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558화 (558/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58화

심연 4402층 - 요르문간드(1)

즉사기를 들고 있니 뭐니 해도 여긴 근본적으로 4천 층대 쩌리다.

무슨 수단을 들고 나올지 모를 게릴라보다는 자신감에 차서 덤벼오는 편이 더 좋다.

그러므로 로키는 악수를 두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오딘의 준마 슬레이프니르는 번쩍이며 날아다니지만 정말로 자유비행이냐면 그렇지는 않다.

저 말은 생각보다 전투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직선으로만 움직이는 탓이다.

오딘이 저걸 타고 전투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무기가 반드시 적중하는 궁니르이기 때문이다.

로키는 정말 온갖 보물들을 제 마음대로 불러내었다.

저주가 묻어나는 궁니르는 충분히 강력하고 검붉게 변질된 묠니르의 번개도 강력하다.

하지만 위협적이냐고 한다면 더 위협적인 것들이 미궁에는 많다.

궁니르를 쳐낸다. 다시 나를 노리고 돌아 온다 다시 쳐낸다.

그냥 계속 이렇게 하면 된다.

묠니르의 번개는 로키가 사용하자 그것에 깃든 신성을 상실했다.

단순히 강력한 원소줄기에 지나지 않은 그것들을 주술의 요령으로 포집한다.

* * *

되돌려 줄 필요도 없다. 주변으로 아무렇게나 흘리면 된다.

슬레이프니르는 정신없이 오간다.

그러나 궤적은 뻔하다.

로키는 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서 그대로 미스틸테인을 들고 랜스차징을 시도했다.

일단 광속인만큼 맞으면 죽긴 한다.

미스틸테인인만큼 스치면 죽긴 한다.

하지만 미궁의 많은 공격들은 언제나 맞으면 죽긴 했다.

그걸 안 맞으니까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로키의 움직임은 노련한 전사의 것은 아니다. 차라리 암살자다.

번뜩이는 섬광에 반응하는 것은 늦다.

하지만 빛의 속력이라도 그것을 제어하는 로키의 신경계와 사고 속도는 빛이 아니다.

사라짐과 동시에 그 방향을 본다.

그러면 약간이라도 먼저 로키의 이동경로를 따라 빛이 그어지는 것이 보였다.

슬레이프니르의 약점 중 하나다. 빛을 낸다. 광량이 결코 작지 않다.

멀리서도 저걸 타고 있다면 환히 보인다.

정신없는 경로를 그려 교란시킨 후, 단숨에 나에게 돌격.

이번에는 자신이 좀 더 있었던 모양이다.

피를 질질 흘리는 붉은 궤적이 빛의 꽁무니에 남았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에는 이미 로키가 내 눈앞에 도달해있다.

나는 그걸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검의 주인인 미카엘은 어떻게 자신의 광속을 통제하였던가.

그는 속력에 의존하지 않았다. 검이라는 무기를 다루는 기본기에 다른 모든 것을 맡겼다.

빛의 속력이라는 자신의 권능과 특징을 주로 삼지 않았다.

마지막에 인간으로서 죽은 천사다웠다.

그가 자신의 광속을 써먹은 방식은 예측이다.

정해진 경로를 한순간에 나아가니 그것을 이용하여 검술 안에 담는다.

나는 그 속력을 낼 수는 없으나 그 경험을 이용할 수는 있다.

로키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미스틸테인은 스치기만 하면 되는 무기다.

날개를 접으며 표면적을 줄이고, 몸을 낮추고 웅크려 로키가 노릴 곳을 한정한다.

주변에는 마법을 깔아둔다.

걸리면 폭사할 수 있다는 위협은 짧은 공방으로 새겨두었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기동력을 직선적인 주행에 의존하는 로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몸의 우측으로 머리카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며 빛이 지나가려고 한다.

나는 이미 검을 내밀고 들고 있었다.

벨 필요도 없다.

대상이 광속으로 움직인다면 날에 닿기만 하더라도 빛의 속도로 베는 것과 같다.

무지개 빛 피가 튀었다.

“슬레이프니르는 죽으면 살아나나?”

[그렇긴 합니다.]

살아나니까 미래에 존재하고 있겠지. 방금 말이 죽었다.

로키는 그 가속력을 다시 제 몸을 원소화하며 무마했다.

그래도 신은 신이다. 미궁의 마법사들이 저것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얻는 이점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나 집중력을 놓치는 순간 즉사한다는 위험이 더 크다.

그나저나 원래 제대로 된 빛의 속력이라면 더 이상한 일이 있어야 할 텐데.

이런 시스템적 빛의 속력은 상대성 이론을 적용받는 물리적 법칙이라기보다는 히트 스캔을 뜻하는 형태라고 봐야할까.

로키는 원소화 되었음에도 아주 성대하게 처박혔다.

이건 확실하게 처박힌 것이 맞다.

물리적으로는 뭔가 붕괴해야할 정도의 충격이다.

빙하가 조각나기 시작한다.

“아이고, 요르문간드 깨어나면 안 되는데.”

