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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70화 (44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70화

메인 던전 - Lv.12500 나헤마(2)

미아는 오래 기절하지는 않았다. 내 것이 아닌 힘을 빌려오는 주술이란 그런 것이다.

물리적 소모보다는 정신적 소모가 더 크다. 그러니 회복도 빠르다.

눈을 뜬 곳의 위치는 먼저 연금당해 있던 곳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미카엘은 미아를 제 곁에 두려고 했던 모양이다.

몇몇 천사들이 주변에서 호위처럼 서 있다. 호위가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단지 권위를 위해 서 있다는 느낌.

그리고 미카엘의 옆에 마련된 자리에 누워 있던 미아는 당연하게도 그에 준하는 권위를 부여받고 있다.

권위라는 것은 시선이 만든다.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권위가 된다.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모두가 그걸 알 수 있는 그런 위치.

천상의 도시 상층 요새의 꼭대기에 존재하는 옥좌가 그런 곳이다.

세피로트의 나무가 있던 신전과는 반대 방향에서 좀 더 세속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것 같은 왕의 자리.

미아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미카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 *

미카엘은 이 작은 악마가 눈을 뜨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군.”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아까 한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면 좋겠어.”

분위기와는 다르게 미카엘은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였다.

되레 무료하다는 듯이 옥좌에서 고개를 기울여 기대고 있다.

미아는 다시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 상황에서 탈출은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하다.

미카엘이 자신을 나쁘게 대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될 것 같다.

그럼 아빠가 구하러 오겠지.

“마법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부터 알아야 설명할 방식을 정할 수 있어요.”

“그럼 그 이야기부터 해보지.”

미카엘은 놀라울 정도로 순순했다. 위대함의 편린이라 불리는 강력한 시나리오 보스 중 하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미아는 자신이 굉장히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다.

미카엘은 교사를 따르는 학생처럼 미아가 힘을 다루었던 방법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놀라운 점은 대단한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온이나 라리사보다 미카엘이 단순한 마법이라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건 과찬이야. 난 실제로 활용하는 일이 없거든. 이론뿐인 마법사는 진짜 마법사라고 할 수 없지.”

“그래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신 정도라면 어느 파티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마법사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마탑의 연구자가 될 수 있겠죠.”

미카엘은 여전히 무료한 얼굴로 대답했다.

“의미 없다. 나는 재능이 있는 게 아니야. 끝없는 시간이 있었을 뿐이지. 수만 년간 마법을 조금씩 공부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거다.”

“보통은 그걸 못해요. 인간은 누구나 그래요.”

“그런가? 그것까진 모르겠군.”

바벨의 자식은 이미 비범한 존재지만 미카엘은 개중에서도 한 번 더 비범하다.

미아는 그 사실에서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위대한 존재가 비범해지자 인간과도 같아진다.

미카엘은 필멸자처럼 생각하고 필멸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저 무료함이 그 증거다.

다른 시간 감각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20여 년을 세상에서 살아온 미아는 미카엘이 보내온 시간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쨌든 권능을 봉인하는 것은 제가 더 강해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먼저 걸었기 때문이죠. 이건 전투 마법 기법 중 하나를 응용한 심화 과정인데…….”

꼬르륵.

미아는 특별히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배에서 소리가 나는 법이다.

흡혈귀로 지낸 시간이 너무 길어 낯선 일이기도 하다.

“악마는 거의 먹지 않아도 문제없을 텐데.”

“어려서 그럴걸요.”

“자랄 때인가. 그렇군.”

미카엘이 여전히 턱을 괴고 기울인 채 이마를 두드렸다.

톡톡 소리가 난다.

“어린 천사라. 그런 게 이 도시에 존재했던 것이 너무 오래전이군.”

“천사들은 번식하지 않나요?”

“권속들은 모두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고 유배자의 피를 버리기 위해 천사가 되었다. 그럼 굳이 그러겠는가.”

생물의 본능이……. 생각해 보면 천사나 악마는 멀쩡한 생물이 아니다. 그 후에 욕구가 사라졌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천사.

유리를 비롯한 기천사들은 어렸다.

문득 생각해 보니 의아하다.

기천사가 어릴 필요가 있나?

만들어진 존재들인 기천사는 처음부터 성인인 것이 낫다.

생물의 흉내를 내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왜 그 기천사들은 아직도 어리지?

다른 일이 너무 많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세피로트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미아지만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짧은 혼란의 와중, 미카엘은 미아를 안아 들었다.

버둥거리며 내려가려고 했으나 미카엘이 고개를 젓는다.

“악마라면 경기를 일으킬 녀석들이 많지. 이렇게 가는 편이 확실할 거다.”

미아는 그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의외로 말이 통하잖아?

오히려 가브리엘과 라파엘이 더 보스다웠다.

이 천사는 마치 인간과도 같다.

그 본질이 어떨지는 몰라도 어떻게 잘 흘러가면 써먹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녀가 미카엘의 호감을 다소 산 것은 확실하다.

지극히 유배자처럼, 유배자도 아니고 마인드맵도 없는 미아가 궁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침착한 것은 쥐새끼였다.

[진정하십쇼! 작은 작은 누님도 생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미아를 부르는 기묘한 호칭을 정정할 생각도 못 하고 리온이 망연자실했다.

“생각이 있어도 그건 큰일이잖아!”

라리사도 파랗게 질려 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사도님들 파티의 일부가 갑자기 뛰어든 후에 패닉에 빠져있자 조엘과 릴리움이 나선다.

“무슨 일이신지요?”

사정을 듣고는 조엘도 침통한 신음을 흘렸다.

“그래도 단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님들이 보인 이적은 그 녀석에게도 새로운 것이었겠죠. 그렇다면 생포했을 겁니다.”

