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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69화 (44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69화

메인 던전 - Lv.12500 나헤마(1)

솔로몬은 진정으로 이 제자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인간 정신의 깊은 탐구를 추구하는 가운데 조금 지루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변화란 게 사라지고도 무수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 조금의 신선함도 아주 새롭게 다가온다.

기실 그가 이런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런 일을 기대하면서인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문득 말했다.

[크크크, 아직 세상에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가.]

불현듯 인정한 사실이었고 그래서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떠들어대던 제자가 당황하는 것이 보인다.

“어, 그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죠?”

이 제자는 약삭빠르고 재수 없다.

음, 얼굴만 봐도 재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제 주제를 파악하고 납작 엎드릴 줄 안다.

역시 나군. 제자 하나는 잘 키웠어.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나.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기억을 추출해 정신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려 했으나 그것만은 교묘하게 피해간다.

* * *

* * *

어느 순간 서로가 알고 있다.

화기애애한 대화의 장 같지만 넌지시 떠보기의 연속이다.

제자는 스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아는 스승은 이 녀석의 의중이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

직감이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 굴 뿐인 녀석 같지는 않다.

오래 살면 사람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 제자는 걸출한 녀석이다.

이 던전이 아니라면 파티원들과 함께 마술사왕이라고 까지 불린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다.

넌지시 흘러나오는 지식, 인간의 깊이, 고련의 흔적.

모든 점이 완성형에 가까운 유배자의 형체를 갖추어 제시한다.

솔로몬은 그렇기에 웃었다.

[맹랑한 녀석이로다. 제법 마음에 드는군. 원하는 게 뭐냐? 말해 보아라.]

“예?”

[네놈 뭔가 나에게 바라는 게 있지 않느냐.]

솔로몬은 아주아주 관대해지기로 했다. 그러고 싶은 기분이다. 제자가 자신이 아는 것을 남김없이 고한다.

이토록 교활한 녀석이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니 그에 호응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뜻밖의 제안에 나는 생각했다.

뭐지?

왜지?

솔직히 이젠 바라는 거 없는데. 살려만 주면 만족한다.

끄집어내서 깽판을 쳐볼 생각도 간 좀 보기 전에 한 거다.

돌고 돌아 이렇게 되었다면 솔로몬을 충동질하거나 화나게 해서 밖으로 내보내는 건 물 건너갔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아진다.

그러면 굳이 하지 않아도 좋다.

더 큰 혼란은 우리 파티의 행보에 더 큰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그게 없어도 이겨낼 수는 있다.

지금은 내 목숨이 가장 중요한 국면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다 내놓는 와중이었다. 권능으로 되돌아가기 전 솔로몬의 반응을 보면 차라리 솔직하고 기특한 제자인 편이 생존율이 높아 보여서다.

그런데 뭔가 들어줄 것처럼 말한다고?

더 위험하네.

살짝 식은땀이 날 것 같다.

죽어도 다음 기회는 있지만 동료들은 없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살려달라고?

그건 안 좋아 보인다.

지금 솔로몬의 사고 흐름을 어떻게 추적해 보자면 내가 기특해서 선심을 쓴 것이다.

그 기특함은 제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사실대로 고하는 말 잘 듣고 유능해 보이는 제자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제멋대로인 솔로몬의 특성상 여기서 갑자기 넙죽 엎드리며 살려만 줍쇼 같은 소리를 하면 기분이 팍 상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심리는 그거겠지.

응? 기껏 기특한 제자 잘 키워놨더니 아주 추하게 목숨 구걸을? 재미없군.

슥삭.

놀랍게도 체험담이니까 확실하다.

그럼 다른 방향으로 궁리해 보자.

너무 파격적인 걸 요구할 수는 없다.

찰나의 호의에 불과한 것에 기대어 대단히 달달한 꿀을 빨려고 했다간 괘씸죄로 즉결처형이다.

이 양반의 호의는 도통 호의가 아니란 말이지. 도리어 사람 말려 죽이는 사악한 함정에 더 가깝다.

