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474화 (44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74화

메인 던전 - Lv.17500 하나님의 오른쪽 자리 [미카엘](4)

내리꽂힌 암석의 질량이 너무 거대했다. 미카엘은 피곤한 표정으로 솔로몬을 보더니 검을 휘둘러 공중의 암석들 대부분을 증발시켰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 동작은 어딜 봐도 검술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고도의 기술이다.

평범한 검술도 아니다. 훌륭한 마검사의 것이다.

마력 따위의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검에 깃들이는 방식.

일종의 오러 블레이드와도 비슷하게 자신의 권능을 활용한 검술을 구사하고 있다.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다.

순간 아찔해졌다.

이미 일어나 있었구나.

그래, 천천히 일어나니 타임어택이다 같이 쉬운 것일 리가 없지.

가브리엘이나 라파엘의 패턴 변주는 전조에 불과했다.

이 세계의 미카엘은 이미 그런 연구를 애초에 끝마쳐 둔 것이다.

두통이 오는 듯한 것과는 별개로 미카엘은 솔로몬이 누군지 모르는 듯했다.

그는 나를 한 번 보더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대로 솔로몬과 격돌했다.

약 다섯 차례 시간이 요동치고, 공간이 일그러져 수없이 많은 아공간을 넘나든 끝에 미카엘과 솔로몬이 다시 나타났다.

“넌 진짜로 누구지?”

[마술사왕 솔로몬이다. 메타트론이 시켜 세피로트를 만든 마법사라고 하면 기억이 나겠는가?]

“아, 이런. 리치가 되었군. 아직도 살아 있었나?”

[배운 마법은 잘 써먹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다지 쓰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난 검사로서의 재능뿐인 모양이더군.”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제기랄. 상황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솔로몬은 클클대며 미카엘에게 계속 말했다.

[내 제자의 딸을 돌려다오. 안 그러면 엄청나게 귀찮게 굴어댈 것이다.]

협박치고는 찌질해 보이지만 정말로 끔찍하고도 무시무시한 협박임은 틀림없다.

솔로몬이 미카엘과 맞서 싸워 이길 수는 없을지언정 미카엘 역시 솔로몬을 결코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지옥 같은 소모전이 될 뿐이다.

그리고 지성의 천사와 위대한 마법사는 어리석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좋다. 돌려주지. 그보다 제자? 유배자가 어떻게 네 제자지?”

[나는 여러 왕국에 수없이 많이 존재할 테니 찾아오는 유배자 중 누군가를 가르치면 언젠가 다시 오지 않겠나.]

“놀라운 발상인데. 일리는 있군. 실로 마법사다운 사고방식이야.”

미카엘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수작을 부렸군. 뭐 그 정도 수완은 있을 테니 믿었던 거긴 하지만.”

미카엘이 말했다.

“그럼 다시 이야기해 보지. 이제 인질은 없다. 새로운 교섭에 응할 생각은 있나?”

솔로몬이 나를 제자라고 말해준 것은 대단한 호의다.

미카엘은 그 말로 인해 나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그럴 생각도 없을 것이다. 그에게도 여전히 내가 필요하니까.

동시에 나에게도 여전히 미카엘이 건재할 필요는 있다.

결국 외통수다. 미아와 친구들을 구해온 것 외에는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아주 중요한 것이지. 돌고 돌아 이번에는 주도권을 저쪽이 쥐게 되지 않는다.

나를 힘으로 찍어누를 생각은 어렵단 말이지.

다시 한번 교섭하는 것 자체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문제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이 솔로몬을 보았다.

“이제 저거 좀 치워주지 않겠나?”

[그러지.]

다음 순간 장대한 질량의 암석이 녹아들듯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못 따라 할 것은 아니지만 그저 미친 듯이 넘쳐나는 마력으로 구현한 것이라 알아도 못 하는 종류의 마법이다.

미카엘은 피곤하게 그 모습을 보더니 말한다.

“그 마법사를 데려오도록 하지.”

미아는 나타나자마자 일단 내게 안겼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말한다.

“리온 부부는 제가 탈출시켰어요!”

“뭐? 어떻게?”

“라파엘의 힘을 빌렸어요.”

“단말 삼았니?”

“네!”

솔로몬이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과연, 그럼 그 접속 시도는 그것이었나. 그 힘을 찬탈했다고? 거기 아가씨. 나와 이야기 좀 해볼까.]

“저 데미 리치는 누구죠?”

