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93화
메인 던전 - Lv.20000 속삭이는 혀, [나헤마](3)
나헤마는 당혹스러웠다.
메타트론의 방주가 탈취되었음을 깨닫고 아직 3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며, 릴리트의 힘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명상에서 눈을 뜬지는 5분이나 될까 싶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미 그는 타격을 허용했고 그것이 웃어넘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유배자 파티는 거의 방금 전에 전투를 마쳤으며, 잠깐 정리를 하는 듯 하더니 그대로 이쪽을 향해 전력 질주해온 것 같았다.
이동만 해도 빠듯한 시간이다.
대체 뭘 어떻게 알고 자신의 공격에 대응한단 말인가.
유배자는 많은 것을 알며, 뛰어난 유배자는 더 많은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나헤마는 깊은 자기 의심에 빠져야했다.
혹시 저 유배자 파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가?
[도대체 어떻게……!]
유배자의 상식으로도 보스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속도다.
전투가 빠르고, 결말도 빠르다.
그런데 다음 전투도 빠르다.
방금 메타트론을 때려잡은게 아닌가?
* * *
* * *
* * *
그게 가능한지도 의심스러운 위업이다.
그걸 해낸 파티는 당연히 소모되어있어야하지 않나?
사상자가 없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 그러니까 그가 기꺼이 손을 잡을 생각을 했지.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이건 너무하지 않아?]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나헤마는 자신이 먼 과거의 기억조차 나지 않는 유배자 시절의 마법사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미궁의 가혹한 불합리에 휘둘리며 하루하루 내일을 걱정하던 시절의 인간 마법사.
악마 카드를 손에 넣은 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다.
고위 종족이 되며 모두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그건 굴욕이었다.
나헤마는 분노하는 대신 냉정해져가는 자신을 느낀다.
이건 위험하다.
보통 위험한게 아니다.
저 파티는 이상하다. 아니 있을 수 없다. 불가능하다. 존재해서는 안 된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메타트론은…….
그가 기억하는 메타트론은 끔찍할 정도의 강자였다.
그런데 쓰러졌다.
사실 그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곧바로 그의 목을 딸 기세로 이렇게 짓쳐들어오는가?
그게 가능한 파티 따위 존재조차 상상해본 적이 없다.
모든 신들을 신좌에서 끌어내려 구성하더라도 무리다.
[하……!]
메타트론과의 보스전 전반을 제대로 본 것이 아니기에 더욱 의심이 고개를 든다.
버그라도 쓰는 건가?
대체 뭘 어떻게 의견 교환을 하고 정보 교류를 하며 나를 공략하는가.
대체 내가 무슨 힘을 어떻게 구사할지 왜 알고 있는가?
뭐, 모든 것을 이미 겪어본 적이라도 있다는 것처럼.
불합리도 이런 불합리가 없다.
미궁은…….
위대한의 편린이 되어버린 나헤마에게도, 더 나아가 바벨의 자식의 힘을 손에 넘은 나헤마에게도 여전히 불합리하다.
물론 그것은 일정 부분 오해였다.
실제로는 짧은 수색과 곧바로 이어진 전격적인 선공을 보여준 일련의 행동, 그 사이에 무수한 대화와 브리핑이 오갔다.
그러나 나헤마는 그렇게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무슨 TAS라도 만들어 내듯이, 정교하게 제어되며 몇 번이고 회귀하여 외운 공략대로 행동하듯 움직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 마치 게임처럼.
정교하고 또 정교한 공략을 만들어낸 게임처럼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헤마는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꺼내든다.
공포에 질려서는 아니다. 냉정하고도 합리적인 마법사의 이성으로 내린 결론이다.
그가 새로 손에 넣은 힘만 휘둘러서는 이 파티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고 느낀 탓이다.
그것이 완전히 이성적이었는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지금 나헤마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만은 사실이었다.
블랑쉐는 나헤마가 마법사로서 행동하기 시작하고부터가 자신의 턴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위대함의 편린이자 악마군단장 나헤마에게 암습이란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사실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온갖 권능으로 제 몸을 감싸고 있는 고위 존재의 중요한 부분에게 암습이 들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공갈이 잘도 성공하는군.’
허장성세임을 말한 적은 없으나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고 여긴 것만은 알겠다.
나헤마의 성격을 알고 그가 어떤 심리적 취약점을 가졌는지 따져본 결과일까?
어쨌든 나헤마는 어느 정도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실제로 그 정도 HP 피해를 받았다면 누구라도 그렇겠지. 상상도 못한 상대에게 상상도 못한 타격을 입는다.
