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95화
메인 던전 - Lv.17500 투신 [바알](6)
마음가짐은 언제나 일상의 한가운데처럼.
오빠가 추구하는 가치다.
전투란 일상이어야 한다.
실제로 미궁에서는 일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희우는 그것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바알이 날아오는 와중 시간이 멈춘 곳으로 재진입하면서도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라리사……. 좋겠다.’
입맛을 다신다.
왕국의 주민이 되기로 결심한 이상 그 법도를 따른다.
그리고 왕국의 주민 대다수는 유배자이면 그중의 대다수 또한 현대 지구계열의 세상 출신이다.
그러니 예식문화도 대체로 현대의 것인 경우가 많았다.
웨딩드레스라는 개념은 중세 판타지 월드의 인물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졌다.
라리사는 순백의 드레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별다른 로망도 없을 텐데 부케를 던지며 웃을 수 있었다.
리온은 이제 와서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쭈뼛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라리사가 웃으며 뒤통수를 후려까자 호응했지.
축복이 가득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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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친척의 결혼식은 귀찮은 곳이다. 집에 가서 레이드 해야 하는데 여기서 왜 나랑 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가.
희우는 방구석을 사랑했고 혼자 노는 것에 행복해했다.
사람이 많은 곳은 그 자체로 부담이었다.
소위 말하는 자기 방, 자기 침대가 아니라면 HP가 전혀 회복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다.
사실 꽤 삐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이 변하려면 무언가 큰 충격이 필요하다곤 하는데 미궁이 그랬다.
이젠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신 저 자리에 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곤 하는 것이다.
‘그땐 천사는 아니겠지?’
피부 관리하고 화장하고 하는 걸 어떻게 하더라? 천사는 존재 자체가 이미 치트키 때문에 그런 걸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실 그럴 여유도 없다.
하지만 인간으로 돌아가면 나이도 먹을 것이다.
여러모로 일상으로 돌아간 후가 떠오른다. 미아와는 함께 갈 수 있겠지?
말이 좋아 엄마지 그냥 언니 노릇이나 간신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음,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하지?
그리고 데릴사위면 결혼식은 성대하게 할 수 있을까?
나도 웨딩드레스 입어보고 싶다.
온갖 로망과 환상에 범벅이 되어 미래를 상상하는 휴식 기간이었다.
나름대로 가까운 사이였던 리온과 라리사가 먼저 그렇게 되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자꾸 입맛만 다시게 된다.
덕분에 쉬어도 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의욕만큼은 충만하다.
다시 그 칙칙하고 어두컴컴한 무너진 세계로 돌아오고 반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기는 중요하다.
감각이 선명하게 살아나고 멀리서, 그러나 사실 금방 도달할 거리에서 다급하게 내리꽂는 검은 유성을 인지한다.
[저 주먹과 맞대는 건 전사 클래스만 해야 합니다. 이번엔 제니가 잘해야 해요.]
바알은 원래부터 성가신 특징이 하나 있는 보스인데, 바로 아주 똑똑하다는 것이다.
설정상으로도 저 대악마는 투쟁의 화신이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상대로, 때로는 살아 있지 않은 것을 상대로도 승리하고 싶어 하는 녀석이다.
그리고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좇게 되는 법.
그 꿈이 대가리를 써야하는 것이라면 그쪽 방면만큼은 팽팽 돌아가는 법.
그러니까 바알은 애초에 다른 바벨의 자식들처럼 유배자를 무시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무시하긴 하는데, 그 방식에서마저도 유배자를 이기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검을 다루는 것은 본체에서 하고 있는 것이기에 클리포트에 앉아 인간형을 취하고 있을 때만큼은 주먹을 든 미치광이다.
제정신으로 이해하려고 드는 것이 손해며 그저 싸우기 위해 태어난 기계로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저 싸움 기계는 정말로 소름 끼칠 정도로 집요하게 승리를 추구한다.
게임 시절의 AI도 그랬다.
바알은 꽤 악명 높은 개자식이다. 기껏 모아둔 파티원 사망률 랭킹을 매기면 후반부 보스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높다.
그럼 저 녀석이 누굴 가장 먼저 노릴까?
늘 그렇듯이 마법사다.
제니는 아주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기천사가 된 상태에서의 비행 속도는 진짜다.
[다른 사람들은 미아를 지키는 식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마법사 먼저 치는 게 무조건 이득인 걸 알고 있는 놈이에요!]
그렇지만 우선은 광역기 회피다.
저 검은 유성은 개막 패턴으로도 나오지만 수시로 사용하기도 하는 통상 패턴에 가까운 것이라 자주 볼 것이다.
아서와 에길이 호위로 더 붙은 가운데 미아를 안고 있는 제니가 서둘러 움직인다.
나머지는 흩어져 충격을 대비했다.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희우가 사용하는 [슈퍼 히어로 랜딩]보다 더 큰 규모였고 나헤마 보스룸 대부분을 덮었다.