“솔로몬.”

미아의 눈동자가 우상단으로 향한다. 뭔가 생각할 때의 버릇. 그리고 정답을 찾은 듯이 솔로몬에게 공손히 인사한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꼭 한 번 뵙고 싶었어요!”

[뭣이?]

솔로몬은 조금 당황한 것 같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미아가 내가 자신을 좀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빠르게 파악한 모양이다.

참 똑똑한 딸내미야.

미카엘은 나를 본다.

“내가 너를 대신 인질로 잡을 수 없다는 건 알겠지. 넌 안전하다. 그러니 이야기 좀 할까?”

뒤늦게 주변에 날아들기 시작한 천사들을 손짓으로 물리며 다가온다.

어딘가 권태로운 표정의 금발 미남자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은 꽤 오싹한 일이다.

미카엘은 평범하게 묻는다.

“그래서, 네가 뭘 했는지 좀 들어나 볼까?”

물론 미카엘이 내게 그렇게 물을 권리는 없다. 그는 단지 미아를 인질로 잡고 내게 강요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현대인의 사고다. 위대하신 천상의 군주는 입장이 조금 바뀌었더라도 내가 한 일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여러모로 내가 알던 미카엘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나도 입을 꾹 다물긴 곤란했다.

“나헤마에게 바알을 죽일 단서를 주었죠.”

“나헤마?”

미카엘은 잠깐 생각에 잠겼고 곧 어떤 악마군단장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탄을 봉인하고 바알에게 인정받은 유배자로군. 몇 남지 않은 진짜 유배자지. 과연 그런 야망을 불태울 만하군.”

미카엘은 담담하게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원래 이런 녀석은 맞다. 제 잘난 맛에 살지언정 지성의 천사인 이름값은 하는 것이 미카엘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누구인가.

미카엘은 맞다. 분명히 그다.

하지만 뺀질뺀질함은 어디로 간 거지?

도리어 그 상태로 몇만 년은 보내며 허무해진 것 같은 인간이 눈앞에 있다.

내가 알던 것과 아주 다르다.

첫 만남에서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전혀 화를 내지 않으니 확실히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본래의 미카엘은 좀 더 오만하다. 자신을 믿고 자신을 신뢰한다.

이렇게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은 녀석이 아니다.

짧게 심호흡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 녀석이 바알보다 위험할 것 같은데?

미아가 뭔가를 알 것이다. 탈출을 시켰다고? 그럼 미카엘이 어떻게든 미아에게 반응했겠지.

미아는 그걸 바탕으로 미카엘이 어떤 녀석인지 파악했을 것이다.

그럼 그걸 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벌려면 아무렇게나 둘러대는 것이 최고다.

“나헤마는 지금 바알을 죽이기 전에 그 양날개부터 끊어내고 있을 겁니다.”

진짜 그런지는 모른다. 희우가 제대로 했다면 그 정도는 진행되었을 것이란 뜻이다.

“나헤마는 사탄을 깨워 바알에게 보낼 생각이죠. 제 동료가 작업 중이겠죠.”

제대로 되었다면 내가 남긴 메시지도 보았겠지.

[왕관의 검]으로 열 수 있는 창고를 [가라앉은 영광]과는 달리 느긋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완벽하게 깔끔하고 제대로 진행되고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저 믿는 것뿐.

미카엘은 궁금증을 충분히 느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솔로몬도 그랬다.

[뭐냐. 나한테 그런 이야기는 안 했잖느냐.]

안 물어본 걸 말해서 긁어 부스럼 만들긴 싫었으니까요.

내게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미아는 혼자 슬쩍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있게 깃펜을 움직여 종이에 뭔가 쓰기 시작한다. 웬 깃펜과 종이일까?

[아빠가 알던 것과 달라요. 미카엘은 무수한 유배자들에게 가르침을 구해왔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닳아버린 것 같아요.]

아직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미아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겠지.

의외로 미카엘과 솔로몬이라는 두 거물은 지금 뒤에서 미아가 펜을 사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오히려 마법을 통해 대화하려고 들었다면 즉시 들켰을 것이다.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지나치게 소소한 필담은 도리어 염두에 둘 대상이 아닌 법이다.

나는 계속 입을 턴다.

미아는 계속 정보를 전한다.

“사탄의 성격대로라면 그대로 바알에게 들이받을 겁니다. 애초에 졌다는 것 자체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거니까요.”

