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82화
메인 던전 – Lv.17500 [빛과 어둠의 경계](2)
지옥의 성채는 사실 천상의 도시만큼 튼튼하지는 않다.
천사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체계를 갖추고 지도자 아래에 결속해 있었다면 악마들은 제각기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한다.
따라서 그들은 지옥의 성채라는 거점을 천사들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특별히 천상의 도시마냥 단단한 방위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도 않다.
클리포트만 멀쩡하다면 다른 것은 어찌 되어도 좋기 때문이다.
그럼 지옥의 성채 본성을 공략하는 것에 제일 큰 난관은 무엇인가?
어슬렁거리며 아무렇게나 싸움을 걸어대는 바알 같은 놈이다.
재수가 없으면 비교적 쪼렙 지역인 [쓰레기의 바닥] 같은 곳에서 최종보스급을 만날 수도 있다.
지금 일어나는 혼란은 그런 변수를 모두 제거해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충격파가 더 거세진다.
그리고 그사이에 빛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이건 좀 다른 충돌 같은데요.”
“성채 내부까지 파고들 정도면 대단한 천사의 공격인데. 미카엘이 혼자서 이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 * *
* * *
미아와 블랑쉐가 움직이는 와중 함께 관측을 위한 시도를 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금속 날개 달고 있는 천사는 누구죠?”
“메타트론이군.”
“왔나 보네요.”
“미카엘과 싸우고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그러게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지옥의 성채 앞에서 이 테마 최종 보스 라인들이 다 만나서 싸우고 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군.
어느 쪽이 승리하건 다른 쪽이 큰 피해를 입었기를 바랄 뿐이다.
“어차피 성배가 열쇠니 결국 싸우다가 이긴 쪽이 우리를 쫓을 거야. 도둑맞은 걸 뒤늦게 알 테니까.”
얼마나 오래 묶여 있게 될까?
이렇게까지 되어버리면 사생결단까지 갈 확률은 도리어 낮아진다.
쉽게 처리가 가능하다면 모를까 힘이 어느 정도 길항하지 않을까?
그럼 어느 쪽이건 접고 물러설 것이다.
바벨의 자식들은 서로를 단숨에 죽일 수 없다.
한쪽이 아주 약화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모두가 우리를 쫓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될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 보이는데. 다른 곳에 정신 팔린 동안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해.”
그 와중 다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른다.
[지옥의 성채 – 클리포트의 자리]
[태초의 전당]에 다른 병력은 없었기에 쉬이 통과할 수 있었다.
벨페고르가 지키고 있는 탓일 것이었다. 그 악마의 욕망 또한 이 멋들어진 성채를 지키는 것이니까.
힘만 센 바알 대신 실질적인 수장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클리포트가 위치한 곳에 성배도 함께 있다.
천장에서 바닥을 향해 자란 칠흑의 거꾸로 선 나무가 눈에 띈다.
성배가 보인다. 하지만 그 힘이 이 좁은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만 발휘되고 있다.
“어떻게 열죠?”
“힘으로.”
방해요소가 달리 없다면 어떤 방어도 뚫을 수 있다.
느긋하게 마법적 해체를 할 시간은 없으니까 두들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도 바깥은 난장판이었다.
흔들림과 충격파는 점점 거세지기만 하고 있다.
희우가 제안했다.
“이거 부숴 버리죠.”
“클리포트를?”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확실히 그렇게 하면 더 끔찍한 혼란을 빚을 수는 있다.
그건 분명히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남겨두자. 쓸데가 있을지도 몰라.”
미아가 라파엘을 단말 삼아 해낸 일을 들은 후에 떠올린 발상이었다.
솔로몬의 허가가 필요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허가만 따낼 수 있다면.
“반드시 우리 힘으로만 싸워야 할 필요는 없지.”
거기에 지금 막 클리포트에 빈자리가 하나 생긴 참이다.
“……그럼 벨페고르의 껍데기를 생포해둘 걸 그랬나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차라리 솔로몬의 허가를 얻는 편이 낫다. 그는 아직도 신좌에 앉아 있다.
다음 성배의 위치로 향한다.
쥐새끼도 그렇고 성배의 처음 위치가 변하는 일만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시 [쓰레기의 바닥]으로 돌아가야 해.”
“스타팅이 악마가 아니면 가장자리가 무너져 내린 후에 열리는 지역이 있었죠.”
바닥에는 다시 바닥이 있다.
히든 지역의 일종이다.
“현재 그럼 성배 보유 숫자가 어떻게 된다고 봐야 하죠?”
제니가 이미 핑핑 도는 눈으로 말한다.
메타트론이 하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양반이니 미카엘이 없는 틈을 타서 탈취했겠지.
거기에 쥐새끼가 메타트론의 손에 있을 가능성도 높다.
메타트론 둘.
미카엘과 바알, 그리고 나헤마는 가지고 있지 않다.
악마 측의 성배 둘은 방금 우리가 모조리 탈취한 참이다.