[그대로 유도해 주세요! 우린 마법사를 더 불러오겠습니다!]
[빠르게 부탁하네. 정말 빠르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알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가지 말라고 붙잡듯이 덮쳤으나, 우리 쪽에서나 시간이 흘렀지 바알이 보기엔 가려다가 만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좋군! 정말 좋아! 자 한판 붙어보자! 유배자들!]
저 대사 저거. 게임에서도 텍스트로 출력되는 그건데.
바알만큼은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사실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은 녀석이기도 하다.
존재 자체가 컨셉 같은 놈이니.
나와 블랑쉐는 바알이 원래 있던 맵으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바알의 사고 과정은 그야말로 심플했다.
마법사! 죽인다!
마법의 종족인 악마주제에 마법 비슷한 것에는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바알이지만, 악마가 물리적 공격에 더 강하다는 사실은 안다.
그 특성에 따라 생각해 보면 위험한 것은 언제나 마법사다. 사수에게는 좀 얻어맞아도 된다.
누적되는 대미지는 미미하다.
전사들은 바알을 따라오기 어려워한다.
그걸 보조하기 위한 것도 마법사다.
일단 마법사의 뚝배기를 브레이킹하면 뭐가 어떻게든 된다.
유배자처럼 싸우려고 하지만 그 자체에 큰 이해는 없는 전투기계는 그렇게 모든 상황을 단순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효율적이었다.
검은 유성이 되어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 직후, 곧바로 튕기듯이 솟구친다. 몸의 탄성만으로 다시 튀어 오르는 것이지만 그 스케일이 진도측정이 될 정도다.
[마법사! 어디 있나!]
전사들 몇몇과 대피 중인 마법사가 보인다.
작고 조그만 악마 하나. 데몬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고 있는 것은 기천사.
바알은 잽싼 상대가 마법사를 데리고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상대의 전술이 훌륭하다고 느꼈다.
[얼마나 빠른지 볼까?]
몸을 웅크린다.
최대한 웅크리고 또 웅크린다.
그리고 그의 검은 어둠을 그 속에 다시 응축한다.
인간의 형체에 깃들기에는 지나치게 막대한 권능이 집약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대로 발사했다.
뒤편으로 광대한 대미지를 흩뿌리면서 질주한다. 길게 권능의 잔상을 남기며 음속을 찢어발기고 소리보다도 빠르게, 어쩌면 빛과도 비슷하게 날아간다.
그 내쏘아지는 와중의 자세는 거기에 더해 근육과 권능의 힘을 최대한도로 때려 박는 꽈배기같이 뒤튼 모습.
주먹은 280도 정도 회전하여 목표에 때려 박히리라.
제니는 그런 바알의 모습을 보며 머릿속에 사정없이 비상벨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내게 힘을 줘! 제니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날개를 움직인다. 달아오른 날개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진다.
그리고 리더의 충고를 되새겼다.
[바알은 직선적으로 움직여. 페이크도 넣지 않지. 그냥 뒤지게 빠르고 뒤지게 강해.]
출력의 차원이 다르다.
단순한 직선적인 움직임으로는 결코 회피할 수 없다.
제니는 그것을 위한 곡예비행을 연습할 시간을 받았었다.
블랑쉐가 쏘아대는 사격을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회피하다가 몇 발은 얻어맞기도 하는 3일간이었다.
그 나날과 제니즈의 가르침은 이 가슴에, 그리고 이 날개에 깃들어 있다!
전사들도 전면으로 맞서지는 않는다.
지나치는 바알을 향해 공격을 넣어 궤도를 틀어보려고 한다.
그래도 바알은 제 직선적인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천사보다도 몇 배는 더 빠른, 서브리더가 최대로 가속했을 때와 흡사한 속도의 충격이 제니의 뒤편을 스친다.
모골이 송연하지만 숨을 내쉬며 미아가 창백한 얼굴인 것을 보았다.
이럴 때는 자신만만한 얼굴.
[괜찮아요. 피했어요.]
[제니, 다시 와.]
쾅 하고 굉음.
하지만 그 소리는 처음 출발한 곳에서 이제야 들려오는 것이다.
바알의 다음 동작은 확인할 정신도 없다.
바알이 그쪽으로 날아갔으니 다시 이쪽으로 올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공간이동은 이런 경우 무력하다.
상대가 지나치게 빠르면 균열이 닫히기 전에 도달해 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동해도 결국 이어진다.
순수하게 제니의 기합회피다.
다시 괴물이 스쳐 지나간다.
제니는 방향을 급격하게 꺾으며 그것을 피해냈다.
미아가 마법을 여러모로 중첩해서 건다.
조금 더 비행 속도가 빨라졌다.
이미 소리의 벽은 저 뒤편으로 멀어져있다.
듣는 것은 소용없다.
눈으로도 쫓기 힘들다.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 가운데 사방에서 포탄이 날아드는 느낌이다.
회피하고 0.2초 이내로 다음 공격이 지나간다.
전사들이 몇 번은 대응해 주지만 그마저도 완전할 수는 없다.
