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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502화 (47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02화

메인 던전 - Lv.17500 왕관을 쓴 거미 [바알בַּעַל](13)

바알이 팔을 다 회수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미카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역시 때때로 다른 바벨의 자식들이 활용하는 힘의 사용 방식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검을 들고 태어난 이는 어떤 식으로건 그걸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바알은 궁리했고 발전해왔다.

어렵거나 힘든 일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송곳니를 타고 났으면 그것을 쓸줄은 알아야겠지.

그렇게 갈고닦아진 검술에 대해서는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확인할 방도 또한 없다.

그나마 메타트론이다.

같은 무기를 사용하며 비슷하게 전투한다.

그가 있을 때는 그에게 이겨보았던 적이 없었다.

방패를 어찌 뚫을지가 지대한 난적이었다.

그 천사는 이제 없다.

그럼 검을 맞댈 상대도 없다.

그리고 눈앞에 새로운 난적이 나타났다.

고양이 천사는 강했지만 충분히 강하진 않았다.

그 천사의 쌍검은 바알과도 흡사하게 휘둘러졌지만 그래도 팔의 수가 모자라서 밀리느라 정신이 없다.

* * *

* * *

기술이라고 할 만한 것은 뛰어났으나 그것에 자신감도 없다.

해야 하니까 한다는 느낌.

그건 투쟁의 화신인 바알에게 달갑지 않은 싸움이었다.

리더는 다르다.

이 유배자 리더는 어떻게 하였는진 몰라도 라파엘의 힘을 제 자신이 쥐고 나타났다.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 수천 년간 온존한 힘을 유감없이 개방중인 이 ‘왕관을 쓴 거미’에는 역부족일지라도.

세피로트에 앉아 기계신의 힘을 빌려 대적할만한 힘을 가지고 나타났다.

바알은 문득 자신이 가장 바라던 것이 이게 아니었는가 생각해본다.

메타트론은 사라졌고, 미카엘은 언제나 제 요새에 처박혀 있었다.

속 시원하게 싸워줄, 그리고 그러면서 검이라는 것에 대해 논의할 누군가가 없었다.

불현 듯 찾아온 깨달음이다. 스스로도 몰랐던 무의식의 속마음이다.

그래서 만족스러웠다.

소리는 치지 않았다.

팔을 거둬들인 이유는 전력을 다해야할 것 같아서.

상대가 일대일을 운운했지만 사실 그걸 지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비슷한 규모의 체급을 가진 검사가 눈앞에 있다.

불길의 날개를 두르고서 말이다.

사탄과의 싸움에도 이런 희열은 없었다. 그것은 짐승과도 같은 존재니까.

괴수대격전은 검술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저 힘을 겨루는 이야기.

반면 유배자들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바벨의 자식도 대괴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껏 무수한 위대함의 편린을 쓰러뜨려왔으며 앞으로 그럴 생각일 이 리더는 어떤 맛이 날까?

인간형일 때 맞서보지 못한 아쉬움이 싹 달아났다.

바알은 그야말로.

희열에 잠겼다.

제니는 몸에 후유증이 들어옴을 느꼈다. 낯선 힘이었고 그만큼 큰 힘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미아가 단칼에 정정했다.

“그건 너무 긴장해서 그래. 특별히 후유증이 있는 힘은 아니야.”

“그 그런가요?”

“제니는 항상 자기평가가 너무 낮아. 만약 다음회차가 있다면 랭커들은 무난하게 찜쪄먹을걸.”

그런가? 제니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저 먼 곳에 있는 거미를 상대로 일시적이나마 대적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역시 이런 일은 맞지 않다.

무섭고 두려운 일보다는 매일 아침 출근해서 투덜거리고 퇴근 후에는 곤히 잠드는 그런 삶이 최고다.

미궁에 오고 나서 정착했던 삶도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니는 분명히 파티에 아주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문득 그 사실을 느꼈다.

바알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몰아치고 있었으니까.

저것과 그대로 계속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 것이다.

제니는 조연이 좋다. 저 자리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리더 같은 사람이다.

적어도 제니는 아니다.

그렇지만 조연 또한 주인공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제니는 자신의 역할에 만족한다. 아니 오히려 이제야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불안은 있지만 그런 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서브 리더가 곧 곁으로 내려왔다.

“제니! 최고였어!”

“어, 지금 싸우는 건 리더 아닌가요?”

“오빠는 오빠니까! 하지만 제니는 제니지. 만약 이번에 제니가 아니었다면 바톤터치도 못했을 거고 그랬으면 진짜 전멸 위기였거든.”

