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483화 (454/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83화

메인 던전 - Lv.17500 [빛과 어둠의 경계](3)

성배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향방을 결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힘의 결정체다.

기계신이 무너져 내리면서 세상도 무너져 내렸다.

그런 와중에 완전하지 않은 파편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졌고, 바벨의 자식마저도 대체할 수 없는 힘의 조각이 되었다.

바벨의 자식들은 그 힘을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세상은 무너져가고 있다.

성배라는 형태로 그 모습을 바꾼 것은 그것이 애초부터 창조의 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이 왕국이 바란 것도 그런 상징적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미궁이라는 이름 모를 힘에 가장 가까운 존재.

의지가 없기에 그것에 닿을 수 있었던 존재.

신좌의 집합이 만들어낸 신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그 자체가 바벨의 자식들에게 강대한 힘을 부여하는 일은 딱히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선은 그것을 뒤로 밀어두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마음대로 그 힘을 휘두르게 되더라도 결국 싸움 끝에 패권을 쥐는 자가 결정될 것이다.

* * *

* * *

섣부르게 다른 것을 희생하여 성배만 모은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적수들이 죽어 쓰러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딱 그 정도의 일이었다.

하지만 메타트론은 이미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카엘! 지금 나를 노릴 때인가!”

“그럼 누구를 노려야 하지? 후환을 없애고 싶을 뿐인데.”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 유배자들! 유배자들이 지옥의 성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않나!”

미카엘은 그 말에 생각을 해보았다.

글쎄, 틀린 말은 아니지. 이렇게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 수완 좋은 유배자는 무언가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높은 확률로 성배의 탈취다.

흘깃 보면 구석에서 많은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주로 지옥의 성채 외곽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다.

유황내 풀풀 나는 쓰레기 더미가 되어 있다.

아마도 저것은 성배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흠.”

미카엘은 특별히 유배자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를 들어줄 생각이 그저 들었을 뿐이다.

그것이 맞거나 틀리거나를 떠나 그리하여 생기는 일을 보고 싶은 점도 있었다.

“하나는 털어갔군.”

“또 하나도 털어갔겠지. 유배자를 누가 불러들였고 곁에서 지켜봤겠나.”

잘 안다고 주장하는 메타트론의 말도 일리가 있다.

“과도하게 유능하다. 내가 생각했던 무엇보다도 앞서나간다. 나는 그 남자를 따라잡지 못했다!”

미카엘은 다시 생각해본다. 위험하다는 것 자체는 동의할 수 있다.

그야 같은 것을 느꼈으니까.

“좋아. 뭘 원하지?”

“함께 그 녀석을 쫓아라. 뭘 할지 모른다. 차라리 우리끼리 싸우는 편이 더 좋지!”

노인의 모습을 한 얼굴에 격정이 어린다. 광신과도 같은 그 모습에 미카엘은 이 자를 따를 수 없다고 느꼈었다.

적어도 이 천사만은 정답이 아니라고.

하지만 미카엘은 신중한 천사다.

그렇기에 유달리 뛰어난 유배자를 보며 감탄하고 그가 이 세상을 헤집게 내버려두고자 했다.

통제를 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그것도 성공적이지는 않았지.

되려 미카엘은 더 감탄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메타트론이 하는 말은 알겠다.

“그건 싫군. 하지만 보내줄 수는 있지. 쫓고 있겠지?”

“항상 그딴 태도군! 썩 비켜라! 몹쓸 것!”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비켜주었다.

이미 충돌 후 한참을 서로 두들기다가 성사된 타협이었다.

기술적으로 싸우는 미카엘의 소모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메타트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저 힘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빌려온 힘을 쓰는 자가 그것의 신도가 되는 것인가. 원래 그랬기에 빌려올 생각을 한 것인가.

검을 집어넣지는 않았다. 대신 아직도 벌어지는 옆의 전투를 본다.

“바알. 저것을 이길 수 있을지 확실히는 모르군.”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단지 성배를 모은다고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연다 하더라도 그 문을 통과할 힘이 있냐가 중요하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자들이 있을 테니까.

열쇠는 남이 가져오는 것을 강탈하면 된다.

그것이 미궁, 역사적으로도 항상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세상이었다.

“메타트론 저 늙은이는 자신이 그 유배자들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여기는 모양이군.”

미카엘이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했다.

