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479화 (45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79화

메인 던전 - Lv.17500 투신 [바알](4)

걱정을 할 틈도 없다. 손을 떠났으면 떠난 대로 움직인다.

희우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개판이잖아?”

“일단 지형부터 들은 거와 달라서…….”

천상의 도시가 정갈한 맛이 있고 그래서 경비병들이 딱딱 있다면 지옥의 성채는 제멋대로 그 자체다.

구획이 딱딱 나뉜 계획도시 같은 천상의 도시와 반대로 난개발이라는 단어를 구현화해놓은 지옥의 마굴 그 자체.

따라서 지옥의 성채는 길찾기부터 난관이 된다.

대신 몬스터의 압박은 조금 덜한 편이다.

악마들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고 길목을 지키지도 않으니까.

그런데.

“젠장 병력들이 다 돌아왔잖아.”

“그래서인 것 같아요.”

본래라면 [영원한 분쟁] 필드에 묶여있을 병력 상당수가 귀환해있다.

이건 천사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시 어떻게 하더라도 서로 병력을 물리게 되는 상황인건가?

* * *

* * *

* * *

* * *

“제대로 된 군대가 있어요.”

모든 악마들이 방탕하고 욕망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다.

아니, 잠깐. 그것과는 좀 다르군.

충성하는 것이 제 욕망이 녀석들이 있다. 주로 권속이 되면서 악마화한 유배자의 후손들이 그러하다.

플레이어블 악마들인 그들은 천상의 군대 이상의 규율을 가지고 있다.

비 플레이어블 악마들이 짐승이라면 이들은 그야말로 군대.

“밀도가 너무 달라서 우리끼리 돌파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어요.”

“옳은 선택이야. 하지만 샛길로 돌아갈 시간은 없을 것 같은데.”

메타트론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라지엘을 통해 제거할 수는 없을까요?”

“그건 나헤마를 통해서 할 수는 없겠는데. 그 녀석은 이번에 미카엘에게 죽을지도 모르거든.”

“그럼 라지엘은 어떻게 될까요?”

나헤마가 먼저 죽을 경우 라지엘은 일단 나헤마의 목적을 따른다.

지식의 천사는 가진 지식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비슷한 성향의 마법사와 결탁했다.

디테일하게는 나헤마 루트에서 라지엘과 나헤마를 선택하는 분기가 다시 갈라질 수 있다.

“그 수단은 나헤마 본인이 만든 것은 아닐거야. 라지엘만 살아있으면 문제 없지.”

메타트론은 엔딩의 열쇠를 쥔 어느 보스의 입장에서도 곤란한 존재일 것이다.

열광적인 기계신의 신도가 아닌가.

그러나 다른 모든 이들은 기계신을 수단으로만 보고 있다. 목표로 여기는 메타트론과는 다르다.

“어떤 식으로건 서로 싸우겠군요.”

“원래 이렇게 싸움 붙이는건 불가능했는데 말이야.”

보스는 플레이어가 때려잡는 존재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자기들끼리 싸워 자멸하면 컨텐츠가 부족해지잖아.

그래도 이번만큼은 컨텐츠 부족에 감사한다.

“이건 강행돌파야. 물량 앞에 장사는 없다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난리가 나겠지.”

이미 술렁이는 것이 보인다.

바알과 사탄의 짧은 전투만으로도 지옥의 성채는 허술해지고 있다.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녀석도 있고 군대조차도 기강이 잡히지 않은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린 시간이 없어. 메타트론은 바보가 아니야 우리가 성배를 모을거라 가정하고 따라오겠지.”

그렇다고 단독으로 메타트론을 우리 파티가 상대해?

그럴 이유가 없지. 메타트론의 등장만으로도 그 날개를 뽑아버리고 싶어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니.

“술래잡기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싸움은 언제 시작되는 거지?

포문은 나헤마가 열어야 하는데.

그 야망으로 가득한 악마는 사탄과의 전투 직후인 바알을 이미 노려야 했다.

조금 이상해지고 있는걸.

미카엘이 나헤마를 따라간 것은 대단한 계략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 똑똑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신중한 부분이 있다.

메타트론이 살아있는 한 조심해야할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그것이 원래의 오만한 미카엘과 가장 큰 차이점이지만 지금의 미카엘은 그 사실을 모른다.

천천히 나헤마를 따라가던 미카엘은 이 악마가 다른 군단장의 요새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왜지?

노려야할 것은 바알이 아닌가.

사탄은 이미 도주했다.

직후인 지금이 빈틈일 것이다. 힘을 잔뜩 쏟아내고 몸을 다스리고 있을 때가 아닌가.

미카엘은 더 가까이 쫓아가지 못했다.

그야 그럴 것이 빛의 천사인 그는 요새 근방까지 들어갔다가는 곧바로 들킬 것이다.

일단은 악마의 본거지인 여기서 그가 반드시 살아 돌아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심각한 위기라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도주해 안전한 천상의 도시에 자리 잡을 것이다.

들어간 곳은 주변을 보면 [릴리스].

서큐버스에 해당하는 이블들이 주로 섬기는 군단장이다.

