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거리의 사냥꾼(1)
“칼과 방패를 든 용병이 여관에서 도시 주민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면, 경비대가 가만히 있을 것···어억!”
패래랙―쿵!
손도끼가 여관 주인을 스치고 날아가 벽에 박혔다. 댈런은 목덜미를 긁적였다.
“아, 미안하오. 갑자기 소리를 지르길래 마법사가 주문이라도 외는 줄 알았지 뭐요.”
“으, 으헉······.”
여관 주인은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카운터를 잡고 휘청거렸다. 입에서 침이 주르르 흐르는 게 꽤나 충격이 심했던 모양.
땡그렁!
댈런은 쥐고 있던 단검을 대충 던지고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살이 좀 찢어지긴 했지만, 근육은 거의 상하지 않았다. 스킬의 보정과 23의 근력 계수 덕분이었다.
댈런은 가방에서 붕대 뭉치를 꺼내 능숙하게 손에 감았다. 남은 걸 잘 정리해서 가방에 넣은 그는 떨고 있는 여관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하려던 말이 뭐였소?”
“어, 어어, 그게······.”
왜 말을 못해. 방금 전까지 그렇게 땍땍거리더니?
사실 여관 주인은 경비대를 부를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뒷골목 여관을 운영하면서 경비대와 친할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마약 거래나 불법 매춘이 걸리지 않을까 쉬쉬하면서 피해 다녀야 할 입장일 텐데.
“신고 어쩌고 하던 것 같은데. 진짜 신고하려던 거요, 아니면 그냥 협박이었소?”
우직!
벽에 박힌 도끼를 뽑으며 댈런이 말했다.
산만 한 덩치와 표정 없는 무감정한 얼굴, 갑옷에 튄 혈흔에 손에 쥔 도끼까지 더해지자 여관 주인에게 댈런은 무슨 괴물처럼 느껴졌다.
“히이익!”
여관 주인은 다리가 풀려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댈런은 삐딱하게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내 생각에는 그냥 협박이었던 것 같은데. 살인범으로 감옥에 가고 싶지 않으면, 잠자코 돈을 내놓아 그쪽의 입막음을 하라는 협박.”
댈런은 손도끼를 허리띠에 걸쳐둔 채,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여관 주인에게 툭 던졌다.
안 그래도 하얗게 질려있던 여관 주인의 얼굴은, 그걸 보더니 더 새하얗게 변했다.
“으, 은패!”
그건 댈런의 용병패였다.
수백만이 넘게 모여 사는 도시가 있음에도, 이 땅의 사회 질서는 기껏해야 중세 수준이다.
스스로의 신원을 증명하는 것이 곧 권위와 직결되는 시대. 사람의 위아래가 명확히 나뉘어 있는 신분제 사회.
그리고 이 세계에서 은패 용병이면 중산층 정도는 되는 신분이다.
신원도 불확실한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이런 청동 구역 뒷골목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신분.
뒷골목의 여관을 찾아온 걸 보니 잘해 봐야 동패 용병일 거라 지레짐작했던 여관 주인은,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눈이 달려 있다면 똑똑히 봤겠지. 나는 비무장이었고, 먼저 나를 공격한 건 저 건달이었소. 그런데 여관 주인인 당신은 손님인 나를 보호하기는커녕 저 건달들의 편을 들면서 나를 윽박질렀지.”
“몰랐습니다요, 용병 나으리! 정말, 정말 몰랐습니다!”
“내가 볼 때, 이 가게 주인인 그쪽도 저 건달들과 한 식구인 듯한데.”
댈런은 수염 거뭇한 턱을 쓰다듬었다.
“경비대는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처리할까? 당장에라도 찾아가서 이 일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고 싶어지는데.”
“제, 제발 자비를······.”
여관 주인이 간절한 손길로 댈런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댈런은 그 손을 가만히 뿌리쳤다. 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물론 운 좋게 길에서 주인 없는 돈주머니라도 줍는다면, 오늘 일은 잊어버릴 정도로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르지.”
댈런이 가만히 내민 손바닥에, 여관 주인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자, 이제 누가 돈을 뜯어낼 차례지?
***
“협박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지.”
한 번도 엔딩을 본 적 없다지만, 댈런은 이 게임의 고인물이었다.