거절하면 또 감히 내 호의를 거절해? 하면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겠지.

이게 미연시라면 만든 녀석은 좀 맞아야 한다.

차분하게 고심한다.

생각의 속도는 충분히 빠르다. 아까부터 솔로몬의 눈치를 보며 워밍업을 끝낸 덕이다.

솔로몬도 나도 대충 지금 이 상황을 안다.

서로의 의중도 어느 정도는 알 것이다.

내가 지금 죽도록 머리를 굴리는 것도 뻔히 보면서 재밌어하고 있겠지.

시험이란 인식도 없을 거야. 미친 노인네.

그리고 마침내 적절한 대답을 짜내었다.

“제가 딸이 있습니다.”

[뭣이?! 벌써 거기까지!]

아니, 왜 이거에 놀라지?

솔로몬이라 솔로의 왕이신가.

[제자 녀석이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구나.]

“친딸은 아니고 수양딸입니다. 왜 그거 아시지 않습니까. 유배자로 서버를 돌아다니다 보면…….”

머리통에 번갯불이 번뜩인다.

초차원적인 딱밤을 날린 솔로몬이 불쾌하게 말한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을 해라 애송이.]

“아. 네넵. 어쨌든 ”

미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미아의 재능에 대해서도 말한다.

솔로몬은 유능한 유배자였지만 그에게 주어진 환경이 서버 탐사를 원활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따라서 유배자로서의 지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가 이 왕국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왕국이 너무나도 발전한 후였다.

그래서 그는 배척당했다. 유능하기에 살아남았을 뿐이다.

나헤마처럼 말이다.

그러니 미아 같은 랜덤 NPC의 존재는 모른다.

[원소의 눈이라. 아주 좋은 스킬이지.]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요. 학구열도 대단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지?]

몇 가지 사례를 언급한다.

몽환의 숲을 구현했다가 나를 하나 더 불러냈던 것.

[그럼 너를 최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저런 쯧쯔.]

심연의 구멍을 뚫었다가 미궁 시스템에 제재를 당했던 이야기.

[호오, 마법을 익힌 지 몇 년이 되었다고?]

“어, 믿기 힘들 수도 있지만 반년 남짓입니다.”

[네놈보다 낫군.]

당연히 나아야지.

그리고 마법적으로 유니크 스킬을 해명하려고 시도하다가 도시를 반파시킬 뻔한 이야기라거나.

[마법사라면 모름지기 자폭 스위치는 만들어둬야 하는 법이지.]

“……통제가 불가능하면 그냥 날려 버려야 하니까요?”

[그 경우도 그랬으면 피해가 적었을 것 아니냐.]

“수습은 했으니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은 제자의 제자인 미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지? 분명 파티원들 중에는 없었는데.]

“잡혀 있습니다.”

[뭣이?]

“미카엘에게 억류되어 있는지라…….”

[확실히 전문 마법사가 파티에 보이지 않긴 했지.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하라.]

된 것 같다.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가능한 미카엘을 나쁜 놈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미아를 깜찍하게 묘사했다.

솔로몬은 끝까지 가만히 듣고 있더니 말했다.

[좋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내 한 몸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설 필요가 있겠군.]

리치가 몸을 일으킨다.

미아야 팔아먹어서 미안하다…….

그래도 일단 나는 살아남았군.

그렇다 하더라도 솔로몬이 단독으로 미카엘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카엘의 상성에 맞춘 장비를 준비하지 않더라도 충분해진다.

같은 등급의 보스.

상성상 불리하더라도 귀여운 제자의 제자를 굳이 보겠다고 의지가 불타는 마술사왕이다.

날먹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악마들은 어떻게 하지?

희우가 이미 나헤마와 교섭을 끝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대단한 불안은 없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알아서 일이 잘되고 있으리라 믿어야 한다.

그것이 신뢰다.

아서는 태연한 표정으로 물건을 건넸다.

