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561화 (56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61화

심연 4402층 - 요르문간드(4)

미드가르드의 지하에 태양과 섬광이 번뜩이고, 세계의 뱀이 몸부림치는 동안 지상은 가혹한 일을 겪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던 수많은 이들은 끔찍한 지진을 겪어야 했다.

서있던 아이가 지상의 반동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불안정하던 산이 무너지는 것을 넘어 흘러내렸다.

대자연이 그런 마당에 건축물이 멀쩡할 수는 없다.

부러지고, 쏟아지고, 찌그러지고, 일그러졌다.

파묻히고, 구르고, 깔리고, 무언가 폭발했다.

땅이 갈라지며 마그마가 치솟는다. 대지에서 불길이 치솟고 하늘이 갈라졌다.

어떻게도 말할 수 없는 수준의 끔찍한 재앙이 미드가르드 전역에 닥쳤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늘에 빛나던 붉은 별은 충분히 불길했고, 적어도 무언가 재앙이 있으리라는 것 정도는 알렸다.

그래도 대비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죽었다.

그렇게 첫 번째 지진파가 지나갔다.

간신히 살아남은 인간들은 그 다음으로 닥쳐올 재앙을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세계의 끝을 알리는 빙하들이 있었다.

* * *

* * *

* * *

높은 곳에서 세상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하얗게 얼어붙어 있는 벽들.

그런데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타난 것은 그만큼이나 높고 거대한 푸른 벽.

그것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파도라는 것을 몇몇 사람들이 눈치 챘다.

평평한 세상이기에 도달하려면 한참이 남은 지진해일도 너무나 쉽게 관측된다.

절망하거나 발버둥 쳤다.

그렇게 세상의 가장자리부터 세상 끝에서 오는 파도가 삼켜가기 시작한다.

라그나르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지진이 닥쳤을 때, 혹시 몰라 파두었던 땅굴은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 속에 있던 일부 병사들이 매몰되었다.

그리고 그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파도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그냥 잘못 보았나 싶을 정도던 것이 점점 기세를 올리며 높아진다.

물이 일어서서 대지를 후려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조금 더 먼 곳의 대지를 쓸어버린다.

멀고도 멀지만 그래도 라그나르의 눈에는 보였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사람이 급류에 휩쓸린 개미마냥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모두 엎드려라! 무기를 땅에 꽂아라. 최선을 다해 꽂아라! 바위 뒤에 숨어라! 아니, 아예 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워라! 어떻게든 쓸려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땅을 파서 급에 직격당하지 말아라!”

그게 효과가 있을지조차 알 수 없으나 생각나는 대로 주워섬겼다.

평생을 단련한 근육과 그나마 높은 지형지물에 기도하며 라그나르는 숨을 죽였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파도들은 노르웨이의 산들을 제대로 넘지 못했다.

물은 넘쳤으되 산이 흔들리는 선에서 끝났다.

대지를 타고 흘러오는 바로 위쪽의 파도들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땅 위로 흐르니 점점 수위가 낮아진다.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파도가 마침내 도달했다.

라그나르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사력을 다해 땅에 박은 기둥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숨을 참았다.

세찬 물살이 숨었던 바위를 밀어내 덮어버린다. 등줄기에 힘을 주고 깔려 죽지 않기 위해 용을 쓴다.

지옥에 지옥을 더한 것 같은 아득한 시간이 지난 후, 라그나르는 세상이 잠잠해졌다고 느꼈다.

숨이 턱 끝까지 닿아 있다.

온몸을 버둥거리며 위로 솟았다.

깊이 파묻히지는 않았다. 겨우 숨을 들이쉰 라그나르는 세상의 몰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올라가 있던 야트막한 산은 잠깐이나마 섬이 되어 있다.

지나간 파도가 저 너머 먼 곳을 향해 뻗고 있음이 보인다.

“살아 있는 녀석 더 없나!”

곳곳에서 신음이나 대답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라그나르는 신께 감사했다.

오딘, 토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감사했다.

앞으로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

헤임달은 스칼라그림을 아발론으로 인도했다.

다시 보아도 감탄만이 나오는 이상향이다.

바깥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극히 ‘물리적인’ 현상인 이상 이곳만큼은 안전할 것이다.

어린 에길과 그 친구들은 아직도 상황이 잘 파악되지 않는 것 같았다.

“바깥이 위험하니 숨는 것이란다.”

“전사는 모든 것에 맞서는 것 아닌가요?”

“신인 나에게도 덤빌 생각이니?”

“……그건 아닙니다.”

