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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68화 (43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68화

메인 던전 - Lv.5912 라파엘(5)

미카엘에게 유배자란 특별히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보이는 듯한 모습을 취하는 것도 일종의 전략에 가깝다.

그야말로 유배자나 취할 법한 잔재주다.

그러나 승리에 정당함이 있던가?

이긴다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법.

탈출의 방식은 눈치챌 수 있었다. 아주 어이가 없다.

“세피로트를 해킹이라도 한 것인가? 원격으로? 그게 가능해?”

찬찬히 가설을 만들어본다.

라파엘의 껍데기는 따지고 보면 세피로트의 부산물.

그렇다면 거기서 어떤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마법의 근본은 정신이다 보니 상징성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그게 가능하다 치더라도 말이지.”

그걸 이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미카엘은 당연히 마법에도 조예가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전사에 더 가까운 그에게 마법은 깊이 연구한 분야가 아니다.

“쯧쯔.”

그래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눈앞에서 빛나는 것은 라파엘의 힘.

* * *

* * *

* * *

하지만 그 주체는 라파엘이 아닌 그가 연금해 둔 마법사다.

“라파엘은 뭐 이상한 것에 눈이라도 떴는가…….”

죽음의 충격이 그리도 컸단 말인가?

알몸인 것이야 과거에는 좀 입고 다니라고 갈궈야 했었기에 그러려니 한다.

브릿지 자세는 또 뭘까.

알 수 없는 것보단 확실한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저건 짐승이 된 성배였지.”

함께 둔 것은 탈출 의지가 없으리라 여겨서였다.

마법사는 강력한 존재지만 준비 없이 단독으로 무언가 해낼 수 있는 클래스는 아니다.

“과연, 일반적인 유배자 파티는 전혀 아니란 말이지.”

미카엘이 알기에 그런 상황에서 단독으로 뭔가 해낼 수 있는 마법사는 귀하다는 말로도 모자라다.

주어진 것도 준비도 없었을 터.

그로부터 탈출할 신의 권능도 없다. 다른 세계의 신들은 그보다 강하지 않다.

심연의 권능만큼은 경계했으나 그것도 없었다. 심연의 신도는 사수 클래스의 악마 하나뿐이었으니.

“충분한 고려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상상을 뛰어넘는군.”

그가 대하는 유배자 파티의 수준을 더더욱 상향 조정한다.

가브리엘을 쓰러뜨린 무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유능하고 한 명 한 명이 이 메인 던전을 찾아올 파티의 리더가 될 만한 재목이다.

“세상을 더 어지럽혀라. 최후의 승자는 결국 내가 될 테니…….”

야망이라.

가끔 이것도 허무하긴 하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미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더라고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당장 하고 싶다.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도망친 유배자 무리의 방향을 본다.

쥐새끼 모양의 성배가 무언가 찾아낸다.

“그간 저렇게 드나들었군. 저길 통과하면 그곳이 나오나?”

메타트론도 놓치고 저 파티도 수시로 놓쳤다.

어디로 향했는지 명확히 알기 어려웠다.

검은 구멍이 열리며 무엇인지 확실해진다.

미카엘을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한 줄기 빛이 되었다.

굳이 멀리 온 이유는 전투가 충분히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거기에 미카엘은 어딘가 미심쩍음이 많다.

함부로 세계의 구멍을 찾아 들어갔다간 그 흔적을 추적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아 본인이라면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굳이 조금 떨어진 곳까지 나왔다.

미카엘이 더 이상 종적을 찾을 수 없도록 말이다.

그냥 빨리 튀는 게 정답이었나? 벌써 추격해 왔다고?

미아는 자신이 어떻게 지금 상황을 설명할 시간조차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꽤 먼 곳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순간 느낀 것이었다.

상대는 숨길 생각이 없었고 그럴 이는 미카엘뿐이다.

안이했나?

그리 생각하면서도 미아는 결심한다.

리온과 라리사는 돌아가야지.

아까 전까지 태평하게 나누던 대화 때문이 아니다.

그 이전에 리온을 좋아했던 기억, 스쳐 지나간 첫사랑 때문도 아니다.

한순간 미아는 그 결심의 이유를 깨달았다.

엄마도 아빠도 같은 상황이면 그랬을 것이라고 여겨져서다.

심지어 아서와 에길, 제니도 그 누구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어쩌면 블랑쉐 이모조차도.

그럼 미아도 그래야 한다.

의무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게 옳다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발로 걷어차 버렸다.

쥐새끼가 연 구멍 속으로 엉덩이를 걷어차인 라리사가 빨려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리온도 떠민다.

