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92화
메인 던전 – Lv.20000 속삭이는 혀, [나헤마](2)
나헤마는 선공을 취할 생각이었다.
저쪽도 아마 이쪽을 마법사를 상대로 하는 PVP라 여기겠지만 그건 그 역시 마찬가지다.
유배자 파티라면 소속이었던 적도 있으며 분쟁도 많이 겪었다.
워 메이지로서의 경험이라면 도리어 바알 같은 괴물들보다 더 편안한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꽤 뜨뜻미지근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곧 인정해야 했다.
“저건 메타트론의 물건인데?”
갑자기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게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버퍼링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모험을 떠나보았던 것이 언제던가.
이런 패턴을 가진 보스들이 간혹 있었다는 게 떠오르고 잊고 있던 두뇌 대신 뼈에 새겨졌던 몸이 반응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소매틱을 하며 공간을 열고 피했다.
거대한 광선이 그가 있던 자리를 내려다본다.
“어이가 없군. 그래.”
메타트론의 전함이 탈취당했나? 뭘 어떻게 한 거지?
그러나 그래서 위험하다고 판단한 유배자 무리다.
그냥 그랬겠거니 하며 받아들인다.
냉철한 마법사의 이성은 이 파티가 바알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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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헤마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바로 그렇기에 다시금 분노했다.
마왕처럼 날아오르며 자신을 향해, 이 무너지다 만 공간으로 돌입해 오는 유배자들을 향해 소리친다.
[덤벼라! 필멸자들이여!]
그는 이제 불멸의 힘을 가진 마왕이다.
보스라는 울림은 썩 나쁘지 않다.
뛰어난 유배자들이라면 그의 힘을 새로 가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대한 포격으로 진입하자마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크게 번져 나가는 영역에 휩쓸리는 것까지야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마법사를 대표하는 보스, 나헤마의 부정형 공간이어야 했다.
그러나 나타난 것은 전혀 다르다.
넓디넓은 늪이 나타났다.
독성을 지닌 연기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유황과는 또 다른 끔찍함을 자아낸다.
곳곳에 가연성의 가스가 불길을 내뿜으며 타오르고 있다.
더럽고 질척한, 그리고 끔찍한 초록색의 광대한 습지였다.
[이건 아드라멜렉인데?]
[바닥에 닿지 마요!]
다들 우선적으로 비행한다. 독이라는 것은 대개 초반 구간이 지나고 나면 좀처럼 먹히지 않게 된다.
미궁의 범상치 않은 생물군계는 독에 대응하는 별의별 기전을 다 발달시켰다.
멀쩡하지 않은 생물도 지나치게 많다.
자연스럽게 독 같은 독은 강력한 괴물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역에 펼쳐져 있는 독은 그런 상징을 형상화한 힘, 권능 그 자체다.
말하자면 독 같지도 않은 독인 셈이다.
고로 모든 내성을 무시하는 독으로서 기능한다.
[이미 속성으로서의 독이라고 봐야 해요. 다들 조심해요. 즉사하는 일은 없겠지만 천천히 디버프와 함께 말라죽으니.]
이런 개념적인 독의 유일한 대응 수단은 그냥 피지컬이다.
더 쉽게 말하면 체력 혹은 HP라고 불리는 것이 높을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능력이 있더라도 그게 아니라면 위험해진다.
독 상태이상을 감안하고도 전투 속행이 가능한 것은 아서와 에길, 나와 희우.
제니까지도 어떻게 가능하다.
블랑쉐와 미아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영역은 그만큼 위험한 대신 아드라멜렉 본체의 스펙을 지원하는 보정은 전무했다.
메타트론과는 다른 형태로 맵 기믹 그 자체인 영역이다.
그러면 여기서 다시 의문.
[왜지?]
이런 형태의 나헤마는 만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정직한 마법사 보스다.
누가 나헤마의 원래 난이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딩이라도 돌린 것 같은 이런 상태?
바닐라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 게임이 아닌 현실적인 부분의 문제다.
원인을 추측해 본다.
우리의 진행에서 원래와 달라진 부분이 더 있는가?
나헤마에 관련해서라면 지옥의 성채 쪽에서는 정석 진행을 제대로 한 게 없는 수준이다.
딱 나헤마와의 교섭까지만 정석이었다.
아서의 말에 따르면 전형적으로 아는 방향 그대로 흘러갔다.
[악마 죽이기]를 건네고…… 사탄을 깨우고…….
반짝 드는 생각.
혹시 사탄도 살아 있나?
후, 이 번뇌는 잠시 집어넣어 두고.
뭔가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는데.
달라진 점을 하나 더 생각하자면 미카엘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단 점.
사탄이 바알을 치는 동안 나헤마가 무언가 해야 했다.