“자연 역시 그런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실 헤임달은 신도 저런 건 못한다고 생각하는 와중이다.

운석은 어떻게 부르는 거지? 오딘이 남겨둔 세계의 파편들을 저렇게 정교한 파괴로 만들어내는 것.

보지 않았다면 가능하다고 믿을 리가 없다.

그리고 스칼라그림의 무리를 아발론으로 집어넣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무지막지한 지진해일은 아스가르드 전체를 청소하며 다가오고 있던 참이다.

그나마 다른 육지의 뒤에 숨은 땅은 훨씬 낫다.

하지만 충격지점 사이에 다른 방파제가 없는 땅들은 그야말로 물속에 잠겨들고 있다.

바깥으로 쏟아지니만큼 결국 빠지겠으나,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위치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죽으리라.

헤임달은 생각했다.

자신은 신이다.

어쨌건 이 모든 미드가르드의 인간들을 굽어 살피던 신이다.

아무도 시키지는 않았으나 그리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남은 채 공중으로 떠오른다.

세상을 굽어볼 만큼 높이 떠올랐다.

파도는 이제 막 시작되어 있다.

노르웨이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발두르가 없는 이상 나만이 광명의 신이지. 인간들에게 광명이 있으라.”

짧은 시간 안에 운명에서 벗어난 이가 어떤 식으로 힘을 다루는지 보아왔다.

거기서 깨달은 것은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특별히 출력이 부족하진 않다는 것이다.

애초에 출력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게 문제다.

모든 힘을 막연하게 다루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엄밀하게 사용되는 모습을 보아왔다.

새로운 개념이란 것은 쉬이 스며든다.

헤임달은 어찌보면 애시르 신족으로서 가진 본연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이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빛이여!”

시간은 많았다. 물어보면 대답도 해주었다.

언어와 의식의 일체. 그리고 그로 인해 움직이는 힘.

타고난 빛의 신성과 온 세상에 충만한 원소들.

헤임달은 전령의 상징인 지팡이를 휘둘렀고 그것이 마법적 보조로 기능한다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다.

투박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이었으나 그 또한 마법이었다.

신성을 근간에 둔 원시적인 마법.

하지만 틀림없는 마법.

저 하늘 위에서 세계의 파편을 불러올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눈부신 무언가다.

“장막이 되어라!”

막기에는 택도 없음을 안다. 그저 모든 힘을 짜내어 온 세상의 주변에 해일의 여파를 진정시킬 부드러운 오로라를 만들어냈다.

이 세계에 뿌리를 박고 그 신앙을 자양분 삼을 수 있는 어떤 신이 만들어낸 이적이었다.

산마저도 넘어 세상을 삼킬 푸른 파도가 조금씩 약해져 간다.

헤임달은 제 몸에 깃든 힘들이 역류하는 것을 깨닫는다.

외부에서 더 힘을 끌어다 썼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게 세련되게는 할 수 없다.

“구에에엑…….”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 뻗었다.

뻗은 자리는 공중이다.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어지럽다. 헤임달은 의식을 잃었다.

그래도 한마디 주둥아리를 놀렸다.

“이건 쓸모 있었지…….”

좀 더 많은 인간들을 구했다.

기분이 이상하다. 포를 뜨는 듯한 짓만 벌써 30분 이상 하고 있다.

요르문간드는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빠르다.

이미 미드가르드는 저 높은 곳에 있었다.

거리낄 것 없이 부딪힌다.

요르문간드가 입을 벌리고 내게 돌진해 왔다.

크게 선회한 탓에 꼬리로 퇴로를 막고 있다.

꼬리치기를 하는 동시에 날 삼킬 만큼이나 거대하다.

하지만 이 뱀에게 나는 지나치게 작다.

제 꼬리에 스스로 얻어맞는다.

타격이랄 정도는 아니다.

나는 출혈을 누적하고 있다.

몸을 이루는 저주들이 빠져나간다.

피부는 가장 거대한 장기다. 내장을 건드리지 않고도 그 몸에 흐르는 저주를 점차 뽑아낸다.

산맥이 움직이는 듯한 롤러코스터가 내 옆을 지나간다.

한참 전부터 이것만 반복하고 있다.

크게 선회하며 다시 나를 삼키려고 하고 꼬리로 옥죄려고 한다.

저주 섞인 독액을 뿌려대고 있으나 노심이 남아 있는 내 속력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 힘이 점점 빠지는 것도 느껴진다.

뱀이 다시 크게 선회했다. 행성의 공전을 보는 것 같은 주기가 그대로 회전한다.

