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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509화 (48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09화

메인 던전 - Lv.20000 [미카엘מיכאל](9)

순식간에 도달한 세계의 경계 지역.

미카엘은 당황하는 대신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방식을 포기했다.

더 정확하게는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수준에서 인간과 인간의 방식으로 싸우길 포기한 것이다.

같은 형태일지라도 지금 그가 지닌 단순한 스펙은 그야말로 우주적이다.

개미의 몸에 인간의 힘이 모조리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어떤 영웅적 개미도 그것을 이길 수는 없다.

그것이 신이다.

개미의 신.

대적할 수 없는 무언가.

같은 방식으로 같은 형태를 취하고 감히 대항할 수 없는 힘을 휘두르는 개미의 신이다.

미카엘은 자신의 본질을 버리고 세피로트가 만든 껍데기에 깃들었다.

그것을 바랐기에 그리했다.

그리고 그 스스로는 이에 대항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공략의 대상인 보스몬스터라기보다는 더없이 강력한 유배자와 비슷할 터.

* * *

* * *

* * *

* * *

바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는 보았다.

그 거미는 마지막 순간까지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용법이 투박했다.

미카엘은 그렇지는 않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같은 힘을 찍어 누르듯이 휘두를 수 있다.

생각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검격이 행해진다.

이것은 이미 벤다기보다는 벤다는 개념을 실체화하는 것에 더 가깝다.

의식과 함께 그곳은 베인다.

그러나 유배자는 그것에 대응한다.

베일 곳에 이미 검이 가있으며 찔릴 곳에 이미 방어가 세워져있다.

스펙으로는 동등하게 대응해내고 있다.

그러나 상대의 꼴은 말이 아니다.

타오른다.

문자 그대로 그 삶을 불태워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라파엘의 세피로트는 결국 그 힘을 모사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을 짜내고 또 짜내어, 지금껏 단련한 강인한 육신, 그리고 삶의 궤적이나 진배없는 마인드맵을 불사른다.

부활 스택이 몇 개인가? 유배자들은 그것을 얼마나 아끼는가?

죽음에 비교적 무딘 유배자들은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가진게 적은 자들.

신에 대적할 정도의 힘을 지닌 자들에게 그것이 아깝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경탄.

미카엘은 이 유배자의 생각을 잘 모른다.

그러니 이 모든 희생이 단지 미궁에 도전하고자 함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눈부시다. 아름답다.

문득 미카엘은 자신이 왜 유배자의 방식을, 검술을, 마법을 익혀왔는가 떠올렸다.

그는 그 삶의 방식을 닮고 싶었다.

목적이 있고 그것을 위해 타오르는 삶을, 그리고 그 끝에 누군가의 기억 속에 수놓아지는 인생을.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바벨의 자식에게는 있을 수 없는 개념이기에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미카엘은 그래서 세피로트가 만든 껍데기에 자신을 우겨넣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철저하게 인간이 되도록 말이다.

먼 옛날 어느 누군가에게 들었다.

신은 자신을 본따 인간을 만들었으며, 천사는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사자로서 날개 달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미궁이 먼저인가, 유배자들이 끌려왔다는 세계가 먼저인가.

미카엘은 인간에게서 태어났는가. 인간이 미카엘에게서 태어났는가.

어찌되었건 그 둘은 생각보다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카엘의 뚱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중을 늦출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집중의 끈을 놓치지 않았기에 그 표정마저 보이는 것이다.

상대가 전력을 다하고 있냐면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냐고 한다면 그 또한 아니다.

나는 조금씩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미카엘은 이 모습이 처음이다.

본래의 그 거대함을 세피로트의 껍데기 속에 구겨 넣고 이렇게 나타난 것이 처음이다.

기억하고 있다.

바알과 싸울 때, 천상의 군주로서 도시를 방어할 때 그는 저 모습으로 싸우지 않았다.

그러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상대 세 악마들은 모두 힘을 아낄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랬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복잡한 일일수록 평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

미카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 본모습을 내다버리고 인간의 모습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도 모험이었을 것이다.

바벨의 자식이 인간 흉내라고?

세피로트는 사실 그 강대한 힘을 억제하기 위한 족쇄일 뿐이다.

세상을 좀 더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워둔 구속장비.

그 안에 제 모든 것을 집어 넣는게 쉽고 간단할 리가 없다.

즉, 미카엘은 이 모습에 익숙하지 않다.

불길이 타오른다.

팔이 터져나간다.

실제로 박살나진 않았다.

그냥 내부에서 날뛰던 힘이 지나치게 커져 파열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근육과 뼈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

속이 다져지고 가루가 되더라도 목숨을 가능한 더 오래, 몇 초라도 더 오래 유지시키는 선에서 움직인다.

몸을 가득 채운 기계신의 힘은 그것을 물리적 에너지로 변환시키고도 남아 그 위에 태양을 머금은 바람으로 덮었다.

빛나는 미카엘의 검과 부딪힐 때마다 깨져나가고 부서진다.

그래도 무기 또한 어떤 바벨의 자식들이 남긴 편린들.

강도로는 지지 않아 맞설 수 있다.