무력화된 로키를 쫓는다. 이 빙하는 지맥이 흐르지 않는다. 로키는 비틀거리는 듯했지만 다시 독기의 안개 같은 것으로 흩어졌다.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요령이면 되나.”

데이 워커를 만나면 대낮의 안개에 휩쓸리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광역.

손가락을 튀기는 소매틱을 기점으로 사방에 원소의 폭격을 내렸다.

그리고 그 틈에 주변을 불길의 장벽으로 뒤덮는다.

뱀파이어는 강력한 마법사에게 약하다.

로키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으로 이내 제 모습을 되찾았다.

드라우프니르의 방어막이 모든 것을 막아낸다.

저걸 뚫는 것이 관건이다. 이제 기동력이 없으니 그냥 죽을 때까지 치면 될 것 같긴 한데.

검을 하나 더 꺼냈다.

정밀도보다는 쌍검에 의한 난무가 더 유효할 것이다.

미스틸테인은 다른 곳에도 활용할 수 있겠군.

그리고 헤임달이 갑자기 말했다.

[걀라르호른도 로키의 손을 거친 적이 있던가……?]

“야, 너 빨리 확인. 아니 안 해도 되겠다.”

날개를 펼치고 한순간의 제로소닉으로 음속에 도달한다. 도주를 차단하기 위해서만 싸두었으나 안에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로키가 무언가 꺼내든다. 술잔 같아 보이는 그 뿔피리는 틀림없이 라그나로크를 알리는 뿔피리다.

깨어난 때가 되기 전에 일어난 라그나로크에 제 자식을 참전시킬 생각이다.

뿌우우- 크허헉!

기괴한 피리 소리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 로키는 피했다. 얼굴의 반쪽이 날아가고 오른 손목이 날아가 묠니르가 떨어진다.

쿵 소리와 함께 전격이 빙하의 전체로 순간 번뜩였다.

붕괴하던 빙하의 일부가 전격에 녹고 더 잘게 부스러진다.

로키의 멱살부터 틀어쥔다. 마력을 흘리며 원소화의 여지를 막는다.

일종의 마력방벽을 로키 주변에 둘렀다.

로키는 반만 남은 입꼬리를 세웠다. 조각난 머릿속에서는 장기 대신 저주가 된 신성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다음은 펜리르군. 찾아가고 있는 중인 모양이야. 여길 먼저 온 게 아니라 동시에 움직였군.”

그리고 그대로 허물어졌다.

“뭐야. 이거 잠시만. 진짜가 아닌가? 헤임달. 어떻게 생각해?”

재빨리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헤임달이 걀라르호른을 가져간다. 그리고 낭패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로키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습니다. 단순히 약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럼 빨리 말했어야지.”

“당신이 너무 센 줄 알았죠.”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스칼라그림에게 두들겨 맞은 이유인가?

저주의 불길이 빙하 위를 타고 흐른다. 점점 크게 번져나가며 새하얀 북극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이거 진짜가 아니군.”

“어쩌면 진짜라는 개념을 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수한 자신으로 나눠버렸단 건가?”

“변신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겠죠.”

“고유한 권능을 그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군.”

미궁에는 많은 스킬들이 존재하지만 자신과 동등한 분신을 만들어내는 스킬은 없다.

모든 분신은 제한적으로 명령을 수행하거나 교란을 할 뿐이다.

자체적으로 능동 행동이 가능하진 않다.

“제 본질을 쪼개 버린 겁니다. 이건……. 죽음을 각오했다기보다는 이미 죽은 거군요. 살아움직이는 모든 로키는 살아 움직이는 시신입니다. 저승에도 도달할 수 없겠죠. 로키 당신은 대체…….”

떨어진 보물들부터 회수했다. 묠니르와 미스틸테인, 그리고 궁니르.

“이걸 어떤 기전으로 가져갈 수 있는거지.”

“저도 모릅니다.”

“너 진짜 쓸모없다.”

“비밀이 너무 많은 녀석이었어요…….”

서둘러 마력의 실을 연결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만은 알 수 있어야한다.

보물들은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곳에 연결된 마력의 실들이 한순간 팽팽하게 늘어났다가 끊어졌다.

끊어진 방향은 제각각이다.

“드라우프니르가 아래로 이동했어.”

“방향을 알 수 있으십니까?”

“맞아. 지하라기엔 너무 멀다는 느낌인데. 펜리르겠군.”

“방금 이것이 죽음으로서 로키는 더 약해졌을 겁니다.”

이 새끼 게릴라 할 줄 아네. 처음부터 라그나로크는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로키가 홀로 다른 모든 신의 견제를 따돌리고 그 많은 멸망의 시작이 될 수는 없었겠지.

어느 순간 자신을 포기했다.

미카엘과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그는 스스로 세계멸망을 기도하는 재앙이 되기를 원했다.

“애가 왜 이렇게 원한이 많은 거야? 잘 좀 해주지 그랬어.”

“글쎄요. 아직도 의문입니다. 그의 인격이 별다른 이유 없이 조금씩 뒤틀려가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우리가 로키를 막대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다툼 정도로 이렇게까지 될 거라곤 믿을 수 없다구요.”

