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513화
메인 던전 - Lv.20000 [미카엘](13)
희우는 사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오빠는 완전무결하고 만능에다가 무쌍하는 존재다.
유배자로서 가장 완벽한 부분만 골라서 뭉쳐 만든 것 같은 그런 영웅적인 존재.
만약 미궁이 기어코 이 세상이 클리어 되길 원했다면 그래서 끝내 만들어졌을 그런 인물.
어떤 식으로 수식해도 이상하고 이질적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미궁을 클리어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왜?
거기에 그 파티에 속해 여러 가지를 익히고 배우면서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 하나하나는 바깥에서는 소용없는 것들이다.
온전한 현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미궁에만 특화된 방식.
거기에 바깥에서도 온전히 먹힐 것 같은 무기술 따위도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이 정도로 하고나면 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에 더해서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든다.
부활 스택이 탄환이란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러했다.
안전장치가 아니라 공격장치였다.
* * *
* * *
이게 말이 되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겪어보는 중인 지금에 와서는 그럴 필요가 있다가 정답이다.
[우리엘]은 객관적으로 고스펙의 자리다. 거기에 애초부터 만들어지길 로스엘 같은 효과를 노리고 만들어졌다.
유리는 기천사였으며 희우도 기천사였다.
따라서 하니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정도로 높은 출력을 내고 있다.
기계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좀 더 동질적인 것에 더 많은 힘이 부여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모양이었다.
따라서 희우는 이번엔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바알의 자리에 앉은 아서는 그 권능을 훌륭하게 통제한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애초부터 스펙 상승이 대부분인 자리다.
고로 그저 기사로서 싸우면 되었다.
희우도 마찬가지다. 우리엘은 어려운 자리가 아니다.
단단하고 방어적인 쉽고 단순한 힘이다.
미카엘의 공격을 받아낼 만큼 튼튼한 암석의 검과 그에 필적할 정도로 수월한 권능의 방패를 세울 수 있다.
거기에 미아다.
미아는 천사에 적응했다고는 못하지만 가브리엘의 권능은 잘 다룬다.
달빛어린 파도가 사방을 휩쓸며 천상의 군주를 방해했다.
그러니까 될 줄 알았다.
솔로몬 때와는 다르다. 그때 한 바퀴 돌려야 했던 것은 그저 파티가 완전하지 않아서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진 않다.
종족이 휙휙 변하는 상황이나, 전문분야가 아닌 권능을 다루는 영역에 익숙치 않은 파티원이 많다.
오빠가 말하듯 모두가 자기 자신이 되는 영역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지금껏 해내왔으며 앞으로도 해낼 것이다.
그것을 모두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가장 앞서 미카엘과 부딪친다.
가장 빠르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단단하기 때문이다.
같은 천사로서 치명적인 공격을 꽂아 넣기 힘들 수는 있으나 그만큼 희우 역시 단숨에 살해당하는 일이 없다.
양손에 단검을 쓰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그리고 거기에 무언가 인챈트를 발라, 단검마스터리를 적용받은 장검이나 거검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익숙하다.
그럼에도.
거의 한순간에 열 합 정도가 지나치고 그 다음에 빈틈을 꿰뚫렸다.
다시 잔 상처를 하나 추가하며 비틀어 빠져나온다. 그 과정에서 날개를 노리는 공격은 권능을 방패삼아 버텨내었다.
철벽.
정말로 그런 느낌이다.
달인 중의 달인.
기본기의 극한.
미카엘은 자신의 출력에 점점 적응해가고 있다. 혹은 손실로 인한 출력 저하가 곧 적절한 지점으로 향하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페인트를 넣어도 속지 않는다.
급가속이나 엇박자 연계에도 당하지 않는다.
그저 막을 것을 스펙으로, 날개로 받아내며 제 검은 꿋꿋하게 가장 위험한 곳만으로 노려온다.
천재적인 검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약점도 없다. 그게 무엇인지 정말 뼈저리게 느낀다.
희우는 그런 식으로 무기를 휘두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오빠가 처음 한것처럼 공격하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나니 어떻게든 대응해낸다.
사실 미카엘에게도 틈은 있다. 진짜 완벽이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희우는 자신이 그것을 노릴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서 역시 크게 다르진 않다. 그의 검술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대하는 검술이다.
이 미궁에 와서 제 아무리 하이랭커로서 노력했다하더라도 처음부터 목표함이 다르다.
기사도의 화신은 기사로서 싸우는 것을 잘할 뿐이다.