같은 말도 최대한 그럴싸하게 늘여서 시간을 더 끈다. 한 마디면 될 말을 다섯 마디로 늘려 장황하게 설명한다.

뻥을 치거나 둘러댈 정신은 없다.

[지금의 미카엘은 특별히 오만하거나 자신을 과신하지 않아요. 도리어 유배자의 모든 수단을 배워 익히려하고 그 방식을 따르죠.]

그렇게 되면 보스전이 정말 힘들어질 거라고 경계하고 있었다.

가브리엘도 마지막에 깨달았다.

다른 이들이 그러지 못하란 법은 없다.

그런데 미카엘은 이미 그러고 있었다고? 심지어 오래전부터?

엄청나게 위험한 거 아닌가?

여전히 입은 놀린다.

“나헤마는 그때를 노리려고 하겠죠. 이미 하나 정도는 제거했을 시간이군요. 조금 더 지나면 생각보다 많은 악마군단장들이 사라질 겁니다. 바알은 애초에 그걸 크게 신경도 안 쓸거니 지옥의 성채 어디 골목에서 뒹굴다가 습격받겠죠.”

[그 형태가 로스엘과 비슷해요. 미카엘은 말이 통한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보며 미카엘의 얼굴을 한 번 더 본다. 몹시 피곤해 보인다.

그래 뭔가 삶에 지친 듯한 느낌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단지 우리가 가브리엘을 털고 라파엘을 쫓아다니고 있으니 골치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항상 저렇게, 지쳐 있는 것이다.

너무 오래 그런 나머지 그것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다.

심연에서 비석을 내 앞에 꼬박꼬박 세워대던 루시와도 비슷한 그런 상태인 것일까?

루시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소극적인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죽음 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까. 그 미지는 곧 공포다.

미카엘은 그렇게 되기 직전의 상태 같았다.

이제 알겠다.

미카엘은 인간으로 대하면 된다. 세피로트의 껍데기를 너무 오래 뒤집어쓰고 있으면서 누구보다 깊이 인간을 이해해 버렸다.

저 천사는 바벨에서 태어난 인간이다.

미아가 조용히 페이지를 접어서 구기고는 입에 넣고 삼켰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그거 몸에 나쁘단다.

어쨌든 증거가 인멸되고 내가 장황하게 입을 털 필요는 사라졌기에 빠르게 결론만 말했다.

“그러니 나헤마가 바알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겁니다. 미카엘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말이죠.”

확인을 바라는 듯 솔로몬을 본다. 솔로몬의 [악마 죽이기]가 제대로 일을 한다면 그렇다는 거니까.

솔로몬은 그 시선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칩거하고 가장 먼저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들 중 하나지. 악마를 죽인다. 그리고 천사를 죽인다.]

“그런 연구를 할 만한 상태였지. 죽기 싫으면 숨어야 하는 상황 아니었나?”

[쯧쯧, 유능한 건 알아가지고 말이야. 다들.]

미카엘은 확실히 그 사실을 납득한 모양이었다. 솔로몬의 보증은 꽤 공신력이 높지. 세피로트와 클리포트의 제작자니까.

자, 그럼 미카엘에게 이제 어떻게 말할까?

같이 바알을 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는 김에 나헤마까지 제거하는 거다.

그렇게 미카엘을 통해 다른 녀석들을 쳐낸 후에 미카엘 하나만 상대한다.

로스엘의 지원도 있을 테니 불가능하지는 않다.

위험하지만, 보스러시 역시 충분히 위험하다.

내가 잠깐 말을 고르는 동안 미카엘이 먼저 내게 제안했다.

“그런데 네 딸이 작업하던 것을 마저 하게 해줄 수는 없나?”

“그건 무슨 말입니까?”

이번에는 미아가 와서 설명했다.

그걸 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배우려고 한다는 것도 놀랍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모든 것을 익혀왔다는 것이 더 놀랍다.

세월을 퍼부어 결국 경지에 오르는 것.

그건 그야말로 유배자 그 자체가 아닌가.

“결과적으로 악마는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니 너는 내가 원했던 것을 제대로 해냈겠지.”

인질까지 잡아두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높으신 존재답지만 그냥 이야기만으로 그렇게 흘러가겠거니 믿어주는 것 역시 높으신 존재답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저 부탁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너를 위해 싸워도 주지. 한 번만큼은.”

[이야, 제자여.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지 않느냐.]

갑자기 잘 풀리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두 늙은 괴물 사이에서 기분이 이상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