잠시 후, 어둠의 장막 속에서 나헤마가 속삭인다.

[이건 확실히 스승님의 물건이 맞군. 이렇게까지 진행되었나.]

[악마 죽이기].

그런 이름의 아티팩트.

개념적으로 모든 것이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만 집약된 일종의 개념병기다.

속성의 개념이 아니다.

그저 상대가 악마인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추가 피해를 가한다.

하지만 그걸 제외한 다른 성능은 평범하다.

솔로몬이 개입하지 않고 평범하게 보스전을 했다면 악마인 아서는 전면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죽을 수 있으니까.

[이야기가 성립하겠군. 이 정도의 물건을 지불한다면 원하는 것을 들어보아야겠어. 이 물질주의의 악마, 나헤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속삭이는 목소리는 뱀과도 같다. 뱀은 말을 할 수 없음에도 그리 연상되고 만다.

쉿쉿하는 느낌이 아서의 머릿속을 환청처럼 메운다.

어두침침한 요새는 좀처럼 빛이 들지 않으니 더더욱 이 곳을 음산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아서는 그래도 평이하게 말했다.

“바알의 목.”

[말도 안 되는 것을 원하는군.]

“하지만 당신도 원하지 않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저쪽 이야기는 들어봤을 텐데.”

[라지엘을 알고 있군.]

“그녀가 우리 이야기를 다 전했을 것이란 점도.”

짧은 침묵이 감돈다.

[하지만 바알의 목을 얻은 다음은 뭐지? 내 목인가? 유배자라면 이곳의 클리어가 목적이겠군. 내가 그걸 바랄 것 같나?]

“알고 있는 엔딩이 무엇이오?”

[무슨 말이지?]

“이 테마의 엔딩에 대해 알고 있냐는 말인데.”

다시 침묵이 감돈다. 이번에는 나헤마가 말문이 막힌 듯한 느낌.

[흐으, 굉장히 자신만만하군. 이 세계의 끝을 볼 자신이 있단 말인가?]

“없으면 이걸 어떻게 구해왔을까?”

[인정하지. 나는 모른다. 그 정보까지 값을 쳐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래도 바알의 목에는 모자란다.]

어차피 내버려 둬도 노릴 녀석이 흥정은.

아서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계속해서 말한다.

“당신이 엔딩의 한 축인 것을 아는지 모르겠군.”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모를 테지? 이건 예언이요. 당신이 어떻게 이 세상을 정복하게 될지에 대한 예언.”

[……그렇군. 게이머인가.]

바깥에서 모든 것을 알고 들어오는 존재.

나헤마도 신좌에 있던 시절 그런 이들을 중용하며 정보를 얻고자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의미 없는 짓이었다.

신좌에 도달한 유배자보다도 더 양질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도 대체 가능한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곧 그만두게 되었다.

[듣고 결정하겠다.]

“값은 치르셔야 하는데.”

[듣고 하지 않겠다면 다른 방식으로 값을 치르도록 하지.]

“어떻게 말이오?”

나헤마가 쉿쉿 거리면서 웃는다.

[메타트론의 목.]

아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메타트론은 특정 루트가 아니라면 힘을 잃은 상태일 것인데. 그가 보스로서 등장하는 일은 없도록 진행하고 있소. 아직까지는 말이지.”

그러므로 목을 주겠다는 말은 메타트론이 힘을 되찾은 후에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서는 그래서 강하게 발언했다. 거기까지 염두에 둔 것이 맞냐고.

나헤마는 소리죽여 대답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이건 또 리더가 아는 것과 조금 달라진 모양이군.

아서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어차피 로스엘 엔딩을 목표로 한다면 다 죽여야 한다.

괜찮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아서는 어딘가 그런 기분을 느꼈다.

이 세계의 강자들 머리 위에.

하나, 둘, 킬마크가 떠오르고 있다.

죽음의 실마리가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걸 끝까지 따라가면 이 메인 던전이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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