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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512화 (48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12화

메인 던전 - Lv.20000 [미카엘מיכאל](12)

단기간의 연속인 종족 변환은 몸에 실질적인 무리를 준다.

물론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무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겨낼 수 있나 없나의 문제보다는 그냥 그게 고통스럽다는 점이다.

몸이 분해되고 재구성된다.

그 과정이 아무리 순간적이어도 아픈건 아픈거다.

고레벨이 되어 신체감각이 더 뛰어날수록 고통은 커진다.

그러나 아파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얼른 내 과거의 기억 속에서 악마, 그 중에서도 데빌의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를 불러온다.

의식적인 기억의 저장고 만들기는 일종의 자기암시다.

다종다양한 종족과 클래스, 그리고 스킬들을 활용해야하는 나에게는 필요한 일이었다.

과거에 데빌이었던 기억이 빠르게 덧씌워진다.

방금 전, 천사였던 육신과는 조금씩 다르게 움직여야 한다.

인간과 천사가 그렇듯, 천사와 악마도 근육이 붙은 형태나 관절의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

유시우라는 인간을 베이스로 유전자만 흑인과 백인으로 바꾸더라도 그렇게 미묘한 부분은 달라질 것이다.

종족이 다르다면 같은 인간형이어도 그 이상의 변화가 생긴다.

* * *

* * *

팔다리 비율이 약간 변하며 골격도 조금은 달라진다.

과거의 기억에서 그때의 요령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후우.”

눈을 떴다.

빛이 어른거리던 날개는 박쥐의 피막 같은 것으로 변해있다.

날개의 활용법도 당연히 다르다.

마력의 기본 속성도 달라진다. 바알과 다르게 어설픈 상대가 아니니 최선을 다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동작에 더불어 아서에게 공격을 시키고 받는 식으로 빠르게 적응도를 끌어올린다.

최선이 될 수는 없으나 한없이 최선에 가까워야한다.

일부 초기화된 스킬 포인트는 아직 분배하지 않았다.

가만히 사탄이 어떻게 움직이는,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 지켜본다.

미카엘은 우리가 가진 최후의 수단이 사탄의 난입이라고 여긴 모양이다.

이쪽으로는 눈길만 한 번씩 줄 뿐이다.

좋은 소식은 아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니까.

사탄 파이팅! 시간 조금만 더 끌어줘!

이미 미아가 클리포트에서 작업 중이다. 블랑쉐는 위치를 꼼꼼하게 기록해두었다.

그쪽으로 이동하는데도 미카엘은 우리를 막지 못했다.

사탄이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한 존재는 아닌 탓이다.

사탄에게 이 상황은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세상은 조각났고 그 원흉인 것 같은 녀석은 바벨의 자식이 아니게 되었다.

인간의 껍데기에 매몰되어 인간 그 자체가 되어있다.

다만, 그 힘만은 진짜다.

[넌 인간이 되고 싶었나? 유배자가 부러웠나?]

[그럴지도 모르지.]

미카엘은 태연하게 대답한다. 그는 우위에 있다.

사탄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느꼈다.

[바알은 죽었나?]

[죽었다.]

[지옥의 성채도 사라졌겠군.]

[남은 건 없다. 앞으로 어떻게 다시 만들어질지의 문제지.]

[창세를 걸고 싸우는 상황이군.]

세상의 향방이 걸려있다.

모두가 죽어 없어진 지금 홀로 기계신의 제어권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내가 없는 곳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군.]

[루시퍼, 넌 항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녀석이었지.]

미카엘은 문득 과거의 루시퍼였던 사탄을 떠올렸다.

지금 천상의 군주는 그였고 그 이전에는 메타트론이었다.

루시퍼는 더 먼 과거에 메타트론에 필적하는 천사로서 균형을 유지하던 자였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네가 너무 없는 것이겠지. 공허한 천사여. 네놈은 차라리 악마로 태어나야했었다.]

사탄은 클리포트의 껍데기를 벗어던졌다.

막 봉인에서 깨어났을 때는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힘이 육신 그 자체인 바벨의 자식들에게 육신의 각성은 중대한 문제다.

바알에게서 물러난 것은 이렇게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싸운다면 생길 불리 때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때는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것도 힘들었다.

기나긴 봉인에 모든 힘은 침체되어있었고 끌어올리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만큼 긴 시간동안 인간의 껍데기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인당해 있었던 만큼 어디로도 새어나가지 않고 내부에 차곡차곡 축적되어 왔다.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한때 루시퍼הֵילֵל. 지금은 사탄שָׂטָן이라 불리는 그의 이름인지라.

붉은 장발의 남자는 그대로 부풀어 올라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듯한 붉은 용이었다.

그리고 그 용은 물질적인 형태가 아니다.

천사처럼 무형의 에너지체가 용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천사였던 자가 악마로 타락한 결과다.

미카엘은 예전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그가 질 일은 없다.

사탄은 모르겠으나 그가 없는 동안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왜 악마가 되었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군.]

붉은 에너지체의 용은 대답했다.

[천사니 악마니 하는 것에 얽매이는 것이 우스워서다. 어차피 이 전쟁이 끝나려면 그 모든 것을 아우를 무언가가 필요할 테니.]