에길은 자신의 공격이 적중하지 않음을 안다. 미카엘은 이제 호락호락 그것에 당해주지 않았다.
드라간과 함께 적극적으로 공격에 공격으로 상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때때로 빛과 영역을 머금은 채로 내려쳐지는 큰 동작의 공격을 그 둘이 가까스로 받아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얼마나 더 해야 하는가?
희우는 처음으로 절망이란 게 무엇인지 느꼈을지도 모른다.
격정적이지도 않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철저하게 이쪽을 배제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보스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유배자를 얕보다가 큰 코를 다치거나, 혹은 어딘가 심리적 우위를 가진 상태였다.
지금은 오히려 저쪽이 더 잘 알고 있다.
결국 이기는 것은 자신이라고, 그렇게 틀림없이 믿고 있는 냉철한 지성이 있다.
그렇기에 다시 되돌리더라도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희우는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서도 에길도 이런 때에 꺾일 것 같지는 않다.
천사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입한다.
천상의 군주는 아까와 정확히 똑같은 동작과 방식으로 그녀를 상대했다.
이제는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브 리더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늘 그렇듯이 끊임없이 부족한 무언가를 찾아내고 만다.
준비 기간 동안 느꼈다.
노력은 결국 재능이 담보된 무언가다.
결실을 쉽게 얻고 그것에 재미를 느끼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르다.
진짜 노력은 어쩌면 꺾여야 하는데도 꺾이지 않을 때 만들어진다.
희우는 꽤 편한 삶을 살았다. 속성으로 반년 만에 바뀔 그런 나약한 부분이 아니다.
목숨을 내다버릴 각오가 게임 같은 사고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희우 본인이 노력한 것인가?
정말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알고 목숨을 내던져 탄환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인가?
현실과 게임 사이의 어딘가에서 제대로 균형을 잡고 있는가?
기술은 더 단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도 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필요한 것은 조금 더 다른 각오.
미카엘이 수 만 년간 자신을 깎아오며 했을 그런 각오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스에게 그런 점을 배우고 있다.
단순한 정신론이 아니라,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필요했던 것은 기술이 아닌 무언가가 아닌가.
결국 파티는 미카엘을 흔들지 못했다.
그의 무결함에 흠집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상정한 범위 내라는 듯이 유유자적하게 검 한 자루로 모든 것을 쳐내는 천상의 군주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럼 결국 이럴 때, 바라는 것은 오빠가 무언가 하는 것일 뿐이다.
이건 곁에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는 배울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안다. 그럼 배운 것을 잘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메인 던전은 그런 곳이다.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
후우.
짧은 심호흡.
그리고 희우는 목숨 하나를 더 내던졌다.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벌어냈다.
날개는 결국 두 장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태로 사탄을 이겨내었다.
그리고 힘이 빠질 대로 빠지고 더 이상 비장의 수단도 남지 않은 유배자들도 이겨내었다.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지긋이 누를 일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는 모든 방식을 겪었고 모든 수단을 읽어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반드시 이길 전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살아남으면 그것이 승리다.
미카엘은 저 유배자 파티가 준비해온 모든 것은 견뎌냈다.
그렇다면 이긴 것이다.
유리는 어디 있는가.
미카엘은 조금 먼 곳을 보았다.
세피로트와 클리포트를 진작 파괴했으면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작 해야 했다.
그럴 틈은 없었다.
서로 한 치의 빈틈이라도 덜 노출하기 위한 발악을 해대는 싸움이었다.
대화를 하지는 않았으나 악에 받친 것이 느껴졌다.
미카엘이라고 편하지는 않았다.
정말로 마지막까지 내몰린 싸움이었다. 신체의 결손이 늘어날 때마다 그는 바벨의 자식으로서의 힘을 조금씩 잃고 있었다.
회복의 샘까지 돌아갔다 올 여유를 주면 쓰러지는 것은 미카엘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끝이다.
팽팽한 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리고 그 틈새로 지금까지 버텨온만큼의 피해가 누적되기 시작한다.
이 유배자들은 무너졌다.
미카엘은 검을 들었고 방금 목숨을 소모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천사를 베려했다.
우리엘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도리어 좋은 임상시험이었다. 유리가 그 자리에 앉아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어보는 것이다.
무엇을 느꼈기에 이들의 편을 들었는가.
미카엘은 드디어 이 피로함에 끝이 다가왔다고 느꼈다. 쉴 수 있다.
검붉은 번개가 다시 끼어들었다.
빛과 어둠의 악마.
