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81화
메인 던전 - Lv.12500 혹한의 대공 [벨페고르]
벨페고르의 특징은 녹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보통의 수단으로는 녹일 수 없다.
일반적인 마법으로 녹여내려면 노심 수십 개 수준의 마력과 그에 걸맞은 마법 구사 능력이 필요하다.
미아라면 단독으로도 가능은 하겠지만 비효율적이다.
가브리엘과는 또 다르다.
벨페고르는 방어력이 아주 높은 타입의 전사형 보스기에 약점마저도 이렇게 단단한 것이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다면 가장 무력해지는 타입이기도 하다.
“그 무력하다는 거 어느 정도죠?”
“그래도 방심하면 죽을 수 있는 정도.”
“하지만 솔로몬의 장비가 있지 않나.”
“그래서 방심해도 한 번은 안 죽는 정도죠.”
파티원들이 깨닫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둔 준비가 얼마나 벨페고르라는 강력한 보스의 약점을 핀 포인트로 찌르고 있는지 말이다.
“일단 내 주변으로 모여. 미아야 보온 준비.”
서릿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개막 패턴이다.
불길을 피워 올리고 그 주변을 녹인다.
이곳은 바다이기에 무턱대고 녹여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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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디딜 곳이 사라진다.
보스들이란 기믹의 총체이며 그것을 공략하는 것이 유배자의 역할이다.
서릿발이 몰아치는 가운데에도 영향은 거의 받지 않는다.
몰아치는 냉기는 라파엘의 권능으로 중화되고, 물리적인 형태의 얼음은 녹아 떨어진다.
미아는 그 열을 점점 모아 보온을 하고 있다.
사실 이걸 하지 않더라도 영향은 적을 것이다.
솔로몬 특제 불이 깃든 방어구들을 이미 한참 전부터 착용 중이다.
벨페고르와 만날지도 몰라서라기보다는 그냥 고성능이니까 말이지.
충분히 열기가 모여 더워질 정도가 되자 그대로 서릿발을 무시하고 내달린다.
[……라파엘?]
잠깐 혼란에 빠져 계시는군. 이런 식으로 빈틈이 생기기도 한다. 상상도 못 한 정체일 테니까.
그대로 직진 또 직진. 열풍의 사막은 구현되어 주변을 감싸지는 못했으나 그 열기만큼은 끊임없이 내뿜는다.
레바테인보다 훨씬 고성능이라 아쉽지가 않다.
자신의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도 우리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보스가 보면 말이다.
바벨의 자식들의 사고는 엄밀히 따지면 어딘가 어긋난 인간과도 같다. 그러니 당황도 혼란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거기에 그 막대한 힘을 가지고 곤경에 처할 일은 적으니 도리어 연약하다고 봐야 한다.
물론, 벨페고르는 가브리엘처럼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니다.
애초에 사격은 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는 없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혹한의 대공의 모습이 드러났다.
수염을 기르고 고풍스러운 복식의 미남자. 귀족이라면 귀족 그 자체요, 강인한 표정과 냉엄한 자태에서는 기사적인 면모가 보인다.
벨페고르는 대공이라는 호칭답게 인간형의 모습이 정말로 중년의 대귀족 같은 모습이다.
서리가 끼고 고드름이 매달린 양손검을 들고 노려보듯이 이쪽을 보고 있다.
반가운 얼굴은 아니지만 익숙한 얼굴이긴 하다. 벨페고르는 약점을 찌를 수 있을 경우 몹시 수월한 보스지만 그에 비해 장비는 고성능이라 애용하는 편이다.
냉기를 녹여내며 태양의 불길을 휘감고 벨페고르의 눈앞까지 도달한다.
대악마는 대검을 역수로 양손에 쥐고 그대로 내리꽂았다.
벨페고르가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에서는 아니다.
그는 원래 지옥의 성채 중심지에 자주 거한다.
파벌이 갈린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제 세력을 거느리고 독립하길 원하지는 않는 법.
벨페고르는 릴리트와 친밀한 관계지만 그렇다고 그에 소속된 것도 아니다.
그는 세력 없이 독고다이하는 악마군단장.
지키는 이 없는 지옥의 성채를 수비하듯 언제나 이 근방에 자리하고 있는 자다.
하지만 그것은 은거와도 같은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것도 그렇기 때문이다.
혹한의 대공은 갑작스럽게 나타는 유배자를 현재 일어나는 지진의 원인으로 판단했다.
제거할 필요가 있다.
낙승은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라파엘이 보였다.
더 정확히는 그 천사는 아니다. 그 천사의 힘이 깃든 검을 횃불처럼 치켜들고 달려오는 유배자 파티다.
조금 시간이 걸렸으나 그는 사태를 파악했다.
충분히 위험하다.
