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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76화 (447/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76화

메인 던전 - Lv.17500 투신 [바알](1)

바알은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는 특별히 계획을 세우지도, 방비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내다가 무언가가 도전해 오면 그것을 받을 뿐이다.

지내는 방식에도 규칙은 없다.

오늘 우연히 지옥의 성채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잤을 뿐이다.

인간의 습관인 잠은 불멸의 존재에게도 나름대로 달콤한 휴식인 까닭이다.

어려울 것은 없다.

그의 삶은 즉흥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바알은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는 어째서 가브리엘이 쓰러졌고 라파엘이 사라졌는가도 관심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봉인된 사탄이 왜 깨어났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그저 갑자기 나타났고 대뜸 소리를 질러대었다.

악마들이 두려움에 떨었고 바알 역시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다.

빛과 어둠의 아우라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영역인데 하고 눈을 비볐더니 진짜였다.

* * *

* * *

바알은 다시 한번 눈을 더 비빈 다음에 소리치고 있는 검은 날개의 천사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뭐야? 재밌잖아?”

즉시 뛰어오른다.

권능의 힘을 어느 정도 인간처럼 사용하는 법은 안다.

인간을 많이 봐서도 맞지만 그냥 재밌어 보여서 배웠다.

압축된 힘이 그를 로켓처럼 쏘아 올린다.

지옥의 성채 꼭대기를 넘어 한순간에 별이 반짝이는 상공에 도달했다.

물론 별은 이 세계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하늘에 있는 것은 사탄의 영역이다.

오랜만에 보는 빛과 어둠이 혼재된 영역에서 점멸하는 빛이다.

바알은 인사대신 주먹을 뻗었다.

검은 어둠의 권능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빛을 몰아내고 이미 있는 어둠을 우그러뜨린다.

영역 전체가 출렁하고 일그러졌다.

검은 날개의 천사는 아직도 클리포트에 앉아 있다. 그 모습 그대로 바알을 맞이했다.

[이 쓰레기 같은 녀석! 내 자리를 찬탈하고 잘도 두 발을 뻗고 자고 있었구나!]

“말이 너무 심하네.”

저게 왜 깨어났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탄이 다시 나타났다.

봉인한 이유는 지옥의 성채의 주인이 되어 천사와 치고받고 싶어서였다.

그 후에 도리어 재미 없어진 참이다.

그럼 그냥 싸우면 되겠군.

사탄 역시 바알의 그런 성향을 잘 알고 있다.

지옥의 성채 상공에서 빛이 번쩍인다.

평탄한 이 세계에서는 높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주 멀리서도 똑똑히 보였다.

그야말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신호와도 같다.

나헤마는 아스모데우스의 거처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보낸 유배자들이 제대로 일을 해내었음을 직감했다.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바보는 아니다. 메인 던전을 헤집고 다니며 이 세계의 결말을 알려줄 수 있을 정도의 유배자라면 당연히 해낸다.

게다가 찾아온 것은 그 유명한 아서가 아닌가.

아서라는 고정 NPC는 자신이 책임자가 아니라 말했다.

회유하기 지독히도 힘든 아서를 파티원으로 거느리고 있을 정도라면 그가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유배자 파티다.

고로 해낼 것은 확정이었으며 그게 언제인지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과하군. 과하게 유능해.]

아스모데우스는 방금 죽었다.

누가 미처 알기도 전에 하나둘 제거당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권능은 온전히 나헤마의 것이 되어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은 느낄 수 있으나 그럼에도 나헤마는 이것이 일종의 승천이라 여겼다.

그는 원래 악마다.

인간으로서 이 세계에 발을 들인 후, 이 회차에서.

여기서 나헤마는 큭큭대며 웃었다.

회차라, 얼마 만에 입에 담는 단어인가.

그대로 정착하고 필사적으로 살아남아 악마가 되었다.

특별히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100년의 기한이 끝났을 때도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배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마 카드를 손에 넣고 강력한 마법사 중 하나로서 이 세계의 주민이 되고, 마도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그의 스승인 솔로몬이 앉지 않겠다고 해서 마법의 신좌에도 앉았다.

마침내 바벨에서 천사와 악마들을 불러들였을 때도 그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인간인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좀 더 위대한 존재로 거듭나고 싶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클리포트에도 한 자리를 앉았다.

클리포트의 좌가 제공하는 막대한 힘은 그의 욕심을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다.

마법의 신일 때도 느끼지 못했던 충족감이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했다.

빌려온 힘은 결국 빌려온 힘이다.

게다가 같이 클리포트의 좌에 앉아 있는 다른 악마군단장들은 그를 멸시했다.

좋아할 리가 없기는 하다.

