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511화
메인 던전 – Lv.20000 [미카엘מיכאל](11)
미카엘은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을 휘두른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저 유배자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틴다.
죽지 못해 버티는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건 버텨낸다.
최선의 최선의 효율을 거듭한 움직임과 스킬, 그리고 목숨마저 내다버리는 결사적인 배분.
무엇이 저들을 이토록 클리어에 집착하도록 만드는가?
솔직히 말해서 리프트를 통해 왕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그냥 지내면 되지 않은가?
미아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목표함이라.
그것이 그리도 중요한가?
그리고 상대편의 기천사에게 새로운 힘이 깃들어 있음이 보였다.
그가 마련한 자리였다.
본디 세피로트에는 없는 천사의 이름, 우리엘.
머리가 서늘하게 식어간다.
유리가 죽었나?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살아 있으니 그 힘이 이용되는 것이다.
* * *
기계신의 신좌를 조작하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니엘이 만든 기이한 시너지에는 그만이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메타트론도 생각했고 모두가 그것에 대해 고민했다.
강력한 전력이니까.
처음에는 단지 그것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리라는 완성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인 공을 생각하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
끝내는 메타트론을 따라 도망치기까지 하지 않았나.
메타트론이 빼돌린 것이긴 하겠으나 자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음은 안다.
유리는 자신을 닮게 만든 천사다.
그러니 공허했다.
또 다른 자신을 관찰하다보면 천상의 군주로서가 아니라 미카엘이라는 이름의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쪽에 협력하고 있나.”
역시 같지는 않은가.
그였다면 아주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미카엘 자신에게 붙었으리라.
그런데도 저쪽에 붙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유리는 뭔가 답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미카엘은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비행을 하는데 조금 위화감이 느껴졌다.
날개 한쪽이 없다.
어차피 여덟 장이니 상관은 없으나 균형이 맞지 않다.
재생해야 할 것 같음에도 그러지 않는다.
미카엘은 곧 원인을 깨달았다.
그렇게 뜯겨 나가 생긴 결손은 그대로 힘의 결손이 된다.
이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의 본모습이니까.
그러므로 육신은 그대로 힘이다.
“생각지도 못한 약점인데.”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란다.
미카엘은 날개를 펼치고, 입자화되었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유배자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것은 가브리엘의 섬광.
눈부신 달빛과 물결들이 사방을 포위한다.
가소롭기 짝이 없다. 가브리엘이 약한 존재는 아니었으나, 힘을 제대로 다루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 힘의 주체가 누군지를 깨달았다.
“이런.”
미카엘은 그대로 어딘가로 빠져들었다.
물이 고인 달빛의 땅이다. 찰랑찰랑한 물길이 보인다.
사방에서 빛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공격이어야 하겠으나 결국은 빛, 빛의 천사인 미카엘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다.
그저 몸으로 때우며 빠져나갈 준비를 한다.
이미 한 번 겪었던 것이다.
영역 자체를 압축하여 공간마법처럼 다루는 것.
저 마법사를 처음에 보았을 때, 이것이 무언지 물었던 이유다.
검 끝에 그걸 담아 휘두르니 정말 끔찍하게 강력한 화력이 나왔지.
그걸 만든 것은 저 마법사니 대응할 수단이 생겼을까?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페이즈가 다르다.
미카엘은 심호흡을 한 후에 검을 양손으로 들었다.
한번 해보았다. 요령은 조금이나마 몸에 익었다.
처음 당했을 때는 정신이 없었으나 이젠 가능하다.
출력도 다르다. 그 덕에 익숙하지 않아 지금도 적응을 하고 있는 기분이지만 말이다.
신체의 균형이나 힘의 감각이 묘하게 어긋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저 유배자들은 집요하게 그 점을 노리고 있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천상의 군주는 그대로 크게 내려쳤다.
절도 있는 동작 끝에서 찬란한 빛의 검이 피어나온다.
그대로 공간을 찢어발기고, 유배자들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입자화했다.
자신도 이 속력만큼은 제대로 제어할 수 없다.
포위 중이던 유배자들 사이를 그대로 빛이 되어 통과하려고 했다.
벽이 가로막았다.
뚫어보려고 했다.
뚫리긴 한다. 그러나 견고한 암벽은 충분히 그를 저지했다.
빛은 대지를 투과할 수는 없다.
누구의 힘인지 안다. 그가 만든 새로운 번외 세피로트의 속성이 대지다.
우리엘의 잿빛을 두른 기천사가 보인다. 그 자리에 앉은 탓인지 순간 유리와 겹쳐 보였다.
공격이 빗발친다.
거대한 망치도, 불타는 작열의 검도, 입자화한 그와 비슷한 속도로 휘둘러지는 괴이한 도끼도 말이다.
때때로는 사격이 날아든다. 도무지 뭔지 알 수 없는 무형의 충격파, 거기에 아주 강하진 않아도 권능의 방어를 무시하고 피해를 누적하고 있다.