[벨페고르]와 친밀한 관계이며 그렇게 파벌을 구성한 것으로 아는데.

그리고 무언가가 나타났다.

“바알?”

소리를 내서는 안 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바알은 눈을 부릅떴다.

“나헤마?”

아스모데우스도 아드라멜렉도 없다.

이미 죽었다.

뒤늦게 클리포트를 확인하자 그럼에도 그 힘은 온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들의 영역에서 그 부하들과 권속들이 혼란에 빠져있다.

저급한 악마들은 짐승과도 같다. 그것들은 주인을 잃고서 오갈곳을 모르고 날뛰기만한다.

힘으로 두들겨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탐문한다.

마지막 방문자는 나헤마였으며 그 후에 빈껍데기의 시신으로만 발견되었다.

“유배자 출신을 쓰는게 아니었나.”

쓸모가 있어서 편의를 봐주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헤마 역시 바알의 부하로 여겨지고 있을 것이었다.

바알은 분노하지 않았다.

“재밌는데?”

나헤마는 아주 똑똑한 녀석이다. 바보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유배자로서 신좌에 올랐던 경력이 그것을 증명한다.

교활하고 노련한 유배자만이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럼 뭔가 있다는 거군.”

바알은 생각했다.

부수러 간다.

클리포트에 힘은 잔존하고 있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지만 이걸 만든 마법사의 제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알은 그 사실에 흥분했다.

본능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잔존하는 힘, 사라진 주인.

그럼 그게 이제 누구의 것일까.

대악마 둘의 힘을 가진 악마군단장 나헤마?

“이건 최고군.”

당장 싸워봐야겠다. 못 참겠다.

바알은 그대로 클리포트의 냄새를 따라갔다.

“이런, 정말로 힘을 집어삼켰나보군. 어떻게 한거지?”

냄새가 남은 것 자체가 증거다.

제대로 정제되어 갈무리하지 못한 권능이 질질 새어나와있다.

모두 나헤마 자신의 것은 아니다.

“유배자 출신 바벨의 자식?”

어떻게 상대해야할까.

이미 처죽일 여러 수단을 강구하며 계속 따라간다.

그리고 은밀한 비처를 발견했다.

“여기서 힘을 통제했군. 이건 마법인가. 이걸로 권능을 다룰 수 있다니 대단하긴 해.”

흔적은 끊어졌으나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바알은 그대로 달렸다.

그냥 이 주변을 전부 보면 된다.

그러다가 릴리스의 영역이 이 근방에서 가장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호라. 그럼 노리겠군.”

바알은 그대로 달렸고, 나헤마를 발견했다.

“어이! 나헤마! 내 친구들을 죽였나?”

예상대로 상대는 당황하지 않는다. 아스모데우스와 아드라멜렉이 먼저 노려진 시점에서 결국 최종 목표는 자신일 것이다.

다른 모든 대악마의 힘을 흡수한 괴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왔다!”

나헤마는 당황하지 않고 마법을 구사했다.

그 마법과 바알의 주먹이 충돌했다.

폭음이 울렸다.

미카엘은 뭔가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모든 힘의 충돌은 주변에 그 여파를 뿌려댄다.

바벨이 자식들끼리 충돌하는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진도가 측정될 만큼 대지가 흔들린다.

공중이 아니라 지상에서 일어난 충돌이다.

지옥의 성채 일부가 흔들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난개발의 폐해다. 내진설계를 했을 리가 없지.

“그래서 형편에 아주 좋아졌군.”

마찬가지로 비행은 하지 않는다. 파티원들은 혼란이 시작되는 순간 약속한 것처럼 달렸다.

지옥의 성채 출입구는 거대한 정문의 아가리 말고도 이곳저곳에 많다.

작은 동굴과도 같은 것들이다.

구룡성채를 연상케 하는 제멋대로의 집락 속으로 뛰어들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다.

메시지가 떠오른다.

[지옥의 성채 – 쓰레기의 바닥]

구도심 하층과도 비슷한 곳이다. 물론 위치는 그래도 구조는 전혀 다르다.

이곳은 저급한 짐승과도 같은 악마들과 일부 도태된 플레이어블 악마들이 뒤섞인 할렘가다.

“그리고 여긴 벽을 부술 수 있단 말이지.”

천상의 도시는 부수는 것에 품이 많이 드는 것을 떠나 그러고 있다가 두들겨 맞는다.

에길이 도끼를 크게 휘둘러 길을 터버렸다.

무언가의 뼈와 목재, 그리고 유황 냄새나는 화강암이 제멋대로 얽혀있던 벽이 통째로 쓰러지며 건너편을 드러낸다.

아귀 같은 작은 악마 몇몇이 고개를 들지만 그 순간 희우와 제니가 칼침을 놓았다.

아서와 에길이 순차적으로 벽을 때려 부순다.

그 와중 사루만 같은 복장으로 대검을 휘두르는 아서가 우습다.

진정한 워메이지인가.

천상의 도시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강행돌파는 불가능하다.

순식간에 포위 섬멸 당할 테니까.

