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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73화 (444/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73화

메인 던전 - Lv.17500 하나님의 오른쪽 자리 [미카엘](3)

미아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은 자신이 미아의 방식을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스스로에게 마법 재능이 없다고 말한 것은 딱히 거짓말이 아니다.

둔재라도 수만 년간 마법을 끈기 있게 공부한다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는 이르는 법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수만 년이나 연구하고도 특별히 미아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되지 못했다.

“마법을 배운 지는 얼마나 되었지?”

“1년은 안 되었는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군.”

재능이라는 건 때로는 누군가를 절망하게 만든다. 미카엘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포기했다.

“난 그걸 할 수 없을 것 같다.”

“음……. 그래요.”

미아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

미카엘은 정말로 세월로 쌓아 올렸을 뿐이다. 그의 마법적 성취가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또다시 어마어마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학생에게 대체 왜 못하냐고 물어보던 미아도 이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안다.

* * *

미카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대신 그 이론을 기록 좀 해주겠나. 상세한 주석도 있으면 좋겠군.”

“긴 세월을 들여 익혀 나가는 건가요?”

“그래. 항상 그랬지. 세상이 망하기 전부터 말이야.”

어쩐지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미카엘이라는 천사는 인간의 형태를 취한 이후 내내 그래왔으리라.

그리고 그 주변의 인물들은 점점 사라져 갔겠지.

검술을 가르쳐 준 오크 유배자도 수명이 다하고, 마법을 가르쳐 준 요정도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불멸이라 불리는 천사 권속들도 전장에서 조금씩 소모되어 갔을 게 분명하다.

미카엘은 인간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위대함의 편린이다. 그러니 그 긴 세월은 어떤 식으로건 그에게 남아있다.

몇백 년, 몇천 년, 몇만 년이고 영원히 스러지지 않는 자연물들과 함께 이곳에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배움을 구했을 것이다.

문득 입으로 그 생각이 새어 나온다.

“오랜만이겠네요.”

“오랜만?”

“아, 그러니까. 누구를 붙잡아놓고 가르쳐 달라고 하는 일?”

말하고 나니 너무 노골적이었나 싶다. 일단 붙잡혀 있으니 눈치를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미아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며 눈치를 보지만 미카엘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긴 하지. 붙잡아놓고, 어떻게 했는지 설명해 보라고 묻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래. 유배자도 없고 유배자였던 것들도 없지. 다들 사라졌어.”

그렇게 말하지만 그에 딱히 감정은 없다. 다시 생각해 보면 원래 바벨의 자식들은 감정이 좀 미약한 느낌이긴 했다.

메타트론과 라지엘은 약간 다른 느낌이지만 가브리엘과 라파엘은 그랬다.

라파엘의 격정은 그제야 깨달은 탓이지 본디 그래서는 아닐 것이다.

미아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천사는 대체 세상을 정복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내친김에 묻자 미카엘의 표정이 기묘해진다.

“그런 걸 물어보는 건 네가 처음이군. 역시 공략하러 들어왔다 이건가.”

미카엘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대답했다.

“모르겠다.”

“그럼 왜 정복해요?”

“남에게 줄 수는 없어서.”

“별다른 야망도 없이요?”

“내 자신의 야망은 아니다. 난 메타트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그리고 바알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 그러니까 내 식대로 하고 싶으면 그 둘을 꺾어야 했고 그게 곧 내 야망이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아주 능동적으로 수동적이다. 지성의 천사라고 했던가. 너무 똑똑해지면 사람이, 아니 천사가 맛이 가버리나?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엄밀히 따지자면, 아니, 그냥. 없다. 그래, 없다.”

미아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다.

눈꼬리가 팍 하고 올라갔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예요!”

미아가 봐온 모든 빛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있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 꿈, 희망.

“나는 사람이 아닌데?”

“누구보다 사람처럼 행동하면서요?”

“흠. 그것도 그렇군.”

미카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

“찾아보도록 하지. 하고 싶은 일.”

미아는 그 과정 또한 수천 년에 걸친 과업일 거라고 느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도 평생에 걸쳐서 그런 것을 찾아다닌다.

그러니 미카엘이 그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입맛을 다신다. 여기서 더 뭘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미카엘은 어쨌든 그녀에게 그가 공부할 자료를 남기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작업 준비는 금방 이루어진다.