미카엘의 검술은 정교하고 균형 잡혀있다.

달리 말하면 파괴적이지는 않다.

그렇기에 버텨진다.

부딪히고, 튕기고, 흘리고, 피하고.

번쩍이는 섬광처럼 수없이 이어지는 공격의 사이에서 활로를 찾는다.

그리고 때때로는 틈새로 찔러 넣는다.

그것이 미카엘의 몸에 닿지는 못하더라도 다음번의 틈을 벌리고.

그가 보는 시야 사이를 파고들고.

사각을 만들어내고.

조금씩 설계대로, 그 단단한 검술과 힘 사이에 틈을 벌려간다.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은 아니었으나, 함께 논의한 저런 안정적인 검술의 틈새는 유효하다.

그리고 문득 피어나듯이 보이는 허점이 있었다.

내가 어찌 의식하기도 전에 나는 그곳을 찌르고 있었다.

피라기보다는 빛에 가까운 것이 살짝 흐른다.

미카엘은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

당황은 보이지 않는다. 내 모습과 동작을 새기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기분이 나빠졌다.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 보기 좀 그렇단건가.

숨이 막혀온다.

입에서 공기 대신 불길이 쏟아진다.

화염이 점차 몸을 옥죄어 왔다.

그러면서도 남은 목숨을 마저 불태운다.

한 번 더 죽을 때가 다가온다.

공격까지 허용해버리면 더 빨리 죽는다.

죽기 직전에는 어차피 회복되니 더 큰 걸 때려 넣을 수 있다.

미카엘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유배자 중에서도 이렇게까지 독종은 잘 없겠지.

있는 대로 그러모아 다시 틈을 만들기 위한 빌드업을 개시한다.

태양과 바람이 내 몸을 찢어놓고, 그만큼의 출력을 미카엘에게 들이부었다.

상대의 자세가 크게 무너지고, 나는 한 번 더 죽었다.

유리는 날고 있다.

미카엘과의 싸움이 시작되면 거기까지 날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애초에 유리는 잘 날지 못한다. 그리 빠르지도 않다.

기천사치고는 느린 편일 것이다.

아주 멀고 높은 곳에서 쉴 새 없이 세상이 울리고 있다.

끔찍하고도 처절한 싸움을 말하는 듯 웅웅 진동하는 것이다.

유리는 저런게 싫었다. 선택도 싫었다. 사실 외면하고 도망친 것이다.

그래도 이제 누군가가 그 책임을 대신 지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정도는 해야겠지.

약속은 지켜야한다고 노인들에게 배웠다.

어린 천사인 유리는 언제까지나 어린 천사로 있을 수 있었다.

그것도 이제 끝일지도 모르겠다.

비행하고 다시 비행하고, 기천사이니만큼 어떻게 음속을 넘어 도달한다.

마법사를 찾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쭈욱 당겨지듯 공간이 접히며 어느 새 그 곁에 있다.

유리는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마지막으로 날아본 것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지금 상황이 엄청 꼬여서 시간이 더 필요할거야. 일단 그 자세 취해줄래?”

“알겠어요.”

하늘을 올려다보기 좋은 자세였다.

유리는 고개를 들었다. 날아온 거리에 비하면 가깝지만 그래도 아주 먼 곳.

그곳에서 여러 가지 힘들이 춤추며 어둠에 잠긴 심연의 바깥을 수놓고 있다.

유리는 미카엘이 어떤 천사였는지 떠올려 보려고 했다.

스킬로 마법을 구사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마법사들 내지 유배자 중에서도 상위권인 마법사들 대부분에게 무시당할만한 요인이다.

규율의 신은 그것을 단호하게 부정할 수 있는 반례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법 그 자체나 이론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전투에 활용하는가. 그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발동은 더 편리한 것으로 대체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규율의 신은 유틸리티의 마법사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마법사는 딜러다.

그리고 순수한 마법사로서는 그것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고 있다.

마법으로 강력한 딜링을 넣겠다면, 어떤 식으로건 스킬적 보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격전지에 아서와 거의 동시에 도달한 대천사는 그대로 손을 앞으로 펼치며 복합적으로 구현된 스킬쇼를 펼쳤다.

유니크 스킬 [구속 제어 술식]

유니크 액티브 [카나리아의 새장]

이름은 이래도, 광대한 범위를 스킬적으로 장악하기에는 최적이다.

복잡한 술식이나 이론이 필요하지 않는 미궁의 은혜.

새하얀 빛기둥들이 세로로 내리꽂힌다.

천상의 군주는 너무 빨라서 도저히 이걸로 가둘 수는 없겠으나 이 새장은 거의 파괴불능에 가까운 강도를 자랑한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좁혀지며 싸움의 한 가운데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보스가 빠져나오려고 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스킬적 마법들이 공간을 접었다 늘리며 그것을 막았다.

상대하고 있던 유배자도, 꼴보기 싫긴 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인정하는 골치 아픈 자도 그에 호응한다.

어떻게든 밀쳐내고 자신은 그 새장에서 탈출했다.

