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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501화 (47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01화

메인 던전 - Lv.17500 왕관을 쓴 거미 [바알בַּעַל](12)

제니는 가장 이 힘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잘 모른다.

마법에 조예도 없고 위대한 고양이도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전적으로 미아의 말을 따를 수 있었다.

이미 미아 신앙에 가까운 마음은 자신을 조종하는 어린 악마의 말을 본능의 영역에서 따르게 만든다.

그래서 라파엘의 태양을 휘감은 고양이 천사는 바알과 충돌했고, 빛의 폭발을 일으켰고, 세상을 밝혔고, 바알을 쓰러트렸다.

기우뚱하며 어이 없이 균형을 잃던 거미가 다시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는다.

[이건 대체? 라파엘? 아니군. 넌 누구냐?]

미아는 바알이 상상도 못할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건 처음 볼 것이다.

제니는 그대로 미아가 시키는 대로 모든 유니크 액티브를 있는 대로 발동했다.

유니크 스킬 [시작의 바다]

유니크 액티브 [바다의 대리자]

전면전에서 나설 일이 적다보니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던 버프기.

* * *

* * *

* * *

생명력을 흡수할 곳이 많지 않으나 없는 것보단 낫다.

유니크 스킬 [허무의 파편]

유니크 액티브 [파편의 무기]

가장 애용하는 길고 긴 거검을 만들어내는 액티브.

바알이 가진 검만큼이나 거대한 형체가 양손에 솟아난다.

미아가 속삭였다.

[어렵지 않아. 그냥 샌드백이라고 생각해. 지금 당황해서 제대로 대응 못하고 있잖아. 두들겨. 제니즈와 연습했던 것처럼, 그리고 파티의 모두에게 배운 것처럼.]

샤이닝 파이어 엔젤 캣이 된 시점에서 제니는 이미 제정신은 아니었다.

몸속에 들끓는 힘에 취하기보다는 뭐야 몰라 이거 무서워 상태다.

그런 무아지경 속에서 제니는 미아가 속삭이는 대로 움직였다.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

리더의 베기를 따라하고, 서브 리더의 악착같이 약점에 구겨넣는 묵직함을 따라하고, 블랑쉐의 날렵한 살인술도 깃들며, 에길의 파괴적인 힘, 아서의 정갈하고 절도 있는 검술도 배어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듬어 준 것은 제니즈라는 또 하나의 자신이다.

난무라함은 쌍검을 쓰는 자에게 기본이다.

마크 없는 프리딜 타이밍에 누구보다 강한 것이 쌍검사다.

잎사귀 요정이었던 보정으로 여전히 몸에 깃들어 있는 쌍검의 숙련도가 빛을 발한다.

제니는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렸을 때, 바알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과 대치중인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물론 눈썹만 움찔하는 선에서 그친다. 전투중에 호들갑을 떨만큼 대충 살아오진 않았으니까.

미아가 귓가에 다시 속삭인다.

[잘했어. 제니. 지금처럼만 해.]

지금처럼이 뭔데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 휘둘렀다.

[그거 아닌 거 같은데…….]

[진짜 모르겠으니까 다르게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권능을 움직여보자.]

바알이 제니에게 습격박아 어처구니 없어하는 동안 다른 파티원들은 여유를 되찾는다.

태연하게 대화할 시간은 없으니 행동이 먼저다.

팔들의 날카로움이 무뎌지자 그 사이에서 빠져나온 루시가 자세를 잡는다.

[어디 노리나?]

[왕관.]

행성을 파괴하기 위한 스킬의 힘들이 깃든다. 상대의 내구력은 단순한 행성보다도 높겠으나, 루시는 본디 딜찍누를 위해 이 모든 마인드맵을 설계했다.

딱 한 대를 치는 것 만이라면 에길에게도 비견될 수 있다.

10초간의 차징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스킬 보정을 집약한 끝에 투창이 날았다.

그리고 희우도 날아든다. 먼 곳에서 기회를 노리다가 바알의 팔에 틈이 생기자마자 그대로 빛이 되어 꽂힌다.

두 가지가 충돌하고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바알의 어둠이 더 흔들리며 꺼져갔다.

두 가지 영역이 뒤섞인 바람에 영역의 밖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쥐새끼호가 보인다.

아득히 높은 곳, 본래 바알의 보스룸이던 곳의 상공에 떠있는 전함의 주포가 빛을 발한다.

좁은 틈으로 거미의 거체는 사정없이 불살라졌다.

바알은 거미의 다리를 웅크렸다.

아서가 제일 먼저 그 동작의 패턴을 캐치한다.

[발광패턴!]

바알은 빠르다.

그것은 본체를 드러낸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좁은 미로에서 맵기믹에 가까운 무수한 팔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바알의 본체에게 쫓기는 것이 어째서 위험한가.

저 거미가 너무나도 빠르기 때문이다.

거미의 다리가 폭발적으로 가속했다.