정보우위는 약점을 아는 것으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이쪽을 모른다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이점이다.
지금부터 나헤마는 온갖 악마들이 뒤섞인 끔찍한 힘의 덩어리가 아닌, 악마 마법사로서 행동한다.
블랑쉐는 더욱 더 깊숙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과연 자신을 찾으려는 행동을 보일까?
그렇지 않았다.
나헤마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적들을 떼어놓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공간이 뒤틀리고 시간의 흐름이 바뀐다.
시간을 멈추는 것보다 느리게 만드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사실 정지보다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더 고차원적인 마법이기도 하다.
나헤마 본인의 영역이라는 부정형공간은 실제로 왜 그렇게 불리는지 한눈에 알만한 곳이었다.
끊임없이 변하고 흘러간다.
그 사이사이에 섞여있는 다른 악마들의 힘도 보인다. 저게 어떻게 나헤마에게 흘러 들어갔을까?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은 없다.
느려진 시간은 제법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망치의 역할을 맡고 있던 전사 클래스 파티원들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마법의 신씩이나 되었으며 이제는 더한 존재인 나헤마는 당연하게도 거리를 벌리는 모든 방식에 능통했다.
[사수가 없어도 되나?]
[블랑쉐, 말하지 마. 감지된다.]
옳은 말이었다.
수준 높은 마법사라면 마법적 통신이 이어져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우려가 사라졌다.
‘끊어졌군,’
나헤마의 영역이 지닌 효과가 무엇이더라.
마법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디스펠이 자유자재인 셈이다.
물리에 강한 악마가 마법적 공략을 막는다.
쉽지 않은 일이다.
미아를 본다. 이번에도 마법 공격은 포기한 상태다.
대신 나헤마가 구사하는 여러 가지 마법들을 어둠의 정령왕들과 연계하여 방어해내고 있다.
병렬 컴퓨팅 같은 느낌일까.
보스로서 무시무시한 처리능력을 가진 나헤마의 마법 구사가 어딘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드는 건 그 탓이다.
그 덕에 다른 파티원들이 생존해있을 수 있다.
희우는 그 와중에도 철저하게 블랑쉐를 숨기는 포지션을 취했다.
들킨다면, 좀 더 어설픈 힘살자의 은신이 먼저 걸려들 것이다.
주기적으로 나헤마에게서 마력 탐지가 터져 나왔다.
자연스럽게 블랑쉐의 앞을 가린다.
마력의 반향정위는 철저하게 블랑쉐를 숨긴다. 애초에 마력탐지에 저항하는 패시브와 버프도 이미 발동 중이다.
사수는 포인트롤 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장비만을 요구한다.
블랑쉐의 마인드맵은 누가 본다면 정말 고레벨 암살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족하군.’
스스로 느끼고 있다.
마법에 어느 정도 할애한 탓도 있으나 메인 던전급의 암살자가 된다면 말 같지도 않은 수준의 은신 능력을 요구받는다.
블랑쉐는 아직 희우의 보조 없이는 유령처럼 사라질 수 없다.
언뜻 암살자로 여겨지는 힘살자가 먼저 앞에서 의식을 잡아채고 그 틈을 찌르는 것이 최선이다.
‘단독으로도 할 수 있어야겠지.’
마법을 배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다.
서브 마법사 같은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극에 도달하고자한다면 유틸리티를 탑재하는 수밖에 없다.
상대의 탐지 수단에 대한 이해 없이 어찌 그것을 벗어나는가.
블랑쉐는 계속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단 한 번에 모든 딜링을 폭파시키기 위하여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대기하고 있다.
이 뒤틀리고 혼란한 공간 속에서 보스의 심리 사각을 끊임없이 찾아내며 말이다.
미아의 마법전 수행은 훌륭했고 그 덕에 나헤마는 제 영역임에도 완전히 자유자재로 마법을 구사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그건 미아 역시 마찬가지라 마법적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는 없었다.
그건 결국 장기전으로 가면 필패하는 흐름으로 전투의 양상을 바꾼다.
“개념적인 독이란 건 꽤나 골치 아프군!”
통신이 끊어졌지만 지근거리에 있으니 들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이 늦어진지라 회피보다는 맞대응할 일이 많아졌다.
따라서 우리는 적절한 무빙을 취할 수 없었고, 이미 전원이 중독된 상태였다.
영역은 여전히 중첩해서 깔려있으면 독기의 늪은 불길과 마법의 세례에 꾸준히 높이 튀어올라 우리를 덮친다.