클리포트를 떼고 붙으면 더 강해지는 존재들과 보잘것없는 마력밖에 남지 않는 존재니까.

열등감일지도 모른다. 나헤마의 오랜 콤플렉스는 제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인간 출신, 유배자 출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미궁이라는 무한한 공간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힘이 필요했다.

일개 유배자로서 가질 수 있는 수준의 힘이 아닌 정말로 한 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그리고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그의 스승이 그것을 이루어주었다.

어떤 유배자들이 그것을 이루어주었다.

[악마 죽이기]는 그 의도와 다르게 악마를 죽이는 무기가 아니게 되었다.

대신 새로운 악마를, 새로운 바벨의 자식을 만들기 위한 무기가 되었다.

나헤마는 제 몸에서 날뛰는 힘을 조용히 음미했다.

두 군단장이 죽었다.

그러나 힘이 곧 본질인 그것들에게 죽었다는 말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적인 사고는 버릴 필요가 있다.

좀 더 위대한 존재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클리포트가 빌려주는 힘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크흐흐흐. 하지만 이 막대한 힘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군.]

달리 말하면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힘만 센 바보들이 마법적으로 세련된 여러 가지 수단을 남겨두고 멍청하게 힘을 소모하는 것을 보며 얼마나 답답했던가.

뭐?

이 정도 규모의 권능이 부딪히는 곳에서 자잘한 기교는 도리어 효율을 감소시킨다고?

제일 분한 것은 반박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마법사로서 보고 있으면 화가 날 정도로 투박한 방식으로 힘을 다루지만, 실제로 같은 규모의 권능과 싸운다면 그것이 가장 옳을지도 몰랐다.

단숨에 끝낼 수는 없다. 결국은 소모전으로 접어들 것이다. 그럼 더 여력이 많은 쪽이 이긴다.

나헤마는 그 모든 사실이 분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바벨의 자식 같은 수준의 힘을 새로이 만들어낼 방법은 없다.

힘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질이 문제다. 권능을 지닌다는 것은 태생의 영역이었다.

[스승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주는군. 이런 것을 만들어 내다니.]

마법의 신씩이나 되었으나 그는 솔로몬보다 뛰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없다.

이제 그는 일개 마법사가 아니다.

일개 악마군단장이 아니다.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힘을 가진 대악마다.

여유는 힘에서 찾아온다.

바벨의 자식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힘은 이제 그에게 모두 모여 있다.

사용하는 방식도 그 괴물들보다 훨씬 세련되었을 것이다.

기쁘기 그지없는 날이었다.

[그 유배자들은 슬슬 제거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그 자신이 유배자이기에, 그리고 그 어느 시기보다도 더 유능한 유배자들이기에 그렇다.

아서왕이라는 고정 NPC는 오래 살아남은 유배자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존재다.

하잘것없다고 무시하기에는 뇌리에 새겨진 위용이 너무 대단한 탓이다.

거기에.

[리더는 따로 있다고 했나. 그 계집일 것 같지는 않은데.]

지나치게 유능한 유배자.

당장 솔로몬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나.

힘만 센 바보들보다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솔로몬이 이미 죽고 없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나헤마는 굳이 바알과 사탄의 전투를 관측하려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이 새로 손에 넣은 힘을 다루는 데 집중하는 것이 더 좋다.

다행스럽게도 나헤마는 주술에도 조예가 있다.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로 다른 권능의 힘을 그 안에서 융합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이 세상은 이미 그의 손에 들어왔다.

사탄은 정말로 자신이 왜 깨어났는지 따위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애초에 봉인지의 봉인장치들이 특별히 갇혀 있는 사탄의 곁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깨어나자 이미 흘러넘치던 영역이 도리어 거두어졌다.

그리고 폭발이 일었다.

잠깐 동안 모든 오감이 교란되는 힘의 격류가 몰아치고 그 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휴, 여기서 갑자기 미쳐서 보스전이 시작되면 어떡하나 했어요.”

“여기까지도 정상 진행이군.”

“그럼 나헤마가 바알을 어떻게든 하겠군요.”

희우는 뿌듯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본래 제아무리 열심히 연습하고 공략을 숙지하더라도 실전은 다른 법이다.

레이드에서 공대장을 처음 잡을 때는 누구나 긴장한다.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야만 일상이 될 뿐이다.

책임자로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오빠에게 당당히 보고할 수 있다.

[열쇠의 검]도 최대한 활용하고 있지 않나.

미아가 있다면 이번에는 엄마가 MVP를 가져갈게 하면서 한껏 뻐길 수 있다.

“미아를 되찾으러 가죠!”

미카엘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두고봐야할 문제다. 오빠도 살아남았다면 이미 그쪽으로 가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럼 다시 합류하여 미카엘과 담판을 지을 때다.

