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9화 (9/288)

하수도의 마법사(3)

머리에 도끼를 꽂은 마법사가 뒤로 넘어가고, 공동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기도 잠시.

우르르르르!

와락! 우라라락!

프로그맨의 울부짖음이 공동을 쩌렁쩌렁 울렸다.

‘썩을.’

댈런은 검을 뽑아들었다. 그는 지난 전투에서 약간 느슨해졌던 갑옷끈을 왼손으로 조이고, 그대로 등 뒤의 방패를 끌러내려 들었다.

“괘, 괜찮은 거죠?”

페니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댈런은 짧게 답했다.

“괜찮소.”

좀 지랄맞은 일이 생겼다는 것만 빼고는. 뒷말은 그냥 넘겼다.

원래 하수도의 프로그맨은 이 정도로 커다란 무리를 형성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삼, 사십. 많아도 백을 넘는 경우가 없다.

미궁에 사는 먼 친척들보다 지능이 퇴화했기에, 일정 숫자 이상으로는 무리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원래는 마법사만 쓰러뜨리면 뿔뿔이 흩어져야 하지. 저 놈이 흑마법으로 프로그맨들을 붙잡아두고 있는 거니까.’

프로그맨의 군세를 뚫고 그 주인을 저격하는 것.

그게 보스몹 델릭 발렌티노의 이상적인 공략법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주인이 쓰러졌음에도, 프로그맨들은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르륵!

오르르르!

오히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댈런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기 바빴지.

댈런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리에 도끼를 꽂고도 안 뒈졌군.’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는 모른다. 손도끼는 분명 보호막 마법을 뚫고, 놈의 미간에 정확히 꽂혔으니까.

우르르륵!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수백 마리의 프로그맨이 당장에라도 덮쳐올 듯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

그리고 단신으로 그 수백 마리를 모두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그 주인인 마법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으니까.

‘머리에 도끼가 박혀도 안 죽었으면, 아예 머리통을 날려버리면 되겠지.’

찰박!

판단을 마친 댈런은, 제단을 향해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우륵! 와륵!

오르르르―!

프로그맨들이 더 격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댈런은 그걸 보며 슬쩍 웃었다.

‘정상적으로 살아있는 건 아닌가 보군.’

하긴, 뇌에 도끼를 꽂고 제정신일 리 있겠나.

마법사의 숨이 붙어 있는 건 분명하지만, 프로그맨 군세를 전략적으로 조종할 만한 의식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랬으면 진작에 그와 페니를 덮쳐 갈기갈기 찢어놨겠지.

“페니.”

“···네?”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동요하고 있었다.

댈런은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친 채,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시오. 금방 끝내고 돌아올 테니.”

끄덕.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뒤, 댈런은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는 그대로 한 발을 더 내딛었다.

찰박.

와륵! 와르르르!

우르르륵!

찰박.

우르! 우르르!

오르르르르륵!

제단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놈들의 울부짖음이 더 격해진다.

댈런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몇 걸음 내딛은 뒤로는 아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와르르륵!

프로그맨 무리가 덮쳐들었다.

콰르르르!

사방으로 오수가 튀어오른다. 늪지를 내달리고 도약하는 수백의 발걸음이 파도를 만들었다.

댈런은 그 파도의 종착점이었다. 그는 제단으로 달려나가며 고함을 질렀다.

“다 덤벼라! 개구리 대가리들아!”

와륵!

한 마리가 그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댈런은 방패를 휘둘렀다.

콰직!

개구리 얼굴의 반쪽이 으깨졌다. 하나 남은 주먹만 한 눈알이 뒤룩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쓰러진 놈 바로 뒤로 다른 놈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검을 찔렀다.

서걱!

와르―

단순한 찌르기에 실린 초인적인 힘이, 프로그맨의 두터운 목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개구리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가, 땅에 떨어진다.

철벅!

그게 떨어지기 전에, 이미 네 마리가 더 달려들고 있었다.

와륵! 우르르르!

검을 휘두른다. 방패로 뻗어오는 팔다리를 후려친다. 이빨을 들이미는 놈의 입에 검을 찔러넣고, 그대로 옆으로 그어 다른 놈의 허리를 잘라버린다.

첨벙! 첨벙!

개구리의 팔다리와 머리가 쏟아지며, 무슨 미친 과학자의 해부학 실험실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내장과 검은 피가 보행로 위로 진득한 길을 만들었다.

댈런은 그 길의 첨단을 내달렸다.

와륵!

콰앙!

들이미는 머리를 방패로 후려친다. 이번에는 머리만 으스러지지 않았다.

우드득.

방패가 위태롭게 출렁이며 부스러기를 흩날렸다. 겉을 감싸고 있는 가죽은 이미 절반 가까이 찢어진 채였다.

콰직!