게임 시절이라면 산더미처럼 생겼을 디버프 표기가 지금은 뻐근하고 무거운 몸으로 나타낸다.
아직은 몸이 둔해지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점점 생명력을 앗아간 끝에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
이렇게 부활 스택이 날아가면 그보다 허무할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하늘에서 불기둥이 덮쳐왔다.
감각이 둔해지니 패링이 언제 한번 삑사리가 날지 모른다.
나라고 언제나 모든 것을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염 기둥을 튕겨내며 다시 나헤마와 거리를 좁힌다.
조금 더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으면 좋겠으나 저 마법사는 몸에 밴 거리 벌리기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는 안심하기 시작했다.
냉정을 되찾고 제대로 궁리를 하기 시작하면 금방 어떻게하면 되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무수한 탄막, 마법 대신 우리를 지원할 쥐새끼호의 붉은 선이 그인다.
나헤마는 혀를 차는 듯한 모습으로 그것을 피하거나 공간을 뒤틀어 막아내었다.
조금씩 아스모데우스의 화염을 다루는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릴리트의 권능은 동원하지 않고 있다.
기회를 노리는 것이 분명하다.
그게 내가 아닌 누구에게 적중하더라도 거기서 게임은 끝난다.
나와 전사 셋은 정말 이를 악물고 마법사를 쫓았다.
시간의 흐름을 내가 바로잡아가며 따라가고, 공간을 다발적으로 열어젖히며 추격한다.
나헤마의 공간이동을 균열이 닫히기 전에 뛰어들어 따라들 뻔도 했다.
그러나 결국 닿지 않는다.
“마법사를 이기는 전사 클래스는 없나?”
마침내 아서가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에도 힘겨움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독이 작용하고 있다.
“소드 마스터로 극에 도달하면 마법을 칼로 베면서 따라다닐 수 있긴 합니다. 마법사 잡는 전사죠.”
“……그건 좀.”
대신 이런 수준의 전투에서 소드 마스터는 팔이 짧아 한 대 치기도 힘들 것이다.
에길이 제 아무리 공격력에 몰빵을 했다곤 해도 소드 마스터보다는 몇 배로 튼튼하다.
“소모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어서 가능한 빨리 끝내야하는데 말이죠.”
나헤마는 슬슬 자신의 유리함을 깨닫기 시작했다. 처음의 순간적인 패닉은 금세 잦아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라 느끼고 수신호했다.
어디선가 희우가 날아들었다.
기천사 중에서도 특출나게 빠르다고 할 수 있는 섬광의 천사가 번뜩이며 나헤마의 뒤를 잡는다.
순간적인 심리의 사각은 충실하게 틈을 만들어 내었다.
나헤마는 충격파를 일으키며 떨쳐내려고 했으나 그 틈새를 찔러드는 찌르기가 적어도 스치기는 했다.
희우는 약간의 손상을 입은 채로 다시 날았다.
엄청나게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이었고 그 틈을 타서 다시 전진한다.
아스모데우스의 것이었던 겁화가 벽을 형성하여 차단한다.
그대로 방패로 쳐낸다.
불의 장벽이 튕겨나가듯 밀려나고 생겨난 틈으로 가르듯이 뛰어들었다.
에길은 준비하고 있었다.
다시 마력방벽이 산산조각난다. 나헤마의 긴장이 끌어올려짐이 느껴졌다.
때맞춰 쥐새끼 호의 탄막도 도달한다.
공간 균열을 열려는 것을 미아가 가로막고 그 찰나에 나헤마는 충분히 두들겨 맞았다.
“그래도 갉아먹기 밖에 안 되는군요.”
“슬슬 저쪽도 뭔가 하려고 하겠지.”
“그래야 하는데.”
나헤마는 상황을 조금씩 파악해가기 시작했다.
자신은 유리하다.
그렇다 아주 유리하다.
엄청나게 마법전에 능한 마법사가 있어 뜻대로는 안 되고 있으나 권능의 사용마저 막을 수는 없다.
나헤마는 힘을 다시 적극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마법은 캐스팅 되는대로 집어던진다.
동시다발적인 캐스팅을 어떻게 따라오고 분해하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나헤마가 조금 더 앞선다.
조금씩 희열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는 강하다. 쭈그러들 이유가 없다.
갉아먹는 것은 그다.
하지만 갉아먹는 것은 웬일인가.
그럴 필요가 있는가.
죽음까지 이를 걱정은 이미 거의 사라졌다.
적들은 느려졌으며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불이여! 지옥의 겁화여!]
아스모데우스가 어떻게 싸우는지 안다.