“나는 차라리 문 앞을 지켜야겠구나.”

메타트론이 저렇게 이곳에 나타났단 것은 천상의 도시에도 성배가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허무하군.”

성배가 모이고 있는 모양이다.

끝나간다는 생각은 있었다.

이 세상은 무너져가고 있었고 조만간 결말이 날것이라 여겼다.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러울 줄은 몰랐다.

“생각이라.”

미카엘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어린 마법사의 말을 되새겼다.

“일단은 유지를 해보고 싶군.”

무너지기 전의 세상으로 말이다.

야망이라면 야망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지하려면 결국 저 유배자의 세계로 가야겠지.”

애초부터 스스로 유지할 수 없어 무너진 것이니 말이다.

메인 던전의 [침공]이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 세계도 과거에 그런 것을 당해 왔다.

“쯧.”

미카엘은 아직도 전투중인 바알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사라졌다.

나헤마는 자신이 곤란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바알은 강했다.

다양한 형태의 권능을 다루면서도 어둠 하나를 휘두르는 바알의 인간형조차 벗겨내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 공격해도 막아 낸다.

아니, 그것을 막는다고 해도 될까?

쳐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

마법이요 권능이요 죄다 주먹으로 쳐내는 것까지야 힘의 덩어리인 바벨의 자식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어디까지 강한 것인가?

투박하지만 격투가들의 동작의 흔적이 보인다.

그럼에도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헤마는 마법사로서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떠올렸다.

이 바알이라는 악마는 그저 악마 자체가 강하다.

왜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그렇다.

그러니까 이를 악문다.

소모할 힘은 이쪽이 명백하게 더 많다.

그가 힘으로 바알을 이길 수는 없지만 바알 역시 그를 당장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럼 결국 승리하는 것은 더 많은 용량을 가진 나헤마다.

마법사에게 마력의 용량은 어찌보면 절대적인 것이다.

지구전으로 간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무한한 마력을 가진 것이나 다름 없는 마법사가 된 나헤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멈추지 않았다.

반면 바알은 그저 이 상황이 흥미로울 뿐이다.

나헤마는 본래부터 흥미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체급이 너무 맞지 않으니 제대로 체감할 수 없었을 뿐이다.

제 입으로 힘을 다루는 방식 운운한 것 치고는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은 인간 출신이니 별 수 없다.

그래도 새로운 발상이나 흥미로운 형태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바알 본인은 그걸 그냥 후려쳐서 튕겨내고 있지만 말이다.

재미라는 관점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무식한 사탄보다 더 즐겁다.

나헤마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 하였고 바알은 그냥 계속 했다.

“자, 이제 우리 손에는 성배 3개가 있어.”

“다른 것들은 전부 위험한 사람 손에 있군요.”

“메타트론과 굳이 보스전을 할 이유는 없지 바깥 꼬라지를 보니까 든 생각인데 잘못하면 메타트론과 단독 보스전조차도 아닐 거란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어.”

“자기들끼리 싸울 수도 있지 않아요?”

“아니면 어떡해?”

“끝장이네요.”

그래서 나는 말한다.

“쥐새끼는 죽으면 성배로 돌아가.”

“쥐새끼가 아니라 우리가 개노답 같은데요…….”

“하지만 미궁은 늘 그랬지.”

“옳은 말이에요.”

찾아야할 것은 쥐새끼와 함께 있는 예비부부다.

서둘러 캠프부터 확인한다. 메타트론이 자리를 비운 이상 그의 편이 아닌 라지엘은 굳이 그 셋을 억류하지 않을 것이다.

라지엘은 처음에는 조금 놀란 듯 하다가 곧 상황을 이해했다.

더 이상 릴리움이라는 이름조차 쓰지 않고서 말한다.

“우리는 억류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디로 간지 아시나요?”

“당신을 찾겠다며 떠난 모양이던데 엇갈렸군요. 메타트론은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미아가 대화하는 사이에 가브리엘이 잘 있나 확인을 하고 왔다.

“왜 그래?”

“라파엘에게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나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지킬 수 있을 때만 지켜.”

“알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많은 것을 뒤로하고 우선 결말을 향해 내달린다.

우리를 찾다가 어디로 갔을까?

수색 이전에, 기근이 지키고 있는 그런 성지가 아닌, 버려진 교회에 있던 성지에 얼른 성배를 모두 장착시킨다.

