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거리의 사냥꾼(3)
돈과 시체 회수.
댈런이 시에나를 찾아간 이유는 그 두 가지를 위해서였다.
뒷골목의 정보상인 시에나가 전해주는 의뢰는, 대부분이 청동 구역의 으슥한 곳이나 낮은 거리에서 진행되는 바.
뒷골목과 낮은 거리 곳곳에 남겨진 옛 캐릭터의 시체를 회수하기에 딱 알맞았다.
돈도 벌고 경험치도 쌓으며, 기회가 될 때마다 시체까지 회수한다. 댈런이 그린 그림은 처음부터 이런 형태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하나.
‘이렇게까지 빨리 찾을 줄 누가 알았겠어.’
팔시온은 수백만이 사는 거대도시다. 그 슬럼가인 낮은 거리의 넓이는 광활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하수도에 반쯤 걸쳐진 채 형성되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낮은 거리. 이곳에서 첫 의뢰만에 시체를 찾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운이 좋았군.’
그를 보며 침을 질질 흘려대는 괴인 앞에서, 댈런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으르르르. 배가, 배가 고파.”
괴인의 눈이 댈런과 마주쳤다. 댈런은 어렵지 않게 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낮은 거리의 보스급 적들 중 하나다.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놈이지. 원래라면 건물을 무슨 모래성처럼 부수고 다니는 괴물이어야 하는데.’
당시 댈런은 사냥꾼 캐릭터를 키우고 있었다. 뛰어난 감각 수치와 야간 시야로 야간 저격에 특화되었던 캐릭터.
청동 구역 주민들을 학살하는 괴인에게 현상금이 붙은 걸 보고, 자신감 있게 의뢰를 수락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실패했지.’
오우거 수준으로 거대해진 괴인은,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달려들었다.
그의 사냥꾼 캐릭터는 그날 놈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배고파. 배고파. 너무 배고파.”
하지만 어째서일까.
지금의 괴인은 그가 알던 모습에 비하면 한없이 약해 보였다.
좀 뒤틀리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사람 비슷한 형상이 남아있으니까.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음에도 2미터에 가까운 체고. 근육질이면서도 군데군데 외소한 불균형한 몸. 여기저기 뭉텅이로 듬성듬성 자라있는 털.
괴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미완성이었다.
“오, 오늘은 머, 먹을 게 많네. 이제 작은 걸로는 배가 안 차.”
“아무래도 튜토리얼이 막 끝난 시점이라 그런 것 같군. 내가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못 본 게 당연해.”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까지, 댈런은 오기로라도 기본 캐릭터만을 고집했었다.
그리고 이 시점의 기본 캐릭터는 연약하다. 낮은 거리는커녕 깊은 뒷골목에도 발을 들이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추가 능력치를 쏟아부은 댈런의 육체는 낮은 거리에서도 충분히 활동할 만한 스펙.
때문에 원래라면 그와 접점 없이 조용히 성장하고 있을 괴물을, 보다 일찍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보스몹이 되기 전에 싹을 잘라버릴 수 있겠군.’
초반 스노우볼이 생각 이상으로 잘 굴러간다.
댈런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연스레 자세를 잡았다.
왼발은 뒤로 빼고 살짝 틀어서. 오른발은 무게중심을 실은 채 조금 더 앞으로. 어깨는 편하게. 팔은 살짝 들어서 가슴께 정도 높이로 올린다.
어제 습득한 스킬, 데하만의 갑주격투는 벌써부터 그의 몸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었다.
어젯밤 한 번의 실전과, 오늘 아침에 잠깐 수련했을 뿐인데도 벌써 숙련도가 10퍼센트를 넘어섰다.
초인적인 지능 능력치가 머릿속에서 스킬을 낱낱이 분해하고 재조합해, 그의 진척을 돕고 있었다.
‘현질이 사기긴 해.’
잡생각이 머릿속에 스친 순간, 괴인이 달려들었다.
“으워어어!”
