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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88화 (45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88화

메인 던전 - Lv.20000 쌍둥이 천사 [메타트론מטטרון](3)

부활을 마치고도 시야는 붉게 물들어 있다.

희우는 천천히 몸을 슬로우 다운한다.

방향을 정교하게 제어하려고 들면 느려진다.

정말로 아무런 잡념 없이 더 빠르게 좀 더 빠르게, 의식마저 가속하며 정신마저 치달리며.

그야말로 사고의 속도로 몸이 움직이도록 의식을 잠깐 내려 놓았다.

가열차게 달아오른 오감은 미친 듯이 날뛰며 희우가 보는 세상을 수놓는다.

혈류가 너무 빨라 붉게 달아오르고 몸에서 붉은 증기가 피어오른다.

동시에 아직도 그 사실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우는 그래서 그것을 그만두었다.

후우우하고 내쉬는 숨결에 짙고 붉은 열기가 맴돌았다.

안개처럼 아련하며 피처럼 짙다.

머리는 조금 어지러웠으나 동시에 개운했다.

곧 감각이 바로잡히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인지한다.

그래도 아직 머릿속의 잔상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 * *

* * *

* * *

* * *

마지막에 [섬광 재생]을 발동하는 것은 사실 꽤나 아슬아슬했다.

그 순간의 희우는 거의 죽기 직전이었고 실제로 그 직후 죽었다.

이 미궁의 기반이 된 게임은 완전한 정통 로그라이크가 아니다.

어느 정도 라이트함을 담보한 로그라이트라고 불리는 장르다.

그렇기에 죽음으로부터 돌아올 방도가 존재한다.

다양한 조건을 만족하고 무수한 포인트를 투자하여야 뽑아낼 수 있으며 대다수의 유배자에게는 그 자체로 소원인 부활 계열의 여벌목숨.

파티 오르골은 그것을 그저 스택이라고 부르며 탄환으로 삼는다.

지금 같은 경우가 그렇다.

목숨을 아낀다면 공격력에는 한계가 생기는 법이다.

단순히 정신론에 입각한 얄팍한 논리는 아니다.

미궁의 기이함 시스템으로 강화된 초인적인 육체.

그에 맞춰 단련한 정상적이지 않은 기술.

목숨마저 소모품으로 삼는 문자 그대로 필살의 신체능력 가동.

그리하여 목숨마저 공격력으로 짜내는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부활 스택에 대해 생각한다.

‘쿨다운 1년짜리부터 빠졌네.’

이게 쿨다운이 다시 돌 일이 있을까?

그 전에 이 모험의 여정이 끝나지 않을까?

이미 희우의 스킬 목록에는 쿨다운이 도는 중인 부활 스킬이 하나 있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오빠가 꽤나 일찍 맞춰주었던 것이다.

일그림 파티의 에리나에게 죽어 빠졌다. 반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건 쿨다운이 도는 중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한 후에야 간신히 육체도 정신도 현실로 돌아온다.

찰나에 찰나를 쪼갠 것 같은 짧은 시간이지만 멍했으며, 무방비였을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다. 반사적으로 다시 비행한다.

혹시모를 공격에 대비하고 주변의 상황을 다시 살핀다.

죽음이라는 것은 비록 부활하더라도 쉽게 익숙해질 수는 없다.

제자리에서 죽어 부활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회복되었다곤 하지만 신경계에는 아직도 방금 전의 그 혹사가 새겨져있다.

격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며 쓰러지고 있는 메타트론을 보았다.

쓰러지고 있구나. 그럼 희우 혼자 한게 아니다.

[에길! 나이스 어택!]

[스택 빠졌나? 고생했군. 서브리더.]

[소모하는 게 맞을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바이킹이 착지하며 말했고 희우도 화답했다.

그리고 다시 보자 메타트론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쓰러지고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겠지만 워낙 거대하다보니 느리게 보이는 것은 여전하다.

[잠시 이탈할게요!]

부활 직후 다시 격렬하게 싸우는 것은 만용이다.

최소한의 회복 후에, 적어도 몸에 새겨진 고통이 육체를 둔하게 만드는 순간이 지난 후에 합류하는 것이 옳다.

움직일 수는 있었기에 제니를 부를 필요는 없었다.

본디 제니가 이럴 경우 한 명 한 명을 데리고 이탈하는 위생병 비슷한 역할이니까.

어디로 가지 하다가 캠프 쪽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날아가면서 조금 비틀거리기는 했다.

메타트론의 이런 행동 자체는 본래도 있을법한 일이었다.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금방 복귀했다.

질량이 큰 보스들이 머리를 쓸 줄 알면 자주 이런 짓을 벌이고는 한다.

그야 뭐, 효율적이니까.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도 늘 하고 있기 마련이다.

멋대로 전장에서 파티원을 추방하려 든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 타겟은 나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하는 부분인데, 순수한 기초 스탯은 내가 가장 약하다.

거기에 파티의 두뇌로 기능하니 가능한 나를 배제하려고 다들 혈안이다.