이건 곤란하다. 피해를 입으면 입는 그대로 약화된다.
미카엘은 철저하게 방어로 일관했다.
어차피 방어를 위해 하나하나 쳐내는 것만으로도 저들에게는 강력한 공격이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란 그런 것이다.
정신없는 연격 사이에 날개로 공격을 막는 빈도를 늘려가기 시작한다.
천사의 날개는 중요한 도구이자 무기라고 하던가.
검에 자유가 생긴 만큼 공격의 자유도 생긴다.
여러 스킬이 그를 방해하고 때때로는 묶이기도 하였다.
날개 한 장을 더 잃었다.
여섯 장이 남았다.
그래도 전진한다.
우직하게, 지난 수만 년간 그래왔듯이 차근차근 나아간다.
유배자들은 여러 번 죽었다.
목숨을 탄환으로 삼는 정신 나간 전법은 화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생에 가치를 찾는다면 그것을 연료삼아 발생하는 에너지에서 찾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헤쳐 나간다.
날개를 한 장 더 잃는다.
다섯 장이 남았다.
날개로 방어를 하기 시작하자 점점 날개의 손상이 커진다.
어쩌며 천사의 신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인데도 말이다.
회심의 일격을 우리엘의 링에 막혔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생각해 보면 천사를 오래 했던 유배자들은 저런 방어를 취하기도 했지.
미카엘은 따라해 볼까 생각하다가 포기했다.
그가 섵불리 흉내내다가는 링 대신 머리가 쪼개지리라.
차근차근, 늘 그렇듯이 전진한다.
그리고 상상도 해보지 못한 연계 공격이 들어왔다.
사실 거대한 트롤이 그를 쥐어서 공격으로 주먹과 함께 내던지는 것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연계였다.
그래서 당했었지.
이번에는 천사인 마법사 하나를 미끼로 내어주고 그가 부활하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동료의 죽음이 우발적인 것이 아닌 계획이라는 점이 어이가 없다.
죽음의 무게는 잘 모른다. 바벨의 자식들은 다 그럴 것이다.
그러니 도리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형식이다.
날개를 한 장 더 잃는다.
네 장이 남았다.
그렇게 차례로 목숨을 내던진다.
미카엘은 끊임없이 갉아 먹혔다.
포션 병으로 공격을 막는 것은 그냥 어이가 없었다.
과연, 저건 파괴 불능한 오브젝트였지. 그러니 그렇게 활용할 만도 하군.
일찍이 유배자를 배척했던 왕국이기에 최정상급 유배자는 그가 관심을 가졌을 때는 이미 없었다.
기껏해야 솔로몬이나 나헤마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특별히 미카엘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병으로 막은 것은 리더였다.
그 틈 때문에 공격을 더 허용했다.
이미 너덜너덜하던 날개 한 장이 더 떨어진다.
세 장이 남았다.
붉은 증기를 내뿜는 기천사와 제 목숨을 다시 불태우며 달려드는 리더를 마주한다.
그리고 어둠과 빛을 함께 휘두르는 아서왕도 본다.
그 순간만큼은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미카엘은 자신이 결코 저런 영역까지는 도달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방식이 아닌 바벨의 자식다운 힘으로 찍어 누른다.
날개 한 장을 더 잃는다.
이제 가운데의 두 장이 남았다.
미카엘은 신체결손으로 인해 약화된 힘이 생각보다는 크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제 유배자들은 동원할 여력이 없다.
저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문득 들려왔다.
[권능 준비해. 되돌린다.]
[……네.]
아직도 무언가가 더 남았나?
미카엘은 피로한 정신을 일으켜 세우며 검을 쥔 손을 더 단단히 한다.
한숨 같은 심호흡을 들이킨다.
모든 수단이 다한다면 마지막으로 물을 것이다. 이 세계에 남을 생각이 없냐고.
그리고 자신과 함께 이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볼 생각은 없냐고.
하지만 그러려면 공략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미카엘도 안다. 들을 리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들은 곁에 두어보고 싶다.
그에게 없던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끝내 불가능하다면 모두 처리하고 유리를 데려와야 한다.
다시 세상을 재건하고 유리에게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물으리라.
미카엘은 검을 치켜들었다.
상대는 체념한 것 같으면서도 체념하지 않은 것 같은 기이한 태도였다.
마치 기회가 더 있다는 듯이.
왜 무언가 더 하지 않지?
그냥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나.
그 위화감이 멈칫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언가 느꼈다.
[그 추악한 모습은 무엇이냐. 미카엘.]
빛과 어둠이 서린다.
그의 빛과는 다르다. 뒤엉킨 명암이 세상을 기이하게 비춘다.
[사탄…….]
미카엘은 고개를 들었다.
이것도 혹시 이 유배자들의 계략인가?
지금 시점에서 사탄이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면 이 천사였던 대악마는 살아 있음에도 보스 러시의 일부로서 등장하지 않았다.