한 놈의 머리를 사선으로 쪼개자, 검면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댈런의 뛰어난 감각은 검 전체를 미세하게 뒤덮은 실금을 볼 수 있었다.

댈런은 상관 않았다. 그는 계속 달렸다.

우르르!

쨍그랑!

마침내 검이 깨졌다. 검신은 프로그맨의 가슴팍에 틀어박힌 채 부러졌다.

손에 남은 건 손잡이와 토막난 검신의 조각 뿐. 댈런은 아랑곳않고 내던졌다.

다음 순간 프로그맨 한 마리의 미간에 검 손잡이가 돋아났다. 놈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우지직!

방패도 산산조각났다. 무두질한 가죽과 그 속의 가공한 나무 모두 박살나 파편으로 흩날렸다.

모든 무장이 헤제된 댈런.

프로그맨 무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오르르륵!

이 영리한 사냥꾼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빨이 뽑힌 맹수, 무기를 잃은 인간은 그들의 한 끼 식사일 뿐이라는 걸.

우르르―!

댈런의 면전에서, 한 프로그맨이 침을 질질 흘리며 두툼한 이빨을 드러냈다.

동족들보다 반 뼘쯤 더 큰 키. 보다 덜 얇은 팔다리.

사냥 무리의 대장격쯤 되는 놈은, 한 입에 댈런의 머리를 씹어삼킬 듯 도약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퍼엉―!

놈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어디 더러운 아가리를 들이대냐.”

머리가 사라진 프로그맨의 시체 앞.

댈런은 단단히 말아쥔 주먹을 내뻗고 있었다.

***

페니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기다리라더니 냅다 달려나가는 댈런. 그의 도발에 우르르 몰려드는 수백 마리의 프로그맨.

성문을 지키는 경비대조차 순식간에 갈갈이 찢겨나갈 마물의 파도가, 한 남자를 덮쳐버렸다.

그리고.

‘저, 저게 뭐야.’

그 남자는 그 파도를 갈갈이 찢어버리고 있었다.

검이 번뜩이면 머리가 날아간다. 혹은 갈퀴 달린 팔다리나 아예 몸통째로 분리되기도 했다. 번쩍이는 검을 피해낸 놈들은 방패에 맞아 으스러져버렸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 앞에 페니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사람이 마물을 저렇게 갈아버린단 말인가? 맷돌에 곡식을 쏟아붓고 돌리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페니의 경탄어린 시선은 얼마 가지 않았다.

쨍그랑!

검이 부러진 것이다.

“앗···!”

비명이 터져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분명 댈런은 그녀에게 가만히 있으라 했다.

다짜고짜 달려나가며 소리를 질러댄 것도, 프로그맨의 이목을 끌기 위한 행동인 게 분명했다.

믿는 바가 있을 것이다. 저 전사는 허투루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페니는 댈런에 대한 어떤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조금만 더. 정 안 될 같으면, 그때 도망가서 사람들을 불러오는 거야. 시에나 님은 청동 경비단과도 알고 지내시니까, 어쩌면···.’

우지직!

그때 방패마저 부서졌다. 페니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쩌지? 도망가야 하나? 저 전사가 달려나간 건, 어쩌면 그녀라도 기회를 봐 도망가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애당초 사람이 수백 마리의 마물을 홀로 맞서는 게 가능한 일이긴······.

퍼엉!

프로그맨의 머리가 터졌다.

우수수 비산하는 검붉고 하얀 조각들.

페니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무기를 잃은 댈런은, 주먹과 발로 프로그맨 무리를 분쇄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검과 방패로 놈들을 베고 후려칠 때보다, 주먹으로 으스러뜨리는 지금의 공격들이 더 빠르고 강했다.

프로그맨 무리는 이전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페니는 다른 의미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대, 대체······.’

저 남자는 누구인가.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 그녀의 머릿속을 멤돌았다.

***

콰직.

주먹이 두개골을 파고든다.

초인적인 근력이 실린 주먹은 뇌를 곤죽으로 만들고도 모자라, 그대로 뒤통수를 터뜨려버렸다.

뻐벙!

두개골 조각들이 비산한다. 댈런은 주먹을 빼내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팔꿈치로 뒤에서 달려드는 프로그맨을 찍어버렸다.

와직!

머리뼈가 함몰된다. 다시 앞으로. 무릎으로 한 놈의 배를 찍어버리고, 두 걸음 나아가며 어깨로 다른 놈을 들이받아 버린다.

우륵―!

그르륵!

마물이 진탕된 내장과 핏덩이를 토해낸다. 댈런의 몸은 이미 검은 피로 범벅이었다.

뒤집어쓴 피가 다 마물의 피는 아니었다. 댈런의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후우.

숨이 거칠다.

근력만큼 받쳐주지 않는 체력 수치가, 장기전으로 갈수록 그의 팔다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콰득.