자동차만큼이나 빠르다. 하지만 나는 제트기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야를 가득 채워 머리인지 입인지도 알기 힘들지만 맹목적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무식한 질량만은 실감 나게 느껴졌다.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심장에 도달하더라도 그걸 해체하는 데만 천만년은 걸릴 테니까.

삼켜지면 죽는다. 나올 수 없을 확률이 크다.

부활하더라도 뱃속일 테니 진정한 의미의 즉사인 셈이다.

전력으로 비행하고 다시 뱀의 아가리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눈이 멀었기에 정밀하게 나를 삼키려고 들 수 없다.

세차게 지나가는 몸통이 검붉다. 저주와 원념과 피로 물든 검붉은 뱀이다.

다시 한번 긋는다.

검의 길이는 처음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줄었다.

그래도 상처는 아주 많이 누적했다.

대륙을 스케치북 삼아서 낙서를 하듯이 사방을 난도질하고 그어댄다.

아물려고 하던 곳이 다시 덧난다.

핏방울 하나하나가 호수를 메울 만큼 거대하다. 저것에 휘말려도 위험하다.

사방에 스프레이처럼 흩뿌려지는 피의 분무가 내 입장에서는 후려치는 탄막이나 다름없었다.

“어우, 진짜 빡센데.”

머리도 어지럽다.

슬슬 이 멍청한 놈이 발악을 해주면 좋겠는데.

갉아 먹힌다고 인지했을 시간이다. 이대로는 나를 못 잡을 것 같다고 깨닫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때를 노린다.

내 힘이 부족하다면, 상대의 힘을 이용하면 된다.

내가 박살 날 정도라도 상대도 충분히 박살 나면 또 문제없다.

남은 포인트에 여유는 많다.

강해진다기보다는 목숨 자체를 트리거 삼아 쏘아내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그리고 요르문간드는 드디어 내 의도대로 생각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상처에서 피가 더 빠르게 분출되기 시작한다. 혈류가 빨라진 탓이다.

회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식의 소박함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 나를 삼키려고 든다.

틀림없이 달만 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대며 요르문간드의 몸에 깃든 신과 저주의 힘을 짜내었다.

움직임이 빨라진다.

방금 전까지가 롤러코스터였다면 KTX가 되어간다.

물어뜯는 속력이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다.

조금 슬로우 다운하고 있던 노심을 모두 폭주시킨다.

이제 6체밖에 남지 않았으나 거기서 짜내고 아래의 원소로 더한다.

이곳에도 희박하지만 공기는 있다.

풍압만 따지더라도 플라즈마화를 일으킬 지경이다.

주변이 열로 달아오른다.

무시무시한 사이즈의 뱀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인다.

검붉은 뱀은 다른 의미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머리끝에 마찰로 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불길을 두른 저 뱀의 아가리는 내가 떨어트린 메테오보다 수백 배는 강력하리라.

그렇게 미드가르드가 멸망했겠지.

마지막 순간에는 노심 하나를 폭파시켰다. 내가 이동한 게 아니라 나를 쏘아버려야 했다.

날개 한 짝이 너덜너덜해진다. 포션을 삼키고 복구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여 옆을 스쳐 지나간 뱀의 대가리를 겨우 지나칠 수 있었다.

너무 빨라져서 이젠 공격할 틈도 없다.

뱀은 승기를 느끼고 있을까?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선회하고 있는 뱀의 머리가 보인다.

꼬리의 움직임은 포기했다.

요르문간드의 폭주가 충분한 속력에 도달했다.

저 머리에 부딪치기만 해도 나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 뱀에게도 그만큼 아픈 것이 되어야지.

미카엘의 검에 모든 마력을 구겨넣는다.

노심을 해체한다.

그걸 터뜨리고 그 마력을 미끼로 다시 한번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 미드가르드의 그늘 아래, 거대한 어둠이 모여든다.

요르문간드가 흘린 혈액의 저주 역시 모은다. 저주 또한 힘.

남이 버린 힘을 주워 먹는 것은 아주 훌륭한 수단이다.

모든 것이 뒤섞여도 미카엘의 검은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고의적으로 서로 부딪히게 만든다.

서로 다른 성질의 힘들, 신성과 원소와 저주가 검날에 맞부딪히고 날뛴다.

이번에는 단 한 순간이면 된다.

줄어들 대로 줄어든 검의 빛이 증폭된다.

내 모든 빛과 힘, 그리고 생명력마저 미카엘의 무명검에 흘러들었다.

세상을 밝힐 태양을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요르문간드의 입이 다가온다. 음속은 가볍게 넘은 지 오래다.