바알은 거기서 거꾸러지거나 적어도 큰 피해를 입고 약화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정확한 상황을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알은 저 위에 살아 있다.
지금도 팝콘을 씹고 있네? 미친놈인가?
아니지, 정진정명하게 미친놈은 맞다.
약화된 것 같지도 않다. 제대로 그렇게 흘러갔다면 실실 쪼개고 있진 못했을 거니까.
나헤마는 어디서 이 힘을 얻었는가?
마법사니까 마법사적으로 생각해 보자.
동시에 게임적으로도 생각해 봐야 한다. 메인 던전은 철저하게 게임적 컨셉을 준수하고 있으니까.
사고라기보다는 직관이 무언가를 꿰뚫는다.
[문제가 생길 지점은 하나밖에 없군.]
블랑쉐에게 묻는다.
[악마 죽이기]에 수상한 점은 없었는가.
[모른다. 내가 알아보기에는 너무 고차원적이었다.]
미아도 나도 보지 못했다.
알아볼 만한 이가 본 적 없이 나헤마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심증이 생긴다.
억측과 추측, 하지만 게임이라는 가정하에서 사고한다면 결국은 클리셰인 결론이 완성된다.
[우리가 제거하지 않은 악마 측 편린이 몇이나 있었죠?]
[벨페고르는 잡았지. 그러니 릴리트와 아드라멜렉, 아스모데우스, 사탄, 바알, 나헤마로군.]
바알은 살아 있고 사탄도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럼 나헤마는 이미 우리가 손에 넣은 벨페고르를 제외하고 다른 모두가 합쳐진 존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왜 그렇게 되는 거죠?]
[안 잡은 보스 수에 따라 분기가 나뉘거나 난이도가 달라지는 게임은 꽤 흔하단 말이지.]
인간의 상상력이란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는가. 미궁은 철저하게 그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
[억측이라기엔 눈앞에 보이는 게 있군.]
[어차피 과정은 중요하지 않기도 하죠. 눈앞에 저러고 있으니 아드라멜렉의 힘만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이상합니다.]
[악마 죽이기]가 뭔가 이상한 장비였다는 뜻이 된다.
내가 알던 것과 다른 어떤 기능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번 보스 러시의 마지막에 기다리는 게 솔로몬이거나.
모든 가능성을 뒤로하고 새롭게 계획을 수립한다.
[동시에 구사한다고 생각한다면…… 블랑쉐, 몸을 숨겨.]
희우도 같이 숨기게 만든다.
암살자가 모습을 감추는 것만으로도 나헤마는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상대는 우리를 얕보지 않겠죠.]
[전함포부터 쏴 갈겨대고 있으니 나 같아도 그러겠군.]
[그럼 아주 정석적인 다대일 PVP일 뿐입니다. 가죠.]
정석적인 다대일 PVP가 그렇게 흔한가 할 수 있겠지만 살인이 일상이 왕국에서 강력한 유배자를 다구리 놓는 일은 의외로 흔하다.
블랑쉐는 깃털을 날리며 사라졌다. 희우는 그보다는 어설프게 사라진다.
그 부분이 우리 파티의 대마법사전 포인트다.
희우는 발각될 것이며 블랑쉐는 우리가 발각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교란할 것이니.
[비행을 유지하고 이어지는 패턴에 대비하세요. 보나 마나 섞여 나옵니다.]
마법.
마법을 벌써 사용하는 것은 이르다.
시험대로서 권능을 있는 그대로 발휘해 볼 필요가 있다.
아드라멜렉이 가지고 있던 독의 영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디버프 기믹이지만 그것뿐이다.
폭군이라 불리는 아스모데우스의 권능을 몸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다.
힘의 정수는 이제 완전히 융화되어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마냥 기능하고 있다.
심장이 여러 개가 된 기분.
인간을 벗어난 괴물이 된지 오래인 마당에 거칠 것도 없다.
오른손을 들어서 편다.
불길의 장막이 세상을 뒤덮었다.
[아스모데우스군.]
나헤마는 마법전으로 개막할 의도가 없어 보였다.
온전히 편린의 권능만을 동원 중이다.
그런 가운데 독기의 늪 사방에 불기둥이 솟구쳤다.
[라파엘의 화염과는 느낌이 좀 다를 겁니다. 그건 바람과 이중 속성이지만 저건 순수한 불이거든요.]
[악마는 불이 더 잘 어울리긴 하군.]
아드라멜렉이 음험하게 말려 죽인다면 아스모데우스는 직접적으로 파괴적인 공격을 가하는 형태다.
다만, 전사형 보스인 원본과 다르게 나헤마가 특별히 전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얘는 1페이즈가 다에요?]
[마법을 구사하기 시작하면 사실상 그게 2페이즈겠지. 드러낼 본모습이 없으니까.]