놈의 몸놀림은 어벙한 말투와는 정반대였다. 괴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혔다.
두 발과 두 손을 다 써서, 마치 네 발 짐승과도 같은 움직임.
거기다 검은색 털과 더러워진 피부는 어둠 속에서 위장색이나 다름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놈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훈련된 병사라도 반응하지 못하고 목이 끊어졌을 일격이었다.
후웅-
그 일격은 허공을 갈랐다. 댈런이 몸을 뒤로 뺐기 때문이다.
무게중심을 슬쩍 왼발로 옮긴 댈런은, 손을 뻗어 괴인의 가슴께를 잡아챘다. 그리고 허리를 틀어 그대로 놈을 던져버렸다.
쿠당탕!
괴인은 벽에 부딪히고 튕겨나와 땅을 굴렀다.
“으, 으헉! 어우! 어우우우!”
이거 더럽게 튼튼하군.
달려들던 속도에 댈런의 힘까지 더해 벽에 들이받았음에도, 놈은 죽지 않고 펄쩍펄쩍 날뛰고 있었다.
벽에 핏자국이 흥건한 것과, 놈의 머리 한쪽이 반쯤 뭉게지다시피 한 걸 보면 몸 자체가 단단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재생력이었다.
가까워진 거리 덕에 댈런은 괴인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놈의 뭉게진 머리에서 뭉클거리며 진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진액은 찢어진 피부와 근육을 뒤덮으며 순식간에 새 조직을 만들어냈다.
이대로 몇 분만 있으면 반쯤 으깨진 머리가 완전히 수복될 기세였다. 이거 진짜 괴물이네.
“아파! 아파! 배고파! 으르르르!”
“지랄을 해라.”
댈런은 검을 뽑아들었다. 두들겨도 재생한다면 아예 토막을 내버리면 되는 일이다.
괴인은 번뜩이는 검을 보고 순간 움츠러드는 것 같더니, 괴성을 지르며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댈런은 잠시 타이밍을 재다가, 그냥 검을 가로로 그었다. 괴인의 뱃가죽이 반으로 갈렸다.
“끄어어어! 아아아악!”
쯧. 얕았군. 댈런은 혀를 찼다.
아예 허리를 잘라버릴 생각이었는데, 절묘한 순간에 놈이 몸을 뒤로 뺐다. 생각보다 괴인의 반사신경이 더 민첩했다.
“어흐, 으아아아!”
괴인은 상처를 부여잡고 땅을 기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완전히 갈라진 터라, 내장은 걷잡을 수 없이 줄줄 흘렀다.
울컥거리며 새어나오는 진액도, 이미 흘러나온 내장을 어찌할 수는 없어 보였다.
댈런은 마무리를 위해 괴인에게 다가갔다. 그때 놈이 소리쳤다.
“아, 아파! 아냐, 나 사람이야! 사람이라고!”
짐승의 그르렁거림이 거의 사라진 목소리. 이 정도면 그냥 감기로 목이 쉬었다 해도 될 수준이었다.
댈런은 검을 들어올리던 손을 내렸다. 그가 말했다.
“정신이 좀 들었나?”
“어흐흑, 어흐흐흐. 들었어. 지금은 멀쩡해.”
댈런은 괴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놈은 멀쩡한 눈 하나로 눈물을 흘리며, 길쭉한 손가락을 놀려 흘러내린 창자를 연신 긁어모으고 있었다.
“나라고 원해서 그런 게 아니야. 사, 사람을 잡아먹다니. 누가 그러고 싶겠어! 그놈들이 내 안에 짐승을 심었어. 그 짐승이 깨어나면 내가 날 주체할 수가 없게 돼.”
“그놈들 누구?”
“나, 나도 몰라. 검은 로브를 입고 가면을 쓴 놈들이었어. 그놈들이 이상한 약물이랑 주술로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어떻게 생긴 가면이었지?”
괴인은 손을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마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것 같았다.
“밋밋한 표면에 엄청 큰 입 모양이 그려진···금빛 가면.”