그 시점에서 리온은 미카엘과의 관계를 모두 숨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엘은 메타트론, 위대함의 편린 중 하나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말끝을 흐리며 명확하게 상황을 알려주지 않기 시작한다. 앞서 털어놓은 것은 ‘쫓기다가 붙잡혔다’였다.

라리사도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뜬 것 같은 표정을 순간 보인다.

“미카엘은 누구보다 유배자님들에게 관심이 많은 녀석입니다. 분석을 위해서라도 당장 어떻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기회는 있지요.”

그 말이 옳다는 것은 안다.

리온은 그러다가 탈출 중에 붙잡혔음을 알리지 않고서 희망을 찾은 얼굴을 해 보인다.

조엘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고 온천이라도 즐기는 것이 어떻냐는 말을 했다.

쥐새끼도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릴리움이 쓰게 웃으며 안내한다.

“성배를 찾아주신 덕분에 다른 천사들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긴 세월은 어떤 식으로건 정신을 괴롭히고 그러면 결국 몸도 괴로워지죠. 훌륭한 효능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욕이란 개인적인 일이다. 당연히 릴리움이 자리를 비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리온은 라리사와 의논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릴리움이 가지 않았다.

이 나이 든 여성 천사 역시 위대함의 편린 중 일각인 라지엘임을 알고 있다.

리온은 티 내지 않은 채로 당황했다.

릴리움이 태연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태연한 발언 속에서 무수히 많은 어떤 권능이 발현됨을 느꼈다. 지금의 대화는 결코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내용도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나헤마에게 전달받았습니다. 메타트론을 치겠다면 언제건 말씀하시지요.”

리온은 자신이 의문을 표하지 않았음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마왕]이라는 직함을 달고 오래도록 암약해 왔다.

메인 던전이라는 압박에 헤매고 있을 뿐, 무능하지 않다.

라리사 역시 슬쩍 리온을 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릴리움에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리온은 엄청나게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조각을 맞춰야 한다.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무언가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악마 측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가?

거기서 리온은 비로소 사실 놀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릴리움이 라지엘이며 내통자임은 나헤마를 통해서 알게 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럼 그냥 완전히 다 아는 척을 한다.

선생님처럼.

“당신이군요. 필요하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사도님들은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해주었습니다. 이대로 이곳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을 하신다면 생각보다 안전하실 수 있겠지요.”

라지엘은 그렇게만 말하고 가버렸다.

리온은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라지엘의 마지막 말을 깨달았다.

그건 일종의 통보였다.

라리사 역시 깨달은 모양이다.

“저거 그거지? 충분히 균형을 어그러뜨렸으니 이제 없어도 된다고.”

“메타트론의 목적에 어울려 주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럼 선생님이 저쪽에서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일을 진행했다는 뜻이야.”

“메타트론을 친다는 건 무슨 소리지?”

리온이 신음한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라지엘이 나헤마와 한패인 건 확실하지.”

“메타트론은 그걸 전혀 모르고 말이야.”

“그럼 나헤마 루트로 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이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리온이 정신없이 생각한다.

라지엘이 이렇게 묻는 이유?

저들에게 파티 내의 입지에 대해 알려져 있지는 않다.

위대함의 편린들은 그런 디테일한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다.

나헤마와 라지엘은 어떤 연락 수단이 있다.

“그럼 그냥 나헤마를 통해 들어도 되잖아?”

“아니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헤마와 성공적으로 교섭했다면 그 악마도 움직일 거니까.”

“그렇군. 바알을 어떻게 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닐 테니까.”

실제로 나헤마 루트는 진행되기 시작하면 몰아친다.

그렇게 들어서 알고 있다. 어느 정도 뒤틀려도 아주 다르진 않을 것이다.

라리사가 결론을 낸다.

“제때 알려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린 여기 있어야 해. 그리고 우리가 선생님과 연락할 수단이 필요해.”

그럴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메타트론을 친다면 그걸 판단하는 것은 선생님, 적어도 서브 리더인 희우다.

라지엘은 아마도 그들이 전령으로서 이곳에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그렇다면 실제로 그렇게 하면 된다.

라리사가 중얼거렸다.

“우리 묘하게 쓸모없지 않아?”

“사실 불려온 역할은 이미 다 했으니까.”

“미아 양은 안전할까?”

“모르겠어.”

그리고 어떻게 연락 수단을 확보하지?

“그래도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뭔진 모르겠지만 보스가 하나 줄어드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러네.”

둘만으론 방법이 없다.

쥐새끼를 본다.

“구멍 그거 지옥의 성채로는 통할 수 있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곳은 딱히 천상의 도시 아래에 있는 곳이 아닙니다요.]

“다들 나헤마가 있는 곳에 있겠지.”

“엄한 곳을 뚫었다가 이상해지는 거 아냐?”

[그건 즉시 닿으면 됩니다! 대악마의 눈앞에 연 게 아니라면 문제없죠!]

리온은 생각했다. 두더지잡기처럼, 그렇게 사방팔방을 수색할 수 있을 것이다.

나헤마의 요새나 움직이는 파티원들을 슬쩍이라도 본다면 그대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른 움직이기 시작한 셋은 곧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천상의 도시 아래가 맞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여긴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요…….]

라리사가 제안한다.

“조금 더 저쪽으로 가 보는 게 어때?”

캠프와 아주 먼 곳이다.

이곳의 강력한 몬스터는 어느 정도 제거되어 있지만 저쪽은 타천사들이 아직 돌아다니고는 있다.

“여기서 움직인다면, 세계의 구멍으로 바깥으로 나가도 이동해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위치가 연동은 되는게 맞다는 가설.

실험결과 그랬다.

셋은 위험한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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