잽싸게 돌아가는 와중 제니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창세의 빛줄기]를 보았다.

어떤 경우에도 공평하게 치명적인 고정 데미지가 극렬하게 거체를 두들긴다.

쓰러지는 메타트론은 자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단박에 성공했다.

산달폰이 그렇듯 메타트론도 거대한 거인 형태의 본체를 가지고 있다.

특이점이라면 딱히 상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쓰러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상반신이 없다면 그 위치에는 무엇이 있을까?

희끄무레한 안개 같은 장막으로 둘러싸여 제대로 보이지는 않으나, 그 속에는 치명적인 데미지를 가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핵이라고 불러도 좋고, 심장이라 불러도 좋다.

어차피 정상적인 생물은 아니니 그냥 때리면 죽도록 아픈 곳이라고만 생각하면 딱이다.

엑스칼리버를 뽑아든 아서의 모습도 살핀다. 그의 빛나는 성검은 빛을 조금 더 잃었다.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앞으로는 서너 번이 한계일 것 같다.

메타트론의 일격을 받아내는 금빛의 빛무리는 지금도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전장이 시시각각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 역시 라파엘의 화염을 두른 검에 힘을 응축한다.

신좌에 앉아보았다면 이런 걸 다루는 건 잘 할 수 있다.

파티에 신 경력자가 없는 게 약간 아쉬울 정도다.

뭐라고 딱히 지시할 필요는 없었다.

이 테마의 보스들에 대해서는 다들 숙지하고 있는 와중이었고 메타트론이 쓰러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다들 알고 있다.

다들 최선을 다해 쓰러지는 메타트론의 몸체를 따라잡았다.

그로기가 나온다면 1초도 아쉽다.

쓰러지고 일어서는 것은 금방이다. 그 다음도 이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그 거검과 방패를 마주하고 싶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서가 묻는다.

[엑스칼리버를 쓰는게 좋을 것 같나?]

나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서.]

수학 바이킹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블랑쉐는 어디서 뭐하고 있나요?]

왜 보이지가 않지?

암살자지만 딱히 극딜 요원은 아니다.

그래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으니 물을 수밖에.

제니가 대답했다. 빔을 쏟아낸 후, 아서와 연계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던 참이었다.

[저기 위에 있는데요?]

항상 주변을 살피는 것 또한 제니의 역할이다.

나는 블랑쉐를 흘깃 보고는, 믿기로 하였다.

그보다 제니와 함께 뛰고 있는 녀석들이 신경쓰인 탓이다.

[그 친구들은 뭐야? 협력하기로 한거야?]

[이전에 보여준 헌신에 보답할 생각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쥐새끼가 자기 좋을대로 구슬려서 싸우게 만든 것 같아요.]

그다지 말랑말랑한 분위기는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대충 생각대로 되긴 했다.

세상이 무너져 쏟아지는데 어떻게든 살아야하지 않겠나.

문득, 내가 저 어둠의 정령왕들을 챙길 수 있을까 고민이 좀 되었으나 나중의 일이다.

[엄청 훌륭한 전력이로군. 쥐새끼한테 칭찬 좀 해줘.]

고양이의 품에 안긴 금빛 짐승은 그 말에 기뻐했다는 모양이다.

일단 1차 극딜이다.

블랑쉐는 [노아의 방주]가 무언가를 본따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마 기계신의 기록 속에 존재하던 무수한 역사의 일부일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 방주는 수동으로 제어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메타트론은 그 사실을 알까?

유배자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미카엘처럼 깊은 이해에 닿아있는가를 생각하면 도무지 그렇게는 여길 수 없다.

메타트론에게 유배자나 서버의 문명은 도구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작 그가 숭배하는 기계신은 이토록 필멸자들의 삶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블랑쉐는 [노아의 방주]가 취한 형태가 고블레타리아의 방식과 아주 멀리 떨어져있지는 않다고 여겼다.

그리고 동시에 블랑쉐가 온 미래의 조작체계와도 흡사했다.

판단은 빨랐다.

남의 물건을 이용하는 것엔 도가 터있다.

“이건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냥은 안 된다.

정지해버린 만큼 동력이 없다. 메타트론과 기계신의 연락을 라지엘 끊어버리자 일어난 일이다.

블랑쉐는 어렵지 않게 그녀가 가용할 수 있는 동력원을 떠올렸다.

“성배.”

혹은 그 모습을 한 짐승.

마침 한 마리 바깥에 있지 않은가.

그러나 통신은 보호막 바깥으로 닿지 않는다. 그 사실을 전달할 수단이 없다.

블랑쉐는 빠져나가서 바디 랭귀지를 하기 시작했다.

정교한 수신호 체계는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을 대비할 수 없었다.

그저 제니가 쥐새끼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제니를 나타내는 수신호와 이리로라는 수신호를 전할 수밖에.

마법으로 보호막 내에서 문자를 그릴 생각도 해보았으나 마법 자체가 먹히지 않고 있다.

정지했음에도 방주 내부는 일종의 성역과도 같은 상태인 모양이다.

