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80화
메인 던전 - Lv.17500 투신 [바알](5)
나헤마는 충분히 놀랐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달려드는 바알의 행동에 놀란 것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고 바벨의 자식이 갑자기 둘이나 사라지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긴 꼬리다.
그러니 바알은 이것을 알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단지 나헤마는 시간이 더 있을 거라고 여겼다.
처음 한 번의 충돌 후에 둘은 서로 물러섰다.
결국 권능을 다룸에도 마법적으로 구사하는 나헤마는 수비적이었고 물리적으로 구사하는 바알은 공격적이었다.
더 크게 밀려난 것은 마법사다.
[쓰지도 않던 머리를 열심히도 굴렸군.]
“이봐! 나헤마! 내가 머리가 나쁜 건 나도 알지만 말이야!”
바알의 입 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간다. 사나운 미소가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다.
산발한 머리카락은 휘날리면 눈가를 가린다.
“이렇게 대놓고 하면 바보라도 알지! 안 그래? 얼마나 강해졌는지 볼까!”
어두컴컴한 지옥의 풍경 속에서 홀로 빛나는 악마의 왕에 걸맞은 위압감이었다.
나헤마는 그 모습에 움찔하는 자신에 분노했다.
* * *
* * *
힘은 여유를 준다. 하지만 그 여유는 진정한 악마의 왕 앞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그 사실에 분노한다.
솔로몬의 [악마 죽이기]?
바알에게는 쓰지 않는다.
사실 쓸 기회도 적을 것이다.
기습이 아니라면 어렵다. 마법사인 나헤마에게 단검을 그렇게 잘 다룰 기술은 없으니까.
힘으로.
그가 그렇게 갈구하던 힘으로.
바벨의 자식들이 그렇게 자랑하며 그를 내려다보던 그 힘으로 죽인다.
[힘을 다루는 법이라면 너희들을 보며 매일같이 상상했지. 그렇게 쓰는 게 아닌데 말이야!]
“덤벼라! 마법사!”
즐거워하는 바알에게 힘을 투사한다.
막대한 권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주인 잃은 힘은 의지를 다루는 마법사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사방에 더 짙고 타오르는 유황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스모데우스의 힘인가. 까다롭지. 그 녀석의 형태는 구현 못하나?”
나헤마는 조금 냉정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바알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다. 침착하게 자신을 보며 어떻게 상대할까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 묻는 저 말도 도발도 무엇도 아닐 것이다.
그냥 알려주면 좋으니까 물어보는 것일 터.
바알은 강하다. 사탄을 밀어내고 모두가 아무런 이견을 제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악마왕이다.
그가 부러워하는 한편 두려워 하던 바벨의 자식을 뒤에 군림한 괴물.
마법사다운 냉철함이 되돌아온다.
퍼져 나간 유황지옥불의 영역 속에서 바알이 내뻗는 어둠의 영역을 관찰한다.
이 정도 힘이 충돌한다고 보기에는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건 바알에게 더 유리한 간격이다.
불길이 피어오른다. 사방을 불사르며 터뜨려 버렸다.
아스모데우스의 유황불은 불의 원소와 닮아 있다. 그 힘의 질이 다를 뿐 결국 열기로 요약할 수 있는 개념인저.
[마법을 느껴라. 마법의 신을 느껴라. 너희들이 얼마나 힘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는지 깨달아라!]
울분처럼 토해내는 말이 곧 주문이 된다.
공간이 뻗어 나간다. 영역이 물리적인 실체가 되어 새로운 시공간을 형성했다.
이곳은 안이 되고 바깥은 밀려나 희미할 정도로 멀어졌다.
“오호, 벌써 영역은 제대로 구사하는군.”
나헤마가 매일 같이 이 힘을 가지면 어떻게 사용할지 상상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가 상상해 온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지옥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죽어라!]
바알은 주먹을 들었다.
미카엘은 얼떨결에 그 전투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영역이 펼쳐지고 그 속에 있으니 별일이 없다면 나헤마는 그가 여기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천상의 군주는 저들이 좀 더 넓은 곳에서, 더 구체적으로는 공중에서 싸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야 거체를 편히 놀리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이 자식들 왜 인간형으로 싸우지?”
그러다가 나헤마에게는 본모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 바알은 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그의 의문에 대답해 준다.
