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89화
메인 던전 - Lv.20000 쌍둥이 천사 [메타트론מטטרון](4)
이야기는 끝났다. 유리는 멀어지는 미아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새로운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은 그런 관점이었다.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어서 일까?
저 유배자 파티의 리더가 먼젓번에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미카엘의 말을 듣지 말라고.
그냥 이곳에 얌전히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 같은 뉘앙스였다. 실제로 유리도 그것을 바랐다.
그러니 따르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미카엘.
천상의 군주여.
빛과 지성의 천사여.
그 무심하고도 위대한 이는 어떻게 말했던가.
그녀는 완성품.
유리가 아닌 다른 것들은 불완전한 결함품.
그런 판단 하에 폐기한다.
존재에 새겨진 냉철한 지성으로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서 유리는 메타트론을 따라나섰다.
미카엘이 만들고 미카엘이 기른 아이들 모두와 말이다.
* * *
* * *
* * *
특별히 배신감 같은 걸 느낀 건 아니다. 그냥 그래야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카엘이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처럼 행동했겠지.
유리는 보기보다 오래 살았다.
그녀가 어린 천사인 것은 어리게 만들어져서다. 본래 같으면 진작 어른이 되었을 시간이 지나서도 그녀는 어리다.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가?
그에 대한 고민을 하며 때때로 자신에게서 미카엘을 발견하고는 했다.
생각도 성격도 흡사하다.
대체 위대한 천상의 군주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단순한 전력으로서의 우리엘?
그럴 리 없지.
자신과 닮은 자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닮게 만들어졌기에 알 수 있다.
동시에 그 미카엘이라는 남자가 보기보다 소극적이라는 것도 안다.
유리 자신이 그러하니까.
그래서 수천 년을 메타트론과 함께 지내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그저 착한 아이로 지냈으니.
그렇게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자 아즈라엘이 다가왔다.
그녀의 할아버지.
메타트론을 따라나선 권속들 중 하나.
그리고 먼 옛날 닫힌 [왕국의 문]을 통해 마지막으로 이 세계에 발을 디딘 자.
“유리야.”
“네. 할아버지.”
“알고 있지 않으냐.”
“무엇을요?”
“어린 사도님이 하신 말씀이 옳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덤덤한 어투였다. 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즈라엘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저 높은 곳에 떠있는 기계신.
그리고 쓰러진 후, 다시 일어서고 있는 위대한 천사의 본모습.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즈라엘이 말했다.
“난 이 세상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여겼단다. 바깥에서도 보지 못한 눈부신 발전이었지. 이런 왕국에 정착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 여겼었다.”
그 눈은 과거를 보고 있다.
“재미없는 일이야.”
말에 맥락이 없었다. 유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것이 말인가요?”
“마음이 꺾인 유배자도, 날개가 꺾인 천사도, 후회하면서도 꺾여있기만 한 어른도 말이다.”
더 좋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메타트론님이 싫으신가요?”
“어찌 그렇겠느냐. 이미 흙으로 돌아갔을 몸을 이 시간까지 이승에 묶어주신 분인데.”
“그럼 어째서 그렇게 말하시나요?”
“단지 그게 최선은 아니었다는 게지.”
너무 오래 살면 이제 다른 삶은 잊고 만다.
이전에 어떻게 살아갔는지 떠올릴 수 없다. 그는 메타트론의 권속이다.
천상과 법도의 천사에게 목숨을 맡긴 늙은 천사다.
“하지만, 너는 아니다. 네 친구들도 아니다. 우리처럼 재미없게 살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그렇군요.”
유리가 납득했다. 아즈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은 자신을 닮은, 하지만 처음부터 바벨의 자식이 아닌 천사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니 유리는 그만큼 알아듣는 것도 빠른 것이다.
그냥 그곳에 있는 것.
미아도 그게 뭔지 안다.
별로 좋은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에는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그러니까 가슴 펴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했다.
위험한 NPC임은 안다.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 많을 것도 안다.
그래도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유리는 기꺼이 협력하기로 했다.
망설임은 있으나 뒤에서 듣고 있던 아즈라엘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다른 노천사들이 들을 수 있게, 그리고 어린 천사들도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이건 아빠에게 배운 것이다.
