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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550화 (54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50화

심연 4402층 - 신들의 황혼(1)

다른 모든 변수보다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나는 마법 구사를 전혀 사리지 않았다.

헤임달은 홀로 이 세계의 아서왕 전설을 독파했고, 그 내용을 내게 설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대에 덧붙여지기 전의 아서왕 전설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비약이 너무 심했다.

모든 면이 내가 아는 내 동료 아서와 일치했다.

심지어 첫 등장부터 노인이었다는 점도 같다.

노인 아서왕은 원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내용이다.

아예 브리튼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아서의 사고를 추적해본다.

그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지.

아마 여기 도착한 후에 멀린에 대한 단서나 자신의 부재에 대해 확인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세계가 아님도 깨달았겠지.

북유럽 신화 기반의 신들에 대해서는 아서도 에길에게 들어서 안다.

그렇게 온 몸으로 신앙을 뿜어내는 발할라바라기를 보면 모를 수가 없다.

아서 역시 이곳이 에길의 세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아서에게는 내게 주어진 것보다 더 소박한 수준의 과업이 주어졌던 모양인데.

라그나로크를 막으란 게 임무는 아니었으니 끝마치고 떠난 게 아닐까?

하지만 전설이 되어 남을 정도라면 또 꽤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선 아직 여기 있을 수도 있다.

그는 악마이기에 수명으로부터는 자유롭다.

그게 아니더라도 각자 카드를 어느 정도 상비한 상황이기도 하다.

정 안되면 요정으로라도 수명을 연장하며 버틸 수 있다.

일단 이곳은 아서가 원하던 동료들이 있던 세계는 아니다. 원탁의 기사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멀린도 없다.

그러니 파티의 일원으로서 행동하고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내가 따라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다른 파티원들과도 각각 시간이 엇갈렸을 수 있겠지.

찾아야할 것은 아서가 어떻게 카멜롯을 지었나.

일단 날아올랐고 상공에서 브리튼 전체를 샅샅이 훑는다. 마법을 아끼지 않는다.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시야를 멀티태스킹하며 성터를 찾아본다.

[추정컨대 지상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뭐 아발론이라도 만들었나?

몇 년 후의 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아서는 꽤 능숙하게 마법을 구사하는 모양이었다.

이 세계의 전설에 묘사된 아서는 마검사에 더 가까웠으니까.

그야말로 초인적인 힘으로 초자연적 존재들을 척살하며 사람들을 지킨 전설의 용사 그 자체다.

“그럼 마법의 흔적을 찾는 게 맞겠군.”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당신의 동료라면 비슷한 종류의 마법을 구사하겠죠.]

그냥 막대한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헤임달이 하얗게 질리더니 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멀어진다.

“그래 좀 멀리 있어.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노심을 만들어볼까 생각했지만 그렇게까진 안 해도 소모를 감당할 수 있다.

거대한 마력으로 지상을 스캔한다. 블랑쉐 월드처럼 하나하나 파악하는 것이 아닌데다 지구 전역이 대상도 아니다.

작은 섬은 금세 훑어졌다.

헤임달은 창백한 상태로 내게 돌아왔다.

“그건 무슨 공격입니까? 아래는 무사한가요?”

“무해한데.”

“그런 힘의 파문이요?”

정해진 의식이나 절차를 통해 마력을 다루니까 너무 낯선 모양이네.

그냥 힘을 모아서 퍼뜨리고 그 반향정위를 할 뿐이라고 하자 헤임달은 또다시 시무룩해졌다.

“혹시 저도 배울 수 있습니까?”

“넌 신성이 뒤섞여있어서 좀 다른 요령이 필요할건데 나중에 가르쳐 줄게.”

“감사합니다. 토르님으로부터 더 잘 도망칠 수 있겠군요.”

아직도 묠니르에 머리가 깨지지 않은 게 신기한 녀석이군.

반향정위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거대한 마력탐지에서 내가 읽을 것은 마법의 흔적뿐이다.

물리적 지형은 중요하지 않다.

아서가 생각하기에도 마법적인 무언가가 가장 우리만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을 테지.

에길조차도 마력탐지 정도는 구사할 수 있다. 그걸 위해 마법을 배우러 갔다가 블랑쉐와 친구가 되기도 했고 말이야.