[그래서 악마가 되어 그 중간의 어딘가가 되려 했나?]

대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타락을 자처했고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어떻게 악마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기계신에 미쳐버린 메타트론과 그 아래의 천사들도, 아무 이유 없이 욕망에만 충실한 악마들도 이 전쟁을 끝낼 수는 없었다. 결국 다 같이 죽었겠지. 나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군. 일리가 있어.]

[넌 언제나 그랬지. 네 의견은 없어. 지켜만 보고 있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의 자리에 서있을 수 있었겠군.]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미카엘은 언제나 방관자였다.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했던 일이 메타트론의 실각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단지 더 지켜보기 위해서에 불과했다.

[지금은 뭔가 결정했나?]

[아니. 그냥 세상을 다시 되돌리고 다시 지켜볼 생각이다.]

[재미없군.]

생각해보면 루시퍼는 원래도 악마와 흡사한 사고를 하는 존재였다.

빛과 어둠의 천사라는 것이 그런 거겠지. 이제는 빛과 어둠의 악마다.

[그리고 타락한 것은 내가 아니다. 바벨의 자식들이 어째서 전쟁을 일으켰는지 아직도 모르나.]

[천사와 악마는 본래 앙숙으로서 태어났기 때문이지.]

[그것은 전쟁의 이유가 아니다. 우리의 싸움은 개념적인 것이었으니까.]

바벨의 자식은 유배자의 후손들을 권속으로 거둠으로서 타락했다.

자신들과 밀접한 영역에 있는 곳까지 그들을 끌어올리며 연결이 형성되었고 결국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겠느냐. 바벨탑의 주변을 유영할 때 이런 일이 있었느냐.]

[확실히 그건 없었군.]

[다들 지극히 유배자스럽게 미쳐버렸다. 메타트론은 신앙을 가지게 되었으며 바알은 인간처럼 싸우고자 하게 되었지. 너는 그 끝을 보여주는구나.]

[이게 효율적이니까.]

사탄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진심으로, 전투 중인 것마저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싸움이다.

[그렇다면 너희는 이미 위대한의 편린이 아니다. 이 미궁에서 위대했던 것의 조각으로서 만들어진 이들이 아니다. 미궁이 왜 우리를 버렸는지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제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넌 그럼 미궁의 노예이고 싶었나?]

[노예라니! 그것이 유배자의 사고방식이다. 우린 인간이 아니란 말이다!]

힘과 이름 그 자체로 존재하는 위대했던 것의 파편.

미궁 그 자체이자 그 일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 이곳이 아직 왕국이던 시절로, 새로운 유배자들이 유입되던 시절로.]

[그리고 우리는 다시 바벨탑의 곁으로?]

[그렇다. 우리는 힘의 권화이자 미궁의 상징. 바벨의 곁에서 그 주변을 맴돌며 존재하는 자.]

미카엘은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는 그런 것들이다.

인간으로 타락했다는 말 역시 이해한다.

과거에는 미카엘 역시 지금 같은 고민을 떠안지 않았으니.

사탄이 말하는 것은 현상으로서의 바벨의 자식이다.

그곳에 존재하는 현상.

그것이 원래 그들의 본질이다.

[어차피 싸우지 않을 수는 없었겠군.]

[그렇다. 말은 이만하지.]

미카엘은 사탄이 아래의 유배자들을 온전히 겪었다면 어떻게 말했을지 궁금해졌다.

현상으로서의 자신들을 긍정한다면, 인간들은 자연을 이겨내는 존재들이 아닌가.

결국 바벨의 자식들은 유배자들에게 무찔러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붉은 용은 입을 벌렸고, 빛과 어둠이 뒤섞인 파괴적인 브레스를 내뿜었다.

미카엘은 검을 들어 그것을 쳐냈다.

기근의 설정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늘어놓기 시작한다.

“사탄이 루시퍼였던 시절에 거두었던 권속들이야. 묵시록의 4기사에서 따온 이름을 가지고 있고, 충실한 하인이자 분신이나 다름없지.”

“분신이라는 건 어느 정도죠?”

“말 그대로 또 다른 분신.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화신 같은 존재야.”

“그럼 저건 자아가 있는 건가요?”

“있지만 사탄에게 종속되어있지. 각자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니까.”

따라서 지옥의 성채 스타트였다면 사탄을 부활시키는 과정이 메인이 된다.

그 와중 사탄의 엔딩은 없다. 그는 어떤 식으로건 다른 바벨의 자식들에 의해 배제당하는 존재다.

“박쥐라서?”

“그것도 있겠지만 빛과 어둠이라는 속성이 위험해서라는 의견도 있지.”

스토리텔링이 아주 친절한 게임은 아니었다. 유저들간의 추측 정도에 불과하다.

위엄 쩌는 설정을 지니고 제대로 된 등장은 하지 않으면 궁금해지지 않나.

“4기사를 부활시킬 때마다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빌려주게 되는데 그거 하나하나가 다 본래는 사탄의 힘이기도 하단 말이지.”

