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533화
심연 2857층 - 덴버 탈환(4)
꽤 여러 사람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제일 먼저 나온 반응은 불신이다.
“그게 말이 되나?”
갑작스런 작전 변경은 당연히 신뢰를 떨어트린다. 수뇌부가 제정신이 아니라니 하는 병사들의 소문이 돌았다.
대위는 당황해야했다.
“어? 혹시 나 때문인가?”
“그럼 대위님이 뭘 어떻게 하셨어야 했는데요.”
“그러게. 우린 사실 목숨을 구원받은 입장이잖아.”
“알면 진정하고 저기 가서 한잔 합시다.”
병장이 대위를 달래며 주점으로 갔다. 나라꼴이 이 모양인 마당에 호황인 사업은 총기나 주점들 뿐이다.
그리고 대위는 술이 꽤 약했고 안타깝게도 옆의 병장도 그랬다.
어차피 출전 후 돌아올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대고 말한다.
군에서도 그걸 말리진 않았다. 내일의 태양을 못 볼지도 모르지 않나.
따라서 작전의 결행일은 새벽이 아닌 그날 오후로 미루어졌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병사들이 정신은 차릴 시간이 필요했다.
* * *
철저한 군기 유지? 그건 원래 불가능한 일이다. 싸우라는 것도 무리한 부탁일 수 있는 불행한 시대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최후의 술 한 잔이 될지도 모르는 대위와 병장은 마구 입을 털어대었다.
“내가 봤다니까. 그 기사단장 양반 총을 한 발도 안 쏘고 상대했어.”
“안 쏘는 게 뭐야. 애초에 들고 있지도 않았는데요. 말은 똑바로 해야죠. 대위님.”
그게 말이 되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기사단이 검을 쓰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물론 화기를 안 쓰는 경우는 드물다.
요원들의 주무기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총이다.
플라즈마 소드라고 한들 부무장에 불과하다. 초인적인 신체능력과 훈련으로 습득한 경험이 있다한들 애초에 인간이 아닌 것을 이길 수는 없다.
문명의 이기인 총기를 누구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도 기사단이라 불리게 된 전과의 대다수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병사들에게 더 강렬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은 야음에 번쩍이는 눈부신 검.
총싸움은 그들도 잘할 수 있다. 요원들이 더 잘할 뿐이다.
하지만 검과 권총으로 벌레들 사이를 헤집는 행위는 그들이 차마 못하는 일이다.
둘 중 무엇이 더 인상적인지는 자명하다.
기사단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자체가 그런 것에서 기인했다.
요원들은 모든 무기를 적재적소에 다루고 파괴적인 전과를 이루어낸다.
엄호하는 군대가 없다면 이룰 수 없는 전과이며 온갖 기타등등 현실적인 요인들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기사였다.
시대착오적이기에 낭만.
그리고 이런 험난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낭만이다.
“야, 그게 말이 되냐?”
하지만 마침내 말이 되냐는 반문이 등장했다.
대위는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
“네가 못 봐서 그래. 임마. 거 뭐냐 소드마스터? 그게 눈앞에 나타난 거 같더라니까.”
“새꺄. 소설 좀 그만 봐.”
“야, 근데 난 기사단 본 적 있거든?”
다른 이의 증언도 이어진다.
“저쯤 거리가 있다고 치자. 거기서 총알이 다되니까 그냥 던져버리고 앗하는 순간 칼을 들고 있더라고.”
그리고 한순간에 번쩍, 화려한 몸짓 발짓으로 그 장면을 묘사한다.
“이렇게. 이렇게. 그러니까 그냥 무 썰 듯이 썰리더라.”
“아, 나 그 칼 주워서 써봤어.”
“제식이랑 다르지?”
“다르긴 한데 난 그렇게 못 썰겠더라고. 따라하다가 죽을 뻔 했잖아. 그건 기술이야. 기술.”
무슨 기술인지는 모른다. 검술은 현대 군인에게 아주 낯선 개념이다.