아주 낡고 먼지가 쌓인 방을 권능으로 청소해 버리고 굳다 못해 석탄이 되어버린 잉크를 한숨을 쉬며 내다버리더니 어디서 새로 구해온다.

미아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문득 라파엘을 떠올렸다.

“라파엘은 어떻게 되었죠?”

“그 껍데기라면 그대로 가둬두었는데.”

“풀어줄 수는 없을까요?”

“왜지?”

“가브리엘을 만나러 간다고 했어요.”

미카엘은 잠깐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녀석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모양이군.”

그걸로 끝이었다.

미아가 도주할 우려가 있기에 함께 라파엘의 연금장소로 가야 했다.

탈출하기 전까지 갇혀 있던 곳이었다.

라파엘은 아직도 브릿지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거 왜 아직 하고 있어요?”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잘 모르니까.”

“이제 그만해도 돼요.”

라파엘이 일어서서 몸을 턴다. 그리고 미카엘을 보았다.

“왜?”

“풀어주겠다.”

“왜?”

“가브리엘을 만나러 가라.”

라파엘은 잠깐 멍해지더니 곧 기쁜 표정을 지었다.

“고맙군.”

곧장 날아가려고 하는 라파엘을 미아가 붙잡았다.

“가지 말고 좀 있어 봐요. 어차피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음?”

“나중에 데려다줄 테니 그냥 이 근방에서 지내고 있어요.”

라파엘은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으로 미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이 미아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메타트론이 숨어든 곳과 너희들이 자꾸 빠져나가는 구멍에 대해서도 좀 들어봐야겠군.”

미아는 괜히 말했나 생각했다.

솔로몬은 메인 던전화된 이 세계의 상태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면 어떤 끝이 정해져 있음 역시 안다.

자신이 거기서 한 발 물러서 있는 것 역시 미궁이 지정한 시나리오 보스이고 싶지 않아서도 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내게 각 루트를 결정하는 이들에 대해 물었다.

그것은 이 테마의 결말이요 분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일원으로 지내온 솔로몬에게는 그가 아는 이들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메타트론이 어찌보면 제일 악질이죠. 그는 기계신을 숭배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습니다. 오직 그것만을 수호하고 그것을 통해 이 세상을 유지하려고하죠.”

[그런 인물이었던가. 바벨의 자식이 어쩌다 그렇게 영락하였나 싶군.]

“그건 절망일 겁니다. 미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메타트론은 어떤 의미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궁에 대해 잘 아는 존재죠.”

실제로 천사 측에서 시작하게 되면 그건 메타트론이 불러들이고 기다리는 사도들이다.

그리고 그대로만 흘러가면 그 결말은 썩 좋지 않다.

“메타트론 엔딩이 최악이죠. 그는 유배자를 부품으로만 여기니까요. 이 세상을 다시 돌리고 움직이는 부품으로요. 다시 여기를 왕국으로 되돌릴 생각입니다. 마지막 유배자가 사라졌던 이곳에 다시 미궁의 의지를 깃들이는 거죠.”

[흥미롭군. 그게 어찌 가능한지는 그만이 알겠어.]

“기계신의 복구와 유배자의 이주죠.”

[아, 그렇게 되나. 그럼 네놈 세계에서…….]

“납치할 겁니다. 그렇게 침공하겠죠.”

메타트론은 누구보다 친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유배자를 무시하고 있다.

그의 계획에 유배자의 자리는 없다.

다시 미궁의 눈에 들기 위한 재료이자 톱니바퀴일 뿐이다.

“나헤마는 지극히 이블적으로 생각하죠.”

[그 녀석이 세피로트에 앉은 것은 굉장히 의외긴 했다. 이블 같다는 게 무슨 말인지는 알겠군.]

야망으로 치자면 가장 큰 존재다.

그는 미궁의 섭리에서 벗어난 세계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주인이 된 후에는 여러 왕국을 손에 넣을 계획이다.

[왜?]

“유배자들을 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돌려보내 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가 원하는 것은 반란이니까요. 미궁을 무너뜨리고 파괴할 계획을 차차 찾아나가려고 하겠죠.”

[그럴 것 같은 놈이긴 하도다. 나는, 뭐 바깥에서의 삶이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구나.]

그래서 새삼스럽게 정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셨겠지.

“바알은 별 생각 없는 녀석입니다. 그냥 다른 왕국의 강자를 찾아다니고 싶은 변태죠.”

