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514화
메인 던전 - [빛과 어둠의 경계](5)
제니는 상당히 일찍 뻗어있었다.
그녀의 역할은 정확히 개전까지였다. 그 이후는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다.
교대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겨우 살아남았음에 감사한다.
유달리 많은 부활 스택을 가지고 있었던 제니였지만 그걸 전부 소모했다.
장장 10개의 부활 스택이 단 한 번의 전투로 날아갔다.
할 수 있는 모든 발악을 다하고도,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해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도 그랬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상대가 상대다.
메인 던전의 최종보스급 존재.
일반적인 유배자라면 발도 들여 보지 못하는 곳의 마지막을 지키는 괴물.
그런 괴물을 상대로 개전만이라도 담당한다면 이미 전 미궁을 통틀어서도 입지전적인 위치다.
제니는 그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고 더 활약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미아양도 늘 말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제니는 불안 없이 의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다시 눈을 뜨면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미아양이 이제 일어났냐면서 눈을 가늘게 뜨겠지.
* * *
* * *
딱 그렇게 생각했는데.
“핫?! 왜 아직도?”
일단 아직도 무너져가는 세상인 것이 눈에 띈다.
이미 확보된 안전한 위치로 물러난 직후에 그대로 기절했었다. 그 위치 그대로다.
제니라고 성한 것은 아니다. 부활 후유증이 한 두 개 중첩된 것도 아닐뿐더러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몰려있었다.
정말로 죽을 뻔했으니까.
그런데 눈을 떠보니 환자 행세를 할 때가 아니었다.
제니는 일단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폈다.
브릿지 자세의 천사 셋이 있다.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 있나요? 우리 졌어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유리가 대답했다.
라파엘은 뭔가 기묘한 드라군 자세로 자꾸 가브리엘에게 들이대고 있고 가브리엘은 빙빙 돌며 도망치고 있다.
제니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유리에게 다시 물었다.
“제가 뭘 해야 할까요?”
“……일단 가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렇네! 감사합니다!”
유리는 얼떨떨하게 고양이 천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본다.
수동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능동적이다.
수동적으로 능동적이다.
미카엘은 수동적인 천사였다.
유리 역시 그를 본따 만들어진 만큼 비슷한 성향이다.
유리는 전장을 다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이 남고 그 둘이 추락하고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으나 유리에게 그 광경들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천상의 군주는 처절한 존재가 아니다. 언제나 위의 입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찰하고 조율하는 철저한 이다.
미카엘이 그렇게 망가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부상을 입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을 다해 싸웠다.
그 행동에서 유리는 격정을 느꼈다.
그가 아는 미카엘은 저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거두고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후일을 도모했겠지.
평소 같으면 항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삶에 무리라는 것이 있었을까.
그리고 어쩐지 그 후에 미카엘이 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껍데기조차 남기지 못했겠지. 미카엘은 그 껍데기와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의 날개를 보며 그것을 알았다.
천상의 군주는 빛이 되어 스러졌으리라.
유리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미카엘이 남긴 껍데기는 자기자신이 아닌가.
그가 자신을 본따 만든 기천사.
유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할 기천사.
유리는 마지막까지 소극적이었지만 그 소극적인 행동이라도 없었다면, 혹은 아예 그녀가 미카엘의 곁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 살아서 서있는 것은 그 천상의 군주일 것이다.
유리는 자신의 선택이 그를 파멸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어쩐지 그에 대한 책임 정도는 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미카엘은 처음부터 유리에게 무언가를 크게 강제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앉을 자리를 준비하고 그곳에 앉아 전력으로서 기능해주는 정도만을 바랐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통제는 없었다.
친구들을 처분하려고 하기에 메타트론을 따라 떠났을 뿐이다.
미카엘은 아마 자신과 꼭 같게 만들어진 바벨의 자식이 아닌 천사가 어떻게 살아갈지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대신하여 무언가 찾아내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다시 보았다면 태연하게 그녀에게 물어보았을 것 같다.
무언가를 찾았는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그래서 유리는 무언가 깨달았는가?
모르겠다. 그녀는 여전히 소극적이며 수동적이다.
그래도 이 유배자 파티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방금 떠나간 고양이 천사의 모습을 보며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대로 있어도 된다.
세상은 이분법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행동하며 배우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미카엘의 유지를 있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살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고양이 천사도, 나아가 이 유배자 파티도.
언제나 행동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재며 안주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래서 불가능을 이루어 내었다.