그래도 뭔가, 뭔가가 다르다는 것은 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작전을 위해 모여드는 병사들의 주둔지에 그런 이야기가 퍼져 나간다.
과장은 아주 쉽게 일어난다. 술기운과 출정 직전의 흥분이 더해지면 더더욱 그렇다.
어느 새 부풀리고 부풀려진 농담은 그 덩치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번 작전이 변경된 이유가 기사단장이 돌아와서라더라.”
“거대 괴수를 상대로 겐사이 기지를 방어했다던데.”
“그것들 물 넘어 잘 안 오잖아.”
“궤도에서 투하했다던데?”
“아냐, 생체 함대가 직접 대기권에 내려왔다더라.”
이제 다들 같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이라는 거 그거 사람은 맞냐?”
“그 요원들은 사람 같았어?”
“아니지, 닌자 같았지.”
“씹덕새끼.”
“나루토도 안 본 네가 불쌍하다.”
“틀딱새끼…….”
신빙성 있는 소문도 돌기 시작한다.
“전신 의체 사이보그라더라.”
“악력이 10톤이 넘는다더라.”
“날개가 있어 하늘을 날아다닌다더라.”
“마법을 쓸 줄 알아서 번개를 부르고 비바람을 몰아치게 한다더라.”
신빙성은 무슨, 그냥 헛소문이다.
다들 진지하게 그걸 믿지는 않았다.
그냥 믿고 싶을 뿐이었다.
모두가 뭔가 바라고 있다.
사령부에서도 작전을 앞둔 병사들이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을 방관했다.
실패를 대비하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 기사단장이라는 남자가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소문 전부가 사실이다 못해 축소되어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이 세계에는 아직 없었다.
베르는 확실히 비슷한 얼굴임에도 이지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나는 그리히를 물렸고 다른 요원들도 물렸다.
다들 내 생환에 감격하고 안도하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내 명령으로 다들 물러가자 베르가 몇 가지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뭔지 대충 알아보았다. 도청 방지 장치다. 어떤 방식으로도 엿들을 수 없도록 한 거겠지.
베르는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누구죠?”
그래 모두가 바보는 아니겠지.
그 눈은 불신으로 가득 차있다.
그저 내 신원이 의심스럽다는 수준이 아니다. ‘오르골’이 살아 돌아올 수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자의 태도다.
“흠, 내가 죽은걸 봤군.”
“나라고 말하지 마라. 넌 아버지가 아니다.”
“인정하지.”
베르는 그렇다고 무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특별히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다 아는 채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오르골’을 만들어낸 것이 눈앞의 여성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하지만 관련이 깊은 사람이긴 해. 사후세계를 믿나?”
“멍청한 녀석이면 처분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베르가 무기를 든다. 아직 살기는 없다.
“난 블랑쉐의 부탁을 받고 왔다.”
아무런 살기 없이 총탄이 발포되었다. 죽이려는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오른손을 노린 것 같다. 이 정장은 방탄이니까 뭐.
당연하지만 천사의 육신에 평범한 총탄은 박히지 않는다.
그걸 넘어서 손바닥을 펼치고 붙잡았다.
날개를 편다.
머리 위에도 링이 떠올랐을 것이다. 페도라를 빼낸다.
정장 입은 천사라. 기묘하군.
“이러면 사후세계에 대한 증명이 되나?”
“…….”
베르의 얼굴에 처음으로 놀라움이 드러났다.
침착하기 위한 짧은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말한다.
“일어난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그랬지.”
“오르골의 말인가?”
“잘 아는 사이라더니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았던 모양이지?”
“블랑쉐와 더 친해서.”
나는 먼저 자리에 착석했다.
의자는 고급스러웠다. 조직은 이렇게 된 마당에도 그 기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양이다.
그 뭐냐, 슈퍼 스파이 같은 컨셉 있지 않나.
베르 역시 속은 슈트일지언정 지금의 복장은 말끔한 정장이다.
그녀도 옆에 앉는다.
“좋아, 목적이 뭐지? 블랑쉐의 부탁? 그 바보가?”
