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536화
심연 2857층 - 파나마 운하까지(2)
퍼레이드란 것은 그 이름에 비해서는 더 단출하게 진행되었다.
확실히 이 미증유의 재앙을 여기까지 버티며 끌고 온 인류도 무능하지는 않다.
도리어 기이할 정도로 무능하다고 보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나로서는 24세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으나 화성이나 달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지구 거주자들에게는 단합의 계기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 상태로 더 큰 외부의 적이 나타나자 생각보다는 괜찮은 미래가 그려진 모양이지.
그리고 ‘오르골’이 상당한 낭만주의자였던 것은 돌고 돌아 이런 환경에서 더 큰 시너지로 작용했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정말 눈부시군. 자네 그런 조직 설립하지 않았으면 배우 했겠어.”
“생각해 본 적 없다.”
“쯧쯧, 까칠하기는.”
정치인들이란 건 당연하게도 화술이 좋다. 그리고 느물느물하며 뻔뻔한 태도까지 완벽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나이에 대통령이 되진 못했겠지.
하지만 그림이 된다는 점은 나 역시 동의한다.
오르골의 패션은 객관적으로 아주 멋있고 간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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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작전에 나서지 않을 때는 오르골과 흡사한 여성 정장을 착용한다. 일종의 정복인 셈이다.
덴버에서 출발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다.
카메라는 처음부터 담을 것이다.
수많은 시민들, 그리고 북미 외부의 생존자들이 이 장면을 시청한다.
따라서 뭔가 사건이 벌어지면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다.
“대통령. 나는 이 퍼레이드를 반대했다.”
“그 말은 그만하지. 영웅의 얼굴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나. 자네 조직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하하하.”
“그냥 알아두란 말이지.”
원래 같으면 그도 이걸 일종의 암시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지도자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인상만 보더라도 이렇게 구김 없이 웃는 것이 얼마만인가 생각하게 되는 얼굴이다.
“암, 알아두고말고. 난 모르겠어. 이제 그냥 자네가 다 알아서 해! 대통령도 할 텐가? 난 솔직히 이거 하기 싫다네.”
농담이겠지만 아주 빈말이 아닌 게 무섭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은 몇 년 만에 신이 난 건지 모를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건 다른 정부 수반들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일이 없어도 너무 없다. 별 것 아닌 전과도 최대한 확대해서 선전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 전과는 오히려 축소해야 말이 되기에 덴버 시가전이 이루어진 기간을 늘려야 했다.
너무 허황되었기 때문이다.
장성들도 정복을 입고 도착했다.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기사단이 다 거기에 있는데 도대체 뭐가 위험하냐는 한마디로 일축되었다.
일종의 과다뽕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
뭐 유도하고 있는 것이긴 하다.
그리고 이제 생중계되는 가운데 한 번 더 유도할 생각이고.
오버시어의 위치를 확인했다.
기회를 노리는 것 같다.
주둔군이 적은 퍼레이드 중을 노리게 될 것이다.
새벽의 급습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을 테니까.
대군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이동 중을 노리겠지.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대통령은 내 옆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대충 뚜껑을 딴 의전용 차량이다. 험비 같은 거랑은 또 좀 다른 것 같은데 24세기에도 그걸 쓰고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주 경계가 허술한 것은 아니다.
덴버를 유지해야 하기에 전 병력이 동원된 것이 아닐 뿐 VIP 경호에 걸맞은 수준의 병력들이 포진해 있다.
전차를 비롯한 웅장함 위주인 것은 별수 없다.
다들 흥분해 있기도 했다.
탓하긴 뭐했다.
나로서도 11년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해왔으면 이런 날엔 흥분할 것이다.
미쳐 날뛰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위성정찰로도 근방의 포식자 병력은 덴버에서 몰살당한 것으로 확인되었기에 이루어진 것이기도 했다.
요원들은 각자의 차량, 바이크 같이 생기긴 했는데 좀 다른 것들을 타고 주변을 호위한다.
사실 퍼레이드라기보다는 그냥 의전용 차량에 대통령과 내가 앉아 있을 뿐인 진군이나 다름이 없다.
어차피 요원들의 정장 속에는 수트가 있기도 하고 말이지.
대통령은 쉴 틈 없이 떠들어대었다.
“자네가 어찌 생각할진 몰라도 이로써 우리는 완전한 화합을 이루었다고 알려질걸세. 희망의 봉화를 쏘아 올린 셈이지. 많은 이들에게 이 전투는 전설이자 신화로 남을 것이며 인류의 꺾이지 않는 정신의 산물로 기억될 것이야.”
“그건 좋은 일이지.”
“자, 그럼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역시 아무나 대통령 하는 건 아닌가. 갑자기 눈빛이 바뀐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뭘 한다고 해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도록 하지.”
카메라가 찍는 와중이지만 그럼에도 밀담이다. 입 모양은 노출되지 않도록 카메라가 신경 쓰고 있다.
기가 막히는구만.
“멕시코까지 밀어야 한다. 나머지 정리는 알아서 해야 할 거야.”