[이해했어요.]
거리를 좁힌다. 나헤마는 마법사다운 거리를 유지하려는 동작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게 바로 페이즈일 것이다. 나헤마도 결국 미궁에 박제된 보스 중 하나니까, 어떤 식으로건 나뉠 수밖에 없다.
[미아, 마법전 염두에는 두되 너무 신경은 쓰지는 말고.]
[아서, 전방에서 전선 유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옆에서 검의 권능으로 쳐낼 수 있는 건 쳐내주세요.]
[에길, 독늪 때문에 느긋하게 서서 차징은 못해요. 그냥 지속딜로 후려 깝니다.]
짧은 브리핑으로 역할을 나눈다. 그것만으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파악한다.
다만, 언제나 가장 앞에서 공격을 받아내는 역할을 하던 아서가 묻는다.
[리더가? 가능하겠나?]
[가끔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죠.]
순간적으로 마인드맵을 켠다. 나는 지금 방패를 가지고 있다.
그것도 방패 자체의 방어 강도만 따지자면 더할 나위 없는 수준의 아티팩트 말이다.
크기도 소형 방패다.
대방패는 방어 면적에서 큰 이득을 보지만 패링을 한다면 손해를 본다.
그런 대방패로 패링을 익히는 것은 전문 탱커들 뿐이다.
잔여 포인트는 제법 많다.
어차피 마인드맵의 트리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다면 찔끔찔끔한 투자로는 별다른 이득도 없는 법이다.
되레 밸런스만 망가지는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리 길 자체는 뚫어두었다.
당장은 내 역할이 아니지만, 올라운더로서 파티의 문제가 발생하면 수행할지도 모르는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들.
조건은 충족되어 있다.
패링 자체는 탱커계 전사의 기본적인 스킬이다. 보정 없이 순수한 실력으로 하면 어려울 뿐이다.
그러므로 몇 번의 연속된 투자만으로 패링 액티브 스킬과, 관련된 최소한의 보정을 챙긴다.
물리적 공격에 대해서는 보정이 필요하지 않다.
초자연적인 비실체에 대한 패링 보정을 가능한 끌어올렸다.
말로 하면 길지만 실제로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뜨는 찰나였다.
나는 방패를 들고, 솟구치는 불기둥이 가장 전면에 있는 나를 향해 다가옴을 느꼈다.
역시 보정 없이 하는 건 좀 빡센데.
공감각을 끌어올리고 예민하게 달아오른 감각을 느낀다.
거기서 더 사고를 가속하고 눈가에 힘을 모은다.
미아는 패시브 스킬로 가지고 있는 [원소의 눈]이지만 나는 이렇게 수동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닥쳐오는 화염의 권능이 어떤 구조를 가졌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점차 쪼개져 가는 시간 속에서 도리어 감각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눈이 따갑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은 채로 다가오는 화염으로 뛰어든다.
본래라면 즉사에 가까워야 할 권능의 불길을 메타트론의 방패에서 흘러나오는 천상의 권능이 순간적으로 방호한다.
다음 순간, 권능의 핵심에 닿았다.
방패를 휘두르며 스킬을 발동했다.
불길의 방향을 제어하여 다른 것과 부딪히게.
서로 맞부딪히며 사방으로 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그 정도 위협이라면 일상 그 자체다.
아서가 보조한다.
벨페고르의 대검이 아득하게 휘몰아치며 열기를 중화하고 단단한 방어를 만들어냈다.
불길의 소용돌이를 통과하고 순간적으로 하강하여 나헤마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쿨다운 감소하는 패시브도 가능한 많이 땡겼다.
앞으로 3초.
신호하며 전진한다. 아서와 에길이 뒤따른다.
3초도 너무 길다.
하지만 대적할 수 없는 힘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다.
쥐새끼호가 다시 포격을 개시한다.
시선이 또다시 그쪽으로 쏠린다.
그렇게 3초가 지나고, 우리를 향해 다시 들이닥치는 화염을 패링으로 쳐내며 전진했다.
[탱커도 했었나?]
[귀하니까 귀한 대접 좀 받아보려고 노력했었죠.]
내 길은 아니었다. 피지컬 이슈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다른 탱커의 소양보다는 소형 방패의 패링에만 집중했고 이것만 익혔다.
검방 결투사에 더 가깝지 탱커라곤 못 한다.
[그게 더 어려운 건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군. 늘 그렇듯이.]
두 번 더 뚫고 지나가자 나헤마가 보였다.
[릴리트 조심하십쇼.]
그 말을 하자마자 나헤마가 왼손을 들어 올렸다.
분홍빛 기류가 피어오른다.
저것에 노출된다면 전사여야 한다. 릴리트는 밤의 마녀, 매혹의 악마.
