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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563화 (563/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63화

심연 4402층 - 대머리 그림(2)

스칼라그림은 아발론이라는 곳에 대하여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에 부드러운 태양빛, 그림자마저 더 안온해 보이는 곳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가운데에 섬과 성이 있다.

섬은 그리 작지도 않았고 다양한 생물들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구성되어있다.

호수에는 물고기도 많았다.

사실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바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짠물이 아니니 호수는 맞다.

“어째서 그가 우리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모르겠군.”

그들의 새 친구가 인간이 아닌 무언가라는 사실엔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어째서?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특히 죽은 아내마저 되돌아오리라는 말을 태연하게 들은 스칼라그림이 그랬다.

“헤임달께서 말하셨지. 그런 운명이라고.”

미신의 시대, 혹은 신화 그 자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답게 정당화는 쉽다.

어떤 운명에 묶여 그들을 돕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름 모를 신이다.

그리 생각하기 꼭 좋았다.

* * *

* * *

* * *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누군가가 로키의 이야기를 했다.

“그 변장을 잘하는 신이라면 재치를 발휘해 우리를 속일 수도 있었겠지.”

스칼라그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손은 그렇지 않았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핏줄이 선다.

정신없이 진행되고 그에 휘말리는 참이지만 그는 아내를 바로 얼마 전에 잃었다.

모두 정신이 없으니 그에 신경을 쓰진 못했다.

이제 한숨 돌리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에길이 물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있나요?”

“곧 내가 찾으러 갈 거란다.”

그렇게 되어야 했다.

성은 오래된 거주의 흔적이 있다.

새로 집을 세울 장비도 무엇도 가지고 오지 못했기에 다행이었다.

그래도 무기 하나만큼은 각자 가지고 왔다.

용도가 조금 맞지 않더라도 나무를 베고 땔감을 만들기엔 충분하다.

그러다가 누가 지적했다.

“땔감이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것도 옳았다. 아주 이상적인 기후가 구현되어 있다.

바깥이랑 비교한다면 눈물 날 정도다.

그들의 고향은 이랬던 적이 없다.

우선 안전이 확보되자 생겨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문과 궁금증.

그들은 정보가 거의 없다.

심지어 사태도 그들이 알던 세상의 방식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러나 설명해줄 이도 없었다.

스칼라그림은 이 무리의 지도자로서 어떻게든 그 부분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전사들은 결코 온순한 양이 아니다.

“내 바깥을 좀 보고 오도록 하지.”

정리가 좀 되고 난 후의 발언이었다.

신이 인도하사, 이곳에 둥지를 트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아야하지 않나.

그걸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세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러나가는 것이다.

헤임달께서는 그들에게 출입방법을 보여주었다.

“간단한 기호였지.”

“외우는 건 주문이었고.”

가벼운 동작과 주문이었다.

[민트색 고양이는 정의다.]

“무슨 뜻일까?”

“우선 외우고는 있었네.”

아발론의 입구는 빛나는 다리처럼 만들어져있다. 그 다리의 가운데에 문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존재하는 문.

바깥에서는 이 문이 보이지조차도 않을 것이다.

헤임달께서 인도한 곳은 높디높은 산봉우리.

이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의 꼭대기였다.

강인한 전사들도 신의 인도가 없었다면 제때 도착하기 힘들 정도로 험준한 곳이다.

그런 곳에 이렇게 비밀과 마법으로 가득한 곳이 존재하리라곤 누구도 상상할 수 없겠지.

미증유의 재앙이 닥쳐오고 있었음은 확실했다.

이 정도 고지대라면 그래도 뭔가 확인하고 돌아올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입구로 가서 그것을 말해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군.”

“발음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민트색 고야이는 즈엉의다.”

결국 방법은 없었다.

몇몇은 어쩌면 자신들이 여기 갇힌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리고 다시 호숫가의 고즈넉한 성을 보며 생각을 바꾸었다.

그냥 여기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갇힌 사람이 만족한다면 그게 감금일까?

다만, 어린 아이들은 호기심을 잔뜩 드러내었다.

놀잇거리가 몇 없는 시대다.