권력은 좋건 싫건 더 많은 시선을 받는 것에서 나온다. 미아는 그때 그 상황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도록 유도했고 모두가 집중할 수밖에 없을 이야기를 했다.
유리에게 건넨 말은 진심이기도 했으나 계산이기도 했다.
그 덕에 가장 빠르게 성과를 냈다.
‘이 정도면 MVP일까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다음을 준비한다.
세피로트는 틀림없이 강력한 힘이 되어주겠지만 이미 메타트론의 광대한 영역 안에 갇힌 이상 이용할 방법은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메타트론의 보스룸인 이곳에는 없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된다.
라지엘과 캠프가 이곳에 있다.
그럼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 해왔던 다른 것들은 다른 보스룸에 배치되어 있을게 분명하다.
미아가 미궁이라면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일단은 당면한 보스전에 집중한다.
해야 할 일은 다했다.
마법사가 없어도 될 상황이니 이렇게 빠질 수 있었을 뿐이다.
메타트론은 철저하게 전사형인 보스.
불합리한 기믹보다는 불합리한 스펙으로 밀어붙이는 존재다.
그러니 미아가 잠깐 빠져있더라도 아빠와 블랑쉐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애초에 마법저항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천사를 상대로 마법을 후려갈기는 것은 썩 좋은 선택이 아니기도 하다.
게다가 전사형 보스의 영역에 걸린 기믹도 있다.
전사형 편린들 대다수가 구사하는 기믹이다.
마법 사용 저해.
미궁의 근본 법칙인 전사가 마법사에게 약한 상성, 보스이기에 그걸 보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아는 연속적인 공간이동보다는 그저 달뿌리개를 흔들었다.
신을 해본 적은 없으나 권능의 흐름 역시 [원소의 눈]에는 보인다.
미아는 가끔 자신의 재능 상당부분이 이것에만 의존하지 않는가 걱정하곤 한다.
그래도 그건 이 모험이 끝난 후에나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막대한 힘은 물질화되기 쉽다. 에너지는 곧 질량.
그렇게 유형화된 달빛을 타고 빠르게 날아간다. 제니보다 빠르지만 제니보다 승차감이 나쁘다.
방향 전환도 힘들다.
‘역시 제니가 필요해.’
그래도 정말 빨랐다. 금세 제니와 어둠의 정령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쥐새끼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까 잠깐 동안 무언가가 번쩍이며 솟구친게 게 쥐새끼였던 모양이다.
방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는데, 무슨 일일까?
그러면서도 메타트론은 아직 쓰러지는 와중이다.
‘어둠의 정령왕이 잔뜩…….’
미아는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MVP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다수의 파티원은 잘 모르겠으나, 나는 MVP에 관심이 많지.’
티는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그것이 첩보원다운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로 없을 리가 있나.
첩보원은 돋보일 기회가 적다. 언제나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
그러니 마음껏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놓칠 수 없다.
고로 블랑쉐는 [노아의 방주]를 손에 넣어보고자 시도했다.
다르게 보면 오르골의 방침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나 다양한 시도를 해보길 원했다.
실패보다는 그에서 얻는 것에 집중한다.
다만, 파티가 가진 여유가 어디까지인지는 확실히 알고 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메타트론은 전사들이 주역이 되어야 하는 보스다.
마법사도 암살자도, 그리고 사수도 아주 중요하진 않다.
“누아르가 있었다면 달랐겠지.”
사수는 장비빨이 전부다.
저런 튼튼하기 짝이 없는 보스를 상대로 개인화기 수준의 어중간한 화력을 투사하는 것은 탄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시도한다.
더 큰 화력, 더 굉장한 장비를 손에 넣는 것이다.
맵 기믹이던 것을 쏘아대는 메이드 인 머신갓의 SF 전함은 블랑쉐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거기에 본래 소유한 것과 컬러도 대비되지 않는가.
새하얗고 정갈하며 공예품처럼 아름답다.
누아르의 투박하고 강직한 검정에 대비되어 형용할 수 없는 감상을 자아낼 수 있다.
“이름은 블랑으로 하자.”