“2 대 2군요.”
“장소도 중요하지.”
[영원한 분쟁]에서 이어지는 지역이 있다.
그곳이 전쟁터가 되었던 이유, 그리고 이제는 거의 잊힌 것이나 다름없는 제단이 있다.
그 제단은 세상이 붕괴하며 조각난 기계신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기계무덤에 가라앉아 있는 거대한 신전과 [가라앉은 영광]에서 볼 수 있었던 옛 도시의 일부를 유지하고 있던 분령.
그런 것들이 모두 하나였던 시절의 중추이자 진정으로 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곳.
“성지의 3개 슬롯에 성배를 안치하고, 그곳에 마지막 하나를 들고 가면 되는 그런 일이었지.”
아서가 확인하듯 말한다.
그러므로 메타트론이 지키던 성지는 당연히 지옥의 성채에도 있다.
악마들 상당수가 그다지 세상의 수복에 관심이 없어 잊혔을 뿐이다.
도리어 천사 출신인 사탄만이 그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고로 그가 바알에게 패한 다음에는 정말로 방치되고 있다는 설정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향한다.
성지에는 개노답 삼남매의 마지막 한 명이 있다.
간신히 탈출한 리온과 라리사는 갈 곳이 없었다.
사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다.
그들이 내몰린 곳은 어딘가 알 수 없는 황야였다.
“여긴 어디지?”
“전혀 모르겠어.”
“큰일 났는데.”
쥐새끼가 다시 구멍을 열 것인가에 대해서 물었다.
그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주변을 살펴보더라도 도통 이곳이 어딘지는 알 수가 없다.
언뜻 보면 [영원한 분쟁]과도 비슷한 필드로 보이지만 그랬다면 그런 메시지가 떠올랐을 터.
아무것도 없는 잿빛의 황야는 음울하고도 음산했다.
오래전에 벼려져서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느낌이다.
바닥은 재와 비슷한 것들이 옅게 깔려 있고 언제 있었는지도 모를 파괴의 흔적이 가득하다.
사방에 재와 어둠이 흩날리며 시야를 축소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거 뭔가…….”
“재해에 의한 파괴? 그런 느낌이 드는데.”
“맞아. 누가 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저절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마치 세상이 무너지며 일어난 일처럼 말이다.
“여기도 도시였을까?”
“아닌 것 같아. 거주시설이라기보다는 신전 느낌에 더 가깝지 않아?”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이따금 구조물이었던 것의 흔적들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는 쓰러지고 무너져 내려 잿빛 황야의 일부가 되어있다.
찬란했던 영광의 흔적 같은 것도 알 수 없다.
“지진도 아닌 것 같은데.”
“공간 자체가 찢어지고 부서진 것 같은…….”
그쯤에서 리온은 한 가지를 떠올렸다.
“서든 데스.”
“우린 유배자가 아니라서 본 적 없잖아.”
“들어서는 알아. 필드나 맵이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
“여기서 그런 일이 왜 일어…….”
라리사가 의문을 표하다가 마찬가지로 깨닫는다.
“기계신이 이 세상을 유지하지 못해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고 했지. 그거 사실 서든 데스와 같은 거라고 보는 게 맞겠지?”
“천천히 진행되는 서든 데스지. 서든이 아니라 슬로우 데스인가.”
“너무 세상의 가장자리로 와버린 것 아냐?”
어쨌든 움직여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니 그냥 전력으로 질주한다. 사방에는 몬스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 갑작스럽게 어떤 실루엣이 드러났다.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싶은 거대한 구조물.
귀퉁이가 무너진 원형이며 가운데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커다란 건축물이었다.
리온은 콜로세움을 떠올렸다. 그런 생김새다.
“일단 저길 살펴볼까?”
“보스가 있으면 어떡하지?”
“도망칠 수는 있을 거야.”
쥐새끼가 있으니까, 다시 기계무덤으로 잠깐이라도 돌아가면 된다.
이곳이 어딘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정 돌아갈 수 없는 이상한 지역이라면 메타트론이 그들을 찾는 곳으로 돌아가는 편이 더 낫다.
그리고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쥐새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전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아요.]
“뭐?”
쥐새끼가 멍하니 말했다.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리온은 그 순간 거대한 구조물 속으로 발을 들였다.
새로운 지역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빛과 어둠의 경계]
길은 알고 있다.
본디 그때그때 생성되는 랜덤의 미로인 [쓰레기의 바닥]은 무너져 내린 후에는 오히려 랜덤 요소가 없는 필드가 된다.
지하로 향하는 문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 아래로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여전히 큰 힘들의 충돌은 대단한 혼란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이 문이 악마 측에서 스타트하면 지옥의 성채로 몰래 잠입하는 통로군요.”
“정확해.”
그래도 어느 정도 높은 곳에 있었던 이름 없는 교회와 다르게 지하로 지하로 점점 내려가기만 한다.