“음.”
댈런은 턱을 긁적였다. 큰 입 모양 가면이라.
‘그쪽도 시간이 지나면 골치아파지는 놈들이지. 그놈들에 대한 대비도 미리 해 두는 편이 좋겠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머리를 부여잡은 괴인을 보며 댈런은 생각했다.
“어, 어떻게 내가. 내가 사람을, 사람들을······.”
“네 탓이 아니다.”
괴인이 멈췄다.
마치 일시정지를 누른 것 마냥.
“아, 아니라고?”
“너를 그렇게 만든 놈들이 원흉이지. 내가 그들을 없애 주겠다.”
괴인의 눈이 흔들렸다. 반쯤 풀려있던 눈에 처음으로 총기가 깃들었다.
“···복수해주겠다는 거지?”
“그래. 놈들이 네게 한 짓에 대해서.”
괴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놈들이 내 딸의 살점을 먹였어. 내 입을 강제로 벌리고, 살을, 근육을, 내장을, 으흐흑······.”
중얼거림은 이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댈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칼을 칼집에 집어넣고 허리띠에 손가락을 걸쳤다.
괴인은 흐느끼는 얼굴로 그걸 올려다봤다. 그리고 흐느낌은 또 한 번 바뀌어갔다.
“으흐흐, 으흑, 으르르. 으르르릉! 배고파!”
괴인이 달려들었다. 흐르는 내장에도 아랑곳않고, 제 살점과 피로 범벅이 된 손톱을 휘둘렀다.
댈런은 피하는 대신 오히려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허리띠에서 뽑아든 손도끼가 번쩍였다.
툭, 데구르르.
괴인의 머리가 떨어졌다. 머리 잃은 몸은 몇 번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씨발.”
퉷. 댈런은 땅에 침을 뱉었다. 입안이 씁쓸했다.
***
기분이 더러운 건 더러운 거고, 의뢰는 의뢰였다. 댈런은 괴인의 머리를 챙겨 가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괴인이 죽자 그 곁에 회색빛 시체가 생성됐다. 댈런의 옛 사냥꾼 캐릭터. 진득하게 녹아내린 몰골이었다.
[실험체에게 먹힌 사냥꾼의 시체]
- 밤사냥에 능숙하던 사냥꾼의 시체다. 낮은 거리에서 떠돌아다니는 실험체에게 잡아먹혔다.
‘시체 회수.’
[실험체에게 먹힌 사냥꾼의 시체를 회수했습니다. 능력을 계승합니다.]
[계승 보상 : 감각 +2, 체력 +1, 야간 시야(E)]
댈런은 상태창을 열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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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댈런
레벨 : 4
[근력 : 23] [기량 : 12] [체력 : 12]
[감각 : 15] [지능 : 18] [마력 : 8]
스킬 : 데하만의 갑주격투(D), 야간 시야(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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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스킬이 벌써 둘. 거기다 감각 능력치가 초인의 경계에 도달했다.
“후우.”
댈런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감각이 예민해지며 수많은 자극들이 오감을 간질였다.
골목 저 너머의 발걸음. 벽 안쪽에서 쥐떼가 기어다니는 진동. 천장의 미세한 틈에서 새어들어오는 빛줄기.
하수도의 습한 공기 속에 진동하는, 오물과 피의 악취. 그리고 옅은 마약의 냄새.
전에는 알아채지 못하던 미세한 소리와 냄새, 진동까지도 선명하게 뇌리에 박혔다.
높은 지능 수치가 이를 받아들여 선별했다. 자극이 잘게 쪼개고 결합되어 정보로 치환되었다.
“흠.”
댈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며, 그는 언뜻 새로운 감각이 내면에서 눈을 뜨는 걸 자각했다.
아직은 어렴풋한, 하지만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감각.
오감과는 다른 어떤 기이한 감각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다.
‘일단은 여기까지.’
댈런은 눈을 떴다.
