.

빛의 천사는 이전부터 전장에 나서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래도 짓누르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동시에 지극히 바벨의 자식다운 사고로 생각한다.

아직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대로 단 셋이서 공성을 하는 것은 썩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

바알의 자리를 노리는 악마군단장은 많다.

누구건 그저 이 세상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악마들이다.

[뭐, 급할 필요는 없지. 빛의 천사여. 이제 네겐 동료도 없지 않나.]

“그러니까 좀 꺼져라.”

[흐흐.]

미쳤을지언정 멍청하진 않은 바알은 굳이 지금 결말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필멸자들이 영원이라 부를 시간만큼 싸워왔다. 그 끝이 얼마나 늦어지건 달라질 것은 없다.

[나헤마를 잡아와야겠군. 그 녀석이라면 좀 더 잘 알겠지.]

미카엘은 조금 곤란하다고 생각했으나 티를 내진 않았다.

태연하게 검을 들고 빛을 뿌리고 있는 천사를 보며 바알은 무수한 손들 중 하나를 휘저었다.

[돌아간다.]

바알이 멀어져간다. 미카엘은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유배자들이 뭔가 해내지 않는다면 천상의 도시를 비울 수가 없다.

바알은 그가 본모습을 드러낼 때 더 강하다고 여기겠지만 미카엘은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세피로트가 파괴되는 것만큼은 곤란하다.

이제 메타트론을 찾아볼까.

우리엘이 있기는 해야겠다.

유배자들이 슬슬 뭔가해서 돌아올 때가 되어가는데.

그리고 하강한 미카엘은 인상을 잔뜩 찌푸려야 했다.

“껍데기에 힘이 남아있나? 그럴 리가 없는데.”

살려둔 것은 단지 변덕이다. 정 필요하다면 다시 세피로트에 앉혀볼 생각도 있었다.

어차피 껍데기.

어떻게 두어도 무방할 것이라 여겼는데.

“라파엘을 던져주면 안 되었나보군.”

사막의 자취만이 슬쩍 남아있는 감금장소는 텅 비어있다.

미카엘은 바알이 제법 멀리까지 떠날 동안 보고 있었다.

아마 잠깐은 그가 사라져도 눈치 채지 못하리라.

“잡으러 가야겠군.”

가벼운 생각이었다.

힘의 잔재는 별것 아닌것처럼 보였고 일대일이라면 결코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아니, 라파엘이라면 셋이 덤벼도 우위를 점할 것이다.

필멸자들에게 있는 것은 이 구도를 어지럽히는 것이지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막의 자취를 보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것을 따라 나섰다.

미아는 몸의 변화를 느꼈다.

작고 작은 은발의 마법사는 제 평생 같은 색이었던 모발의 색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핑크색이네요.”

“점점 붉어지는 과정인 것 같아.”

“라파엘의 영향일까요?”

라리사는 브릿지 자세의 라파엘의 머리부분을 붙잡고 있다.

리온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다.

라파엘은 거의 알몸이다. 다리 쪽을 잡는다면 좋지 않은 풍경이 비친다.

하지만 비행이 힘들지는 않았다.

삭풍을 부드럽게 다루며 미아는 앞으로 쑥쑥 전진했다.

쥐새끼는 초주검이 된 상태로 미아에게 안겨있다.

오늘 너무 많은 힘을 방출했다. 이 성배의 짐승에게 휴식은 거의 없었다.

“좋아. 여기쯤에서 기계무덤으로 가자. 그럼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을 거야.”

“그곳에 가브리엘이 있는가!”

“그래요. 조금만 더 그러고 있어 봐요.”

제 일임을 안 쥐새끼가 수염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든다.

기운이 없어보인다. 미아가 위로했다.

“마지막이야. 이제 쉴 수 있어. 찾을 수 있지?”

[노력하겠습니다! 작은 누님…….]

뒤로 가면서 힘이 빠진다.

미아는 쥐새끼를 너무 혹사시킨 게 아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죽으면 죽는 대로 온전한 성배로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정도 들었고, 그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할 수 있을 거야. 해피엔딩을 위하여!”

[오우!]

물론 미아는 그런 일이 있기는 쉽지 않을 것을 안다.

세계의 구멍을 찾으며 쥐새끼가 킁킁댄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빛이 한 줄기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 빛줄기는 서두르지 않았다. 먼 곳에서 이쪽을 보고 빛을 잦아들게 만들었다.

소리 없이 다가오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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