그런가?

제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했다.

그런가?

진짜 그런가?

그런 걸로 해두기로 했다.

서브 리더가 그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는다.

“제니도 참 귀엽다니까.”

그리고 파티원들은 리더의 말을 철저하게 지켜 정말로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구경하라고 했으면 구경하면 되는 것이다. 별일 아니다.

스펙이란 것은 유배자의 가장 큰 약점이다.

공들여서 높은 스펙을 형성하더라도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

제 아무리 경험과 지식이 남더라도 날린 것은 날린 것이다.

그럼 그걸 다시 만들어야하며, 운빨 요소가 그득한 미궁 특성상 정밀하게 다시 만들 수도 없다.

내게는 특히 그랬다.

기초 스탯도 좋지 않으니 더욱 크게 와 닿는다.

매번 지랄 똥꼬쇼를 하며 왕국에서 하이랭커들과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털고 또 털고다닌 끝에 메인 던전에서 사망.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순탄한 진행을 하고 있으나 아무리 그래도 그 스펙에 대한 갈망은 오래 전부터 쌓여온 것이다.

내가 희우만큼의 스펙이 있었다면 어떨까?

아서만큼의 신체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면에서 보스급의 스펙을 부여하는 세피로트는 아주 눈부신 힘이다.

진작 이런 게 내게 있었더라면, 아니 이거 어떻게 가지고 못 가나? 그럼 다 날먹인데.

그렇게 생각할만큼 내겐 여유가 있었다.

언제나 30배 이상 차이나는 스펙의 격차를 기믹과 각종 수단으로 뭉개며 격파해왔다.

바알의 왕관이 약점이라고? 개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그렇게 따지면 인간은 전신이 약점이다.

천사나 악마도 마찬가지다.

포션이나 부활 스택 없이는 사지중 하나만 잃어도 목숨이 오락가락한다.

실제로 샘물의 지원을 못 받던 잠깐 동안 격렬한 전투 끝에 어떤 후유증을 겪었던가.

보스들은 자신들이 타고난 축복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이 깔보는 벌레 같은 유배자들이 너희들 앞에 서기까지 얼마나 악착같은 노력을 하는지 아는가.

메인 던전에서 스러져가는 많은 용자들이 왜 거기서 무릎을 꿇는가.

루시의 화신도 이 정도 힘은 아니다. 루시는 그래봐야 유배자 중에서 비견할 바가 없는 수준에 불과하다.

악룡 맥 선생님도 어마어마한 스펙이었으나 그래봐야 레벨 1만대 수준에 그친다.

레벨의 스펙 상승 효율은 숫자가 높아질수록 가파르게 떨어지며 그것이 바벨의 자식들 같은 것들과 유배자를 구분 짓는 벽이다.

지금 나는 잠깐이겠으나 그 벽을 넘어서있다.

라파엘이 앉아있던 자리의 힘, 기계신이 바벨의 자식의 본질을 흉내 내어 만들어낸 힘.

바알의 총량에 비하면 여전히 절반 이하로 약하지만 이거면 충분하다.

무수한 도전자들이 불합리하다며 갈구해왔던 순수한 힘 그 자체니까.

라파엘과 메타트론의 검이 불탄다.

바알은 거두어들인 무수한 팔을 제 몸으로 돌려놓고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누가 뭐라 말하지 않았음에도 곧바로 검격이 시작된다.

바알의 팔이 총 몇 개인지 아는가?

삼 백하고 서른 여덟 개다.

이걸 왜 아냐고 묻는다면 바알의 최종페이즈인 저 형태의 게임상 공격 횟수가 338이기 때문이라 말하겠다.

게임 시절에는 이렇게 다채로운 공략이 필요한 친구가 애초에 아니었다.

일정 이상의 스펙을 요구하는 스펙 수문장이다.

저 끔찍한 횟수의 공격을 버텨낼 수단이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보스.

그리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태양의 불길에 타오르는 검들은 더 이상 바알의 어둠에지지 않는다.

상성의 우위가 스펙의 격차를 더더욱 좁혀준다.

바알의 공격은 늘 그렇듯 일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고도로 단련된 야성적인 검술이 그런 착각을 일으킬 뿐이다.

심리의 사각을 파고드는 형태의 기술은 희우의 것과도 닮아있다.

흘리기에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받아낼 수 있다.

첫 번째 일격을 오른팔로 쳐내며 이어지는 그 다음 공격에 맞댄다. 한순간에 그 다음, 그리고 또 다음의 공격이 쏟아지지만 각도만 바꾸어 쳐내고 흘리고 받아낸다.