[본 모습을 드러내라! 안 그러면 죽을 거다 바알!]
“미카엘은 이 모습으로도 잘 싸우더군! 나도 한번 해보고 있다!”
이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닐 텐데.
그렇다곤 하더라도 바알은 무의식중에 유배자, 그중에서도 격투가들의 움직임을 잘 따라 하고 있다.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동작의 어설픔으로 알 수 있다.
그래도 형태가 인간이고 가진 힘의 크기가 거대한 만큼 충분히 위협적이다.
“일대일이면 둘 다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겠군.”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닫는다.
지옥불로 타오르는 유황냄새 가득한 영역을 보면서.
“이건 아스모데우스 건데.”
자신이 알던 정보가 틀렸나 생각해 본다. 그렇지는 않다. 그럼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조금 전 둘이서 떠들던 말이 기억난다.
지극히 유배자적 상상력을 발휘한 미카엘은 정답에 도달했다.
“그냥 죽이기만 한 게 아니라 힘을 손에 넣었나?”
그게 왜 가능하지?
하지만 다시 유배자 파티의 마법사가 떠오른다.
“그럴 수도 있겠군. 어떻게 했는지는 물어보면……. 말해주진 않을 것 같네.”
미카엘은 우선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충돌이 시작되자 거대한 힘의 여파가 사방을 뒤흔든다.
영역이 펼쳐지며 일종의 독립된 공간으로 들어왔지만 양측 다 힘을 아낄 생각이 없다.
비슷한 규모의 힘으로 맞대응하여 상쇄하는 게 아니라면 미카엘도 다친다.
그대로 빛을 내뿜으며 영역의 밖으로 향한다.
경계는 두들겨서 깨부쉈다.
밖도 마찬가지다.
천상의 도시처럼 튼튼하지도 못한 평범한 대지는 내부에서 분출되는 힘의 여파에 뒤흔들리고 있다.
땅이 갈라지고 용암이 치솟는다. 지옥의 성채에서 약한 부분도 조금씩 허물어진다.
“어떻게 해야 한다.”
이 싸움의 끝을 기다리나?
충분히 둘이 힘을 소모한 후에 약화된 것을 처리하자는 것이 유배자 리더의 의견이었다.
방금의 일로 안에 있는 두 녀석이 미카엘의 존재를 눈치챘을 것이다.
천상의 도시로 돌아갈까?
미카엘은 판단을 잠깐 보류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도 어떻게 결판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하기로 했다.
유배자의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는 천상의 도시로 돌아간다.
다만 문제가 발생했다.
“메타트론?”
아직 아득하게 멀다.
저쪽은 미카엘을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의 거리.
“메타트론이군. 저건 뭐지?”
그가 알던 메타트론의 힘이 아니다. 세피로트에 새겨진 케테르의 힘에 대응하는 메타트론의 속성이 아니다.
아주 이질적이다.
그가 아는 메타트론은 천상과 법도의 천사.
구름이 펼쳐진 창공의 영역을 지닌 편린이다.
죽인거나 다름없었다. 껍데기의 날개마저 뜯어내었으니까.
메타트론의 권능은 거진 소멸했을텐데.
“정말로 뜻대로 되는 일이 없군. 유배자들은 그 짧은 인생에서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는 것인가.”
검을 뽑는다. 메타트론은 알 수 없는 힘을 지닌 채 이쪽으로 똑바로 내달리고 있다.
“여기서 죽여야겠군.”
이길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생각은 없다. 해야할 일이다.
[지옥의 성채 - 어둠의 가장자리]
솟구쳐 올라오자마자 메시지가 떠오른다.
수직으로 쌓인 층이었던 천상의 도시와는 구조가 약간 다르다.
거대한 산맥을 등지고 계단처럼 상승하는 구조다.
그래서 수직으로 솟아오르자 그 거대한 계단의 전경이……. 보이지는 않았다.
“어디로 착지하죠?”
“일단 비행 유지하고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남아 있는 튼튼한 구조물에다가!”
이 지역 자체가 가장자리라는 이름대로 제멋대로 증축된 곳이다.
악마들은 내키는 대로 사니까 정말 아무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성배가 있기에 유지되던 구조가 허물어지고 있다.
필드 자체가 소멸하는 형태다. 그대로 있으면 생매장 당하는 기믹이고.