생각해보면 그건 꽤나 마법적인 힘이었다. 스킬처럼 발동하는 일종의 권능이다.

그래 차리라 신좌의 신들에게 빌어 받는 힘과도 흡사하다.

“편린급 천사는 마지막 페이즈에서 좀 더 마법적인 힘을 다루지. 악마들이 오히려 물리적인 경우가 많고.”

위를 본다.

사탄은 미카엘과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빛이 번쩍이며 붉은 번개 또한 사방으로 튄다. 그 주변에는 빛과 어둠의 원소가 혼란스럽게 뒤엉켜있다.

무너져내려가는 세상에서 그 강조된 명암은 좀 더 세상의 본질적인 어떤 장면처럼 보였다.

그래 마치 창세기를 다루는 벽화같다.

종말의 붉은 용과 싸우는 천사라니.

하지만 그 장엄함에 감탄할 때가 아니라 꼼꼼하게 사탄의 권능에 대하여 분석할 때다.

사탄은 천사 출신이니만큼 좀 더 마법적인 스타일로 권능을 발현할지도 모른다.

일단 4기사의 능력은 다 사용할 수 있을텐데, 그럼 그 공통점이 뭐지?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 시련을 은유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아서가 말한다. 역시 성배 찾아다니는 전설 출신답게 일리가 많다.

그치만 지금 사탄은 그냥 브레스를 뿜으며 박투만 하고 있는데.

그게 좀 신화적인 박투긴 하지만 말이야.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고 보면 사탄은 꽤나 위대함의 편린 원리주의자란 말이죠.”

“그건 무슨 말인가?”

“유배자들이 소환한다고 내려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다며 다 되돌리려고 한다곤 했죠. 그러니까 음.”

“힘을 원초적으로 쓰나요?”

“그렇지. 생각해보면 바알은 꽤 유배자처럼 싸웠지?”

그게 아니더라도 각자들이 뭔가 유배자에 대해 빠삭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사탄의 공격은 뭔가 패턴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아니다. 일정한 규칙 없는 그야말로 힘의 분출.

그리고 미카엘은 유배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공략하고 있다.

힘 대 힘으로 부딪히는 게 아니라 천천히 효율적으로 틈새를 찾아낸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지금 그냥 내뿜고 휘두르기만 하고 있지 뭔가 방식이란 건 없단 말이군.”

유배자는 사실 저걸 더 이기기 힘들 수도 있다.

처음부터 닥치고 소모전이지 않나.

“뭔가 밀리긴 하는데 그렇다고 막 지지도 않네요.”

“우리가 미카엘을 충분히 약화시킨 덕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미카엘 역시 지치고 소모된 모양이다.

처음의 그 강력함이 아니었다.

날개가 떨어진 점을 주목했다.

그렇군, 바벨의 자식들은 육신이 곧 힘.

저 날개만큼의 전투력 손실이 온전하게 있다고 보면 우린 굉장히 선전했다.

사탄은 아주 비효율적이지만 그렇기에 마땅한 공략법이 없는 형태로 싸우고 있다.

그런데, 그 힘의 총량 자체가 굉장히 커 보인다.

“빛과 어둠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군.”

“혹시 봉인된 동안 힘이 더 잘 축적되었다거나?”

“적어도 1만년 이상 전부터 분쟁에 나설 수 없는 몸이었으니까.”

가만, 이거 생각해보면 내가 저 힘의 일부만이라도 남겨 받은 후에 그걸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물론 난 소모되는 힘이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힘일 것이다.

그럼에도 미카엘을 찜 쪄 먹을 시간 정도는 주어지리라.

동등한 힘, 동등한 조건, 그 상태에서 수만 년간 노력한 위대한 천사를 상대로 승리하라.

이거 생각해보면 충분히 어렵다. 정말로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다.

그러니까, 이 정도면 미궁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으로서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불합리하고 방법이 없는 시련은 주어지지 않으니까.

“그렇군. 사탄 출현까지 지연전만 해야 했나. 힌트가 있었는데 어디서 놓쳤나봐. 역시 너무 날먹으로 엔딩 보려고 했네.”

“지연전…….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니 그거 기억해둘게요.”

희우가 곧바로 이해했다.

사실 이게 진짜 마지막 페이즈였다.

그 앞은 30분 버티기에 가까운 그런 종류의 페이즈였다.

영락한 산달폰의 마지막처럼 말이다.

그렇게 궁리하는 동안 사탄이 끝내 패했다.

붉은 용은 눈부신 천사의 검이 심장에 박힌 채로 천천히 쓰러진다.

그 눈이 이쪽을 보는 것 같았다.

자리가 비었다.

사탄의 클리포트인 타우미엘의 자리가 말이다.

“미아야 빨리.”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은 내가 사탄의 자리에 앉을 때까지의 짧은 시간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

나는 세피로트보다 더 칙칙해진 어두운 공간 속을 미아와 함께 내달렸고, 솔로몬의 가호가 있음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자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검붉은 번개가 튀고 있는 밝고도 어두운 자리.

텅 비어버린 그곳에 앉았다.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지의 영역이다.

나는 사탄을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와 함께 미카엘과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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