“기사단은 강하지. 하지만 진정 강한 것은 자네 혼자야. 그걸 나머지 모두가 감당할 수는 없어. 민 후에 뭘 하려는 건가.”
“하이브 마인드를 잡으러 가야지.”
“그건 무린데.”
“무리가 아니다. 생존자들이 있다지? 일단 아시아로 건너갈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흠. 알겠군. 거점 삼아 그곳의 오버시어부터 토벌하는 건가.”
“잘도 믿는군. 말같지도 않다고 생각하지 않나?”
“물론 그리 생각하지.”
대통령은 다시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오늘 일도 무리야. 다시 이렇게 사상자 하나 없는 전투가 벌어지진 못하겠지. 그래도 자네는 벌레가 얼마건 몰려오더라도 감당할 자신이 있는 것 아닌가.”
“거점만 존재한다면 가능하다. 방어 정도라면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렇지. 저것들의 함대까지 나선다면 끝이지. 우리 수중에 남은 우주군은 거의 없으니까.”
“그게 문제다. 그러니 속전속결만이 답이지.”
대통령이 진중하게 묻는다.
“다른 일은 그럼 자네가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겠네. 우린 지원만 하면 되는 거겠지. 안 그런가?”
“그렇다. 원하는 걸 잘 아는군.”
“그래도 북미 수복까진 도와줘야겠어. 안 그러면 우린 어차피 끝이러고.”
“오버시어를 치고 갈 생각이다. 하이브 마인드에게 도달하기 전까지 가능한 많은 오버시어들을.”
“그럼 어떻게 되나?”
대통령의 생각이 보인다. 내가 화성에서도 그렇게 헤쳐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야생 짐승으로 돌아간다.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지.”
“좋아. 이해했네. 그래도 일단 덴버의 병기들을 테스트할 시간은 있어야지.”
대통령이 주변을 본다. 이족보행병기들은 함께 움직이고 있다.
애초에 이 퍼레이드는 저것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호송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토 방어로도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실험 병기였다고 하는 모양이다.
전쟁 초기에는 미처 저들을 가동하기도 전에 전력이 끊어졌었다. 대혼란의 시기였다.
“그나저나 자네는 참 바빠 보이는군.”
“…….”
“뭐에 쫓기는 진 모르겠네. 인간인지도 의심스러우니까. 그게 잘 이루어지면 좋겠군. 이 바람만큼은 순수한 호의야. 아무런 꿍꿍이도 없지.”
침묵하는 게 ‘오르골’다울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난 재수가 참 없었지. 되는 게 없지 뭔가. 그래도 자네 덕에 인류가 다시 지구를 되찾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순 있게 되었군. 앞으로도 이렇게만 잘되면 좋겠어. 정말로.”
문득 주름살이 더 깊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이런 순간에 늙는 것일지도 모르지.
“얼마만의 좋은 일인가.”
그 말에 담긴 회한을 나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
내 미궁 공략도 그렇지.
감상에 잠겨 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대통령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버시어의 병력이 근방까지 도달했다.
“전투 준비 시키지.”
“음?”
대통령은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었으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믿었다.
곧바로 장성들에게 전달되었다.
대열이 멈춰 선다.
“좋아, 기사단장. 잘 부탁하네. 생중계의 와중에 한 번 더 인류의 힘을 보여줘!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얼간이들에게 진짜가 뭔지 보여주란 말이야!”
목청으로 당선되었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냥 베르와 수작을 부리지 않고 전적으로 의지해도 좋을 것 같다.
한순간에 이 상황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이득을 파악했다.
생각해 보면 그래. 이 사람 천조국 황상이지?
덴버를 잃은 대가는 가혹했다. 하이브 마인드는 잠깐의 휴면에서 깨어나 자신의 부하를 질책했다.
언어화되지 않은 정신적 외침이 오버시어의 뇌리를 강타했다.
물리적 충격에 가까운 고통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어머니의 질책이 끝나고 오버시어는 해야 할 일을 명받았다.
어느 세계나 이례적으로 강력한 단일 개체는 존재한다.
이번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좀 심하긴 하나 늘 그렇듯 해내면 된다.
그 단일 개체를 제거한다면 인류는 딱히 군단의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우습게도 저것들이 도리어 방심하고 있다.
결국 수복한 땅이 넓어질수록 방어는 취약해지는 법이다.
하이브 마인드가 오비시어를 질책한 내용도 따지고 보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군단의 절대다수가 주변 행성의 궤도상으로 돌아가 휴면 중이다.
이 행성의 에너지를 채취하는 동안 절약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성계로 떠나 새로운 행성을 발견할 때까지 축적이 된다.
그것이 군단의 생존방식이다.
오버시어의 실책은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게 된 것 그 자체다.
그러니 수습에도 최선의 효율을 추구해야 했다.
오버시어는 기묘한 쇳덩이들을 보며 고찰했다.
저것은 무기인가?
포식의 대상은 아니다. 저것들은 그런 쇳덩이를 활용하여 군단에 저항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무기라고 보는 것이 옳다.