언니에게서 따온 누아르. 검정이라는 뜻의 누아라.
블랑쉐는 흰색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전함의 이름은 블랑.
좌누아르 우블랑.
참을 수 없군.
“후후후후.”
블랑쉐는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으려고 했다.
“하하하하하.”
쉽지 않다.
“후하하하하!”
어쨌든 손에 넣은 후의 일이다.
쥐새끼가 섬광처럼 날아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강력하던 보호막을 그냥 통과했다.
[어랍쇼? 이거 그냥 지나가지는 거였습니까요?]
“같은 종류의 힘인 탓이겠지. 네 도움이 필요하다.”
[말씀만 하십쇼! 큰누님! 이 쥐새끼! 한 몸 불태워 기꺼이……!]
“시끄럽다. 가서 동력이 되어라.”
마법을 배우길 잘했다. 아주 훌륭하게 구사하냐면 솔직히 블랑쉐는 크게 재능이 있진 않았다.
단지 종족 보정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들을 강제로 뇌에 쑤셔 박아주는 기분이다.
유배자가 회차를 거듭하면서 점점 강해지는 것은 그런 탓도 있으리라.
로스엘의 경우를 돌이켜보더라도, 다른 여러 가지 무언가를 생각하더라도 기계신과 관련된 것들은 서로에게 관대하다.
쉽게 더 큰 힘을 허용하고 더 깊숙한 곳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럼 동력이 멈춘 이 함선의 축을 쥐새끼로 삼는다면 말이다.
많은 문제가 해결 될 것이다.
“흥, 메타트론. 애초에 자신의 것도 아닌 힘인데.”
쥐새끼를 안고 이동한다. 전함 내에 동력원이 자리해야할 자리는 정해져있었다.
그 곳을 비우고, 연결된 공간에 쥐새끼를 집어넣는다.
쥐새끼가 불안한 눈빛으로 블랑쉐를 본다.
[저, 혹시 큰누님……. 제가 도울 일이란게 또 그거입니까?]
“그래, 그거.”
[오우…….]
그리고 실제로 기계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 중 하나인 쥐새끼는 너무나도 쉽게 모든 거부반응을 해소했다.
마법적 지식보다는 도리어 이런 기기를 다루는 능력이 더 중요할 정도였다.
전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아는 이동 중에 엄마를 지나쳤다. 마법적 통신은 아직 연결되어있었고 그것을 통해 캠프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전달했다.
희우는 미아의 계획에 당황했고, 곧 납득했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제니에게 말한다.
[제니! 제니! 그 친구들 좀 빌려줄래?]
[네에? 제게 아닌데요?]
[쥐는 고양이의 것이라고 정해져 있는 거야.]
[처음 듣는데요?!]
농담은 그쯤하고 어둠의 정령왕들은 쥐새끼를 통해 현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미 다른 곳으로 가라앉는 동족들을 많이 보았다.
뱀장어들이 심연으로 가라앉아 무로 돌아가는 모습은 쥐의 형상을 한 정령왕들의 본능을 적잖게 자극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곧바로 협력해온다.
마침 미아도 악마.
그들은 어둠.
적은 천사.
그리고 미아는 대흥분.
어둠의 정령왕을 이만큼이나 거느릴 수 있다.
그 아래에 다른 쥐떼들도 있다.
쥐들의 왕이란 이름만큼 거느린 부하들은 많다.
그리고 그들의 벽돌집이 무너져 화를 내고 있다.
‘이만큼이나 되는 귀하디 귀한 어둠의 정령 풀패키지가 공짜!’
MVP가 아니더라도 이런 협력을 받을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열심히 밑작업을 시작하고 있자니 제니가 합류한 극딜 타이밍이 끝나고, 메타트론이 그로기에서 회복하여 일어서기 시작한다.
동시에 메타트론의 전함이 기동하기 시작했다.
미아는 흠칫했으나, 곧이어 블랑쉐가 가동 중임을 깨닫는다.
‘질수는 없음.’
블랑쉐가 MVP에 관심이 많은걸 모르는 파티원은 한 명도 없다.
바로 저번에도 생각보다 실망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
미아는 정신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