무법지대인 청동 구역 뒷골목에서 저런 협박을 당해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NPC가 다짜고짜 협박도 한다는 사실에 놀란 건 처음 몇 번뿐.
그 뒤로는 되려 상대를 압박해서 돈을 뜯어내곤 했다.
‘그래도 여관 주인이라고. 짭짤하게 벌었네.’
상단주에게 받은 돈주머니는 이제 두 배가 넘게 부풀어 있었다.
물론 그 모두가 은화는 아니고, 동화도 좀 섞여있긴 했지만 뭐 어떠랴. 품속의 돈주머니가 묵직해졌다는 건 어찌됐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거기다 건달 놈들의 소지품 중에서도 값나갈 만한 것들은 죄다 털어왔으니, 그것들도 잘 팔면 은화 열 닢 정도는 나오지 싶었다.
능력치와 스킬을 얻고, 거기에 예상 외의 수익까지 얻은 댈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용병 길드 근처의 여관에 도착했다.
「칼과 방패」
댈런은 깔끔한 5층 높이의 석재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며칠 묵으시겠습니까?”
“일단 일주일. 은패 용병이오.”
“은패를 소지하셨으니 아침과 점심은 무료로 제공되며, 저녁식사는 별도 구매입니다. 총 가격은 7실링입니다.”
칼과 방패 여관은 길드와 협약을 맺은 곳이라 꽤 비쌌다. 은패 용병으로 할인을 받았음에도, 하룻밤 투숙에 두 끼 식사까지 은화 한 닢.
돈주머니가 다시 가벼워진 느낌에 댈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돈값은 하니까.’
청동 구역은 위험한 곳이다. 이 도시에 온 지 얼마 안 된 외지인들에게는 특히나 더 그랬다.
대뜸 아무 여관에나 들어갔다가는 자다가 그 여관과 결탁한 건달들에게 뒤통수를 맞을 지도 모른다.
휴식하는 장소만큼은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곳이어야 했다.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은화를 받아서 무게를 달아본 직원은,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열쇠를 건넸다.
“412호입니다. 4층으로 올라가셔서 왼쪽 복도에 있어요.”
댈런은 열쇠를 받자마자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간 그는 곧바로 짐을 전부 풀어두었다. 갑옷도 벗어서 정리해놓고, 무기는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몇 주만에 긴장을 풀고 쉬는 건지. 야영할 때나, 시골의 허름한 여관에서 잠들 땐 갑옷까지 입고 자야 했다.
언제 도적의 화살이나 고블린의 돌팔매가 날아들지 모르니까.
덜컹.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겨울이 되어가는 밤공기는 서늘하고 건조했다.
“후우.”
침대에 걸터앉은 댈런은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여정은 튜토리얼에 불과했다. 게임의 본편이 진행되는 건 이곳, 미궁도시 팔시온에 도착한 이후이니까.
이제부터가 진짜다. 이 세계는 시시각각 멸망에 가까워지고 있다.
소원의 돌을 얻기 위해 미궁을 탐험하는 한편, 세상이 멸망하는 것도 동시에 막아야 했다.
모니터 너머에서만 마주하던 끔찍한 난이도가 이제 현실이 되다니. 괜히 뒷골이 땡겨오는 듯했다.
‘어찌됐건 생존이 제 1 우선순위다.’
미궁이고 멸망이고 살아남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일.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하고, 강해지려면 돈과 경험치가 필요한 법이다.
그중에도 당장은 돈이 더 급했다.
지금의 검과 도끼는 낡았고, 갑옷은 조잡했다. 강력한 성유물은 아니라도, 번듯한 갑옷 한 벌 정도는 있어야 했다.
수중에 가진 은화 한 줌으로는 갑옷은커녕, 제대로 된 여관에서 한 달도 채 살지 못하고 쫓겨날 것이다.
‘거기다 미궁 입구라도 구경하려면 돈이 더 많이 들지.’
간단한 검문만 거치면 들어올 수 있는 청동 구역과 달리, 미궁 입구가 있는 순은 구역의 경비병들은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
순은 구역의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을 세금으로 바쳐야 했다. 그것도 은화가 아닌 금화 단위로.
‘그리고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당장 미궁으로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다.’