오버시어는 타이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반응하여 주변에 있는 다른 오버시어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타이탄들을 이동시켰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애당초 이번 휴면기가 지나고 나서는 북쪽에 자리 잡은 유기체들을 마저 수확할 작정이었으니.
군단이 움직인다. 최초의 교훈은 잊지 않고 있다.
검은 복장을 한 유기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주변으로 알 수 없는 힘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두 오버시어는 휘하의 전 병력을 동원했다.
하늘에서 폭발하는 인화성 변이체들이 쏟아진다.
궤도상에 존재하는 생체 분광기도 열기를 집중하여 아래로 내리쬔다.
강력한 열량의 광선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아니, 일어야 했다.
모든 것이 일순 무효화되었다.
오버시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군단의 네트워크를 타고 찾기 시작했으나 어떤 지식도 저것이 무엇인지 가리키지는 못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다.
오버시어는 다시 실패했음을 깨닫는다.
타이탄들이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소형 개체들이 무리를 지어 교란하며 어떻게든 피해를 누적시키고자 한다.
관찰능력을 확보한 모든 군단의 개체들이 검은 유기체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온갖 힘과 에너지들을 포착할 수 있는 그것들의 시야에도 검은 유기체가 발하는 힘에 대한 단서는 없었다.
그것은 그저 작용했으며 그저 존재했다.
오버시어는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 뇌리에 새겨진 하이브 마인드의 명령을 떠올린다.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취하라.
결국 전부 하나가 되리라.
군단은 하나다.
저 검은 유기체는 죽여서는 안 된다.
잡아야 한다.
판단이 끝났다.
두 오버시어는 합의를 보았으며 하이브 마인드가 다음번에 깨어날 때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기 위해 물러나려고 했다.
바로 근방의 공간에 이상이 발생했다.
위상이 붕괴하고 있다.
군단의 생체 전함들이 초장거리를 급속히 이동할 때 사용하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
요컨대, 공간이 열렸다.
“거기 가만히 좀 있어 봐.”
언어는 분석이 끝나 있다. 오버시어는 당황했다.
호위하고 있던 강력한 소수 정예 개체들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지 않았다.
생명 활동이 정지했다.
오버시어는 서둘러 다른 병력들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응답은 없었다.
무엇도 수신하지 못하고 있다.
단 하나만이 그것의 신호를 수신하고 응답했다.
의아하다는 듯이.
“그래. 그래. 착하지. 네놈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좀 알아봐야겠다.”
비로소 괴물은 전율했다.
언제 일어난 일인지 모른다.
관찰하고 있던 개체들이 방금 전까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검은 유기체가 제 군대를 보호하며 움직이는 것을 말이다.
하이브 마인드를 위한 기록을 남기는 순간까지도 그랬다.
그다음 순간.
모든 것이 죽었다.
본인의 감각기관을 맹렬하게 활성화한다.
주변에 포진해 있던 무수한 호위병력들.
모두 그 자리에서 생명 활동을 정지했다.
뒤늦게 감지되는 상공의 감시형 개체들.
비행 중이던 자세 그대로, 일부는 날개의 펄럭임마저 남은 채로 활동을 정지했다.
오버시어는 자신에게, 그리고 군단에게 없던 감각을 떠올렸다.
공포.
그리고 이 행성의 유기체들을 분석하며 알게 된 개념을 떠올렸다.
죽음.
눈앞의 검은 유기체는 죽음이었다.
“너를 단말 삼으면 내가 다른 괴물들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넌 어떻게 생각하니.”
오버시어는 움직이지 못했다.
겁에 질린 지휘 개체는 그대로 자신의 감각기가 차단되는 것을, 그리고 신경계와 두뇌가 마비되며 장악되어 가는 것을 기록했다.
그 이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하이브 마인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발견한 기록의 전부다.
그 곁에 있던 다른 오버시어는 개체는 그런 기록조차 남기지 못했다.
하이브 마인드는 그 기록 중 감정에 해당하는 부분을 지우려고 했다.
불가능했다. 생물의 본능이 그것을 거부한다.
군단의 네트워크에 약간의 공포가 새겨졌다.
아직은 약간이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사소하지만 지금 이곳의 수준에서 하는 전투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베르, 나중에 미군에게 전달해. 다시 도색할 일이 있다면 검정으로 하라고.”
“왜지?”
“은하의, 아니, 저 벌레들은 검은 것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 반응이 좀 둔해지는 효과가 있어.”
“……?”
왜 그런지는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은하의 포식자]는 기본적으로 색을 지워 버리는 형태로 마력을 섭취한다.
그래서 어떤 색도 남기지 않는 무채색, 검정과는 또 다른 밋밋한 세상을 만들어낸다.
딱히 어둠의 검은 색에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암전과 검정은 다르다.
그들이 색을 삼키지 못할 때에 한정하여 온전히 남아 있는 검정색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솔직히 별로 쓸데는 없다. 기본적으로 세상의 색을 지워 버리니까.
그래도 뭐, 여기 벌레들이 그것의 과거라는 설정이라면 마찬가지로 검정색이 효과를 보이지 않을까?
[은하의 포식자] 공략으로서는 쓸모가 없었기에 잊고 있던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