그 강대한 천상의 군주는 제가 지닌 모든 힘을 소진하고서도 이 파티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것이 미궁이 바라는, 그리고 미카엘이 유배자 행세를 하면서까지 알고 싶었던 무언가일지도 모르겠다.
솔로몬의 의견은 유리보다는 좀 더 격렬했다.
그는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다.
말이 좋아 기계신의 신좌에 앉아있는 것이지 기계신이 그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은 그리 넓지 않다. 재미로 남겨둔 백도어에 불과하다.
그 상황에서 멋대로 남아있는 세상 그 자체인 기계신을 휘둘러 도움을 주려했다.
그런 무리는 어떻게 와 닿게 되는가?
죽음이다.
솔로몬은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신의 힘을 함부로 탐낸 자의 말로다.
탐낸 적은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리 되었다.
하지만 솔로몬은 눈곱만크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죽음 따위는 관심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가 더 집중하고 격렬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지금 일어난 사실 그 자체다.
“힘이란 게 대체 뭐지.”
그런 의문을 새삼스레 가지게 될 정도였다.
미카엘은 위대함의 편린으로서 존재하는 바벨의 자식이다.
타고나기를 힘의 권화, 존재 자체가 어떠한 개념을 상징, 정령왕보다도 더 상위에 존재하는 어떤 현상에 가까운 존재다.
평범하게 말하면 의지를 가진 태풍, 지진, 나아가 태양풍, 감마선 폭발, 초신성, 블랙홀.
뭐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그걸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까지야 이해한다.
미궁이 그것을 바랄테니.
그런데 그가 본 것은 그런 현상과 소모전을 벌여 이겨내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약점을 잘 찔렀다니, 요령이 좋았다니, 기믹을 잘 활용했다니,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최후의 최후에는 결국 그 어떤 은혜도 의미가 없었다.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가지고 태어난 것만으로 싸운 셈이었다.
물론 미카엘에겐 아니다. 그는 가지고 태어난 것마저도 모두 잃고 완전한 바닥에서 부딪혀야 했다.
따져 무엇하겠나만은 승리를 결정지은 것은 그런 영역의 문제일 것이다.
미카엘은 가지지 못한 자였던 적이 없다.
그렇기에 그렇게 몰린 상황에서 그것을 이겨내는 법을 몰랐다.
힘을 잘 활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힘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남지 않은 상태.
아무것도 없이 육신 하나만 가지고 손에 쥔 무기로 상대를 찔러야만 하는 그런 상태.
미카엘에게는 유구한 세월 중 처음 있었던 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무언가 깨달았고, 그래서 졌다.
일어난 결말은 단순히 조금이라도 더 힘이 남아있었던 유배자 파티의 리더가 승리했을 뿐인 일이지만.
그 힘은 틀림없이 거기서 왔다.
분명 유배자가 모든 수단을 다하더라고 미카엘이 힘의 총량에서는 압도하고 있었기에.
사탄을 동원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남긴 클리포트의 힘은 편린에 불과하다.
유배자가 진짜 사탄이 될 수는 없다.
바벨의 자식과 아닌 것의 사이에는 그만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 이 결말은 먼저 사그라지어야할 불꽃이 간발의 차이로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은 셈이다.
촛불에 양동이 한 바가지만큼의 물을 부었는데 그 촛불이 결국 그 물을 모두 증발시켜버리고 살아남은 셈이 아닌가.
“정신론은 안 좋아하는데…….”
마법은 정신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무의미한 정신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힘을 낸다고 힘이 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집념, 어떤 끈기, 그리고 어떤 생에 대한 갈망.
그것이 하나의 마법이자 권능이 된 것이 아닐까.
이 또한 바벨의 자식이 어떠한 상징을 가진 현상이듯이.
유배자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솔로몬은 천천히 부스러지기 시작하는 육신을 지닌 채로 생각에 골몰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런, 이럴 때가 아니군. 저 아이와 좀 제대로 이야기 해보아야 하는데.”
제자의 제자를 못 보고 떠날 수는 없지.
해골이 좀 바스라지면 어떤가. 한 점이라도 남아있다면 대화는 할 수 있다.
데미 리치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후다닥 공간을 이어 붙여 저쪽으로 달려갔다.
절뚝거리기는 했다.
제니는 일단 기겁했다.
성한 것이 없었다.
공간도 찢어발겨져서 나부끼고 있다.
제니는 자신이 이런 표현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는 사실마저 낯설었다.
공간이 무슨 바람의 깃발마냥 나부낀다니.
그런데 그보다 더 이 꼬라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단은 없었다.
마법사들이 공간 주무르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요령은 있다.