포격에서, 제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시선이 움직이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멀어진 거미가 그대로 선회하여 다시 돌진해오기 시작한다.

아서는 그 모습을 보며 아득한 기분을 느꼈다.

저걸 어떻게 대응해야하지?

폭력적인 질량이 압도적인 물리량을 지닌 채 돌격해온다.

검의 일부는 꿰어버리겠다는 듯이 랜스 마냥 세워져있고 나머지는 온갖 궤도로 휘둘러질 준비를 마치고 있다.

저것은 그야 말로 믹서기다.

제니를 걱정하며 올려다본다. 불타오르고 있는 사막의 천사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아서는 미소지었다.

제니는 걱정이 없는게 아니라 정신이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미아가 시키는대로만 하고 있다.

태양을 머금은 바람이 소용돌이가 되어 움직인다.

그 제어는 거의 미아가 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 덕에 정교하다.

태양풍이 불었다.

달려드는 바알을 불사르고 으깨고 뭉갰다.

거대한 거미는 활활 타오르고 이지러지면서도 미소짓고 있다.

지금거리에 도달하고 제니는 다시 검을 들었다. 아까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의식하고 검을 섬세하게 움직인다.

불현 듯, 주마등처럼 먼 옛날이 눈앞에 스쳤다.

힘들게 살았었지.

집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도박 중독.

그러다가 그렇게 증오하던 도박을 다루는 딜러가 되고.

어느 날 미궁에 끌려오고.

거기서도 힘들게도 살았다.

어쩌다 이런 거랑 싸우고 있지?

미아는 제니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지적하지 않았다.

제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재주가 좋은 유배자다.

차라리 정신을 놓고 있는 편이 그간 몸에 새긴 노력의 보답을 온전히 받을 길인지도 모른다.

태양풍과 함께 거대한 쌍검을 휘두르는 신화적인 고양이가 돌진했다.

바알과 쉴새 없이 충돌한다.

허공에서 부딪히고 찢기고 공간을 비틀고, 그 사이에 바알은 권능적 시간 마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미아는 똑같은 방식으로 그 시간의 뒤틀림에 대응했다.

제니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바알에게서 시간을 빼앗는다.

턴제 게임에서 턴을 가지고 노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한 힘인가.

실시간인 이 미궁에서 그런 짓을 서로 해대고 있다.

제니는 쉴새 없이 움직였고 바알도 그에 맞서 검을 놀린다.

물론 일대일로는 밀린다.

주변에서의 지원사격이 끊임없이 바알을 괴롭힌다.

왕관을 노리고 날아온 투창이 다시 바알을 휘청이게 하여 제니가 살아남았다.

그래도 조금씩, 부상은 늘어간다.

바벨의 자식이란 그만큼 압도적인 힘의 덩어리인 셈이다.

이대로는 좋지않아.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너무 좋다.

저게 미아가 말했던 세피로트 해킹이군.

솔로몬이 다시 허가해준건가? 아니면 그 허가가 남아있는건가?

중요하지 않다.

된다면, 그렇다면.

한 가지 가정이 떠오른다.

보스는 언제나 유배자에게 압도적인 스펙 우위를 가진다.

바알같이 상성으로 공략하기 힘든 존재는 그 때문에 장기전으로 끌리기 쉽고, 그 때문에 사상자를 많이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게 메꿔지는 현상이다.

여전히 밀리겠지만, 제니는 확실히 지원을 받으면서도 바알에게 밀려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대치가 가능한 영역의 스펙을 손에 넣은 채다.

미아가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제니가 마지막까지 책임지게 할 생각은 아닐 거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아주 간단하다.

애초에 스펙을 그렇게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면 나는 진작에 이 미궁을 클리어했을 것이다.

싸울 수 있다면, 검을 서로 맞댈 수 있는 정도 밖에 힘의 격차가 없었다면 말이다.

[용사]의 마지막 슬롯은 아직도 비어있다.

난 이걸 어디에 쓸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결정했다.

블랑쉐의 [검은 날개]가 발동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슬롯에 넣는다.

연속적인 공간이동으로 미아의 근처까지 도달했다.

[미아!]

내가 온 것을 안 미아가 제니에게 뭐라 속삭인 듯 싶다. 조금 무리하여 밀어낸다.

그리고 그 틈에 공간이 열리며 미아가 나타났다.

[저거 나한테 줄 수 있지?]

[그럼요.]

[종족 바꾼다.]

[알겠어요.]

여기까지 생각하고 제니를 통해 가져온 것이다.

당장 즉시전력이 필요 할 테니까.

제니는 놀랍도록 잘 싸우고 있으나 승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천사, 천사.

전사는 역시 치천사지.

산달폰을 잡고도 아직 남아있던 카드 하나를 꺼내 사용한다.

죽 잡아 찢는 건 오랜만이군.

번쩍이며 내 모습이 변해간다.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아무리 그래도 전투 중에 종족을 바꾸는 것은 위험한 행위다.