정신 공격 위주인 서큐버스 계열에서 가장 강력한 보스 중 하나다.
그리고 아마 나헤마라면…….
역시나 그것이 나를 향한다.
저건 회피도 방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주 제한적인 장비나 스킬만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릴리트 보스전은 본디 릴리트 본인보다는 적이 된 아군이 까다롭다.
그리고 그 제한적인 장비 중 하나는 천상과 법도의 천사인 메타트론의 방패다.
릴리트가 있는 곳에는 그 대책이 있어야 게임 아니겠는가.
대응 불가능한 시련은 미궁의 취향이 아니지.
그대로 돌진하며 나를 매혹하여 지배하려는 권능을.
방패로 쳐냈다.
[무슨 미친……?!]
그대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헤마에 에길의 쌍대검이 휘둘러졌다.
나헤마는 마력 방벽을 펼쳐, 놀랍게도 그 단순한 마력 방벽만으로 아서의 공격 대다수를 상쇄해 냈다.
에길이 그 뒤에서 튀어나온다.
유니크 액티브 [아수라파천무(阿修羅破天舞)]
검은 용과도 같은 기운이 쌍수 도끼에 휘감긴다.
심지어 하나는 순간적이나마 아광속을 낸다.
번쩍하는 순간 나헤마가 충격을 받아 밀려난다.
본디 인간이었던 육체가 피를 흘리며 떠밀려 갔다.
[알고 있다고?]
릴리트의 힘을 사용할 거란 걸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겠지.
아마 본인에게도 의외의 일이었던 모양이고.
지금부터 저 마법사는 의심에 빠질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알지도 모른다고.
더 나아가 함정에 발을 들였을지도 모른다고.
나헤마는 원래 그런 성격이다.
그리고 그래서 악마군단장의 자리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이번에는 그를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
나헤마는 되지도 않는 남의 권능을 빌려 쓰는 대신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파앗 하고 또 다른 종류의 힘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부정형의 마법 공간.
아케인의 수장이 구사했던 4차원 공간처럼 이상한 법칙이 지배하는 마법의 영역이다.
[그래도 다른 영역이 사라지지는 않는군.]
[저걸 모두 겹칠 수 있다는 게 이미 나헤마의 마법적 능력을 증명하는 셈이죠.]
나도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데.
얼마나 바벨의 자식들이 부러웠던 걸까? 밥 먹고 내가 그 힘을 가지게 된다면 하고 망상만 했나?
[2페이즈 빨리 왔네요.]
미아가 마법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실피드의 지원이 없는 지금 어디까지 가능할지 조금 걱정이 되는데.
[걱정 마십쇼! 우리 친구들이 도울겁니다!]
어둠의 정령왕도 정령왕이지. 암.
마침 미아도 악마고.
그리고 마법사로서 힘을 행사하려는 나헤마의 뒤편에 희우가 나타났다.
당황은 눈을 흐리게 하는 법이고, 힘살자의 비교적 어설픈 은신도 감지를 늦게 하게 만드는 법.
다시 나헤마의 피가 튀었다.
[그래도 지금부터가 진짜일 겁니다. 나헤마도 쉬운 보스는 아니에요. 되게 귀찮은 보스지.]
벨페고르를 잡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 방어력까지 들어갔다면 미카엘보다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
흔들렸을 때, 계속 흔든다.
새로운 힘을 쥐고 신나 있는 지금, 새로운 해법을 찾을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제 것이 아닌 힘을 탐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활용하려고 할 때, 끝장을 내야 한다.
굳이 따지자면 바로 다음 차례가 바알이었다.
지옥의 성채의 주인이었던 투신은 흐뭇하게 웃으며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었다.
저런 것에 끼어드는 것은 재밌는 생각이 아니다.
하물며 바로 위에 있는 미카엘 좋은 일이 아닌가.
“저 녀석, 지겠군.”
나헤마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건 바알은 나헤마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건방지고 재수 없긴 하지만 그 힘과 능력은 진짜다.
“그런데 그걸 안 쓰고 말이야.”
처음부터 그랬다면 승산이 제법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바벨의 자식이 가진 힘은 모두 저 유배자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모양이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완벽한 대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냥 마법사의 역량으로 전투하는 편이 처음부터 더 좋았으리라.
그 마법 위에 저런 권능들이 끼얹어진다면, 그게 아마 저 유배자 파티가 제일 바라지 않는 일이었겠지.
“이미 너무 두들겨 맞았어.”
본질이 마법사다 보니 빈말로라도 맷집이 좋지는 않은 녀석이다.
“준비해 볼까!”
팝콘을 밀어 넣고 준비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근육의 긴장을 푼다기보다는 정신적인 각오에 가깝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