저런 질량에 부딪히면 죽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곳까지 이 검을 찔러넣을 수 있다.

날을 세운다.

에길에게 단 일격의 미학을 가르친 것은 나다.

근육의 움직임, 마력의 움직임, 그리고 검에 깃든 모든 에너지를 하나로 끌어모아 힘의 특이점을 설정한다.

내 모든 힘이 집약되어 저 뱀의 미간을 꿰뚫어야 한다.

어둠이 흘러들며 정신에 위화감을 끼친다. 저주가 환각을 보여주려고 한다.

안 좋은 마음, 죽음의 공포,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동료들.

어쩌면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의 존재.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다.

어둠을 극복했다?

그것은 오만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둠의 원소가 만드는 정신의 늪은 영원히 가라앉는 곳이 아니다. 대신 디딜 바닥이 있는 어떤 곳이다.

로키는 원소화를 자유자재로 운용했다.

워낙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라 나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미아에게도 이론만 이야기하고 가르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그걸 연습하다 죽은 적이 있다.

원소로 흩어져 나 자신을 되찾지 못했다.

그러나 나 자신마저 동력으로 삼겠다면 나쁘지 않은 발상이다.

몸을 천천히 분해해 간다.

워낙 마력 과잉의 세계이기에 아무것도 없는 공허조차도 힘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 나를 녹여간다.

정신이 흘러내리고 녹아 물든다.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가?

아니.

나는 이미 실체가 없다.

검을 쥔 형체만 남아 있음에도 나는 나다.

그렇군.

내가 죽인 자들을 기억하며, 내게 의지하는 자들을 기억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를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원소화를 그렇게 연습하고도 결국 포기한 것은 나 자신을 규정할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파티 오르골의 리더로서, 동료들이 기다리는 어딘가에 도달해야 한다.

나는 나다.

육신도 정신도 흩어져 검에 깃들었음에도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나로 인식할 수 있었다.

마법은 늘 그렇듯이 인식의 문제다.

뱀의 아가리가 다가온다. 입천장을 노린다.

단숨에 뇌까지 꿰뚫는다.

검극이 뻗어나간다. 요르문간드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 뱀의 죽음을, 적어도 무력화를 상상한다.

한줄기 빛이 되어 나 자신이 검이며 미카엘이 되어 움직였다.

그 순간 나는 빛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정말로 미카엘이 무언가 빌려준 것처럼 전진했다.

[……그건 그렇게 쥐는 게 아니다.]

‘엥?’

[신경 쓰지 마라. 집중이 흩어지지 않나.]

‘아니, 잠시만! 그럼 끝까지 말 걸지 말았어야지!’

[흠. 그런가.]

집중력이 완전히 날아가긴 했으나 문제는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은 하나의 현상으로 정착한 후였다.

지나치게 빠른 속력 사이에서 흐트러질 틈조차도 없다.

길고도 긴 섬광이 뱀의 입천장을 꿰었다. 그리고 그 위쪽, 아득하게 높아 한 장 한 장이 산이나 다름없을 비늘을 꿰고 솟구친다.

요르문간드는 몸부림치며 추락했다.

관성에 의하여 아주 아주 멀리 날아간다. 미드가르드와 너무 멀어지겠는데 하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부활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괜찮은 찌르기군.]

미카엘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흩어지고 있다. 부활 스택이 작동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에도 앞으로 남은 부활 스택 개수를 따져보고 있다.

요르문간드도 경험치는 별로 안 주니까, 심연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부활은 많아봐야 앞으로 3번인가.

[이봐. 죽는 건가?]

미카엘이 몹시 당황한 목소리를 낸다.

이거 에고 소드였나.

[그럼 나는 어떻게 하나. 죽으면 안 된다. 유배자.]

‘부활하니까 진정해.’

[그렇군.]

순식간에 침착해져서 기분이 나쁘네.

의식이 훅 하고 꺼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아이고, 여긴 바닥이군.”

세계가 떠 있는 깊은 무저갱. 펜리르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을 이곳은 신화에 이름이 붙어 있다.

몸 상태를 체크한다.

원소화는 위험하다. 부활조차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인식조차 놓쳐 버리니까 위험한 거다.

“내 육체 질량까지 에너지화해서 공격할 수 있군. 부활 스택의 효율이 더 올라가겠어.”

그리고 내 위치가 쓰러진 요르문간드의 혀 위라는 것도 알겠다. 어둠이 너무 사방에 가득하다.

[여기다. 유배자.]

광원이 하나 있었다.

미카엘의 무명검이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다.

빛의 천사긴 했지……?

대체 뭔지 설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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