유니크 스킬 [아르칸의 마리오네트]

유니크 액티브 [구속 제어]

유니크 스킬 [이카로스의 방황]

유니크 액티브 [태양의 곁]

마법사로서, 스킬 딜러로서의 세팅을 갖추고 있는 규율의 신은 당연히 모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끌어 모아 상대의 위치를 제약하는 스킬들을 그 마인드맵에 새겨 넣었다.

이것만큼은 저 유배자마저도 고평가했던 세팅이다.

가장 게임처럼 미궁을 바라보는 신이라며.

그리고 미궁의 보정이 범벅이 된 온갖 제약 속에 미카엘이 잠시나마 묶인 동안 리더가 곁으로 다가왔다.

처참한 몰골이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야 병을 깨부수며 제 몸에 뿌린다.

불길 그 자체던 잿더미가 인간의 형상으로 되돌아왔다.

[확실히 파라켈수스도 그렇고, 그냥 그렇게 되어 있는 미궁의 스킬들 일부는 오히려 스펙이 높은 적들에게 더 효과적이지.]

잠시나마 가둘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공격을 막을 수는 없다.

빛이 온 사방으로 쏟아져내려왔다.

범벅이 될 정도로.

아서가 날개를 감싸고 달려왔다.

검은 어둠이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와 사방을 덮어 막아낸다.

빛과 어둠은 서로 상극, 마주치면 상쇄되기도 한다.

아서가 말한다.

[이제 어떡할 생각인가.]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스펙 맞추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규율의 신이 아니라면 묶어둘 수도 없겠죠.]

[드라간이 오고 있긴 하네.]

때맞춰 희우도 도착한다.

[우리엘은?]

[우선 뭐라도 하려고 왔어요!]

[좋아, 그럼 죽지만 마.]

리더가 상황을 정리한다.

[블랑쉐가 가브리엘을 찾을 거고, 미아가 우리엘을 가져오겠군.]

빛이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사방이 초토화되는 중이다. 검기처럼 날려대는 검 사이에는 때때로 마법조차 섞여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 두려운 점이다.

규율의 신이 인상을 쓴다.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퍼붓고도 곧 풀려날 것 같은데.]

[좋아. 그럼 그냥 여기 있는 멤버로 일단 시간을 끈다. 직접 검을 맞대는 건 나와 아서 뿐이야. 나머지는 한두 번 죽을 각오로 시선 끌어줘. 그러면 버텨질 거야.]

급조된 보스 패턴, 급조된 보스 공략, 급조된 파티플레이다.

드라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대한 모습을 보면 이미 [원초의 힘]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중인 것 같다.

성향상 분명 끔찍한 일격을 준비해오고 있겠지.

어차피 에길도 달려오고 있다.

이미 그의 쌍도끼도 묵룡을 머금고 있다.

[저 두 사람이 와서 후려칠 시간만 버는 거야.]

[그거 하는데도 스택 소모할 각오가 필요해요?]

[그 정도야. 나도 두 번 썼어.]

[안…… 죽어요?]

[아직 하나 남았다.]

리더가 말한다.

[잘 들어. 절대 그냥 자기 힘만으로 맞대어서도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죽어.]

[평타가 즉사기?]

[전사 주제에.]

듣고 있던 규율의 신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대꾸한다.

[그럼 그냥 끝장이군. 얼른 도망치는 게 맞지 않나?]

늦었음을 알고 하는 말이다.

리더가 말했다.

[그러니까 파티 플레이를 하는 거죠.]

[전투 중에?]

[그게 되도록 파티를 모았으니까 말이네.]

아서가 일축했다.

1+1은 2가 아니다.

리더가 조금 더 희망찬 말을 했다.

[쟤 저거 처음 해. 힘 제대로 제어 못하고 있어. 좀 더 틈이 있단 말이지.]

혼자서도 그 완벽에 가깝던 검술의 틈새를 벌려서 공격을 구겨 넣었다.

무엇이 이유건 흔들리고 있긴 하단 것이다.

스펙이 너무 높아졌을 뿐이다.

블랑쉐는 마침내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던 잔해를 발견했다.

기계무덤에 있던 것과 흡사한 양식들은 사방에 뿌려져있었고 개중에서도 가장 낯익은 잔해였다.

“죽었나?”

아예 그냥 사격으로 파내어버린다. 어차피 껍데기여도 천사인 가브리엘이 이 정도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크레이터는 여러 개 만들었다.

포격과도 같은 사격에 땅이 패이고 조각들이 솟구친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깃털이 보였다.

“과연.”

죽은 듯이 늘어져있지만 눈을 뜨고 힘없이 여길 보고 있는 여성 천사였다.

얼른 데려가야 한다.

그대로 멱살을 틀어쥐고 날개를 펼쳤다.

연속적인 공간이동이 수없이 이루어진다. 가브리엘은 경기만을 일으키며 떨고 있었다.

세피로트의 자리에서 미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유리는 도착해있다.

“우리엘이 되야 할 그 녀석은?”

“급하게 가있어요.”

“그럼 우리가 이송해야겠군.”

“그 후에 연결만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가브리엘을 본 라파엘의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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