이제 몇 초나 흘렀을까?
제니는 억겁처럼 긴 체감시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희우라고 해서 그 모습을 눈으로 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니는 보이지만 바알은 그야말로 검은 선이 마구잡이로 그이는 듯한 연속 공격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게 더 나았으려나?’
그랬을지도 모른다.
희우는 확실하게 공감각 상태에서 제니보다 빠르다.
하지만 바알도 그만큼 빠르다.
어차피 직선적인 움직임만을 반복하는 이상 피하는 난이도는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집중을 유지하냐의 문제지 빠르냐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그러면 희우는 대기하는 수밖에 없다.
저 연속된 패턴이 끝나는 순간을 노리고, [쏘아지는 날개]를 꽉 쥐고 있다.
날개의 워밍업은 끝났다.
속도를 낼 준비는 되어 있다.
바알이 멈춰서는 순간 친다.
그래도 남의 곡예는 보고 있으면 초조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쥐새끼 호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알은 이걸로 사격해 맞힐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쥐새끼는 바알이 마법사를 노리는 동안 미리 올라가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버려 제 몸 같아진 블랑의 속에서 쥐새끼는 카메라를 통해 밖을 볼 수 있다.
검은 선이 마구 그이고 있고 그걸 어떻게든 쳐내려는 전사들, 그리고 회피하는 고양이 천사.
비주얼적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운 장면이다.
쥐새끼는 최대 속력을 내도 그리 빠르지 않다고 느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작정하고 빠른 것들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방주의 움직임은 심지어 저 앞에 나아가고 있는 리더와 암살자보다도 느리다.
쥐새끼는 계속해서 포구를 겨누면서도 점점 위로 상승했다.
정령왕들이 웅성거리며 찍찍댄다. 어둠의 악마인 바알에게 어둠 그 자체인 어둠의 정령왕들은 무력하다.
저쪽이 상위호환에 가까운 존재인 탓이다.
그러니 사실 쥐새끼는 페이즈가 넘어가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음 페이즈에서 바알의 거체가 드러난다면 그때부터가 포대가 활약할 타이밍이다.
[그래도 저는 할 일이 있군요우!]
그럼 그걸 해낼 뿐이다.
전자 쥐새끼가 된 성배의 짐승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속 전진한다.
고도가 충분히 높아지자 바알이 팝콘을 씹고 있던 자리가 보인다. 그리고 더 위의 필드도 보였다.
마치 투기장 같아보였다.
사방을 벽인지 공간의 한계인지 모를 것들이 둘러싸고 있다.
마치 누군가 죽어야만이 이 다음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의미심장한 그 디자인에 쥐새끼는 감동을 느꼈다.
[세상은 정말 넓군요!]
그리고 커다란 문이 보였다.
물론 여기서는 조그맣게 보인다.
그래도 그 앞에 도달한 리더와 암살자와 비교해서 커다란 문임을 알 수 있다.
[저기서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고요?]
새로운 만남!
평생을 정령들과만 살아온 전자 쥐새끼는 두근두근해졌다.
더 많은 사람들!
신기하다!
파라켈수스는 당연히 목숨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이 당번을 수락한 것은 그렇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여기서 뺄 수는 없다.
“처음엔 그냥 지켜보려고 했는데 결국 여기까지 끌려나오는군.”
신으로서 지켜보고 있던 유배자는 혼자 뭔가 엄청나게 달려가더니 너무 멀리까지 가버렸다.
미궁의 클리어는 모든 유배자의 로망이지만 그 속에 끼고 싶은가는 파티 꼬라지를 보면 쏙 들어간다.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고 싶은데.
메인 던전의 위험함은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먼 옛날에 모시던 신들의 신이 껄껄 웃는다.
“부담되나?”
“안 되는 게 이상하지요.”
요정들을 돌보는 것보단 나을 일일까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 나이만 많은 응애들을 보고 있자면 가끔 유치원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어차피 왕국이 통일된 이상 이제 서버의 주도권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도 없지.
그리고 왕국의 문이 열렸다.
빛과 어둠, 하지만 이제는 심연의 보랏빛이 감도는 가라앉고 있는 세계.
말로는 들었지만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다.
“빨리! 시간이 별로 없어요!”
“좋다!”
루시가 얼른 앞장서고 파라켈수스도 그 뒤를 따랐다.
바알이란 놈이 마법사를 그렇게 좋아한다지?
이 나이에 목숨을 거는 건 영 재미가 없는데.
한숨을 쉬며 전장으로, 상당히 오랜만에 나선다.
“미리 말한 대로! 곧바로!”
등 뒤에 떠 있는 무수한 메모라이즈 구슬들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가 가진 유니크 스킬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원환의 소용돌이]
이게 있어서 바알 전에 그가 불려나오게 되었다.
“아니, 잠시만, 바알의 카운터가 여기 있었네?”
며칠 전에 유배자 리더 오르골이 그의 눈앞에서 내뱉은 끔찍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