“여기서도 바보인건 알았나보군.”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했겠지만, 대부분은 알고 있지. 그리히도 그렇고 수행능력이 좋은 녀석들은 약간 머리가 나쁜 거 같긴 해.”
“너는?”
“나는 둘 다 뛰어나지.”
코드네임이 색인 시점에서 그렇긴 할 것이다.
베르는 초록색이다.
순흑과 순백, 그리고 그 사이의 회색을 받지 못했지만 초록이면 충분히 인정받는다는 뜻.
“여길 좀 구해달라고 하던데.”
“니미럴 소리 말고 구체적으로 말해.”
나는 천천히 미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각색은 한다.
사이에 있었던 많은 내용들이 생략되고, 특히 ‘오르골’과 적대했던 부분이 사라진다.
대충 그는 미궁에서 불행하게 죽었고 나는 바깥으로 잠깐 나올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 나온 인물이 되었다.
블랑쉐는 그런 내게 협조했고 말이다.
“내가 어떻게 너를 믿지?”
“믿고 싶어야지.”
손가락을 튀겼다.
간단한 환영으로 떠오르는 우주.
하지만 그것이 투영하는 것은 화성에서 떠나오며 수집한 되다만 포식자들의 현 상황이다.
화성과 달을 나누어 보여준다.
“화성에 도착해 냉동 수면 중이던 그리히를 구조해 데려왔다. 지구부터 차근차근 쓸어버리려고. 내게 그런 힘이 있단 것을 어떻게 하면 믿어줄까?”
베르는 어떤 속임수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건 없다. 몇 가지 장비를 통한 측정이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인상이 왈칵 일그러진다.
“이렇게 하면 좋겠군.”
신뢰를 사두면 편해진다.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베르가 대행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패가 될 필요가 있다.
장거리 순간이동을 준비했다.
베르가 무언가 하려고 할 때, 얼른 붙잡고 마비를 걸었다.
마법적 마비를 제대로 저항해낼 방도는 없다. 그런 대응은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
번쩍이며 공간의 균열이 열리고 멀리 떨어진 숲으로 봐두었던 둥지 하나에 도달한다.
베르는 작전을 입안했으니 여기가 어딘지 알 것이다.
상공에서 그녀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진다.
“마법을 믿나?”
운석을 소환한다. 적당한 수준의 미티어 스웜이 사방에 깔리며 둥지 하나를 갈아마셨다.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남발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동시에 블랑쉐의 등불을 확인했다.
대량의 벌레들이 죽어나가며 등불이 흔들리고 있다.
조금 멀어질 것이다.
장엄한 광경일 것이었다.
머나먼 외우주에서 소환된 암석들은 자비없이 숲이었던 곳은 초토화시킨다.
둥지는 튀어 오르고 뭉개졌다.
땅이 흔들리고 뒤틀린다. 떨어진 것이 전혀 미사일이 아니란 점은 유전 조작의 초인인 베르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여파가 잠잠해진 후, 베르가 침착하게 대꾸한다. 몸을 마비시켰을 뿐 대화는 가능하게 해두었으니까.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지? 제한 사항은 없나?”
과연, ‘오르골’이 자리를 비워도 곧장 조직을 이어받을만한 판단력이다.
“제한 사항은 내가 직접 죽이는 걸 많이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정도.”
“교전이 불가해?”
“아예 본거지에서 하이브 마인드를 상대하는 것은 해줄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참수를 하지 않으면 곤란하지.”
“시간은 얼마나 있는 것인가.”
이건 잠깐 생각을 해봐야겠다.
블랑쉐가 여길 지켜달라고 했으니 해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달씩은 쓸 수 없다.
여긴 결국 심연의 일개 층이다.
“보름?”
베르가 크게 실망하는 듯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보름 안에 가능한가?”
“하이브 마인드의 위치를 안 다면.”
“자유로운 이동 능력, 초자연적인 화력……. 방금 그게 최대 화력은 아니지?”