본디 같았으면 이 정도 충돌의 여파만으로도 자세 제어에 어려움이 생기겠으나 세피로트의 힘은 결코 나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추진체와도 같은 태양과 바람의 권능이 날개처럼 분사되며 바알의 무수한 어둠을 베어낸다.

충돌하고 충돌하고 다시 충돌했다.

순수하게 힘대힘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검사로서의 꼼수와 기술을 다 동원하고 있다.

그래야지.

338개의 검을 동시에 상대한다. 이건 몇 대 일인가?

바닥 대신 내 앞에, 내 주변에 펼쳐진 검의 숲 속에서, 그리고 어둠의 숲속에서 태양은 찬연하게 빛난다.

나는 전진한다.

그다지 조금씩도 아니다.

거침 없이 수없는 검격을 쳐내며 전진한다.

바알은 여전히 웃고 있다.

일순 시간의 흐름이 이상해진다.

저쪽 역시 모든 수를 동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버프를 가동한다.

순간적인 펌핑은 언제나 유배자의 생명줄이다.

스펙이 더 극대화되고 공감각 속에서 흐트러진 시간의 끈마저 부여잡는다.

급가속하거나 급격히 느려지고, 혹은 궤도마저 이상하게 꺾이는 무수한 검격을 오로지 양 손의 검만으로 대응해낸다.

불길이 점차 어둠을 싸먹어가고 있다.

바알은 아직도 웃고 있다.

휘두르고 또 휘두른다.

거대한 검은 튕겨져 나오더라도 질량 탓에 멀리 가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이 비틀리자 바알의 검세가 더욱 촘촘해졌다.

이것은 근접공격의 탄막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아래에서 노리고 솟구치는 걷을 발로 걷어차며 흘린다.

그 추진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다시 촘촘한 찌르기의 향연이 나를 덮친다.

마주 찌르며 그것을 하나하나 상쇄해간다.

바알은 빠르지만 나는 더욱 빠르다.

빠름이란 단순히 팔의 움직이는 속도가 아니다. 최적화된 경로와 절제된 움직임.

그 모든 것이 빠름을 결정한다.

바알은 정말로 빠르다. 공격횟수만 따져도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내가 휘두르는 한 두 번에 수십 수백의 검격이 무력화된다.

거대한 크기도 이젠 방해였다.

바알은 자신이 조금씩 물러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아직도 웃고 있다.

어둠이 내 주위에 도사리기 시작했다.

짙고 검은 원소의 향연이 검격과 함께 내 주변을 감싸며 휘몰아친다.

그러나 권능의 사용법마저도 나는 이 거미보다 더 오래 연구했다.

제한적으로나마 손에 넣을 경우에 지나치게 요긴한 힘이니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지극히 마법적인 요령으로 태양의 노심이 만들어진다.

권능은 마력의 다른 이름인 원소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라파엘은 애초에 바람과 태양의 천사다.

바람은 흐름이요 태양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휘몰아치는 흐름 속에 태양을 머금은 바람이 스며든다. 더 이상 내 주변을 침범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물리적인 공방은 여전히 치열했다.

바알은 자신의 틈새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그리고 보완하고 있다.

내가 뭔가를 한다면 그것을 곧바로 배워나가고 있다.

바알은 게임상으로도 스펙이 점점 상승하는 형태로 이런 기믹을 구현하고 있다.

비교적 뒤틀려버린 이번 테마의 진행에서 거의 유일하게 순정으로 남아있으며, 그래도 될만큼 순수한 강함을 타고난 존재다.

미카엘이 바알과 가능한 싸워주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겠지.

그는 스스로를 범재라고 여겼다.

바알은 틀림없는 천재다.

차라리 유배자였다면 더욱 높은 곳에 도달했을지도 모를 그런 괴물.

아직도 웃고 있는 거미가 입을 연다.

숨 가쁜 와중에도 태연하고도 흥미롭다는 듯이.

[어째서 내 검은 네게 닿지 않는 것이지?]

[그건 네가 힘으로만 검을 휘두르기 때문이지.]

[내가……?]

천천히 물러선다곤 해도 바알은 거대하다. 그리고 그 천천히의 개념마저도 일반적인 전투와는 달랐다.

바알은 어느새 자신이 가장자리에 몰렸음을 깨달았다.

제 영역의, 그 광대한 어둠의 숲의 끄트머리에 도달하여 이제 더 발을 내딛으면 바깥으로 나갈 위치인 것이다.

바알은 주저없이 그렇게 했다.

넓게 펼쳐진 영역이 해체되어간다.