블랑쉐는 최선을 다해 팔다리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것을 아래에서 목격한 제니는 의문에 빠졌다.

[저보고 좀 오라는데요?]

[그럴 시간은 없어. 뭔가 다른 게 아닐까?]

[너무 맹렬하게 당장 좀 와보라는데요?]

[진짜 급한 일인가본데. 그래도 제니가 갈 수는 없어. 제니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말하는게 아닐까?]

[이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주 급하고 격렬하다는 것만은 알겠어요.]

그런 리더와의 대화가 오간 끝에 쥐새끼가 무언가 깨달았다.

[난가?!]

제니도 깨달았다.

“너구나?”

제니가 필요한 상황일 리가 없다. 하지만 저 보호막이 어떤 식으로 튼튼했는가, 그 힘의 근원을 생각하면 분명해진다.

“혼자 갈 수 있어?”

[제가 왜 개노답 삼남매의 일원인지 잊으셨군요!]

멸칭이었던 것 같은 호칭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쥐새끼가 날아오른다.

[친구들! 저 커다란 천사를 일단 족치라구!]

졸지에 어둠의 정령왕 쥐떼와 함께 달리게 된 제니가 눈치를 보기 시작한 가운데 쥐새끼는 금빛 섬광이 되어 치솟았다.

블랑쉐가 비로소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그리고 메타트론이 완전히 쓰러졌다.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구름의 바다에 거인의 하반신이 쓰러지는 장면은 장엄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미 바닥에 닿아버린 이상 일어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모든 버프를 활성화하고 메타트론의 장막 속으로 뛰어들었다.

크게 검을 휘두르며 권능으로 몰아낸다.

안개가 걷히고 노려야할 것의 모습이 드러난다.

성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는 빛의 구체다.

저 하늘에 떠있는 기계신의 구체와도 흡사하게 생겼다.

가브리엘을 저지할 때 했던 것을 재현할 때다.

동시에 에길 역시 뛰어든다.

[아서는 제니와 함께 딜타임 연장하세요!]

에길의 [아수라파천무]는 아직은 쿨다운일 것이다.

내가 제일 먼저 돌입하여 메타트론의 구체를 헤집기 시작했다.

비명같은 울림소리가 퍼져 나온다.

그 충격파는 딜링을 방해한다.

에길이 곧바로 내 뒤편에 자리하며 내가 밀려나는 것을 막는다. 라파엘의 검과 에길의 빛과 같은 도끼가 작렬했다.

구체를 치는 손맛은 아주 질긴 가죽공과도 같다. 빛의 권능을 최대한 걷어내며 호흡마저 멈추고 공격을 퍼붓는다.

에길의 [빛의 가속]도 번쩍이며 흔들린다.

순간적으로 누적되는 딜을 계산하며 메타트론이 몸을 일으키기까지의 시간 역시 생각한다.

아서는 한발 늦게 제니와 도착했다.

[지금이면 되나?]

[정확하게 왔습니다! 아서!]

거대한 무기는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지곤 한다. 개인이 아닌 병기의 판정을 낼 수도 있다.

단지 무기의 리치와 판정을 바꿀 뿐인 [파편의 무기]가 중대한 유니크 스킬인 이유다.

제니의 쌍검이, 이제는 아티팩트가 된 것들이 번뜩이며 거대하게 솟아났다.

순간적으로 대검의 판정을 가지게 된 쌍검이 아서의 손에 들리고, [나이트 오브 카멜롯]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동시에 중첩된다.

악마로서 빛에 상극인 어둠의 속성을 둘둘 감아올린 아서는 그대로 어둠에 물든 거검을 구체에 꿰다시피 꽂아 넣었다.

다음 순간, 제니가 그 거검을 붙잡는다.

[파편의 무기] 스킬의 주인이 그것을 붙잡음으로서 거대한 말뚝 같은 거검이 유지되며 박혀있다.

일어날 듯 들썩이던 메타트론의 육신이 진동과 함께 멈췄다.

[20초 정도는 더 칠 수 있을 겁니다!]

아서가 쌍대검을 꺼내든다.

에길의 스킬 쿨다운이 아슬아슬하게 돌아온다.

[20초면 파천무를 딱 한 사이클 돌릴 수 있겠군.]

[비키시게. 새 무기를 좀 시험해봐야겠으니.]

제니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한다.

[20초라고요? 이거 붙잡고 있는 거 엄청 힘든데요오?!]

메타트론은 간신히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자신이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가를 생각하며 경악했다.

세상에서 사라질 뻔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이렇게 쓰러진다면 그때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천상과 법도의 천사는 방패를 굳건히 들고 수 유배자들을 경시하지 않기로 하였다.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의미를 보여줄 때다.

그럼에도 위대한 천사는 상대방이 쿨다운과 장비 수명을 계산하여 메타트론이라는 보스의 HP를 정확히 절반만 깎아내었음은 알지 못했다.

들어도 믿지 못했겠으나, 그는 제법 순조롭게 공략 당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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