“가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리온은 고개를 돌리며 당황했으나, [마왕]조차도 세피로트의 힘을 빌리고 있는 미아를 상대로 저항하긴 힘들다.

쥐새끼는 생각보다 상황 파악이 빨랐다.

어쩌면 구멍을 찾는 감각으로 미카엘의 등장을 미아와 거의 동시에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금빛의 쥐는 두 발로 일어서서 경례를 하더니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라파엘과 미아만이 남았다.

빛줄기가 눈앞에 당도한다.

미아는 팔을 내밀었다.

태양이 피어오르고 그곳에 빛이 부딪혔다.

라파엘은 꽤나 불편한 심정이 되었다.

이 거리에서 이런 충돌에 휘말리면 죽잖아.

그럼 가브리엘을 보러 갈 수가 없다.

이 마음을 확인할 수 없다. 전달할 수도 없다.

브릿지 자세를 해제한 채로 움직이려고 했다.

그 순간 강한 억제력이 라파엘의 몸을 감싼다.

제 자신의 힘임을 알았다.

[그 자세 유지해요. 그래야 싸워 이기니까.]

이겨?

코웃음 치지는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

가브리엘이 쓰러질 줄은 알았는가.

자신이 미카엘에게 죽을 줄은?

미카엘이 이렇게 활발하게 쏘다니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란 생각이 든다.

충분한 위기상황이지만 바벨의 자식에서 비롯한 인격은 특유의 태연함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사실은 자명하다.

다만 이 자세로 계속하여 주변에 띄워 올려지듯 배치당하는 것만은 느낌이 이상하다.

그 덕분에 일어나는 일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흥미로웠다.

라파엘은 미아가 힘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며 조언했다.

“그게 아니다. 더 크게 떨쳐라. 내가 사용하던 힘은 그렇게 얕은 것이 아니니.”

재주를 좀 부린다고 해봐야 필멸자.

역시 이런 규모의 힘을 다루는 것은 처음이니 부족함이 많…….

라파엘의 생각은 거기서 멈칫했다.

중얼거리듯 말한 조언을 들은 듯 힘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고 주변에 사막이 형성된다.

미카엘은 그 속에서도 영역을 형성하지 않은 채 인상을 쓰고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과 다름을 깨닫는다.

미카엘은 서로의 영역을 맞대는 일반적인 권능의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

다음 순간 사방을 뒤덮었던 열풍의 사막이 한 점으로 좁혀들었다.

미카엘이 있던 자리였다.

시공간이 뒤틀리는 괴이한 충격음이 들려온다.

공간 자체가 진동하고 세상이 울리는 소리는 누가 듣더라도 위화감이 큰 소리다.

라파엘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미카엘이 한 점으로 압축된 자리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오더니 검이 솟아나 쪼개어 나타났다.

멀쩡해 보였으나 적잖이 당황한 듯해 보이는 빛의 천사가 말한다.

“뭘 한 거지?”

미아는 심호흡을 하며 제 주변을 맴도는 힘을 가다듬고 있다.

울림처럼 전해지는 목소리.

[라파엘, 당신을 보스로 마주하고 생각했는데.]

은빛이 감도는 분홍빛 머리카락이 조금씩 진해지기 시작한다.

라파엘은 점점 타는 듯한 붉은 머리에 가까워지고 있는 악마를 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당신의 힘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미카엘도 같은 것을 느낀 듯했다.

“라파엘.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책임을 나에게 돌리는가.

당연하지만 라파엘은 모른다. 그냥 중계기가 되기 위해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 이 작고 어린 악마가 제멋대로 하는 것이다.

[라파엘, 당신의 순수한 힘으로는 미카엘을 이길 만해요?]

“미카엘이 본체를 드러내면 역부족이겠지.”

[인간형일 때는 괜찮다는 거네요?]

“세피로트란 그런 것이니까.”

미카엘이 검을 든다. 미아가 팔을 든다.

지팡이나 완드조차 모조리 압수당했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마법사였다.

아니, 힘의 근원이 마력이 아니니까 권능사라고 해야 하는가?

라파엘은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카엘은 상성을 따져야 함을 느꼈다.

라파엘과 그는 서로 접점이 없는 관계다.

태양과 바람의 천사.

그리고 지성과 빛의 천사.

유리할 것도 불리할 것도 없다.

오싹함이 닥쳐온다.

상대가 무엇을 할지 모른다.

힘은 거의 동격인 상태로.

하지만 여기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도 큰 폭거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마지막까지 남겨둬야 할 카드.