한 놈이 어깨를 물었다. 한 뼘짜리 이빨이 피부를 반쯤 뚫고 들어왔다.

댈런은 손등으로 놈을 후려쳤다. 놈은 머리의 절반이 박살난 채 날아갔다.

후욱.

한 걸음.

댈런은 더 나아갔다.

그는 어느새 제단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제단 꼭대기에는 마법사가 쓰러져 있다. 아직 숨이 붙은 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존재는 그 누구든지 막아서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을 테였다.

우르르르!

촤악―

두꺼운 발톱이 등을 길게 가로지른다.

화끈해지는 통증과 동시에, 댈런은 뒤돌며 발로 차버렸다. 가슴팍이 움푹 함몰된 프로그맨이 맥없이 나가떨어진다.

우르륵! 와르르륵!

한 놈이 덤벼든다. 머리통을 으깨버린다. 또 한 놈이 달려든다. 두 다리를 분질렀다.

몰아치는 마물의 파도에 맞서며, 댈런은 한 걸음씩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제단 꼭대기에 닿았다.

“후우. 후우.”

턱끝까지 숨이 차오른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만 같았다.

인간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육신을 입은 이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박탈감.

허나 그의 승리였다. 쓰러진 마법사의 몸뚱이는 그의 발치에 있었다.

댈런은 반쯤 흐릿해진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우르르.

오르르륵···.

덤벼오는 놈은 없었다.

“다 했냐? 개구리 새끼들아?”

웃음이 나왔다. 댈런은 피 섞인 침을 퉤 뱉었다.

“네놈들의 주인이 죽는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거냐?”

댈런은 마법사의 목을 지그시 밟았다. 프로그맨 몇 마리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생존본능.

살아 숨쉬는 존재로서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 그들의 머릿속에 심겨진 마법사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머저리들.”

댈런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주, 주······겨···끄, 으으······.”

마법사는 반쯤 풀린 눈을 한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머리에 꽂힌 도끼 사이로, 묽은 진액이 왈칵이며 새어나온다.

괴인에게서 봤던 그 진액. 상처를 치유하고 재생시키는 물질.

저건 큰 입 가면을 쓴 사교도 집단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였다. 폭발적인 재생력을 부여해주는 것.

하지만 아직 그 기술은 완성되지 않았을 시점이다. 댈런은 피식 웃었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걸, 자기 몸에 다짜고짜 주사하고 본 거냐?”

“사, 살···아, 복···수······.”

“지랄.”

댈런은 목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흑마법사의 반쯤 풀린 눈이 다급히 요동쳤다.

와드득.

몸 잃은 머리가 반 바퀴 굴렀다. 그걸로 끝이었다.

우르르르르!

와락! 우르르륵!

주인이 죽자 프로그맨 무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뒤돌아섰다.

동족 수백을 썰어버린 괴물에게서 도망쳐, 놈들은 하수도의 공동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댈런은 그걸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몸이 무겁다. 초월적인 근력이 몸을 단단하게는 해 줬으나, 흑마법사와 같은 재생력을 부여해주진 않는다.

놈의 실험실에 찾아가면 시체를 회수할 수 있겠지. 어쩌면 그 시체가 해답이 될 것이었다.

댈런은 발을 뗐다. 그리고 곧장 무너졌다.

아니, 무너질 뻔했다.

“댈런 씨!”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니까.”

쓰러지는 댈런의 몸을 부축한 페니는,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미쳤어요? 다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가만히 있으라고요? 지금 하수도 청소부라고 무시하는 거죠?”

“···하여간 공무원 부심 오지네 진짜.”

“네? 방금 북방어로 욕한 거예요?”

“아니오.”

댈런은 손가락으로 공동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갑시다.”

두 사람은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댈런이 가리켰던 곳에는 작은 나무문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약 냄새가 코끝을 훅 스치고 지나간다.

낡은 책상과 반만 남은 책장. 꽂혀 있는 때 탄 서적들과 여기저기 깨진 실험도구들.

이곳은 흑마법사 델릭의 실험실이었다.

하수도의 작은 통로를 개조한, 마탑에서 쫓겨난 이단이 정착한 최후의 처소.

실험실의 한쪽에는 젊은 금발의 청년이 묶인 채 쓰러져 있었다. 댈런은 청년을 가리켰다.

“저기 저 사람 좀 봐주시오.”

“저, 저 사람이 혹시···.”

“맞소. 우리가 찾던 실종자. 나는 괜찮으니 저 친구가 숨이 붙어있는지만 확인해주시오.”

페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댈런을 한 번 보고는, 후다닥 달려나가 청년 앞에 꿇어앉았다.

맥을 짚고 호흡을 확인하는 걸 본 댈런은 낮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청년이 쓰러진 곳의 맞은편 구석.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니는 공간.

[사교도의 실험체가 된 용병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그만이 볼 수 있는, 잿빛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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