안 그래도 대충 만들어둔 구조물들이 지진에 무너지기까지 하고 있다.

“안되겠다. 생매장 당할지도 몰라! 미아야!”

미아가 되찾은 달뿌리개를 흔든다. 디스가 저 지팡이를 아주 싫어했다고 하던데.

달빛이 샤리링쵸리링하며 직선으로 뻗어나간다.

문자 그대로 구조물들이 걸려나가며 직선의 긴 통로가 생겨난다.

달빛은 멀리 뻗어나간 끝에 어딘가에 닿아서 멈췄다.

“저기로 간다!”

땅굴 두더지가 따로 없다. 지진의 와중에 널찍하게 길을 터버렸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에길이 비교적 느렸다.

로스엘이 그 뒤에 달라붙어서 낑낑대며 속도를 더 빠르게 했다.

무너지는 동굴 속에서 스퍼트를 올려 빠져나가는 모습과도 같다.

쿠르릉하고 뒤가 박살나고 달빛을 가로막은 벽에 도달했다.

“어디가 입구죠?”

“주변을 맴돌며 찾아야해!”

이건 멀쩡한 구조물이다. 제대로 된 데몬 마법사들이 설계하고 악마군단장들이 권능을 내린 곳이다.

그리고 안에 있는 성배가 천상의 도시처럼 아주 단단하게 강화중이지.

사과 깎듯이 벽을 따라 돌며 주변을 밀어버렸다.

입구가 나타난다.

그리고 당연히 악마 군대도 나타났다.

지진에 정신이 팔린 동안 에길이 한 녀석의 머리를 빛의 속도로 쪼개버렸다.

아서는 우습게도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고 그걸 본 데몬 마법사는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물론 날아온 것은 대검이다.

저건 PVP에서 쓸 만한 페이크긴 하지. 클래스 구라치는 거처럼 열 받는 일도 없거든.

하지만 성배가 존재하는 중요 거점이기에 적 병력의 숫자는 기습으로 깔끔하게 처리할 정도가 아니었다.

디스트로이어가 울부짖는다.

미아의 달뿌리개와 물뿌리개가 사방에 촉촉한 빛을 흩날려 대었다.

나 역시 지금은 라파엘의 지팡이를 가로로 든다.

손바닥으로 슥하고 훑자 불길이 타오르며 내부의 검이 드러났다.

이 검의 유일한 단점인데 제대로 칼로 쓸려면 모션이 필요하다.

현실이 된 후에도 이걸 해야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차가운 화염을 내뿜던 레바테인과는 또다른 맛이 있다.

성스럽고도 뜨거운 이중 속성의 화염이 악마들을 덮친다.

숫자 앞에는 장사가 없다.

하지만 바벨의 자식들은 대개 숫자 앞의 장사다.

우리가 손에 넣은 편린 장비들도 그런 숫자에 앞설 수 있는 힘이다.

정확히 3분만에 서른에 가깝던 악마 병사들을 밀어버릴 수 있었다.

확인 사살은 필요도 없다.

아직도 살아서 저항하는 녀석들은 무시한 채로 에길이 힘을 모아 문짝을 내려찍었다.

벽보다는 문이 약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아서와 나까지 합심하여 공성추마냥 후들겨 까 겨우 틈을 만들어냈다.

희우와 미아를 안은 제니가 쏙 들어간다.

나머지는 증원을 대비하며 농성했다.

사방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이곳에 생각이 미친 장교급 악마들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안쪽에선.

섬광재생이 무언가에 격돌하는 소리.

대충 물기어린 달빛이 여러 가지를 지져버리는 소리.

제니가 광선을 쏘는 소리.

1분 정도 후에 셋이 헐떡이며 돌아나왔다.

“여기 중간보스 그래도 좀 센데요?”

“잘 때려잡았어.”

“못 잡았어요. 그냥 밀어내고 들고 튀었어요!”

자리 잡고 기다린 천상의 도시 농성과는 느낌이 좀 다르지. 이번엔 그걸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이제 상층으로 뛴다!”

블랑쉐가 디스를 위로 향한 채 배를 간질였다.

거대한 애옹이 수직으로 길을 내었다.

메타트론은 멀리서 충돌하는 힘을 다시 목격했다.

사탄이 아니다.

“저건 대체?”

여러 악마 군단장들이 격돌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바알의 검은 어둠도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서두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선을 다해 저 곳에 당도해야한다.

무언가 세계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그 흐름의 중심에 위치하지 못한다면 쓸려나갈 뿐이다.

메타트론은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깃털 혹은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는 천사의 상징이다.

바벨의 자식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메타트론의 날개는 서늘한 금속질, 기천사의 핀과도 다른 무언가.

“주여……. 그대의 힘을 빌리겠나이다.”

날개의 뒤편이 열리며 푸르스름한 화구를 드러낸다.

노인의 등 뒤에 펼쳐진 날개에서 밝은 푸른빛의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뒤섞인 기계신의 권능을 연료삼아 날개가 맹렬한 열기를 내뿜으며 추진을 시작했다.

메타트론은 한줄기 빛이 되어 충돌의 중심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