위험 해보이는 구역만을 피해서 어찌저찌 잘 날아다니며 아무렇게나 뻗어있는 파티원들을 모은다.
“어쩐지 이렇게 본격적으로 위생병 역할은 처음 하는 것 같네…….”
서버를 털고 다니던 시기에 이런 역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여유가 가득했다.
죽음이 맴도는 이런 환경은 아니다. 제니는 그냥 지친 누군가를 업어와서 더 이상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지키는 수준의 일만 했다.
어차피 한두 명 리타이어 해봐야 나머지가 건재하면 어떻게든 두들겨 부수는 것이 파티 오르골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두들겨 부서져 있다.
포션이 바닥났기에 부리나케 날아서 샘을 오가야했다.
그 무시무시한 드라간마저도 맥없이 뻗어있는 환경은 너무나도 낯설다.
하기야 머리 반쪽이 날아가 있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
그리고 드라간은 그렇게 드러누워있는 주제에 무슨 생채기 수준의 부상인 마냥 제니에게 명령했다.
“진짜 죽을 것 같은 놈은 저기 네놈들 리더다. 거길 먼저 가봐라.”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죽음은 많이 보아 왔다.
다음이 있는 유배자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목숨만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죽음 말이다.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걸 많이 보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정말로 죽기 직전의 사람이 어떤 상태인가 왠지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리더?! 리더? 살아있어요?”
대답은 당연히 없다. 들리지도 않는 것 같다. 몸에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주 위험한 신호다. 생명력도 엄밀히 따지면 마력의 일종이며 하다못해 신경계를 타고 흐르는 전기나 순환하는 혈액도 크게 보면 마력이다.
리더는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다.
샘물을 퍼부었다.
그래도 평소보다 묘하게 약발이 부족하다.
그냥 업고 가서 샘에 던져 넣었다.
하는 김에 다른 파티원들도 들고 가서 던져 넣는다.
드라간은 고개를 젓더니 일어서서 샘까지 걸어갔다.
트롤이 재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혹사당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고, 거기에 그 상태로 걷는 것은 더 기괴하다.
솔직히 말해서 트롤 좀비에 더 가까운 몰골이었으니.
너무 허둥지둥하다가 의식이 없던 미아가 익사할 뻔한 해프닝만 빼면 아무 문제는 없었다.
다들 건강하지는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리더도 뽀글거리면서 숨은 잘 쉬고 있다.
“몸은 회복 되어도 움직이지는 못하겠군.”
“체력은 회복시켜주지 않으니……. 아주 피곤하군요.”
“그럼 제가 저쪽 온천으로 옮겨다 드릴까요?”
“항상 고맙군. 제니.”
라지엘이 만들어낸 체력도 회복하는 온천으로다 가서 옮겨둔다.
무언가 다들 부활 후유증뿐만 아니라 기력 자체가 쇠한 느낌이긴 하다.
그건 몸의 문제일까? 정신의 문제일까?
어쨌건 제니는 바쁘게 움직였고 곧 리더도 눈을 떴다.
“좋아. 다음 회차가 아니군.”
이 와중에도 그 걱정이네.
제니는 한숨을 내쉬고 일단 빨리 엔딩 보고 돌아가자고 말했다.
리더는 고개를 흔들었다.
고개 흔들 힘은 용케 있네. 미친 사람.
“엔딩 보면 여긴 닫힐 거야. 우린 로스엘 엔딩을 볼 거니까.”
“그런데요?”
“그러니까 집에 가기 전에 챙길게 더 없는지 봐야해…….”
“그건 그렇네요.”
제니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한 말에 깜짝 놀랐다.
예전 같았으면 자연스럽게 제정신이냐고 물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아깝다고 같이 생각해버렸다.
“으으, 나도 미쳐가고 있어…….”
그럼에도 제니는 리더가 틀을 잡아주는 수색 요령에 따라 날아올랐다.
제일 무리하는 줄 알았는데 까고 보니 제일 팔팔한 것이 제니라 별 수 없었다.
이리저리 무참하게 파괴당한 세상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제니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끝났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메인 던전이라는 거. 클리어 될 수 있구나.
결국 이 세계엔 파티 오르골만이 남았다.
그래, 이 세계에 말이다.
새삼스럽게 하나의 세계가, 왕국이,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이라 여겨졌다.
제니는 지금의 왕국이 첫 왕국이다. 다른 왕국에는 발을 들여 본 적도 없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결국 실패한다면, 그렇다면 혹시 우리 왕국도 미래에 이런 결말을 맞이하는 것일까?
그녀는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제니는 열심히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