힘이 강해질 때마다 느껴지는 고양감은, 분명 그 무엇보다 중독성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의뢰가 먼저다. 늘어난 능력치야 나중에 감상해도 될 일이었으니까.
감각이 예민해지고, 거기에 야간 시야까지 더해지자 전에 못 보던 흔적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댈런은 어둠 속에서 괴인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머지않아 놈의 둥지라 부를 만한 곳이 나타났다.
“······쯧.”
괴인의 둥지는 하수도의 갈라진 벽면 안쪽에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가운데에 작게 불을 피우려던 흔적이 있었다. 발로 건드려보니 이미 딱딱하게 굳은 게, 어느 순간부터 시도를 멈춘 것 같았다.
아마 육체의 변이가 가속되면서 불이 필요하지 않아졌겠지.
둥지 안쪽에는 수많은 뼈다귀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부러지고 바스라진 뼛조각들. 못해도 열 구. 어쩌면 스물 남짓까지도 되어보였다.
댈런은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그때 그의 눈에 미세한 반짝임이 잡혔다. 댈런은 눈길을 돌렸다.
저 안쪽, 둥지에서도 제일 구석진 곳의 바닥이 울퉁불퉁하게 솟아 있는 게 보였다.
마치 뭔가를 묻어놓은 것처럼.
다가가서 하나를 파 봤다. 때 묻은 은반지, 천조각, 그리고 동전 두 개가 나왔다.
옆의 것을 파내니 비슷하게 약간의 돈과 청동 팔찌, 이빨이 묻혀 있었다.
“썩을.”
이건 무덤이었다.
괴인이 잠시나마 정신이 돌아왔을 때, 자신에게 먹힌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무덤.
언제 정신을 잃고 날뛸 지 모르니, 스스로의 손에 헤집어지지 않도록 둥지의 가장 구석진 곳에 묻어둔 것이었다.
“···”
댈런은 잠시 고민하다 가죽 주머니를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고 옷자락을 작게 찢어, 같은 무덤에 묻힌 것들끼리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희생자들의 물건을 다 챙긴 댈런은, 뼛조각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묵념한 후 둥지를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둥지의 주인이 사라진 걸 알아챈 쥐들이 모여들었다.
뼛조각과 그에 붙은 약간의 살점들로 만찬을 벌이기 위해서.
***
지상으로 나오니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이 세계에서도 겨울엔 해가 일찍 기울었다.
댈런은 바로 까마귀 둥지로 향했다.
가게 문은 이번에도 잠겨있지 않았다. 다만 사람 없던 낮과는 달리 두 명이 바쁘게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명은 시에나, 다른 한 명은 아까는 없던 남자였다. 댈런을 발견한 시에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여관에 돌아간 거 아니었어? 술이라도 마시려고?”
“현상범을 잡았소.”
쿵.
댈런은 바 테이블 위에 가죽 주머니를 올렸다.
시에나는 살짝 얼굴을 굳힌 채 주머니 안을 보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말했다.
“고블린을 동강낸다 어쩐다 하더니, 갈리오스 상단주가 마냥 헛소리를 한 건 아니라는 거네.”
“글쎄.”
“아무튼 수고했어. 버번, 이것 좀 치워주겠어? 손님들 테이블 위에 있기엔 좀 그런 물건이잖아.”
그녀의 말에 덩치 좋은 남자가 주머니를 들고 뒷문으로 향했다. 댈런은 허리띠에 손가락을 걸쳤다. 그가 말했다.
“보수는?”
“여기. 15실링.”
시에나는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은화 한 줌을 꺼내 바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정확히 열다섯 개였다.
“그쪽 같은 용병에게 큰 돈은 아니겠지만, 일찍 해결했다고 해서 의뢰비를 더 얹어주거나 할 수는 없어.”
“산책 한 번으로 받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오.”
“···그러셔.”
시에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댈런은 그녀에게 주머니를 하나 더 건넸다.
“뭐야 이건?”
“그놈이 자기 둥지에 묻어둔 것들. 희생자들의 물건이오.”
시에나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