“학살이 아니라면 수백 수천 번이라도 할 수 있다. 원한다면 저기 태양을 꺼트릴 수도 있는데.”
“넌……. 신인가.”
“그렇다고 해두자고.”
본래 신이 강림하면 제약을 받는 법이다. 어쩔 수 없지. 인간계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는 없지 않나.
“그렇군. 그래서……. 작전이 그렇게 바뀐 거군. 난 미군이 드디어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미친 건 네가 될 거야. 나는 계속 너희들의 수장 행세를 할 테니 너는 그걸 유지해줘.”
“좋다. 그렇게 하겠다. 그…….”
“그냥 오르골이라고 부르면 된다. 우연찮게도 동명이인이거든.”
말이 잘 통하는 인원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오르골’행세를 언제까지고 똑바로 할 수 있다곤 생각지 않는다.
베르는 훌륭하게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내 능력에 대해, 그리고 순수하게 베르가 궁금해 하는 미궁의 일부 사실을 더 논의한 후, 새로 바뀐 작전에 대해 전달받았다.
미국의 꿍꿍이는 대충 알 것 같았지만 내가 입안한 것에서 디테일만 보강될 뿐 큰 차이는 없었다.
그리고 강력한 요청으로서 내가 알게 된 포식자들의 습성에 대한 정보 요구가 있었다.
이제와서 숨길 이유는 없기에 낱낱이 일러 주었다.
화성에서 11년간 생존하며 알아낸 것으로 해두자.
그 외에도 요원들까지 모아놓고 임무에 대한 브리핑까지 시작한다.
몇 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블랑쉐가 언급한 이들 중 일부다.
코드네임의 위계가 낮은 이들 중에서는 이제 갓 성인이 된 것 같은 어린애들도 있다. 11년 전에는 유아였겠지.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루시를 통해 블랑쉐에게 빈자리에 관해 전달했다.
블랑쉐는 제니와 계속 행동 중인 모양이다.
블랑쉐가 애도를 표했다.
[그녀들도 미궁에 올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어쩌면 다른 회차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믿겠다.]
그리고 날이 밝고, 오후가 되었다. 술에서 깨어난 병사들이 무장하고 거창한 연설 따위는 없이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 가장 앞에는 내가 탄 지휘차량이 있다.
베르와 그리히가 함께하는 중이다.
“덴버에 도달할 때까지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리히가 힘차게 대답한다. 긴장이 묻어난다.
블랑쉐 같은 냉철함은 없으나, 훨씬 더 인간적이다.
확실히, 포식자 병력의 수는 적었다. 척후에 가까운 것들만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둥지들 대다수가 휴면에 들어갔으니 더할 것이다.
소화를 위한 효율적 체계지만 그래서 틈이 생긴다.
병력들은 진격했다.
나는 몇 가지 오래 전에 만들어낸 마법들을 테스트 중이었다.
심연에서 이런 식의 스테이지에 떨어질 경우 필요해지는 마법이다.
내가 직접 죽이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왜곡한다.
하지만 내가 강화한 다른 이들이 전투를 벌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침 ‘오르골’ 본인도 앞장서는 타입이라기보단 뒤에서 음험하게 굴다가 중대한 순간에만 나서는 녀석이다.
딱 좋다.
사방으로 실시간으로 마력의 실을 뻗어놓고 눈을 감은 척하며 맹렬하게 컨트롤 했다.
포탄의 각도를 틀고, 벌레들의 감각기를 교란한다.
위험한 병사가 있으면 밀어주고, 안 좋은 방향에 급습이 들어오면 순간적인 마력방벽으로 저지했다.
그렇게 거리낌 없는 전속 전진을 구현한다.
신이 돕는것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돕고 있다…….
불과 반나절 만에 무너진 도시 덴버, 본격적인 전장이 나타났다.
해가 기울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전에 여길 싹 밀어버리고 소탕해야한다.
나는 차량에서 일어섰다.
기진맥진했다.
“직접 싸우는 게 훨씬 쉽지.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