“저쪽이 안전해 보이는데요?”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유배자에게 불리하다 포위당할 수 있는 면이 더 늘어나니까.
악마들은 무너지는 지반에 놀라 날아오르고 아직도 천사나 인간이 그들 사이에 섞여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마법은 쓰지 말고 이동!”
여기서 갑자기 술식을 발휘하여 우리입니다 말할 이유는 없다.
본래의 모습을 뒤덮고 있던 증축된 껍데기들이 쓸려 내려가며 지옥의 성채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천상의 도시에 대비되는 검고 삐죽빼죽한 모습.
정갈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야성적인 박력만큼은 뇌리에 새겨지는 형태.
계단 아래로 쏟아지는 쓰레기 더미를 피해 통로 속으로 들어섰다.
[지옥의 성채 - 어둠의 아가리]
이렇게 쓸려 나가면 도리어 편하다. 길을 찾는데 헤맬 필요가 없다.
증축은 랜덤 생성이다 어떤 꼬라지로 이루어졌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옥의 성채 본체만큼은 고정이다.
“사실상 여기가 입구군요.”
“성배 하나 더는 천상의 도시처럼 저 안쪽까지 가야 하거든? 진짜 쉴 틈이 없어! 달려!”
지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곳은 흔들림이 덜한 만큼 혼란도 덜하다. 악마 병사들과 높은 지위를 가진 비플레이어블 악마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천사?”
라고 말하는 순간 머리를 쪼개고.
“침입자다! 인간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심장에 칼을 꽂고.
“천사가 침투했다!”
라는 말을 뒤편에서 메아리 삼아 그대로 들어간다.
개활지를 피하고 골목골목으로 좁은 통로만을 내달리며.
그렇게 중간보스는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으나.
[너희들은 무엇이냐? 천사와 악마가 뒤섞여 있군. 유배자인가!]
불타는 검을 든 박쥐 날개의 거대한 악마.
근육질의 몸체와 산양을 연상케 하는 뿔.
통로를 가로막고 지나갈 수 없게 만드는 거체.
“아, 이거 중간 보스죠?”
“미아야. 텔레포트 마커 찍어라. 연결할 수 있지?”
“네!”
인원을 분배한다.
상대하는 것은 제니와 미아, 그리고 아서.
첫 번째 격돌 이후 악마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간다.
[어딜 감히!]
뭘 어딜 감히야.
물뿌리개가 불길을 식히고 그대로 내달렸다.
“불러오는 건 블랑쉐가 해야 해. 내가 도와줄 테니.”
전력을 줄이는 인원분배가 아니다. 쓰러뜨릴 필요도 없다. 추격이 힘들만큼의 타격만 입히면 곧바로 우리 쪽에서 소환한다.
지옥의 성채는 도리어 천상의 도시보다 마법의 사용이 자유롭다. 짐승형들조차 마법을 구하는 것이 악마니까.
병사들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
내가 앞장서고 에길이 그 뒤에서 극딜을 넣으며 계속 달렸다.
블랑쉐는 사격과 마법지원을 동시에 수행하며 정찰까지도 해내는 중이다.
소환 요청이 들어올 때쯤에 지역의 명칭이 바뀌었다.
[지옥의 성채 - 태초의 전당]
“거의 다 왔군.”
“생각보단 수월한데요?”
동시에 입구가 얼어붙었다.
냉기가 피어오르며 냉기 자체에 목소리를 담은 듯한 울림이 흘러나온다.
[그래, 거의 다 오셨군.]
“얼음에 닿지 마!”
권능이다.
드라이아이스마냥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음산하고도 서늘한, 냉기를 그대로 구현한 것 같은 사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배자가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인데.]
“누구죠?”
나는 대답했다.
“벨페고르.”
딱 소환되어 나타난 아서가 말했다.
“잡을 준비를 다 해둔 놈이군.”
나도 대답했다.
“진짜 다행이네요. 다른 놈이었으면 저 좀 울고 싶었을지도?”
벨페고르가 불쾌함을 담아 중얼거리듯 말한다.
[건방지군.]
다음 순간 지옥의 성채 내에 있던 우리는 다른 곳을 보게 되었다.
얼어붙은 바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의 서릿발이 몰아드는 극한의 영역.
[위대함의 편린]
[혹한의 대공, 벨페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