이런 신비한 현상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된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쏘다니며 탐험하고 놀았다.

이런 커다란 성 같은 것은 고향에선 아주 보기드문 것이었다.

어른들은 안전을 확인하고 자유롭게 아이들이 놀도록 내버려두었다.

많은 것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으나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주 많다.

언제까지 이 따뜻한 곳에서 지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준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북구의 차가운 겨울을 벗삼아 지내던 이들에게 ‘준비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은 흔한 격언이 아니다.

그저 일상이다.

로키는 자신을 죽였다.

적극적인 자살이었다.

사실 그것은 죽음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아니다.

저승이 존재하는 세계다.

그런 곳에서 말하는 죽음 이승에서 저승으로 호적을 이동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교류는 제한되고 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지만, 그럼에도 완전한 소멸이 아니다.

로키가 겪은 것은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죽으면 완전히 죽는다.

오딘의 유폐에서 탈출할 방도가 그것뿐이었다.

조금씩 자신을 분리하여 흘려보낸다.

봉인의 얇은 틈새로 거인의 핏줄을 이은 로키라는 신의 거대한 영혼을 조각내어 뿌린다.

세계수의 뿌리를 타고 흘러 바깥에서 로키 본인과 흡사한 존재로 재구성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어느 날 로키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제 로키라는 신은 없다.

수없는 파편으로 조각나 영혼이라 부르기도 힘든 변질된 어떤 힘, 혹은 저주일 뿐이다.

죽어도 저승으로 갈 일은 없을 것이며 그대로 사라진다.

오래 유지할 수도 없다.

천수를 누리며 세상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로키는 죽었다.

남은 것은 그 이름과 모습, 그리고 능력을 빌어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증오와 원념의 덩어리.

인격은 흔적으로만 남았고 지성도 파편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무엇보다 맹목적으로 세상의 마지막을 그린다.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고 달콤한 예언의 실행을.

“어디 있느냐…….”

이런 꼴이 되고나서는 말이 많아졌다.

그렇지 않고서는 목적성을 유지할 수 없다.

흐려지는 자아 비슷한 것을 끝없이 되새기며 유지한다.

여러 로키들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잉글랜드를 돌아다녔다.

세상의 물리적 파멸은 썩어도 신적 존재의 잔재인 로키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땅이 흔들리고 해일이 몰려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가운데, 검은 망토와 후드를 눌러쓴 불길한 존재들은 움직였다.

목적은 한 가지.

예언의 마지막에 이 세상을 재건한다는 초인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미미르의 샘에서 알아내었다.

오딘의 갱신되지 않는 지혜가 아니다.

쓸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쓴다.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현혹하거나 갈취하여, 때때로는 거래까지하며 지나간 이방인들의 흔적을 쫓는다.

중간부터는 조금 더 쉬웠다.

헤임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리적 파괴와 마지막의 마지막에 미드가르드를 지키기 위해 피워 올린 빛의 장막 덕에 사방이 빛이긴 하다.

그래서 이동의 경로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키는 많다.

그의 원념은 수없이 쪼개져도 목적성을 유지하며 활동할 수 있다.

깊고 깊은 저주들이 미드가르드를 헤매고 있다.

아발론을 찾기 위해서.

어린 에길은 이 상황에 사소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전사로서 제 몫을 하기 시작했다.

어른들에게도 인정받고 있다.

또래나 형들보다도 앞서나가고 있다.

몇 안 되는 어린아이들끼리의 사회에서 그것은 대단한 지위이며 명예였다.

전사 에길 스칼라그림손!

얼마나 가슴에 크게 울리는 말인가.

그런데 이제 너무 안온하고 평화로운 곳에 도착해버렸다.

물론 에길도 안다.

바깥에 있다면 누군가는 죽었을 것이다.

그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자신이 좀 더 활약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어린아이다운 치기를 꾹꾹 누르며 내색은 하지 않는다.

철이 빨리 들 수밖에 없는 시대요 환경이었다.

친구들은 평화롭고 따스한 기후를 흥미로워했다.

에길도 잠깐 그런 생각을 한 후에 같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성은 충분히 넓었다.