무수한 신호가 감지된다.

역시 어중간하게 마법적인 세계가 마법의 발달은 더욱 더딘 경향이 있다.

일상이 마법이니 따로 연구를 하지 않는 이유에서다.

용이 아니더라도 유니콘 같아 보이는 녀석부터 해서 거대한 뱀이나 씨 서펜트, 초자연적 사이즈의 곰 따위가 자연적인 마법적 생물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때때로 마력이 깃든 우물이나 샘 같은 곳도 보인다.

숲 하나가 엄청나게 매지컬한 것도 눈에 띄였다. 전설에서 요정의 숲이니 어쩌니한 곳은 대체로 저런 장소다.

계곡도 절벽도 산도 다 지나서 눈부신 빛처럼 느껴지는 곳이 하나 있었다.

“빙고. 아서 이제 마법 좀 치는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술식의 조짐이 보였다.

위치는 외딴 산속이었다. 정상이며 험준한 산세여서 일상적으로 누군가 찾아올만한 곳은 아니다.

헤임달은 도착하고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서의 기술이 아주 좋았다기보다는 이론이 없는 마법의 한계다.

“여기 뭐가 있단 거죠?”

“아발론이라고 이름 붙인 그 섬이 있나본데. 그 속에 카멜롯이 있겠군.”

전설에 나오는 이상향. 아서는 철저하게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긴 모양이다.

그리고 미아가 즐겨 사용하는 형태의 술식 베이스가 보인다.

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미아가 마법을 구사하는 것을 항상 봐온 우리 파티원들이라면 못 여는 수가 없다.

공간이 입을 벌린다.

공간이동 특유의 보랏빛 균열이 아닌 눈부신 금빛의 균열이었다.

그 속에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맙소사.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계속 따라올 거야?”

“전설의 마지막이 흥미로우니 따라가야죠.”

공간의 유지에는 지맥을 활용한 듯 하다. 자체적으로 마력의 흐름이 풍부한 땅이다보니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술식 자체는 기초적인 아공간 구성이지만 그렇기에 불안정함 없이 깔끔했다.

기교는 찾아볼 수 없으나 그 덕에 투박하다기보다도 정갈해진 아서다운 느낌의 마법이다.

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귄다.

사과나무에는 사과도 달려있다.

아서 본인은 이곳에 없는 것 같았다.

“이건 어렵다기보단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형태의 술식인데.”

아서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1년 이상은 이 공간을 준비했을 것 같다.

섬 가운데는 역시나 커다란 성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는 아발론이 아닌 곳에 세워졌던 성입니다. 옮겨졌다고 하던데요.”

“그렇군. 무슨 일이 있었나본데.”

“그냥 우리에게 들킬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성에는 묘하게 생활감이 있다.

전설상에는 아서왕의 동료에 대한 묘사가 없었지만 실제로는 알려지지 않은 현지 조력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군대라고 할 정도는 아니나 준하는 조직 정도는 되어 보인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누가 봐도 성주가 거주할 것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검소한 침대와 여러모로 아서다운 깔끔함이 남아있다.

침대 위에는 이번에도 편지가 남아있었다.

[아마 이 편지를 보게 되는 것은 리더라고 생각하네. 루시에게 문의해본 결과 에길이 알던 자신의 세상과 흡사하다더군.]

생각해보니 저쪽은 서로에게 확인을 해볼 수 있잖아.

[……오랜 논의 끝에 결국 이후에 리더가 이곳에 도달하게 될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네. 에길은 추억 속의 음유시인에 대하여 이야기했지. 그는 말하더군. 사실은 알아보았다고 말이야.]

흠, 그렇군. 확실히 여기까지 임팩트를 남긴 인물을 잊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 에길은 그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간 여러 에길과 쉬이 친해졌던 사실에 대해서 생각난다.

초회자의 에길도 그랬다.

모든 에길은 어쩌면 처음부터 나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패기 넘치는 어린 미취학 아동이 어떻게 그렇게 입이 무거운 전사가 되었는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처음부터 그런 일이었나 보다.

에길은 나의 스승이었고 나는 에길의 스승이다.