라파엘은 불행하게도 그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 중 하나였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날 때부터 운명 지어진 그의 역할이었다.
이런 균형이 바벨의 자식들끼리 함부로 싸우지 못하게 하는 억지력인 셈이다.
그리고 그 조각일지라도 저렇게 휘두르며 다가온다면.
검을 역수로 들어 내리꽂는다.
이 영역은 얼어붙은 바다다.
그는 그것을 이용할 줄 안다.
그것이 그의 권능, 그의 특질, 그의 힘.
빙하가 길게 갈라졌다.
얼어붙은 바다의 아래에서 혹한의 물보라가 치솟아 굳어버린다.
달려들던 유배자 파티는 날아올랐으나 다시 휘몰아치는 눈보라 사이로 사라졌다.
[역시 페이즈 꼬아대잖아.]
[저거 벌써 쓰는 거 아니잖아요.]
그런 말을 하면서도 대처는 빠르다.
솔로몬의 무덤에서 얻은 시점부터 우리가 벨페고르를 상대하는 것은 확정사항이었다.
그러므로 제각각 숙지는 마친 상태다.
날아오르는 척을 하며 갈라지는 얼음 바다의 부빙 위를 타고 달린다.
미끄러운 벽을 타는 것과도 같다.
[블랑쉐, 관측 부탁해.]
이번에 블랑쉐는 딜링에 참가하지 않는다. 벨페고르 필드의 가장 큰 특징은 시야가 교란된다는 점이다.
권능의 눈보라는 온갖 물리, 마법적 탐색을 막는다.
그런 가운데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사수로서 쌓아둔 패시브의 덕분이다.
물론 그것도 완전하지는 않다.
[투사체가 온다. 크기는 중형.]
얼음 덩어리일지 냉기의 구체일지는 알 수 없다. 감으로 짬으로 때려 맞혀야 한다.
둘로 갈라진 파티원들은 다시 내 주변으로 모였다.
라파엘의 화염으로 날아드는 것을 가른다. 그리고 다시 전진.
같은 권능의 열기로 걷혀 잠깐 드러난 시야 속에서 벨페고르는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얼음 바다가 사방으로 부서져 수없이 많은 발판이 되고 있다.
그 아래의 비현실적으로 과냉각된 바닷물은 닿는 순간 얼어붙어 막대한 피해와 이동불가를 가한다.
가능하면 닿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도 튀어오르며 몸에 닿는 즉시 얼어붙어 움직임을 방해한다. 그리고 다시 녹아내린다.
미아는 열관리에 신경 쓰는 중이다. 빠르게 만들어낸 노심 몇몇에서 마력을 끌어다 불의 원소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이미 형성했다.
얇은 열기의 보호막이 개개인에게 배정된 노심을 통해 유지된다.
[속전속결이 기본이야. 맵기믹으로 동결되면 사실상 즉사니까.]
[한 번은 솔로몬이 막아주나?]
[이미 늦춰주고 있습니다. 우린 사실 여유가 많아요. 그래도 동결되면 죽어요.]
기믹적인 부분 이외에도 현실이 되면 많은 난관을 준다. 숨을 쉬면 폐부가 칼로 헤집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 아예 참는 편이 좋다.
벨페고르는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겠지만.
[발판 위를 달리는 건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했지.]
가장 흔한 기믹이 아니겠는가.
모든 환경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파티원들 전원이 거의 동시에 벨페고르의 눈앞으로 도달했다.
각자 준비한, 최강의 일격은 아니더라도 버프가 켜진 공격을 휘두른다.
벨페고르는 황급하게 검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에길이 처음이었다.
얼음 바다를 더 조각낼 듯한 충격과 함께 혹한의 대공이 밀려난다. 그러며 무너질듯한 가드 위에 내가 라파엘의 불길과 바람의 검으로 올려쳤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들어온 공격이기에 벨페고르는 중심을 잃었다.
지금부터는 민첩직들의 일이다.
제니는 이미 거대해진 쌍검을 쐐기처럼 박아 넣고 그 사이를 희우가 찌른다. 가슴에 박힌 [아카샤의 눈]을 따라 얼음이 퍼져 나간다.
동시에 신성한 진노의 불길이 활활 타며 번졌다.
악마의 고아한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서는 마지막이었다.
그는 여전한 마법사의 차림으로 새로 얻은 아티팩트 [히트 엔진]을 찔러 넣었다.
대응하려던 벨페고르가 어이없어했다.
[그런 차림으로 검을 휘두르나?]
여유롭군.
파티원들에게 신호한다.
다들 몸을 웅크렸고 미아는 최고로 열기를 끌어올렸다.
차가운 폭발이 일었다.
충분한 대미지를 입힌 것은 아니다. 위협적으로 느꼈기에 자기 멋대로 페이즈를 넘기는 건 앞으로 디폴트가 될 듯하다.