이로서 엔딩의 조건은 만들어졌다.

마지막 성배를 가진 채로 그곳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기계 무덤] 내에서 흔적을 쫓는다.

블랑쉐와 내가 추적하고 미아가 마법적 흔적을 훑었다.

메타트론은 아주 요란하게 이 속을 돌아다녔던 모양이다.

그 흔적을 먼저 따라가며 천사는 알지 못하는 유배자의 추적술을 발휘한다.

블랑쉐는 드론까지 뿌려가며 흔적을 특정하고자 했다.

결국 그 둘의 은신술은 내가 가르친 것이다.

곧 흔적이 잡혔다.

“로스엘 여기 열어봐요.”

지옥의 성채였다.

“계속 이렇게 찾아보죠. 틀림없이 쥐새끼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을 테니까요.”

뒤틀린 악마들이나 타천사들이 제거된 분포를 추적한다.

어느 정도 행적이 잡히고 메타트론의 흔적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는 마지막 행적까지 도달했다.

희우가 불안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잘 풀리는…….”

아서가 얼른 희우의 입을 막았다.

“그 말 좀 그만 했으면 좋겠네.”

에길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제니고 귀와 꼬리를 동원해가며 웅변한다.

“서브 리더가 말하면 농담 같지가 않아요.”

“그럼 이미 늦은 게 아닐까요?”

블랑쉐도 한번 거들었다.

“나는 과학의 세계에서 태어나 미신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너를 보고 있으면 얼마건 가능할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구나.”

희우가 못마땅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제가 책임지고 다 부숴버릴게요. 그럼 되는 거죠?”

그런 그리고 로스엘이 구멍을 열었다.

나는 당황했다.

“여기로 갔다고? 원래 이런 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닌데.”

하지만 한두 번 꼬인 것도 아니니 이해한다.

이제 슬슬 파악할 수 있다.

결국 현실화된 미궁과 큰 틀에서는 같다.

더 끔찍한 난이도가 된 부분이 있는가하면, 그만큼 유배자에게도 특전이 주어져있다.

추가요소를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더 이득일 수도…….

생각을 하다가 중간에 내 안의 무언가가 그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래 그건 아니라고 치더라도 날로 먹는 가능성은 더 여러 군데에 열려있는 것이다.

잘만하면 보스전 없이 결말을 볼 수 있겠는데.

일단 뛰어들었다.

“여기선 날지 마.”

“마지막 지역이었죠?”

“메타트론과 보스전을 한다면 원래는 여기란 말이야. 재수 없으면 그 할배가 와있을 수도 있어.”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본래라면 그냥 바치고 최종보스와만 싸우면 끝인데 말이지.”

YHWH는 메타트론이 관여된 경우에만 나타나는 최종보스다.

이대로면 안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럼 정말 행복하겠는데요.”

“이럴 거면 안 아껴둬도 되었는데.”

하지만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쥐새끼와 둘을 찾아내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오래 걸렸다.

보스전 위치가 누가 봐도 여기다하고 딱 지정되어있는 본래의 전개와는 다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광야에서 특정한 누군가들을 찾아야하니 별 수 없었다.

이번에는 흔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끝없이 무언가 흐르고 지워져가며 주변으로 가라앉고 있는 곳이다.

심연이 곳곳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지 않나.

“저기 저 커다란 건물 같은 건 뭐죠?”

“본래는 저기서 마지막 보스전을 하는데.”

저기에 있나?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그곳에서 빛이 차올랐다.

폭발하듯이 눈부신 섬광이 사방에 흩뿌려진다.

황금빛의 번개가 솟구쳐 오르며 하늘과 대지를 메꾸었다.

심연으로 가라앉는 을씨년스러운 곳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나는 기억 속에서 저 장면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드래곤볼을 다 모았을 때 신룡이 나타나는 것 같은 그런 현상이다.

쥐새끼가 이미 죽었나?

성배가 우연찮게 저기 도달한 건가?

어쨌든 나타나는 현상은 확실하다.

“로스엘! 빨리 가요! 가서 원하는 걸 말해!”

“어으아아어앙? 그 뭐였지 내가 원하는 게?”

“이 세상의 파멸!”

“맞다! 그리고 안식!”

로스엘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우리도 뒤따랐다.

끝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소모품과 스킬을 점검하고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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