거미는 맨몸으로 태양에 맞서고 있었다.

검이 하나 날아갔다.

당황도 있었을 것이며 미숙도 있었을 것이다.

공격을 허용하여 검을 쥔 팔의 끄트머리 손가락이 베여 날아간 탓이다.

하나가 무너지면 다음도 순식간이다.

바알의 검술은 과연 검술이라 부를만은 하다.

지극히 야성으로, 본인의 천재성으로만 이루어진 효율적인 검의 사용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팔이 워낙 많고 힘이 워낙 강하니까 이 정도면 무엇을 상대로도 충분했으리라.

기껏해야 최근의 미카엘이 가장 의문을 크게 주는 난적이었을 터.

그렇게 수 만 년간 정교하게 다듬어져온 검을 움직이는 방법은 검이 날아가기 시작하며 조금씩 파탄이 난다.

검이 하나가 더 날았다.

멀리 날아가 바닥에 꽂힌다.

다시 난다.

또, 그리고 또다시.

300이 넘던 검은 이제 250대로 줄어든다.

바알은 아직도 웃고 있다.

휘두르는 검망이 느슨해지자 거미는 더욱 노력한다.

새롭게 배워가고 있는 내 움직임을 따라하며 검격의 호흡과 페이크, 그리고 순간적으로 비틀어 넣는 필살기성의 동작을 섞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도 바알의 검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까와는 반대로 바닥에 꽂힌 검이 숲을 이루기 시작했다.

[흐흐흐. 많이 배우고 있다. 유배자. 왜 진작 너같은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구면이다.

바알을 잡은 적도 있다.

홀몸은 아니었고 주로 미카엘이나 메타트론, 혹은 나헤마와 손을 잡은 상태였지만 말이다.

검으로 이루어진 숲이 점점 더 무성해져간다.

바알이 쥔 검은 이제 200 아래로 내려갔다.

손가락을 잃고 비었거나, 팔이 통째로 날아가고 불에 지져진 비율이 점점 늘어난다.

150이 되었다.

바알은 아직도 웃고 있다.

100이 되었다.

바알은 아직도 웃고 있다.

검의 수가 줄어들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바알의 검격은 더욱 더 정교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맞서서 대응도 해내고 있다.

[그렇구나. 검이란 것은 여러 개를 든다고 반드시 좋은 게 아니군.]

그걸 이제 알았냐고 말하는 대신 더 찌르고 베는 것에 열중한다.

이제 수십으로 줄어들었다.

바알은 새로운 동작을 실험하고 내 공격에 대응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듯 했다.

[정말로, 너 같은 유배자를 지금 만난 것이 너무 후회스럽군. 그렇게 긴 삶을 살고도 말이야.]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바알의 편을 들어 미카엘을 토벌한 적은 없었다.

바알은 싸움만 있다면 뭐든 좋은 녀석이기에 밑으로 들어가기엔 너무나도 까다로운 탓이다.

어차피 그렇게 편들어서 살려둬 봐야 침공에서 다시 만날 적이기도 하고 말이지.

온 사방을 검이 둘러 싸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의 검의 숲이다.

사실, 이제는 숲이라기보다는 무덤처럼 보였다.

바알은 도리어 검이 둘만 남았을 때, 가장 오래 버텼다.

그리고 그 둘은 동시에 날아갔다.

팔이 통째로 절단 당한다. 그 끝에 달려있던 검을 쥔 손은 힘을 잃고 검을 떨어트린다.

날아가 바닥에 꽂히지 않았다.

그대로 미끄러져 거미 다리 옆으로 흘러내린다.

쿵하고 마지막 무기가 주인을 잃었다.

바알은 아직도 웃고 있다.

[내 껍데기를 죽일 건가?]

[생각해보고.]

[부디 살려다오. 두 팔로 검을 들어보고 싶은데.]

[생각해보지.]

바알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여전히 웃고 있다. 그저 생각에 잠긴 듯 보일 뿐이다.

[내가 휘두르던 건 검도 아니었군 그래. 난 대체 뭘 위해 노력했던 거지.]

[너무 강하니 그걸로 충분했던 거겠지.]

[그런가. 그럼 약해져봐야겠군.]

아무리 그래도 왕관을 내밀지는 않았다.

나는 태양을 만들어 띄워 올렸고, 그대로 거미의 왕관을 향해 내려쳤다.

바알은 아직도 웃고 있었다.

[Fragment Of Greatness Slain]

[편린이 당신들에게 깃듭니다.]

주변에 묘비처럼 세워진 검들과 함께 거미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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