자잘한 어둠의 정령들이 몬스터로 조금 깔려 있다.
“조금씩 뜨거워지네요.”
“다 와 간다는 뜻이지.”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붉게 달아올라 뜨겁기에 자연적으로 빛이 발생하는 것이다.
“카베의 대장간이 생각나는군.”
아서의 말에 희우가 손뼉을 친다.
“어딘지 알겠다. 악마 측의 성지는 왕국 아래에 있는 지옥이군요.”
그 말이 맞다. 본래는 그런 곳이었던 땅이다.
통로의 끝에 문이 나타났다.
내가 앞에서 밀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용암이 열기가 느껴진다. 물론 이제는 뜨겁다기보다는 따뜻하다는 느낌이지만.
“지옥이라기엔 작네요. 광활한 공간이었는데.”
“다 심연으로 가라앉아서 그래. 남은 지하 자체가 여기뿐일걸.”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세상은 위도 아래도 점점 사라져간다.
그 끔찍한 환경에 비하면 아주 평온한 곳이 되어있다.
용암의 불빛이 비치는 동굴에서 벽에 매달려 있는 늙은 악마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주름진 붉은 피부, 산양과도 같은 뿔.
수명의 끝에 도달해 가는 나이든 이블이다.
“무엇이지? 유배자를 불러들인 기억은 없는데.”
“당신만이 유배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기근.”
“내 이름을 아는 것 보니 확실히 유배자군. 천사 쪽에서 불렀나?”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으니까 빨리 성배를 내놔주시겠습니까?”
“헹, 누구 마음대로.”
스타팅 NPC 주제에 도통 도움이 안 되는 귀찮고 피곤하고 짜증 나는 악마.
묵시록의 4기사 중에 홀로 남아 있는 기근 선생님 되시겠다.
아서가 검을 들어 올렸다. 벨페고르의 권능 그 자체인 검을 보고 기근이 움찔했다.
아서는 천천히 가서 기근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댄다.
“이게 뭔진 알겠지?”
“대악마를 죽였군. 어떻게 한 거냐?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야. 열어줄 수 있지. 키헤헤.”
그게 아니라면 성배를 보여주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노출할 필요는 없지.
스타팅이 여기면 또 피똥 싸면서 저 양반의 말을 들어주고 밀당 하고 괴롭힘당해야 한다.
하지만 묵시록의 4기사를 컨셉으로 만들어진 이 귀찮고 피곤한 노인네의 말을 지금도 들어줄 필요는 없다.
기근이 제 몸속에서 성배를 게워내었다. 더러우니까 용암에 깨끗하게 씻었다.
하여간 악마들은 뭔가 지저분하단 말이지.
얼른 회복의 샘에 가서 포션도 보급한다. 생채기가 있을까 봐 아예 들어가서 뒹굴기까지도 했다.
“그럼, 우리는 이만.”
“좋아. 좋아. 다른 성배도 더 구해 오라고. 하하하하.”
다시 안 돌아올 거지만 말이야.
“로스엘. 구멍을 찾아보죠.”
“노력해 볼게!”
그리고 메타트론이 지금 위에서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면 일단 기계무덤의 캠프는 안전할 것이다.
아직 우리 사이가 나헤마와 틀어지지는 않은 상태니 라지엘과 접촉해 볼 필요가 있다.
메타트론을 날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희우가 속삭인다.
“여기서도 뭐 히든이랑 이런 거 다 있는 거죠? 서사도 진행되고.”
“그렇긴 한데. 그거 다 보고 싶어?”
“아뇨. 빨리 클리어하고 싶어요.”
“저 양반 친구들 부활시키다가 나헤마 루트 타는 게 여기 스타트해서 일어나는 일이야.”
“아하. 나중에 좀 자세하게 알려줘요.”
올라가며 통로에서 구멍을 찾아 헤맨다. 세계의 구멍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블랑쉐가 뭔가 수상쩍은 기척을 감지했다.
“뭔가 위에서 다가온다.”
“엥?”
그런 이벤트 모르는데.
그리고 통로에 빛과 어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빨리 튀어. 빨리 들어가. 여기 있는 티도 내지 마. 도망쳐.”
“네? 뭔데 그래요?”
“이거 사탄이야.”
그리고 난 사탄 패턴 모른다. 원래라면 바알과 싸우다 약해진 후에, 바알을 처리한 나헤마에게 제거당하는 녀석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게임상에 보스로 등장한 적이 없다.
오로지 이벤트상으로만 출현하는 녀석이다.
보스로 나온 적이 없으면 내가 패턴을 어떻게 알아.
“패턴을 몰라요? 그럼 제일 위험한 보스 아니에요?”
“그러게. 제기랄.”
이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최악의 지뢰잖아.
사탄과 싸우는 일이 생기기 전에 얼른 클리어해야겠는데.
아니, 그보다 저 녀석 누가 안 죽여주나? 왜 이렇게 된 거지.
일단 들키지 않고 내뺄 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