재밌는 일이로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 여러 가지 사실이 추슬러진 후에는 리더에게 들은 것이 있어 오히려 입을 다물게 되었다고 하네.]

에길은 내가 시간의 앞뒤에 대해 아주 조심하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그대로 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역시 나를 통해 깨달았겠지.

[필사적으로 생각해본 결과 아무래도 오르골 에길슨이 그의 어린 시절에 도달하는 것은 파티의 제법 먼 미래라는 결론을 홀로 내렸었다는 모양이야. 그래서 그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지.]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확실히 처음 보았을 때의 나는 뱀파이어였고, 이내 인간이 되었다.

아마 에길은 첫 번째 메인던전부터 더욱 조심하게 되었으리라.

메인 던전에서 뭔가 단추가 어긋난다면 그게 가장 위험하다.

[동시에 변수만 없다면 리더가 잘 해낼 거라는 확신 역시 있었던 모양이야.]

그건 고마운데.

변수를 줄이려는 내 필사적인 행동에 동조해줬단 거 아냐. 역시 이번 회차는 동료운이 좋다.

[에길이 몇 가지 자신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네. 아주 아름다운 곳, 아발론이라고 소개받은 곳의 성에 들어갔다고 말이야. 세상의 종말 같은 것이 닥쳐올 때 그래서 안전했다고 하는군.]

시간에는 앞도 뒤도 없다.

그러니 이런 일도 일어난다.

끝없이 순환하는 닫힌 시간의 고리.

그걸 굳이 파괴해 변수를 만들 이유는 전혀 없음이라.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 어이없어했지. 그냥 나보고 만들라는 것 아닌가. 미아양이 많은 도움을 줬네. 오래 걸렸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나 역시 파티원들의 시간에서 탈락했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

나도 걱정보다는 다른 생각이 들고 있다.

운명이란 걸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으나 앞뒤 없는 시간은 때로는 운명 그 자체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더라도 결국 만나게 될 거라고 확신하네. 무언가 잘못되더라도 그 끝의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겠지. 그런 생각이 드네.]

마지막은 짧은 한 문장이었다.

[우린 성공할걸세. 언젠지 모를 미래에 다시 만나지. 리더.]

어쩌면 내가 살던 지구의 아서왕 전설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천년쯤 지나면 원탁의 기사는 저절로 생겨나겠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르기에 더 재밌는 일들이다.

언제인지 모를 미래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게이머로서의 생각이 고개를 든다.

“심연이 완전히 파티플레이 던전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군.”

솔로 플레이를 한다? 불가능한 형태의 무언가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혹은 굉장히 안 좋은 결말만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더 심하게는 고정 NPC들과 사이가 영영 틀어지는 쪽으로 이 순환이 무너졌을 수도 있다.

솔로 구간과 파티플레이 구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과업을 도와야하는 구조다.

“소통 불가능한 협력 게임이야? 너무 쉽지 않은데.”

그런 것 치고는 우리 파티는 놀라울 정도로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움직일 필요가 있겠군.

“헤임달. 라그나로크는 어떻게 일어나는 거지?”

“예? 제가 갈라르호른을 불면 전투가 개시되는 그거죠. 뭐 별거겠습니까.”

“아니, 그 무대가 어디냐고.”

“아스가르드 아닐까요?”

“미드가르드인 것 같아.”

“예언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예언이요. 운명이지.”

에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서술되어 있었다.

그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그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도 충분했다.

미드가르드에서 에길을 살려둘 방법이 없을 정도로 개판이 벌어질 예정인 것 같다.

그걸 위해 존재하는 아발론이다.

꽤나 서사시적인 이야기군.

아서는 아발론을 완성하고 나자 계단이 생겨났다고 했다.

처음부터 나를 위한 준비 때문에 이곳에 도달한 모양이다.

라그나로크를 미연에 방지하진 못하고, 일단 그 이후의 에길의 삶은 평범했다고 하니까 해결은 하는 모양이군.

그리고 특기할 사항이 하나 있었다.

에길은 자신이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내가 말했던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여럿 기억했다고 한다. 그래서 쉬이 납득했다고.

근데 지금 여긴 평평하잖아.

“혹시 내가 천지창조도 해주고 가야하나.”

정말 쉽지 않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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