라그나로크가 정해진 미래라면 그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것이긴 하다.

“흠, 일단 이미 늦은 것 같군.”

“요르문간드가 깨어나겠군요.”

“미드가르드가 박살나냐 아니냐의 문젠데. 좋은 생각 있어?”

“없습니다. 다만, 인간들을 더 많이 살려둘 수는 있겠지요. 완전히 산산조각나진 않을 것 아닙니까.”

입맛을 다신다. 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르릉 소리와 함께 빙하가 조각나는 것이 더욱 가속된다.

로키의 일부가 남긴 저주의 불길이 빙하 전체로 번지고 있다. 썩어도 신이다. 저건 정화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제 생명과 신격 일부를 조각내 불사르는 원념의 불길이다.

요르문간드를 차라리 빨리 깨워 떨어트리는 편이 낫겠다.

미드가르드를 휘감은 뱀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헤임달에게 부탁했다.

“마력을 움직이는 요령은 너도 알잖아. 이렇게 하면 열릴 거야.”

“당신이 지켜보던 그 전사들의 안식처군요. 로키는 왜 그들을 노린겁니까?”

“라그나로크 이후의 초인인 모양이던데.”

“과연.”

헤임달이 떠나간다. 스칼라그림과 에길은 무사할 것이다.

아래쪽에서 로키의 불길과는 별개로 새로운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라그나로크에서 토르는 이 뱀과 싸워 이기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엔 저 독기를 이겨내지 못한다.

일곱 걸음을 걷고 쓰러져 죽는다고 하던가.

미궁적으로는 아주 강력한 저주의 침식으로 구현되어 있다.

펜리르가 물리적으로는 너무나도 강인해 내부로 들어가 싸워야하는 기믹 보스라면 요르문간드는 좀 더 정직한 보스다.

그래도 다르게는 저 독기 말고는 특수한 기믹이 없다.

단지 아주 크고 아주 힘이 세며 비행이 가능한 뱀일 뿐이다.

굳이 난이도를 따진다면 악룡 맥 선생님보다 낮다.

문제는 저 녀석이 만들어낼 파괴의 여파다.

얼른 죽여 펜리르 옆에 던져놔야겠다.

로키를 상대하기 위해 활성화시킨 버프는 아직 남아있다.

지금은 물리적 파괴를 만들어낼 때다. 빙하를 깨부수고 요르문간드를 미드가르드로부터 최대한 분리해내야 한다.

그리고 미궁의 마법사들에게는 유서깊은 환경 조성 마법이 있다.

너무 많이 써서 숨 쉬는 것보다도 자연스럽게 술식이 구현된다.

이 세계의 상공에도 조각난 세상의 파편은 얼마건 있다.

그 모든 것을 아주 정확한 위치에 떨어트려야 했다.

정밀할 필요는 없다.

미드가르드가 좀 부서지겠지만 가장자리만 집중적으로 박살나는 편이 뱀 자체가 날뛰는 것보다는 낫겠지.

낙하지점을 세상의 주변, 마치 피자의 테두리를 끊어내듯 정한다.

[미티어 스웜]

점선을 따라 뜯어내듯이 세심하게 불러일으켰다.

이 빙하와 미드가르드의 다른 육지 사이에는 두터운 바다가 있으니 충격을 완화할 것이다.

무수한 운석들이 눈을 뜨는 뱀의 가장자리를 노리고 낙하한다.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눈이 빙하 아래에서 눈을 뜨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눈꺼풀 속의 눈은 제주도 정도는 통째로 들어갈 것 같다.

눈은 모든 생물의 약점이다.

쌍검을 들고 그대로 요르문간드의 눈알을 향해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운석들이 주변에 쏟아지며 요르문간드의 방하를 세상으로부터 분리하기 시작한다.

헤임달은 꽤나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자신이 떠나온 빙하의 가장자리를 보았다.

그 역시 광명의 신이자 전령 역을 담당하고 있는 신.

저자보다 느릴 뿐 충분히 빠르다.

세상을 둘러싸고 불타오르는 바위들이 커튼처럼 내려앉고 있다.

과학을 모르는 헤임달도 그것이 불러올 충격량과 세상에 미칠 여파 정도는 계산할 수 있다.

“이게 라그나로크 아닌가?”

저걸 철저하게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에 내린다면 그게 종말이지.

“역시 질 것 같진 않은데.”

그런데 어떻게 이길지도 상상은 안 된다.

토르는 예언에 따라 승리해야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겨야할지를 자주 고민하곤 했다.

모범 사례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 무수한 질량들이 이대로 미드가르드의 가장자리에 일제히 떨어진다면……. 모든 바닷물이 끓어올라 육지로 넘쳐흐를 것이다.

“인간들에게는 홍수가 일어나 세상의 모든 것이 쓸려나갔다는 식으로 전해지겠어.”

설화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법이지.

일단 그 해일보단 빨라야 한다. 헤임달은 최선을 다해 날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