솔직히 사탄의 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내가 권능을 잘 다루는 것은 그걸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해본 덕분이다.
라파엘과 가브리엘, 미카엘과 메타트론, 그리고 바알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런 고심의 결과물이다.
사탄은 좀 다르다.
낯설며 익숙하지 않다. 시뮬레이션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 검붉은 번개의 힘 자체가 압도적으로 높은 출력을 낸다는 것은 알겠다.
죽은 사탄은 마지막까지 그 자신의 힘을 다 내보내지 못했다.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고질병 탓이다.
물론 그들 기준에서는 효율적이었겠지.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생명이자 삶 그 자체인 힘을 모두 불태우는 것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인간이 개미의 시간에 어울려주지 않듯, 바벨의 자식들 또한 그러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불태운다. 스킬마저 조금씩 깎아가며 불살라야한다.
미카엘과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천사가 아니었고 천사의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다.
조금 놀란 듯한 천상의 군주에게 검을 휘두른다. 쌍검도 아니다. 그가 쓰듯이 그저 하나의 검만을 사용하고 있다.
라파엘의 검도 아니다.
이것은 그저 아다만타이드 검이다.
사탄이 남기고 간 힘의 편린들을 온전히 이곳에만 쏟아 넣기 위해서다.
천사의 장비는 그에 반발할 테니.
대화는 오래 전부터 없었다.
미카엘과 검을 겨룬다.
문득 깨닫는다. 약화되어있다. 그걸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약하지는 않다.
치고받고, 때리고, 검만이 아니라 주먹과 날개와 뼈와 살을 부딪친다.
파티원의 지원을 기대하고 비워둔 자리에 미카엘의 검격이 꽂힐 때 깨닫는다.
드라간조차도 쓰러져있다.
누구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미아가 힘겹게 지원 사격을 날리려고 하다가 주저앉는다.
날아올 제니도 없다.
제니는 이미 한참 전부터, 실제로는 그리 한참이 아니지만 개전의 시기는 그렇게 여겨진다.
그때부터 저 아래에서 의식이 없다.
아서와 에길, 그리고 블랑쉐는 몇 번을 더 도왔다.
그리고 어딘가로 날아가 나가떨어졌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나와 미카엘 뿐이었다.
여전히 대화는 없었다.
미카엘은 날개가 있던 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문득 망각한 듯이 허점을 내주었다.
나는 그곳을 온 힘을 다해 베었다.
오랜만에 낭패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틈은 없다.
사탄의 권능에 대해 고민한 시간은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검에는 어둠을, 갑옷에는 빛을, 그렇게 상성에 맞춰 두르기에 동등한 조건이다.
확실히 깨닫는다. 사탄은 미카엘과 누구 한 명의 스펙을 거의 동등하게 맞춰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믹이었다.
그럼 마지막에 그걸 해내야하는 것은 나다.
오싹함이 등골에 내달린다.
이 자리에 앉을 때, 느낀 번개가 그런 것이었나 싶다.
미카엘의 검은 정적이며 둔중하다. 그리고 한없이 안정적이며 완벽하다.
그 사이에 꽂아 넣는다. 닥치는 대로, 내가 본 모든 다른 이들의 검을 꽂아넣는다.
연구는 충분히 했다.
완벽에 빈틈을 만들어 비틀어 찌르는 방법.
무수한 천재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거슬러간다.
내 모든 것을 쏟아낸다.
바로 며칠 전까지 했던 연구를.
저번 회차의 블랑쉐와 논했던 암습에 대한 이론을.
그 이전 회차의 언젠가 아서와 나누었던 검술에 대한 담화를.
어느 순간 나는 미카엘과 싸우고 있지 않았다.
내 과거의 모든 적들이 미카엘과 겹친다.
그리고 때로는 스승이 겹친다.
정신이 흐려지는 것 같다. 그런데도 미카엘이 휘두르는 검과 주먹은 똑똑히 보인다.
다시 치고 받고, 베고, 또 흘리고, 어느 순간 흘릴 힘조차 없어서 그냥 체중까지 실어서 막아낸다.
점점 과거가 겹쳐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지쳐가고 있다.
하고자 한다면 한 행성을 멸망시킬 수 있는 스펙을 지닌 미궁의 은혜 덩어리인 내 몸이 지쳐가고 있다.
기계신이 제 힘을 짜내어 보내주고 있는 권능적인 출력이 가득한 이 육신이 지쳐가고 있다.
그러니 점점 더 먼 과거로 간다.