여기서 잘해주었다 하며 갑자기 미카엘과의 보스전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럼 갈라진 파티원들 중에서 최고의 전력인 희우 쪽이 합류해야만 한다.

제니의 꼬리가 빵빵하게 부풀었다.

“얼른 미아 양을 되찾으러 가요!”

제니의 쌍검도 번쩍번쩍한 아티팩트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한 쌍인 물건이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서로 입을 맞추어 보긴 해야지.”

로스엘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의 천사도 완전 회복! 미카엘이 적이라도 두렵지 않아!”

서둘러야 한다.

파티가 불완전하면 발생하는 폐해는 이미 겪었다.

모두가 모여 있다면 보스가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지만 흩어져 있다면 시간을 돌릴 일도 생기고 만다.

전력을 다해보지도 못하고 다음 회차에 떨어지면 얼마나 억울한가.

파티원들은 전속력으로 천상의 요새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사탄과 바알이 싸우고 있는 화려한 하늘이 보인다.

적어도 저 싸움이 끝나기는 전에 도착해야 한다.

미카엘이 묘하게 호의적이다.

무뚝뚝하고 무감정한 것은 똑같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대등하게 여겨주는 듯한 감각이 있다.

그리고 조금 믿기 어려웠다.

왜?

그럴 이유가 있나?

우리가 가브리엘을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카엘은 아마 페이즈가 넘어가지도 않고 가브리엘을 찢어발길 수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 테마에서 가장 위험한 보스는 미카엘이다.

단독 개체로서는 최강일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 녀석이 나에게 이렇게 호의적일 이유가 대체 뭐지?

알 수 없는 호의에 곤란해하는 가운데 미아는 서둘러 작업을 마쳤다.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다. 혹시 미아한테 반했나?

흠, 그럴 수 있지. 장래가 확실한 얼굴에 눈부신 재능에, 저렇게 헌신적으로 자신을 위해주는 모습까지.

딱 거기까지 생각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하고 고개를 저었다.

좀 더 냉철한 정신으로 생각하면 미카엘이 어딘가 감명이 깊었던 모양이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정신이 팔려 있어서 몰랐는데 내가 말한 것이 상당히 대단한 거지?

과연, 그렇다면 그럴 수 있다.

상황은 알겠다.

그럼 진지하게 미카엘을 우군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일이 정말로 잘 풀리고 있는가?

그것에만큼은 의문을 남겨둔다.

미궁에서 일이 정말로 술술 풀리는 것 같은 순간보다 위험한 타이밍이 없다.

손바닥보다 쉽게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는 곳이 이곳이니까.

당장 솔로몬도 제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 데미 리치는 미아가 작성 중인 것을 지켜보며 이것저것 거들고 있다. 세피로트의 제작자가 알려주는 근간 이론은 미아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겠지.

“제기랄. 이게 아닌데.”

절로 솟아난 마음속의 목소리였다.

주도권을 쥘 수가 없다.

파티는 쪼개져 있고 옆에 널린 것은 하나같이 최종보스급이다.

일단 모두 한곳에 모일 필요가 있었다.

힘에서 밀리는 상태에서는 결코 주도권을 쥘 수가 없다.

미카엘이나 솔로몬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휘둘리는 수밖에.

그럼 미카엘이 한 말을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미카엘, 저것이 끝나는 대로 이동하도록 하죠. 한 번은 싸워주겠다고 했지요?”

“그렇지.”

“바알을 치러 갑시다.”

“그건 내게 너무 형편이 좋은 것 같은데 그걸로 족하나?”

“문제없습니다. 모든 게 제대로 되었다면 이제 사탄이 풀려나서 바알과 한바탕…….”

쾅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기척이 먼 곳에서 느껴진다.

거대한 영역이 펼쳐져 있다.

지옥의 성채 방향이다. 아니, 그 상공이다.

“사탄이 바알에게 충분히 시비를 건 모양인데 말입니다.”

“알겠군. 둘 다 제거하면 좋겠지.”

“나헤마가 무언가 한 후에 난입하면 될 것 같은데요.”

미카엘이 갑자기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대는 정말 수완이 좋군.”

어차피 지나가는 길에 사탄의 봉인지가 있는 것은 확인했다.

지금 싸움이 났다면 풀어준 지 얼마 안 된 시점.

[열쇠의 검]을 발견했다면 장비의 상태도 확실히 좋아졌을 것이다.

그대로 전투에 돌입해도 문제없다.

미아도 컨디션이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모든 녀석들을 다 한곳에 다 모아 싸움을 붙인 후에 그 사이에서 무언가 한다. 그편이 더 낫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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