섬도 충분히 넓었다.

뛰어다니며 놀곳은 너무나도 많았고 위험한 짐승들도 거의 없었다.

어른들은 에길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었다.

“혹여 위험한 들짐승과 마주친다면 네가 아이들을 지켜라.”

유일하게 한 명의 전사로서 신뢰를 받고 있기에 얻을 수 있는 명예였다.

본디 골목대장이었던 에길에게 어른들의 권위마저 부여된다.

활약에 대한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탐험은 모든 어린아이들의 낭만이다.

성의 구석구석 어른들이 미처 가보지 못한 곳도 뒤적이고, 지하실을 발견하며, 그곳에서 낯선 무기들도 얻는다.

그런 전리품들을 어른들에게 가져다주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실제로 제대로 된 장작패기용 도끼나 손질용 칼 같은 것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신이 났다.

어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힘든 나이다.

한 명의 전사인 에길을 우두머리로 사방을 쏘다니며 즐긴다.

그러다가 빛의 다리 건너편에 가기도 했다.

이 섬의 구조물 중에 제일 부자연스럽고 마법적인 것을 고르라면 틀림없이 이 다리다.

“비프로스트일거야!”

“그럼 이 너머로 다시 가면 아스가르드가 있을까?”

어떤 아이는 제 부모에게 들은 것을 떠올렸다.

“이 문을 열 수 있는 주문이 있다고 했어.”

“그게 뭐야?”

“그게 뭐더라…….”

슬쩍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는 어른도 있다.

어차피 열리지 않으니 별로 개의치 않은 탓이다.

“민트색 고양이는 정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몰라. 이거래.”

물론 어른들이 해보았는데 안 되더라는 말도 전했다.

그런다고 해보지 않을 아이들이 아니다.

다들 제각각의 방식으로 주문을 왼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헤임달님이 이 문을 열 때 여기 이렇게 손을 가져다대고 그러지 않았나?”

“막 힘을 불어넣는 것 같았지.”

에길은 그 모든 모습을 무게를 잡으며 보고 있었다.

무게를 잡을 수 있는 입지에 이르렀을 때, 그 무게를 한껏 즐기며 어른인 척 한다.

그러지 않는 어린이는 드물다.

어른들 앞에서야 겸손과 성실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또래 사이에서는 어깨가 쉬이 올라가곤 하는 나이였다.

에길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이들에게 비키라고 했다.

“내가 해보겠다.”

그리고 아이치고는 큼지막한 손을 문에 가져다대고 위엄있게 외쳤다.

“민트색 고양이는 정의다!”

물론 아무 일도 없다.

다들 깔깔대며 웃은 후, 더 실용적인 일에 몰두했다.

섬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일이다.

에길은 그 아이들을 이끌면서 약간 생각에 잠겼다.

“뭔가, 손바닥에서 근질근질했는데.”

따뜻하고 부드럽고, 그리고 어딘가 간질간질한 그런 기운이었다.

에길은 그날부터 그게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아이들의 대장으로서 무게 잡을 일이 많으니 자연스레 딴 생각을 한 탓이다.

“민트색 고양이는 정의다!”

혹시 이 주문 때문일까?

어린 에길은 때때로 그 마법의 주문을 중얼거리게 되었다.

헬은 그녀를 설득한 이방인의 말대로 제 하인이 될 운명이라는 이를 찾아다녔다.

강글로트와 강글라티.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상착의에 대해서 들으며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그러나 그 인상착의라는 것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머리카락이 없고 거인만큼이나 거대하며 힘이 아주 강한 남자. 강글로티.”

그리고 그 아내이자 마찬가지로 근육질의 여성인 강글로트.

자세한 인상착의에 대해서는 조금 미묘하다. 하지만 거인 중에서 이런 외모를 하는 이는 좀 적을 수밖에 없다.

거인들은 좋게 말하면 개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막 생긴 편이다.

그러니 거인 출신의 망자 중에서 알아보아야할 일이었다.

“없는데…….”

헬은 시무룩해졌다.

똑바로 찾아두지 못하면 혼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친아버지한테도 그렇게 혼나본 적 없었는데.”

정말로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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