권능을 해방함으로서 본 모습을 드러낸다. 세피로트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세월로 쌓아온 힘을 흩뿌린다.
벨페고르는 다시 얼어붙는 바다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고위 천사들이 힘의 덩어리 같은 이형의 모습이거나 상징적인 기호의 모습이라면 악마들은 짐승의 모습이다.
욕망과 본능, 그 형태를 나타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여서일지도 모른다.
거체의 목이 들어 올려졌다.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거대한 얼음의 드래곤이 서리로 이루어진 날개와 함께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지상을 굽어 살핀다.
광활하게 펼쳐진 냉기의 바다는 조각나다 말고 다시 굳어간다. 공기마저 얼어붙어 액체가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산화탄소가 흐르다가 굳어 떨어진다.
산소가 비처럼 내린다.
질소의 습기가 공기 중을 메운다.
호흡하는 것들은 살 수 없을 것이다.
악마란 힘의 권화이니 그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그리고 라파엘의 화염이 크게 번지는 모습이 보인다.
벨페고르는 입을 벌렸고 숨결을 들이쉬기 시작했다.
액체와 고체만이 뒤섞인 분무가 준비되고 있다. 열로 대항할 수는 있겠으나 뒤섞인 냉기의 권능마저 받아내려면 지나치게 막대한 열량이 필요하리라.
[사라져라!]
권능을 담은 위엄 있는 음성이 내리꽂는 브레스와 함께 지상을 찢어발길 듯이 쏟아졌다.
우습게도 저런 공격은 물뿌리개가 막을 수 있다.
권능이 깃든 H2O는 미아의 흔들림에 따라 허공에서 대량 발생했고 그대로 얼어붙으면서 한없이 단단한 방공호를 만들어냈다.
브레스는 2페이즈의 개막 패턴이기에 반드시 나올 거라 여겼다.
그리고 저것을 쏘는 동안에는 벨페고르도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할 수 없다.
시간 역시 충분히 주어진다.
[에길과 아서가 준비하세요. 페이즈를 넘겼으니 우리는 저 용을 녹일 겁니다.]
벨페고르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두들겨 잡으려면 굉장히 단단한 보스 중 하나다.
특히 악마의 특성이 더해져서 물리 공격에는 거의 면역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끔찍한 방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믹으로, 녹일 수 있다면 이 테마에서 가장 물렁한 도마뱀이 되어버린다.
순서는 정해져 있다.
먼저, 속성을 발휘할 수 없고 재빠른 희우와 로스엘이 교란한다.
로스엘이 천상의 선율이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희우와 함께 대기한다. 내가 가속관문을 만들어준다.
빠른 것은 항상 위협적이다. 악마의 본능도 그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실제로 벨페고르를 녹이는 것은 나다.
라파엘의 권능을 응축하여 검에 휘감는다. 아서가 마검사가 될 필요가 있는 것은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데 더 용이한 탓도 있다.
불길의 권능이 흘러나오는 대로 검신에 응축한다. 흑체복사를 일으키는 달아오른 쇳덩이가 되어간다.
그러다가 점점 시공마저 뒤틀리는 응축된 권능 그 자체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중이다.
이걸 시원하게 덮어씌워야 한다.
버프를 준비한다. 한순간에 켜는 것보다 출발의 순간에 하는 것이 낫다.
에길이 아수라파천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블랑쉐가 마법을 동반한 사수의 시야로 바깥을 관측한다.
[곧 끝난다.]
기세만 파악할 수 있다면 브레스의 종료 시점은 알 수 있다.
잠깐이지만 일손이 남는 제니와 아서가 물뿌리개로 만들어진 방공호의 옆을 파내어 출구를 만들었다.
그대로 두 기천사가 출격한다.
가속 관문의 가속을 받아 제로백이 없는 수준의 비행이 소닉붐과 함께 일었다.
둘은 아주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버프를 동원하고 시각적인 효과까지 첨가한다.
에덴이 흩날리고 당황한 듯한 벨페고르의 음성이 울린다.
[하니엘? 미친…….]
타이밍은 유일하게 관측이 가능한 블랑쉐가 잰다.
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와서 나를 껴안는다.
[지금이다.]
[검은 날개]가 나를 감쌌다. 마법이 아니기에 교란도 소용없는 무적의 이동 유틸리티가 검을 깃털을 날리며 발동했다.
다음 순간 로스엘의 화살을 튕겨내고 있는 벨페고르가 눈앞에 나타났다.
검을 들고 응축된 권능의 화염을 해방한다.
태양처럼 빛나는 바람이 휘몰아쳤다. 열기의 회오리는 얼어붙은 대기를 순식간에 녹이로 끓였다.