미궁은 위험천만한 곳이다. 성급하게 미궁에 발을 들였다간 허무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은패 용병, 아니 금패 용병이라도 순식간에 마물들의 밥이 되어버리는 마경. 그게 바로 미궁이니까.
여긴 더 이상 모니터 너머의 폴리곤 세계가 아니었다. 모든 싸움이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이다.
승산은 최대한으로 높여야 하고, 준비는 아무리 철저해도 모자랐다.
‘계승자 옵션을 최대한 활용해야겠군.’
단 한 구의 시체로 D급 스킬을 얻었다.
거기에 덤으로 얻은 능력치는 원래라면 레벨업을 두 번이나 해야 하는 수치.
수백 번의 플레이동안, 댈런이 남긴 캐릭터의 시체는 대륙 곳곳에 즐비했다.
그것들을 전부 회수한다면, 댈런의 무력은 지금까지의 플레이와는 전혀 다른 궤도로 성장할 터.
‘종말을 막고, 미궁의 끝에 다다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로써 목표는 정해졌다.
첫째는 돈.
둘째는 시체.
‘동시에 둘 다 해결하려면, 좀 특수한 의뢰를 받아야 하겠군.’
용병 길드의 의뢰라 해봐야 주로 나오는 건 뻔했다.
시골 마을에서는 산짐승이나 고블린 퇴치, 도시에서는 상단 호위나 중요 인물 보호겠지.
댈런에게 필요한 건 의뢰 중에 시체를 회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더해 보수까지 높은 의뢰였다.
‘뒷골목에 다시 가봐야겠는데.’
그리고 댈런은 어딜 가면 그런 의뢰를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
다음날, 댈런은 느지막히 점심을 먹고 여관을 나섰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 여관 앞 큰길은 짐수레와 마차, 지나가는 행인들로 붐볐다.
댈런은 넓은 거리에 와글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묘한 향수를 느꼈다.
거대도시의 정경은 고향의 도시와 비슷했다. 다들 자신의 일에 바쁘고,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다는 점에서.
댈런은 사람이 붐비는 대로를 뒤로 하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청동 구역의 뒷골목이라도 대낮에는 밤처럼 위험하지 않았다.
물론 너무 깊이 들어가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적어도 지금 신경 쓸 이야기는 아니었다.
필로폰네 과수원이라 적힌 간판을 지나치고, 꾀죄죄한 행색의 사람들이 줄을 선 우물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뒷골목에는 드문 5층짜리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야트막한 실개천의 돌다리를 건넜다.
청동 구역은 이 도시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구역. 그 뒷골목은 한없이 복잡하지만, 댈런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게임 속에서 수백 수천 번을 오갔던 이 장소는 지도 없이도 찾아갈 수 있었으니까.
비록 게임이 현실이 되면서 도시의 크기는 훨씬 커졌으나, 주요 랜드마크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이상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쯤 골목을 활보한 끝에, 댈런은 마침내 작은 술집 앞에 도착했다.
[까마귀 둥지]
[영업시간 : 오후 6시 ~ 오전 4시]
여긴 그가 가장 애용하는 정보상이자, 뒷세계의 의뢰를 물어와주는 브로커의 거처였다.
딸랑-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댈런은 천천히 술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과 의자들. 보다 안쪽에는 바테이블과 술병이 꽉꽉 들어찬 찬장이 자리했다.
천장의 조명은 마력석을 사용해 불 없이도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청동 구역의 뒷골목에는 어울리지 않는 운치였다.
“아무도 없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영업시간 전이라 그런지, 술집에는 손님도, 주인장이나 바텐더도 없었다.
댈런은 천천히 바 테이블을 돌아 구석의 뒷문으로 다가섰다. 평범보다 좀 더 예민한 감각이 문 뒤쪽의 인기척을 감지했다.
누군가 문 뒤에서 소리를 죽인 채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불청객이 된 건가.
댈런은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문을 일곱 번 두드렸다.
똑. 똑똑똑. 똑. 똑똑.
후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작은 한숨소리.
곧이어 철컹철컹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리더니, 끼익하고 문이 열렸다.
“내가 대체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야? 영업시간 아닐 때는 진짜 급한 일이 아니면 오지 말라고······.”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의 여자는, 문앞에 선 댈런을 발견하고는 말을 멈췄다.
“···처음 보는 얼굴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