신체가 재구성되며 발생하는 탈력감과 스킬 구성 변화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날개가 돋아나고 [용사] 스킬이 사라진다.

상체 갑옷이 딱히 날개를 감안한 형태로 만들어져있지 않기에 불편하다.

어쩔 수 없으니 끌러서 풀어버렸다.

세팅을 빠르게 다시 점검한다.

[용사]가 사라진 만큼 천사라는 종족의 종족값이 그 자리를 메운다.

그래서 스펙 자체의 변화는 크게 없다.

하지만 천사 특유의 마법저항력과 날개와 링이라는 신체 기관이 더 생겨나며, 어둠의 악마인 바알에 대응할 기본적인 빛속성 부여가 생긴다.

단순한 신체의 내구도 역시 더 상승하기 마련이다.

고위종족은 역시 좋군.

[파라켈수스, 루시. 제니가 잠깐 이탈할겁니다. 시간 좀 벌어주세요.]

[그러지.]

[드디어 뭘 하는군! 네 녀석!]

빨리! 급해!

[정언 명령 : 물리 금지]

[정언 명령 : 이동 금지]

바알의 행동이 멈추었다.

그러나 그 주변에 이번에는 다시 시간이 뒤틀리고 있다.

미아가 내 곁에 있기에 그걸 막아낼 수단은 없다.

10초보다 훨씬 빨리 풀릴 것이다.

사실 몇 초밖에 없다.

제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았고, 미아가 급하게 손짓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니가 소리를 가르며 날아들었다.

바로 앞에 멈춘 다음에.

[리더? 천사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되었어. 빨리 옷 벗어봐.]

[네?!]

미아가 갑옷을 탁탁 쳐서 벗겨낸다. 내의가 드러나고 그 안에 새겨진 술식도 보인다.

저런 형태로 한 거구나.

[옮기기만 하면 되게 만들어뒀어요. 그래서 약간 오래 걸렸지만.]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다. 우리 마법사는 정말 유능하다.

천사에게서 천사에게 세피로트의 연결을 이어붙이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다.

바알은 풀려났고 루시와 아서 사력을 다해 그것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에길을 이번엔 시간 벌이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 지시가 전해진 직후 에길이 곧바로 날았다.

치명타를 먹이지 않아도 좋다.

에길은 부담이 가신 듯 편안하게 묵룡을 휘감고 바알을 후려쳤다.

바알은 다시 휘청거렸고, 이번에는 정말로 크게 타격을 입은 듯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간을 몇 초 더 벌었다.

파티원들은 모두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내 말 대로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의사결정에 잡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제니는 책임에서 해방된 자 특유의 탈력에 몸을 맡기고, 라파엘의 불길이 내 몸속으로 옮겨졌다.

[잠시만, 이거 좀 빡센데.]

방금 다시 태어난 상태에서 곧바로 세피로트에 덜컥 앉아버렸다.

희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시간 더 필요해요?]

[그건 아니지.]

세피로트의 힘은 바벨의 자식이 가진 진짜 힘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격이 다른 위치로 올라간 기분이 든다.

나는 나헤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이런 전능감을 이겨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한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문득 들 지경이다.

아니, 만약에 매 회차의 내 디폴트값이 이런 거였으면 말이지.

틀림없이 미궁을 90년쯤 전에 박살내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라파엘의 무기는 마침 내게 있다.

그것이 타오른다.

그리고 천사된 입장에서 메타트론의 검 역시 하얗게 불타오른다.

보스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보스와 싸워야하는 기분.

바알은 몸을 일으키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제니를 찾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두들겨 맞고 쓰러지고 다쳤음에도 사실 저것의 체력은 절반도 깎이지 않았음이다.

절반은 무슨 에길이 약점에 꽂지 않고도 15% 정도는 날려버렸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60%는 고스란히 남아있었을 것이며, 그 시간동안 우리가 그대로 버텼다면 결국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렇게 구멍이 나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젠 아니지.]

바알을 향해 날아간다. 권능을 제어하는 법은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신을 해봐야하는 이유다.

태양을 수없이 띄워올리며 사막을 펼쳐낸다. 어둠에 잠긴 바알의 팔들이 서서히 지워진다.

출력을 아낄 필요가 없으니 증폭할 고민만 한다.

바알의 눈앞까지 도달하자 바알이 또 뭐냐는 눈빛이 되었다.

나는 그가 바랄 것 같은, 그리고 넘어올 수밖에 없는 말을 해주었다.

[정정당당하게 1대1로 뜨자!]

왕관을 쓴 거미는 그 말에 어이없어하는 대신 반색하며 웃었다.

나는 그에 호응하여 파티원들을 물러서게 했다.

[다들 멀리서 구경해! 너도 팔 다 집어넣어!]

바알은 정말 놀랍게도 진짜로 그렇게 했다.

단기 결전형 평타 캐릭터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이걸 왜 골랐는지.

엇비슷한 스펙에서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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