소모할 수는 없다.

검을 든다. 검술.

그가 익힌 유배자로서의 모든 것이 지금 이곳에서 동원되어야 한다.

헛웃음이 나온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붉은 머리의 악마는 이미 신이나 다름없는 위용을 뽐내며 사방을 사막화시키고 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힘을 강렬하게 간섭하고 있어 일방적인 권능의 싸움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억제라고? 잠깐 힘을 빌린 필멸자가 온전한 바벨의 자식을, 단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을 뿐인 자신을 억제한다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지.

하지만 언제나 냉철하게 그를 지배해 온 지성이 당황을 가라앉힌다.

“흐. 쉽게 하는 것은 아니로군. 안 그래?”

여유는 이쪽에 있다. 저쪽은 얼핏 강대해 보이나 틀림없이 무리하는 중이다.

빌려온 힘이란 그런 법.

흑마법사 클래스를 겸하는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저 말도 안 되는 적응력과 통제력의 근원은 주술인가?

내가 본 것 중 최고의 주술사로군.

미카엘은 한 발짝 내디뎠다.

그리고 빛이 되어 상대를 베었다.

닿지 않는다. 모래바람이 되어 흩어진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눈부신 태양.

빛의 천사임에도 눈이 멀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을 지금 처음 깨닫는다.

라파엘은 힘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힘은 이렇게 사용하라고 주어지지 않았다.

상상도 못 한 형태로 비틀고 짜내며 우그러뜨려 편한 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놀랍도록 효과적이다.

“배울 점이 많군!”

날개가 그슬렸으나 다시 빛이 된다.

검 끝에 신경을 집중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배자는 모두 우리를 상대할 때 이런 기분인가!”

검은빛이 되고 빛은 검이 된다.

이윽고 미카엘의 몸은 형체를 유지하지 않은 빛살이 되었다.

사막을 유린하지는 못하지만 그 틈에서 쉴 틈 없이 움직이며 검을 휘감은 휘광으로 상대의 영역을 찢어발긴다.

어느 순간 시간의 흐름도 놓쳤다.

그 어느 순간보다 제 한 몸에 익힌 기술에만 집중한다.

다시 시간 감각이 돌아온 것은 은빛으로 돌아온 마법사의 머리카락을 보며 그 목덜미에 검을 겨눈 순간이었다.

마법사가 지친 표정으로 손을 든다.

“졌어요.”

“내가 널 죽이지 않을 것을 알았나?”

“이제 궁금한 게 많아졌겠죠?”

“살려둘 수밖에 없군. 유배자. 아까 그걸 어떻게 했는지 설명해 봐라.”

“라파엘은 챙겨가도 되나요?”

“성배 없이 같은 것을 또 할 수는 없겠지. 안 그러나?”

“이제 얌전히 포로 할게요.”

“그렇다면 좋다.”

미아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카엘은 의외로 로스엘만큼이나 유배자에 흥미가 많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흥미로울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그리고 보여줬다.

가브리엘과 라파엘을 보며, 저거 저렇게 쓰는 거 아닌데 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미카엘은 그에 응했다.

‘방이 조금은 더 좋아지려나?’

식사도 챙겨주면 좋겠는데.

한편 이미 미카엘의 안중에 리온과 라리사는 사라진 것 같다.

최악의 상황일 수 있었으나, 그 둘을 구했다!

동시에 걱정거리도 하나 생겼다.

순수하게 전사로서, 엄마나 아서가 미카엘을 이길 수 있을까?

권능을 펼치는 것을 제한당한, 어찌 보면 바벨의 자식으로서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오로지 그 힘을 담아낸 검만으로 미아를 이겨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2페이즈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가망조차 없었다.

미카엘은 딱히 바벨의 자식이 아니더라도, 너무 강하다.

미아는 조금 고민을 더 하다가 말기로 했다.

‘아빠가 알아서 하겠지.’

아빠는 이길 거니까.

미카엘이 탈진한 미아를 한쪽 팔로 안아 든다.

반대편에는 라파엘이었던 것의 날개를 아무렇게나 들었다.

“어, 미카엘. 잠시만. 이 자세로 속도 내면 나는…….”

“죽은 자는 입을 다물도록.”

세상이 번쩍였다.

미아는 미카엘의 권능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다면 활용도가 꽤 높을 거라고 느꼈다.

세피로트 자리 좀 빌려달라고 해도 안 빌려주겠지?

아무튼 재밌었다.

그리고 다행이다.

긴장이 풀리니 눈이 감긴다.

배도 고프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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