미카엘은 판단한다.
맵 기믹.
어떤 형식인지는 모른다. 그를 공략하기 위한 기믹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짧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죽어라.]
그러면 될 뿐이다.
사탄을 제거한다면 정말로 저 파티의 모든 밑천이 드러나는 것이다.
미카엘은 다시 한숨 같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사탄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세상이 박살 난 것도 네 짓인가?]
미카엘은 굳이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격전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이렇게 공략하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판단을 내렸다.
그럼 다시 한다.
나는 희우에게 가져가야 할 정보에 대해서 브리핑 중이었다.
첫 메인 던전에서 벌써 이렇게 시간신의 신앙을 크게 소모하는 것은 뼈아프지만, 살아남는다면 다음은 있다.
정 안 된다면 1년씩 더 준비하고 재도전해도 좋다.
예상외의 문제는 많았다.
미아의 체력도 문제였으며, 아서의 마법도 문제였다.
에길이 인간이 아닌 종족에 생각보다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또 보완할 점은 차고 넘친다.
이 시간선은 버린다.
우리는 졌다.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사탄이 나타났다.
미카엘은 그것과 싸우기 시작했다.
문득, 영감이 번뜩였다.
[사탄이 미카엘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죠.]
[그럼 저건 왜 등장한 거지? 왜 존재하는 거지?]
[어……? 그러게요?]
사탄의 설정에 대해 아는 것을 떠올려 본다.
저건 보스로 나오지 않는다. 그냥 컷씬에서만 등장하는 느낌으로 ‘바알이 약화되었습니다.’ 하는 이벤트 스크립트에 불과하던 존재다.
내가 패턴조차 전혀 모르며 그 힘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르는 존재.
그리고 어쨌건 설정상으로는 굉장히 강력한 악마일 것이다.
[기근은 사탄의 심복이야…….]
[어, 물론 그렇겠죠?]
[그걸로 끝이 아니야. 코인 토스가 지옥의 성채여서 그쪽 스타트를 하면 기근이 메인 퀘스트 NPC란 말이야.]
희우가 나중에 듣겠다고 한 가지 않은 루트의 설정들이다.
[묵시록의 사기사를 모두 모으게 되지. 그리고 그 녀석들의 목적도 사탄의 부활이야. 사탄의 가장 충실한 권속들이니까.]
미아가 무언가 깨달은 듯이 눈을 크게 뜬다.
[혹시 기근을 단말기로 쓸 수 있나요?]
[가능할 거야. 그냥 충실한 권속 수준이 아니니까.]
사탄은 아직도 세피로트에 앉아 있는 존재다.
당연히 사탄의 자리도 있다.
희우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물었다.
[사탄은 설정상으로 바알도 못 이기는 거 아니에요?]
[부활 직후에는 그렇지. 저건 빛과 어둠의 악마라고.]
천사였던 적이 있으며 이제는 타락하여 악마가 된 이례적인 존재.
설정상으로만 등장하는 많은 강자들이 그렇듯이 사탄도 설정만 보면 더럽게 강력하다.
온전했다면 이벤트 씬에서도 바알에게 지지 않았을 것이다.
패배하여 봉인? 그건 나헤마가 뒤에서 많은 수작을 부린 거거든. 바알은 거기까진 몰랐겠지만.
그러니 기근은 사탄의 부활을 꿈꿨던 것이다. 사탄은 그만한 강자다.
그쪽 스토리라인대로라면 그렇게 된다.
[그리고 빛과 어둠의 속성이잖아. 보통 상반된 걸 동시에 가진 놈은 세.]
[어어, 그 포켓몬 방어 타입처럼 적용되려나요?]
[혹시 그러면 약점 없는 무상성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잘 모른다.
그래도 사탄은 아마 저 상태의 미카엘을 이겨내진 못할 것이다.
그럼 사탄은 쓰러진다.
하지만 시간 벌이를 위해 쓰러지진 않았을 것이다.
솔로몬은 아닌 척은 다했지만 열과 성을 다하여 미카엘을 방해했다.
반면 사탄은 우릴 도울 리가 없고 도울 힘도 없다.
블랑쉐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근의 시체라면 위치를 안다.]
[죽었어?]
[확인사살을 한 게 아니니까 모른다. 그냥 죽었구나 하고 말았다.]
이러면 단순해진다. 어차피 코인은 하나 있다.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다른 시간선으로 넘길 수 있을 테니까.
데빌 카드를 잡아 찢었다.
[사탄이 죽으면 곧바로 그 자리에 내가 앉는다.]
사탄의 권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달리면서 싸움을 눈에 담았다.
추측해라. 사탄의 힘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옳을지 찾아내라.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하는 오브젝트는 없다.
기근을 통해 사탄의 자리에 앉는 것이 미카엘을 제압하는 기믹일지도 모른다.
안 해본 루트 진짜 X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