[그건 알고 있다. 그놈이라면 그냥 강한 김에 태어나서 강한 김에 싸우는 놈이지. 애초에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녀석이니.]

그리고 미카엘이다.

“그는 다른 모든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아직 찾지는 못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 딸이 아직 살아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변수건 원하는 건 그쪽도 비슷하긴 할 테니.”

마지막으로는 로스엘이 있다. 그냥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파멸하여 사라지는 것.

진정으로 이 세계의 결말을 짓는 것이다.

그것만은 말하지 않았다.

솔로몬은 그 모든 사실을 아주 흥미로워했다.

[먼저 단언해 두마. 나는 솔직히 말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건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러니 딱히 너를 크게 도울 생각도 없다.]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돕겠다고 하면 그게 더 무섭다.

[하지만 정신이라는 것은 참으로도 복잡하다. 바벨의 자식들은 그런 녀석들이 아니었어. 그저 존재함으로써 존재하는 고고한 것들이지.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쓰더니 다들 미쳐가고 있구나.]

“나헤마 역시 인간일 때는 그렇게까지 큰 야망이 있진 않았겠죠.”

[그래. 힘이 꿈을 만든 셈이겠지. 그래서 네 귀여운 딸은 의외로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것인가.]

“어, 그럴지도요.”

여긴 솔직하기로 했다.

솔로몬은 클클대며 웃었다.

[뭐 난 새로운 재능만 관측할 수 있다면 문제없다. 네 말로만 들으면 상당한 광인인데. 그것은 또 신선한 자극이겠지.]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안 뺏어간다. 그럴 힘도 없고. 내 무덤이 아니면 너희를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르지.]

뜨끔했다. 역시 솔직해야지. 실제로는 아마 파티원이 다 모여 있으면 힘들다는 걸 알거다.

[재밌긴 하군. 나는 그저 무덤에서 보겠다. 그 아이를 빼오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역시 전력으로 치고받고 싸워주진 않겠지. 미카엘도 냉정하게 판단하여 솔로몬과 싸울 바에야 우리를 놔주는 판단을 할 것이다.

사실 둘이서 싸워주면 최고인데.

적절하게 미카엘을 처리하고 미카엘 장비로 솔로몬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럼 무덤을 다 터는 게 가능해진다.

거기까진 욕심인 것 같으니까 우선 참는다. 미아와 리온, 라리사, 그리고 쥐새끼를 되찾는 게 최우선이다.

그 후에 어떤 식으로건 기계 무덤으로 돌아가 합류할 수 있으리라.

천상의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솔로몬은 나를 슥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처 무슨 의도인지 모르는데 갑자기 공간이 뒤바뀌었다.

그리고 천상의 도시가 눈앞이다.

어떤 전조도 없이 하늘에 무수한 마법진들이 떠오른다.

뒤이어 빛이 쏟아졌다. 빛과 어둠이 뒤섞인 세례가 내리고 있다.

[튼튼하군. 이럴 때는 차라리 단순한 물리력이지.]

솔로몬이 손짓하자 무언가 피어났다. 그리고 하늘이 검어졌다.

다른 무엇도 아니다.

그저 암석이다.

다만 그 크기가 천상의 도시 전체보다도 몇 배는 더 컸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누아르의 포격에 준하는 위력이긴 할 것이다.

옳은 말이다.

의외로 튼튼한 것들은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서 쉬이 쪼개지는 법.

타고난 힘의 사용밖에 모르는 바벨의 자식들은 할 수 없는 발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래서 솔로몬은 위험한 보스지.

규모가 장대했기에 느려보였을 뿐, 눈 깜짝할 사이에 천상의 요새 상공에 거대한 암석이 충돌했다.

주변의 지형이 뒤바뀌며 사방이 뒤흔들리고 무너져 내린다.

새로운 질량들이 도시를 파묻어 버릴 듯이 메꾼다.

그럼에도 천상의 도시를 지키는 방어막은 약해질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라면 통째라 지하로 파묻힐 것이다.

[대체 누구냐!]

빛의 선이 도시를 덮치는 암석들을 베어 갈랐다. 그리고 빛과도 같은 속도로 미카엘이 나타났다.

솔로몬이 음산하게 웃으며 천사에게 손을 흔든다.

아직도 사방은 파괴되고 비산하며 온갖 것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와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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