벨페고르의 날개가 녹는다. 비행 능력이 사라진다.
미처 추락하기도 전에 몸을 덮은 갑옷과도 같은 얼음이 흘러내리고, 증발하기 시작한다.
[이 무슨……?]
회오리 사이로 파고들어 검을 찔러 넣는다. 마력까지 동원하여 녹고 있는 비늘 사이에 깊숙이 박는다.
위치는 가슴팍 한 가운데.
체내까지고 열기가 파고들어 날뛴다.
비명도 괴성도 아닌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소리가 주변에 힘을 담아 울려 퍼졌다.
피어효과가 있으나 파티원 누구에게도 듣지 않았다.
거대한 용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날개를 이룬 서리는 너무 얇은 탓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솔로몬이 눈독들인 재능의 마법사가 피워 올린 또 다른 태양이 솟구쳤다.
제니가 눈부신 듯 인상을 잔뜩 쓰고 위를 보며 상황을 파악한다.
미아는 눈을 감은 채로 집중 중이다.
너무 천천히 떨어지기에 희우와 로스엘에게 신호하여 찍어눌렀다.
드래곤의 추락 속도가 더 빨라진다.
벨페고르가 힘을 내뿜으며 저항하려고 했으나 상극의 권능이 그것을 봉쇄한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이 찰나만 지난다면 벨페고르는 교훈을 얻은 채로 3페이즈를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추락하는 용은 그대로 마법적 태양으로 떨어졌다.
열기에 열기가 더해진다. 천사들의 신성한 불꽃도 그 위를 덮으며 속성의 힘을 더한다.
녹아내린 권능의 얼음이 일시적으로 제어를 잃고 주변에 흐른다.
[아서! 에길!]
사실 이제 신호할 필요도 없었다.
둘은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검은 기운을 휘감은 빛의 도끼 이전에 이름부터 엔진인 기계적 대검을 아서가 휘두른다.
단언컨대, [갤러해드 : 띠의 검]은 미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방어력 무시 액티브 중 하나다.
존재 자체가 열이며 열이 곧 대미지인, 물리 대미지마저 희생하여 불의 원소 대미지에 몰빵한 아티팩트가 녹아내릴대로 녹아내린 비늘 사이에, 나를 지나 그 속에 존재하는 심장까지 가서 닿는다.
심장을 감싸던 얼음이 맹렬한 열기와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3페이즈로 강제로 넘어간다.
터져 나올 전멸기에도 불구하고 파티원들은 제 자리를 지키며 공격을 퍼부었다.
화이트 아웃과 함께 세상을 얼어붙게 만드는 권능이 주변에 행사되었다.
엔트로피가 우습다는 듯이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 자리에서 모든 열량이 증발한다.
한순간 만들어진 절대영도에 가까운 지옥의 온도에서 솔로몬이 오랜 세월 연단했을 방어구가 빛을 내며 타오르고 스러졌다.
에길은 완전히 녹아내린 용의 몸체, 그리고 그 속의 심장을 향해 검은빛을 두른 도끼를 아광속으로 내려찍었다.
직후 거의 폭발하듯이 엄청난 속도로 눈앞에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Fragment Of Greatness Slain]
[편린이 당신들에게 깃듭니다.]
빛이 흐른다.
우리는 다시 지진을 겪고 있는 지옥의 성채에 서 있었고 머리카락과 수염에 고드름을 잔뜩 달고 있는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메인 던전에 진입하고 항상 속전속결을 말했지만 그게 진짜로 성공하는 게 처음인 것 같군요.”
벨페고르가 있었을 것 같은 자리에 룬이 새겨진 서슬 퍼런 대검이 떨어져있다.
그래서 게이머들이 부르던 벨페고르 무기의 별명이 서리한이다.
물론 대검 마스터리를 가진 아서의 것이다. 불과 얼음의 쌍수 대검을 할 수 있겠군.
아서가 대검을 집어 들더니 기쁜 듯이 수염을 쓰다듬으려고 했다. 하지만 얼어서 돌처럼 단단하다.
노기사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기쁘게 말한다.
“역시 딜찍누가 최고로군.”
에길이 거든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딜 계산입니다. 아서도 수학 좀 배워보시겠습니까?”
“난 마법에 필요한 것만 배울 테니 저리 가게. 수학하는 자여.”
“사악하다니 말이 너무 심하군요. 전 천사입니다.”
편린을 때려잡고 농담 따먹기도 할 수 있다니. 다들 잘 적응했군.
하지만 몇몇 파티원들은 손을 떨고 있다.
가브리엘에게서 느꼈던 공포가 충분한 긴장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럴 때는 궁둥이를 한 번 더 걷어차는 것이 맞다.
승리에 취할 필요도 무엇도 없다. 실제로도 그렇고.
“시간 없어요. 다시 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