[몽환의 군주여! 그녀의 환혹이여!]
릴리트가 어찌 싸우는지도 안다.
이미 몸속에 융화된 힘의 권화들이 날 때부터 주어진 불합리한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정교한 다루기? 필요 없다.
정밀한 활용? 필요 없다.
나헤마는 비로소 바벨의 자식들을 이해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 다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패링? 하게 두어라.
그 다음에 휩쓸릴 뿐이니.
마법을 먼저 장전한다. 메모라이즈 구슬 수십 개가 일제히 떠올랐고 그 대부분이 분해당해 터져나갔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만들어낸다.
수십에서 수백, 수백에서 수천.
지금 그 천사 계집이 암습을 시도하더라도 막을 수는 없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단번에 균형을 무너뜨리리라.
비로소 나헤마는 자신의 힘에 걸맞은 위엄을 되찾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겁이 많은 자들은 오래 살아남는다.
겁쟁이라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신중하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나헤마는 언제나 자신이 신중하다고 생각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넜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순간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 한 마법이 피어오른다.
적이 무슨 공격을 해오더라도 공격으로 마주 상쇄하면 그뿐.
나헤마는 죽지 않을 것이고 저것들은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운석과 함께 그 사이에 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에너지들과 온갖 원소들이 날뛴다.
무한한 마력에서 자아내어지는 술식들이 그의 영역을, 온갖 악마군단장들의 권능이 뒤섞인 공간을 수놓는다.
천사가 달려드는 것이 느껴진다. 이 마법을 어찌해보려는 듯 하다.
어림도 없다. 마력 방벽들이 층층이 쌓여지고 시전은 계속된다.
피할 곳조차 없는 광역기가 사방으로 쏟아진다. 더해서 아스모데우스의 겁화도 미쳐 날뛴다.
패링을 해보도록 해라.
이 천사도 종으로 부리면 좋겠군.
마법이 아닌 릴리트의 권능이 피어올라 마력 방벽을 꿰뚫으려고 노력하는 천사를 향한다.
섬광이 번뜩이며 갑자기 방벽이 일제히 무너진다.
나헤마는 자신이 잠깐 노출되었고 이미 제법 피를 흘렸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사실 위대한 존재인 그에게 이 정도는 생채기에 불과한 탓이다.
[내 것이 되어라.]
천사의 눈이 풀린다. 저항할 수 없는 매혹이다.
이제 저 단검은 살아남은 유배자들에게 향할 것이다.
나헤마는 고개를 들고 우선 마법사부터 처리하기 위하여…….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
[……?]
이상함을 느끼는 순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대로 암흑 속에 빠져든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다시 알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마법사는 모든 힘의 제어를 놓아버리고 추락했다.
지나치게 막대한 데미지가 후두부를 쑤셨다.
그것만으로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
하나 무생물이 아닌 이상 생명을 유지하는 기전은 존재한다.
태생부터 바벨의 자식이 아닌 나헤마에게 본체는 없다.
악마의 육신 역시 조금 튼튼한 생물일 뿐이다.
목이 부러져도 살아있을 수는 있겠으나 멀쩡할 수는 없다.
목줄기가 찢어지고, 뇌간이 뭉개지고, 전두엽이 으스러졌다.
그대로 둔다면 재생하여 되살아나겠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방비가 된 마법사만큼 무력한 것도 없다.
유니크 스킬 [암살자의 작법]
유니크 액티브 [배후의 그림자]
반드시 한번 상대의 배후를 잡는 이 스킬이 발동하는 그 순간, 그 직후의 마지막 일격의 순간까지 보스의 의식 바깥에 존재했다.
블랑쉐는 공중에서 추락하는 마법사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암습의 위험함은 단지 그 데미지뿐만이 아니다.
완벽하게 들어간 암습은 어떤 식으로건 무력화, 게임 적으로는 그로기를 동반한다.
벨페고르의 방어력을 손에 넣지도 못한 마법사에게 이제 살아날 길은 없다.
“MISSION COMPLETE…….”
이번에도 그녀는 완벽했다.
이 완벽을 홀로 수행할 수 있게만 되면 더 올라갈 곳도 없음이다.
다시 통신이 연결된다.
리더가 한숨 돌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 자식 부활 스택이 몇 개나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다들 모여! 살아나면 즉시 다시 죽인다. 미아야 도망 못가게 디스펠 잔뜩 준비해!]
도합 7번의 사망 끝에 나헤마의 야망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Fragment Of Greatness Slain]
[편린이 당신들에게 깃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