아직 미궁을 잘 모를 때, 혹은 좀 더 자신만만하여 이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세계를 주유하던 애송이 시절로.
어찌보면 그때가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기술도, 계획도, 설계도 무엇도 없다.
끔찍하리만치 정갈하지 않은 무언가가 검을 쥔 손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미카엘은 어느 새 자신의 날개 다른 한 장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것으로 막으려다가 어깨로 받아냈다.
그곳에 서려있던 막대한 빛의 권능이 희미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본래라면 타격을 허용한 시점에 그대로 으스러져 사라졌을 미카엘의 육신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 검에 서린 사탄의 어둠도 힘을 다한다.
이제 권능이라고 부를만한 무엇도 우리에겐 없었다.
이미 파티원들도 저 멀리 있다.
여기는 미카엘이 기다리던 보스룸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온갖 보정으로 떡칠되어있어 같은 부피는커녕 열배 부피의 철근보다도 질기고 단단할 근섬유가 제 무게조차 감당하기 어려워함이 느껴진다.
그것을 보조할 마력도 다해가고 있다.
생명이 경각에 도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탄환으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생물로서 말이다.
미카엘은 다른 쪽 날개도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나 역시 그렇다.
마력조차도 없다.
더 이상 전투의 무대는 공중조차 아니었다.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소리의 벽조차 넘지 못하며 그저 그런 인간 병사처럼, 혹은 갓 미궁에 도달한 애송이 유배자처럼 그저 짜내어 싸운다.
미카엘은 더 이상 냉철한 지성도 무엇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의 얼굴 역시 고통으로 일그러져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차이는 있다.
나는 내 피에 미끄러져 무릎을 꿇었고 미카엘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하고 날붙이가 내 몸을 가르는 끔찍한 감각.
죽음과 마찬가지로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마지막의 무언가.
부활 스택은 더 없다.
치명적이다.
그런 경고가 뇌리에 울린다.
다음 순간 떠오르는 것은 파티원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들.
그리고 희우가 문득 말했던 결혼식 이야기.
그래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어깨부터 길게 베였으나 하체는 무사하다. 앞으로 움직인다. 강하게 밀어붙인다.
미카엘이 쓰러진다. 피가 흐른다. 이미 흔적을 알아보기 힘든 갑옷 위로 붉은 색이 덧칠된다.
시야가 붉다.
모르겠다.
팔을 들어올린다.
역수로 쥐려고 쥔 것도 아니다. 어쩌다보니 손아귀에 힘이 빠져 그렇게 쥐어져있다.
아다만타이드 검은 이제 검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어보였다.
그대로 내리 꽂았다.
그리고 푹.
파르스름한 유리가 깨지듯이 무언가가 날아간다.
계산한 것은 아니었다.
장비 파괴 크리티컬.
미카엘의 미간에 져있던 주름이 펴졌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바닥에 쓰러진 미카엘은 자신을 꿰뚫은 검이 서서히 부스러져 사라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천상의 군주는 메마른 입술을 간신히 벌려 말했다.
“과연, 알겠다.”
대꾸할 기력이 없었다.
“이것이 유배자가 겪는 일이구나. 이 미궁에 처음 발을 들이고 얻는 고난이구나.”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인간은 탑의 주변을 날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미카엘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혼잣말을 이어간다.
목소리에 힘은 없으나 도리어 지성의 천사로서의 속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저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자체가 삶이었군.”
미카엘의 눈동자가 조금 움직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올려다보는 것 같군. 그래, 난 언제나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나.”
뇌가 돌아가지 않는다. 미카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눈을 깜빡일 힘도 없어 따가움을 느끼고 있다.
“바알이 현명했다. 나는 어리석었다. 결국 모든 것은 오만이었다…….”
또박또박 들리지만 그것이 여유에서 나오는 목소리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미카엘은 그저 내가 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사력을 다하여 유언을 남기듯이.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들어주었으면 하여 말하듯이.
그저 그렇게.
그래서 목소리가 점점 흐려진다.
“천사가 날개를 잃으면 그것은 인간이지…….”
그리고 점점 끊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인간으로서 죽는가. 유배자……. 아마 미궁도……. 대신격도……. 모를 것이다…….”
“나는……. 그것들의 편린이니 안다…….”
이후로도 미카엘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잘 들리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도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미카엘의 마지막 말은 들은 것 같다.
“유리…….”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
제니의 목소리.
“리더?! 리더? 살아있어요?”
미카엘이 숨을 거둘 때, 위대함의 편린을 물리쳤다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